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환경안전공학과 교수로 부임한 곽재식 작가는 그동안 책 30여 권을 냈다. ⓒ시사IN 조남진

1시간 동안 가장 많이 쓴 단어는 ‘신기하다’, 총 10번이었다. “신기하지 않습니까” “얼마나 신기합니까”…. 총에 달린 소음기의 작동 원리를 설명할 때는 목소리 톤이 한층 높아졌고 끝내 아무 생각 없던 상대방이 정말 신기하게 느끼도록 만들었다. 곽재식 작가의 입담은 그의 몇몇 소설 속 화자를 연상하게 했다. 북적북적한 커피숍의 소음이 사라지는 ‘신기한’ 경험이었다.

또 하나 신기한 건 그의 집필 속도다. 곽재식 작가가 소설을 쓴 지는 16년, 직장 생활을 한 지는 17년이다. 그동안 책 30여 권을 냈다. 올해 들어서만 4월까지 네 권이 나왔다. 정작 본인은 “딱히 크게 잘된 책이 없기 때문”이라고 다작의 비결을 설명했다. SF·역사·추리 소설을 비롯해 인공지능·세균·화학·기후위기를 다룬 과학 에세이, 한국의 괴물 백과사전 등 다양한 분야를 넘나든다. 얼마 전 참석한 행사에서는 방송인이라는 직함을 보고 당황하기도 했다. 라디오와 과학 팟캐스트에서도 그를 만날 수 있다. 누군가 ‘대략 잡다함과 집요함. 세상 모든 일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으로 곽재식ness(상태)를 정의하기도 했다.

카이스트를 5학기 만에 졸업한 일로 신문에 나기도 했던 그는 화학 분야 공학박사다. 2006년 단편소설 〈토끼의 아리아〉가 MBC 베스트극장에서 영상화되면서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청탁이 뜸해 어느 매체든 써달라는 원고가 있으면 맞춤형으로 쓰던 시절도 있다. 인공지능, 시간여행, 외계 행성이 등장하면서도 친숙하고 일상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SF 작가로 통하지만, 고료를 받고 소설을 가장 많이 발표한 지면은 추리소설 잡지다. 점심시간 틈틈이 글을 쓰다가 직장을 그만둔 뒤 지난 1년 동안 평소보다 많은 글을 썼다. 최근엔 숭실사이버대학교 환경안전공학과 교수로 부임했다. 그를 만나 ‘곽재식 속도’와 기후위기, SF와 신김치 이론에 대해 들었다.

요즘의 ‘곽재식 속도’는 얼마인가?
(곽재식 속도의) 두 배 정도 쓰고 있다. 3~4년 전 듀나 작가가 요즘따라 본인이 소설을 열심히 쓰는 것 같다고 하면서 지난 6개월 동안 단편소설을 네 편이나 썼는데 이 정도면 거의 곽재식 속도가 아닌가 이렇게 쓴 데서 유래한 말이다. 웃자고 하는 얘기고 사실 별로 빠른 속도가 아니다. 단편소설 하나에 100만원 주는 데가 별로 없다. 반년에 단편 네 개를 써도 1년에 벌 수 있는 돈이 800만원이다. 곽재식 속도는 소설 쓰고 부대로 이것저것 하면 인생이 살아지는 정도의 속도랄까. 큰 성공작이 있으면 글을 덜 쓰면서도 어떻게 살아갈 수 있겠지만 그게 아니면 작가로 산다고 할 때 별로 빠른 속도가 아니다.

그래도 꾸준히, 많이 썼다.
본격적으로 소설을 써야겠다고 생각하고 쓰기 시작한 게 2006년부터다. 어쩌다 보니 시간이 많이 흘렀다. 별로 한 일도 없는 것 같고 크게 잘된 책도 없는데 16년 동안 30권을 냈다. 1년에 두 권 채 안 되게 낸 셈이고 꾸준히 냈다는 점에서는 좀 괜찮은 정도다. 스스로 생각해봐도 제법인데 싶기는 하다. 그렇다고 엄청나게 다작을 했느냐 하면 그렇진 않더라. 웹소설 쓰시는 분들은 1년에 15권씩 쓰기도 하니까. 내 경우 대형 흥행작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 책 한 권이 50만 부 정도 팔렸으면 다음 책은 어느 수준 이상으로 써야겠다는 부담이 생길 텐데 고만고만하게 팔리니까 계속 부지런히 쓰게 되는 것 같다. 김초엽 작가 같은 분이 진짜 대단하다. 잘 팔리는데도 많이 쓰셨다. 제일 잘나간 책 한 권의 판매량이 내 책을 다 합친 것보다 많을 거다.

