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영 그림

이정수 외 23인이 〈케이팝의 역사, 100번의 웨이브-케이팝 100대 명곡 리뷰 1992~2020〉(안온북스, 2022)을 내기 위해 협력했다. 1992~2020년 발표된 케이팝을 대상으로 명곡 100곡을 선정하고 순위 매기는 일에 참여했던 필자들은 선정된 곡마다 정성 들여 리뷰를 썼다.

이 책의 의미를 찾으라면, 순위별로 목차를 만들지 않고 노래가 발표된 시간 순으로 100곡을 소개한 것을 꼽을 수 있지. 바로 그 때문에 서태지와 아이들의 ‘난 알아요(1992. 3.23)’는 대중음악 평론가, 음악방송 관계자, 음악산업 관계자들로 이루어진 35명의 선정위원으로부터 21위라는 순위를 얻었으나 이 책의 제일 첫머리에 나온다. 반대로 방탄소년단의 ‘Dynamite(2020. 8.24)’는 그들의 곡으로 순위에 오른 다섯 곡 가운데 가장 높은 5위이나 이 책의 가장 마지막을 장식한다. 이런 배열은 독자들이 순위에 관심을 빼앗기기보다, 케이팝의 진화 과정과 연결고리를 정교하게 재구성하고 조감할 수 있게 해주지.

지금까지 한국의 대중음악은 ‘가요(歌謠)’라는 보통명사로 자신을 나타냈다. 이미자·나훈아·신중현·조용필·산울림은 가요다. ‘대중음악=가요’였던 거야. 하지만 서태지와 아이들이 등장하면서 대중음악은 가요와 가요로 묶이지 않는 또 다른 대중음악으로 분화했다. “‘난 알아요’ 이후 모든 게 바뀌었다. 이들의 영향력은 30여 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살아 있다. 오늘날 케이팝 중심의 음악시장은 사실상 이들로부터 비롯되었다고 해도 무방하다. ‘난 알아요’를 기점으로 가요 팬의 세대 분리가 이루어졌다. 이들의 음악과 춤에서는 가요 팬들이 그토록 선망하던 본고장의 느낌이 났다. 서태지는 멜로디가 아닌 랩을 중심으로 곡을 구성해 우리말로 하는 랩도 그럴듯하다는 걸 몸소 증명했다. 훗날 세계인을 들었다 놨다 하게 될 케이팝은 그렇게 태어났다. 케이팝의 신화는 이 노래에서 시작되었다(정민재).”

서태지와 아이들 이전의 가요는 어른과 아이가 함께 들었다. 그때는 대중음악이 한 국가 안에 혼재하는 세대와 세대를 통합하는 공통 매체였어. 하지만 대중 미디어가 발달하고 청소년이 구매력을 갖추기 시작하면서 세대를 통합해온 대중음악은 오히려 세대와 세대를 가르는 절단선이 된다. 미국은 이런 과정을 우리보다 먼저 경험했지. 엘비스 프레슬리가 나오면서 프랭크 시내트라와 페티 페이지를 함께 듣는 균질한 청중은 사라졌다. 부모들이 자녀가 무슨 음악을 듣는지 신경을 곤두세우며 검열을 하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야. 서태지의 등장이 경제적 풍요를 바탕으로 소비를 지향했던 X세대의 탄생과 맞물려 있다는 사실은 대중음악과 사회·경제의 긴밀한 연관을 보여준다.

