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엔 마치 흐르는 물처럼 당연했던 많은 일들이 이제 와 생각해보면 갸우뚱하게 된다.
끽연의 풍경. 어린 시절 기억엔 버스 창가에 앉아 뻐끔뻐끔 담배 연기를 뿜어대던 아저씨들의 모습이 또렷하다. 좌석 등받이엔 흡연자를 위한 재떨이가 당당하게 붙어 있었다. 2000년대 초만 해도 식당과 주점 안은 너구리 잡는 굴처럼 담배 연기로 부옇고 매캐한 풍경이었다. 빈 찬그릇에 재를 떨고, 거기에 가래침을 뱉는 모습은 아름답지는 않을지라도 크게 나무랄 일도 아닌 것처럼 여겨졌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을까. 왜 아무렇지도 않았을까. 감각의 날은 인식의 숫돌로 벼려진다. 한때 당연했던 일이 오늘도 당연할 거라는 생각은 망상이다. 오늘 당연했던 어떤 일은 내일 부인될 것이다.
1990년대 후반, 시내의 노래방들은 방 안에 CCTV를 달고 손님들이 노래하며 흥겹게 노는 모습을 길가의 모니터로 생중계하곤 했다. 손님을 유인하는 방법이었다. 길 가던 사람들은 신나게 노래 부르는 모습이 나오는 모니터에 이끌려 노래방에 들어가곤 했다. 나는 길에 서서 구경하는 걸 좋아했다. 노래에 취한 낯모르는 사람들의 모습을 가만 들여다보는 게 얼마나 흥미롭던지. 왜 그때는 그 풍경이 거북하지 않았을까. 왜 항의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을까. 어느 순간 그런 장면들은 사라졌다. 당연한 사라짐이다. 왜일까.
사진을 대하는 태도가 변했다
20세기에 가장 사랑받은 다큐멘터리 사진의 다수는 길에서 찍은 것이었다. 사진가들은 거리와 광장을 활보하며 셔터를 눌러댔고, 찍히는 사람들은 호의적이었다. 사진의 역사에 굵은 발자취를 남긴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게리 위노그랜드, 브루스 데이비슨 등의 대표작은 거리에서, 거리낌 없이, 제지나 항의도 없이, 참으로 자연스럽게 촬영한 사진들이었다. 서울의 골목길 풍경에 매달렸던 김기찬의 사진은 어떤가. 찍는 이가 마치 투명인간이라도 된 것처럼, 찍힌 이들은 촬영자를 의식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꾸밈없는 자연스러움’은 이 사진가들을 따라다니는 수식어다.
허나 어색하다. 오늘의 눈으로 본다면. 자연스럽지 않아서 어색한 게 아니라, 너무 자연스러워 어색하다. 김기찬과 브레송이 살아 있다면, 그들은 오늘도 생기 넘치는 거리와 골목 사진을 찍을 수 있을까. 그 시절 삶의 풍경과 오늘의 풍경은 달라졌다. 사진사를 대하는 태도, 무엇보다 ‘함부로’ 사진 찍는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 이제 타인에게 ‘자연스럽게’ 혹은 ‘무턱대고’ 사진기를 들이대는 일은 무례함을 넘어 범법 행위가 되곤 한다. 김기찬과 브레송의 사진들이 오늘의 기준으로 보면 항의받거나 신고당할 만한 접근법으로 태어난 거라니 어제가 좋았던 걸까, 오늘이 바로잡힌 걸까. 사진은 당대의 사람과 풍경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그들이 사진을 대했던 태도도 보여준다.
남의 모습, 남의 삶을 사진으로 담는 게 점점 어려운 일이 되고 있다. 고통의 모습이건, 환희의 모습이건. 사람의 모습을 통해 세상의 빛과 그림자를 말하는 것은 다큐멘터리 사진의 여전한 가치요 정신이겠지만, 사진을 만드는 사람도 사진을 대하는 사람도 한결같을 수 없다는 걸 사진의 사회사는 말해준다. 사람 사진이 가장 쉽다. 사람 사진이 가장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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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배가 제주에 도착했다면, 아이들이 가장 먼저 들를 곳은 섭지코지였다. 아이들은 섭지코지에서 눈부시게 푸른 하늘과 바다를 바라보며 환호성을 내질렀을까. 아이들의 수학여행 코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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