2006년 즈음 접한 한국 소설이 다 암울하고 우울해 안 그런 소설을 써보자고 매달리게 되었다고 했는데 그 생각은 여전한가?
그때는 사명감 같은 것이 있었다. 이런 걸 세상에 선보여서 문학계의 균형을 잡아야 한다는 이상한 생각도 했다. 처음 소설을 쓰면서 품었던 원대한 꿈이랄까. 요즘은 그런 마음이 약해졌지만 그래도 사회에 대한 비판 혹은 어떤 문제 제기를 하더라도 읽는 동안에는 즐겁게 웃으면서 소화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여전히 있다. 그렇게 읽다가 ‘이게 좀 문제긴 하네’ 이런 생각이 드는 그런 소설을 쓰고 싶다.

지난해 2월 tvN 예능 프로그램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한 곽재식 작가.ⓒtvN 화면 갈무리

당시에 비해 SF의 인기가 높다.
버티다 보니 이런 시대가 드디어 오고야 말았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1990년대에 지금보다 작게, SF가 반짝 인기 있었던 적이 있다. 이름난 분 말고 지금은 기억조차 되지 않는 작가들의 소설을 보면 ‘과학기술이 발달한 미래에 한국이 일본을 정복한다’는 내용이 많았다. 일본 사람이 나쁜 과학기술을 개발해서 한국을 공격하자 한국의 착한 과학자가 물리친다는 내용도 있었고. 좁은 느낌이었다. 지금은 작가들이 하나의 경향만 추구하지 않고 다채롭고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오랜 SF 독자로서 감회가 남다르겠다.
1990년대에 어느 정도의 독자군을 형성한 후 10여 년은 주춤했다. 한국에서 SF는 안 되는 건가 하는 분위기가 있었는데 팬들은 소수이지만 견고하게 계속 있었다. 예를 들어 SF가 출간되면 무조건 사야 하는 사람들이다. 언제 출판사가 망해서 절판될지 모르니까 무조건 사둬야 하고 재미없어 보여도 나중에 보면 재미있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사는, 작지만 견고한 팬층이 2000년대 중반까지 있었다. 2010년대 이후 출판계 사정이 안 좋아지면서 SF를 내면 그래도 몇백 권은 기본 팔리더라는 쪽으로 생각이 바뀐 것 같다. 2006년만 해도 출판사들이 소설을 내면 1쇄를 3000부 찍었는데 요즘은 그렇게 용감하게 찍는 데들이 잘 없다.

우스갯소리로 우리나라 SF 독자를 다 모아놓으면 500명 정도 되지 않겠냐고 얘기하기도 했는데 2016년 아작출판사가 SF 팬이라면 기다렸을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 단편선을 만들며 크라우드 펀딩을 했다. 그때 600명이 모였다. 예를 들어 600명 독자라 치면 1000부 찍는 상황에서 무시할 수 없다. 출판계 전체가 쪼그라들면서 SF만 해도 작은 시장이 아니구나 싶어 눈에 띄게 된 것이다. (냉장고에) 끝까지 남아 있던 신김치 같은 거다. 먹을 반찬이 없으면 신김치를 먹게 되는 것처럼. 그런 와중에 내적 성장도 같이 이루어지면서 훌륭한 작가들이 계속 나타나고 성장해나가는 게 대단하다.

최근 여덟 번째 단편집 〈빵 좋아하는 악당들의 행성〉이 나왔다. 초기의 소설과 어떻게 다른가?
16년 전에는 연애나 사랑을 소재로 한 소설이 많았는데 요즘은 거의 없고 분량이 짧은 소설을 많이 쓰는 것 같다. 예전에는 뭘 안 따지고 쓰고 싶은 걸 썼는데 요즘에는 세상이 바뀌어서 SF를 써달라는 청탁이 많다. 과거에는 쓰고 싶은 걸 쓰다 보니 자연스럽게 SF를 썼다면 요즘은 SF 자체를 청탁받는다. 최근 영화 에세이집 〈채널을 돌리다가〉를 냈는데 편집자가 요즘 독자들이 SF에 관심이 많으니 그걸 강조하고 영화 에세이라는 말을 넣지 말자는 얘기까지 나왔다. 출판계의 시선이 3~4년 사이에 정말 많이 바뀌었다. 과거에는 SF를 써도 그걸 가리고 ‘발칙한 상상력, 통통 튀는 재미’ 이런 식으로 SF가 아닌 척 포장을 했다. 이번 소설집에는 SF가 아닌 소설도 있는데 제목에 ‘행성’을 내세웠다. 달라진 분위기 때문에 나도 더 대놓고 쓰게 된다.