케이팝 양식과 한국의 수출 강박

〈케이팝의 역사, 100번의 웨이브-케이팝 100대 명곡 리뷰 1992~2020〉
이정수 외 23인 지음
안온북스 펴냄

‘난 알아요’에는 케이팝의 지향점과 특징이 모두 들어 있다. 일반 대중이 랩이 무엇인지도 모르던 시절에 서태지는 멜로디가 아닌 랩 중심으로 곡을 구성했는데, 100대 명곡으로 선정된 대부분의 곡은 어떤 식으로든 랩을 수용하고 있지. 또한 이 노래는 케이팝을 댄스음악 일변도로 이끄는 데 커다란 역할을 했고, 양현석과 이주노의 격렬한 브레이크댄스는 케이팝 하면 떠올리게 되는 퍼포먼스의 힘을 미리 보여주고 있어.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고 있듯이 케이팝은 “트렌드를 선도하는 화려한 사운드(황선업)”와 여러 가지 사운드를 말도 안 되는 방식으로 붙여놓는 “어이없는 접합(정구원)”을 표 나게 내세워. 케이팝의 음악적 방법론은 다양한 정서와 순간을 조합해 한꺼번에 전달하는 “한 편의 뮤지컬(미묘)”과도 같아. 이런 여러 설명 가운데 단연 눈에 띄는 것은 “케이팝은 과잉이 미덕이 되는 장르다(김윤하)”라는 말이야. 전 세계 각국의 대중음악 가운데 케이팝만큼 혼종을 내세우거나 과잉된 것도 없어. 케이팝이 혼종과 과잉의 미학으로 발전하게 된 것과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강도 높은 성과사회라는 것 사이에도 어떤 연관이 있지 않을까.

존 리의 〈케이팝:대한민국 대중음악과 문화 기억상실증과 경제 혁신〉(소명출판, 2019)은 논쟁적인 책이다. 한국인들은 ‘케이팝에 한국적인 것이 있는가?’라는 질문 자체를 소중하게 여기는데, 지은이는 그 질문이 착각을 유도한다고 말해. 말하자면 저 질문은 서태지와 아이들이 등장하기 이전, 즉 1992년 이전의 한국 가요는 한국적이었을 거라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는 거야. 하지만 1885년 미국 개신교 선교단이 들어오고, 1920년대 중반부터 일본을 통해 본격적으로 유행가가 인기를 얻으며 한반도에서 천 년 동안 구축된 고유한 소리 풍경은 사라졌어. 찬송가와 창가가 보급되면서 한국인은 고유의 5음계를 버리고 서양의 7음계를 받아들였어. 이처럼 음악이 뿌리부터 바뀌었는데도 한국인들은 저런 억지스러운 질문을 내놓고 거기에 화답하는 답을 짜낸다. 이 책이 재미있는 것은 한국인들이 케이팝에서만 아니라 사회·경제·정치·교육·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똑같은 착각 속에 살고 있다는 점이야.

현대 자동차와 삼성 휴대전화는 한국의 수출 효자상품이다. 그렇다고 한국에 자동차와 휴대전화를 만드는 전통이 있었다고는 아무도 말하지 않아. 존 리는 케이팝도 자동차나 핸드폰 같은 한국의 수출 상품이라고 봐. 물론 케이팝은 자동차나 핸드폰과는 다른 문화상품이지만, 수출에 목매고 있다는 점에서는 자동차나 핸드폰과 다를 게 없다는 거야. 케이팝이 전 세계의 트렌드를 몽땅 주워 모은 혼종과 과잉의 미학을 택하게 된 비밀이 여기 있어. 〈케이팝의 역사, 100번의 웨이브〉를 보면 매번 그 노래가 성취한 세계화와 해외 진출 성적을 낱낱이 평가하고 있는데, 대체 어느 나라의 대중음악 소개서가 자국의 노래를 평가하면서 세계화와 해외 진출 성적을 평가의 잣대로 기술한단 말이야? 이런 걸 보면 “케이팝 양식은 대한민국 수출 강박과 떼어놓고 볼 수 없다”라는 지은이의 말이 과장이 아니지.

존 리의 책은 케이팝의 현재 위상을 반영하지 못하는 한계도 있지만, 몇몇 논점은 아직도 유효하다. 그 가운데 하나가 한국의 문화산업이 만들어낸 예능인과 아직도 낭만주의적 토양에서 자생하는 서양 예능인 사이의 승패야. 지은이는 “케이팝 가수들은 미국 가수들처럼 집에 딸린 차고에서 음악을 연주하거나 자기 방에서 작곡을 하면서 시작하는 법이 거의 없다”라면서 상업적·전문적으로 구상된 한국 예능인의 자질을 의심했어. 케이팝의 현재 위상은 존 리의 판단과 달리 흘러가고 있지만, 그의 판단이 틀렸다고 해서 이 문제가 끝난 것은 아니야.

기자명 장정일 (소설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