작가는 춤추는 아버지의 모습을 찍은 앨범 속 사진을 모아 책으로 만들었다. ⓒ김진영 제공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이 있기 전, 더 거슬러 올라가 싸이월드도 있기 전에 우리에게는 사진 앨범이 있었다. 집집마다 보관하는 사진 앨범에는 사적인 기록이 담겨 있다.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이 볼 수 있다는 가정하에 사진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나에게 혹은 가족에게 소중한 이야기를 담아 앨범을 만들었다.

어느 해 뉴욕 아트 북 페어를 둘러보다 〈The Father of Pop Dance〉라는 책을 발견했다. 팝 댄스의 아버지라니. 이름난 댄서의 이야기가 담긴 책인지 궁금해 책장을 넘기는데, 부스를 지키고 있던 작가가 말을 걸었다. “제 아버지예요.”

나에게 말을 건넨 이는 책을 만든 작가인 티안 돈 나 참파삭이었다. 그 자리에서 그는 내게 아버지와 책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작가의 아버지는 전문적인 댄서는 아니지만 춤을 너무나 사랑했다. 1967년 어느 날 여러 의상을 들고 로스앤젤레스의 한 스튜디오를 찾은 아버지는 춤을 추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사진에 담았다고 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작가는 다락방에서 이 사진들이 담긴 앨범을 발견했다. 오랜 세월이 흘러 습기로 붙어버린 앨범 페이지를 뜯어내며 아들은 젊은 시절 아버지의 모습을 마주할 수 있었다.

사진 앨범은 온라인에서처럼 검색을 할 수도, 태그를 사용할 수도 없다. 그저 만든 사람이 각자 나름의 이유로 일종의 편집을 한 결과물이다. 작가는 아버지의 앨범 느낌이 고스란히 담긴 책을 만들고 싶었다. 앨범 속 사진 그대로, 사진이 실린 순서 그대로, 그리고 스프링 제본이 사용된 앨범의 형태를 살려 책을 만들었다.

아버지는 총 네 종류의 옷을 입고, 같은 옷을 입은 사진끼리 연달아 앨범에 넣었다. 그 순서를 살려서 만든 이 책은, 빠른 속도로 책장을 넘기면 플립북(flip book)처럼 춤이 연속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어떤 사진들은 이중노출(두 개의 장면이 한 장의 사진 속에 겹쳐지도록 동일한 필름을 두 번 촬영하는 방법)을 통해 춤을 추는 모습이 보다 역동적으로 표현되었다. 어두운 배경을 골라 촬영한 덕분에 화려한 색감 및 패턴을 지닌 의상과 동작들이 두드러지게 표현됐다.

이 책에는 작가의 작품집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한 가지 중요한 요소가 있다. 그것은 습기로 인해 사진끼리 붙어 있다 떼어지면서 사진에 남겨진 많은 하얀 자국들이다. 이 자국들은 사진을 지저분하게 만들거나 사진이 훼손되었다는 느낌을 주기보다, 오히려 아버지의 춤을, 그리고 이 사진의 존재를 축하하며 뿌려진 하얀 종이들 같아 보인다. 시간이 만들어낸 일종의 실수이지만, 그것은 의도하지 않은 특별한 종류의 아름다움을 만들어냈다.

오래된 사진 앨범의 물질성을 살려서 만든 이 책 속에는 이렇게 1960년대부터 현재로 이어진 아름다움이 담겨 있다. 그것은 매끈하고 완벽한 미학이 아니라, 불완전함, 우연성, 비의도성이 만들어낸 미학이다.

기자명 김진영 (사진 전문서점 ‘이라선’ 대표)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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