회사를 그만둔 뒤 공공성 강한 연구소나 대학 쪽으로 구직을 원했다고 들었다.
회사원으로 17년 정도 생활하다 작년에 과감히 그만뒀다. 작은 회사에서 큰 회사로 국내에서 외국 회사로 옮기며 다녔는데 새로 취업할 때는 경력 전환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기업 회장에게 돈을 벌어다주기 위해 바치는 삶이 아니라 다른 걸 위해 살아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기왕이면 그런 쪽을 추구했는데 사실은 회사 생활도 잘 맞았다. 만약 취업이 몇 달만 더 늦어졌다면 다시 사기업에 가지 않았을까.

글도 쓰고 강단에 서고 방송도 하는데 제1의 정체성은?
작가가 제일 꾸준히 해온 일이라는 면에서 대표 경력이라 할 수 있고, 학자로 생활한 지 두어 달 됐는데 간만에 공부와 연구를 해보니 너무 재미있다. 직장 생활 초창기에 연구원을 했고 이후 연구개발 조직에 소속은 돼 있어도 실제로는 관리자로 일한 시기가 길었다. 학생들에게 알려주기 위해 이것저것 조사하고 연구하고 개발하는 일이 재미있더라.

대학에서 환경안전공학을 가르치는데.
이 분야에 재미있는 게 되게 많다. 예를 들어 신기한 거 하나만 딱 얘기하겠다. 총 끝에 동그란 소음기를 달면 총소리가 확 줄어드는 걸 영화에서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게 어떻게 되는 걸까? 너무 신기하지 않나? 총소리가 얼마나 큰데, 동그란 것 안에 뭐가 들어 있길래 소리가 줄까. 환경안전 분야 갈래 중에 ‘소음’도 있다. 환경오염 중 하나가 소음공해이기도 하다. 관련해서 논문을 찾다 보니 해놓은 연구가 많더라. 원리가 쉽지는 않지만 기가 막힌다. 자동차 배기가스 배출관에 달린 머플러랑 비슷하다. 소음을 줄여주는 기능을 하는데 그걸 떼면 엄청나게 큰 소리가 난다. 비슷한 걸 총에 맞게 만든 것이다. 원리에 대해 실험해놓은 선배 학자들의 논문을 보면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너무 재미있더라. 뭔가 기여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고 학자라는 자리가 이 정도로 재미있을 줄 몰랐다.

기후위기를 다룬 책 〈지구는 괜찮아, 우리가 문제지〉에서 화학 회사 환경담당 부서에서 했던 경험을 언급하기도 하는데 어떤 일을 했나?
기후변화 담당 일을 한 적은 거의 없는데 속한 부서에서 관련된 일을 많이 했다. 알고 보면 환경 분야가 엄청난 세계다. 우리의 모든 활동 속에 숨어 있다. 예를 들어 설거지를 하고 나면 더러운 물이 하수구로 나가는데 그 물을 그대로 한강에 버릴 수는 없으니까 누군가 그걸 정화한다. 기계나 장비를 통과해 깨끗해지는 과정을 거친 다음 한강으로 나간다. 그 기계를 돌리고 운영하는 사람도 있고 과정을 개선하기 위해 연구하고 궁리하는 사람도 있다. 자동차나 공장에서 나오는 매연을 정화하기 위한 장치도 있고 그걸 관리하는 사람도 있다. 환경 분야의 사람들이 그런 일을 한다. 고속도로에 설치된 방음벽은 어느 정도 높이로 어떤 재질로 만들지 누군가 고민한다. 기준과 규정이 있고 더 좋은 걸 개발하려는 사람도 있다. 기업에서 그렇게 애쓰고 있는데 대체로 눈에 안 띄는 게 좋다는 생각을 한다. 무슨 오염 사고가 났을 때 드러나는 경우가 많으니까. 중요한 일을 하지만 그런 분위기가 있는데 학계로 넘어오면서 다른 시각으로 보니 좀 더 재미있게 느껴지는 것도 있다.

4월14일 국립중앙도서관 ‘저자와의 만남’ 행사에서 곽재식 작가가 이야기하고 있다. ⓒ국립중앙도서관 제공

책에서 기후위기 담론 중 아쉽게 느낀 점에 대해 말하기도 했다.
하나만 얘기하자면 정부나 공공 분야의 역할에 대해 시각이 좀 더 넓어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기후변화 하면 이산화탄소이고 그래서 공공기관이 이산화탄소를 많이 배출하는 기업에 벌금을 물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공공기관 입장에서도 단속 권한이 생기고 돈이 걷히니까 좋다. 그런데 기후변화로 홍수·가뭄·폭염이 심해질 거라고 30여 년 전부터 예상했다. 작년에 비해 올해 홍수로 사상자가 더 발생했다면 기후변화 때문이고 이는 예상했던 일이다. 그에 대비하지 못한 책임이 사회나 정부에 있는 게 아닌가. 지금 재난이라고 하면 천재지변이라 그냥 넘어가는데 기후변화로 이런 문제가 심해지리라는 건 예상된 일이었다. 기후변화로 대구에서 예전처럼 사과 농사를 못 짓는다고 하면, 연구해본 결과 다른 작물로 전환해야 할 것 같다고 정부에서 대안을 줘야 하지 않나. 그런 부분이 미약한 것 같고 그걸 넘어 책임감이 부족한 것 같다.

개인의 노력보다 국가의 역할을 강조하는 것 같은데.
개인의 노력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결국 개인의 관심이 많아져야 정치와 정책이 따라간다. 대표적인 예가 미세먼지다. 1990년대에 미세먼지가 더 안 좋았는데 관심을 가지니까 기상청에서 예보도 하고 주의보도 발령하고 자동차와 공장 가동을 제한한다. 개인의 관심이, 나부터가 중요하다는 게 그렇게 하면 문제가 해결되어서라기보다 그래야 공공도 거기에 맞춰서 따라가기 때문에 유효한 것 같다.

공학박사 곽재식과 작가 곽재식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지?
공학박사로서가 아니라 다른 직업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소재가 신선해지는 면이 있는 것 같다. 생활감 면에서도 그렇다. 직장인의 감각이 소설을 쓰는 데 도움이 됐다. 항상 그런 건 절대 아니지만 어떤 분이 글을 정말 잘 써서 대학 때 신춘문예로 등단하고 대학 졸업 때 낸 장편소설이 잘되어서 작가의 길로 들어선 뒤 20년을 살았다고 가정해보자. 40대가 되어 일반인의 일상을 표현할 때 얼마나 노력해야 할까. 물론 문학적으로 성공한 분이라면 잘 쓰겠지만 상당한 고민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에 비하면 저는 제 생활이 그러니까 현실감 있게 다가가는 데에는 장점이 있는 것 같다.

2005년부터 장르소설 네트워크 ‘환상문학웹진 거울’의 필진인데.
창립 멤버 중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분이 지금도 활동하고 있는 박애진 작가다. 이분이 초창기에 ‘거울’은 돈을 못 벌기 때문에 오래간다는 말을 했다. 이해를 못했는데 그 말이 맞다. 돈도 못 벌고 사회의 눈길을 받는 곳도 아니다. 곧 20주년인데 그사이 SF를 표방한 매체가 얼마나 많이 나왔다가 망했나. 4~5년 가기가 쉽지 않다. ‘거울’은 엄청 주목받는 곳이 아니기 때문에 잔잔한 분위기가 유지되며 정말 글 쓰고 싶은 사람들이 글을 올리고, 읽고 싶은 얼마 안 되는 사람들이 글을 보고 이런 식으로 유지되었다.

첫 소설집 〈곽재식 단편선〉은 독자들이 돈을 모아 출간해주었다. 독자를 ‘감각’할 때는?
13년 전이다. 가끔 사인회에 그 책을 가지고 와서 그때 그 사람 중 한 명이라고 말할 때 감개무량하다. 좀 묻고 싶다. 13년이 지났는데 그동안 인생이 잘 풀리셨냐고. 잘되셨으면 좋겠다. 본인이 읽은 소설의 감동을 나누고 싶어서 자발적으로 돈을 내 출간해주신 분들이라면, 그런 마음으로 사셔서 인생도 잘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 사람들이 잘되는 세상이면 얼마나 좋은 곳일까. 지금 내 책을 읽는 분들께도 마찬가지지만 더 애틋한 마음이 든다.

기자명 임지영 기자 다른기사 보기 tot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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