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 전 장관(위)은 현재 최고 ‘블루칩’이다. 6월14일 봉하마을에서 ‘농사꾼 오리’에 입맞추는 유 전 장관.
단순한 해프닝처럼 보였다. 6월17일 한 인터넷 언론의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을 중심으로 한 신당 창당 작업이 물밑에서 속도를 내고 있다”라는 보도가 도화선이 되었다. 많은 언론이 이를 받아썼고,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권과 누리꾼의 관심을 끌었다. ‘노무현 서거’ 이후 급부상한 유시민의 존재감을 확인하는 계기였다.

기사에 언급된 유 전 장관의 팬클럽 ‘시민광장’은 ‘유시민 신당설’을 즉각 부인했고, 개혁당 시절부터 유 전 장관과 정치적 행보를 함께 해온 동지들도 고개를 저었다. 열린우리당 출신의 한 전직 의원은 “참여정치연구회(참정연) 출신 중에 내년 지방선거에 대비해 창당을 서둘러야 한다는 사람들이 모여서 일을 저지른 것 같은데 유시민 전 장관과는 무관한 일이다”라고 말했다.

7월10일로 예정된 노무현 전 대통령의 49재 이전까지 친노 인사들은 정치적 회합은 물론 언론과의 접촉조차 경계하는 분위기다. 모든 장례 절차가 마무리되기 전에 정치 재개 움직임을 보이는 게 여론에 곱게 보일 리 없다는 사실을 이들은 잘 안다. 성급히 무대 위로 올라왔다가는 “전 대통령의 죽음을 정치적 자산으로 써먹으려 한다”라는 식의 역풍을 맞지 말란 법이 없다. 그런 이유로 정치권에서는 유 전 장관의 잠행이 상당 기간 지속되리라 본다. 그렇게, ‘유시민 신당’ 창당설은 일단락되는 분위기다. 

민주당으론 안 된다, 신당으로 고고

하지만 이번 신당설 해프닝을 둘러싼 흐름을 찬찬히 살펴보면 친노가 처한 상황과 그에 따른 고민이 읽힌다. 영남권·개혁세력을 기반으로 한 친노 신당 창당설은 노 전 대통령 서거 이전부터 제기되어온 ‘오래된 밑그림’이다. 특히 대중성을 갖춘 ‘블루칩’ 유 전 장관과 민주당의 구원(構怨)으로 복당보다는 신당 창당설이 꾸준히 힘을 받아왔다. 유 전 장관의 한 최측근은 “(유 전 장관이) 정치를 그만두면 그만뒀지 민주당으로 돌아갈 가능성은 없다고 보면 된다”라고 잘라 말했다.

“민주당 틀로는 안 된다”라는 게 이들의 기본 인식이다. 말로는 창당 수준의 리모델링을 얘기하지만 호남이라는 기득권에 안주하는 지역당 성격을 벗어날 수 없다는 판단이다. 반면 이들의 고민은 ‘반(反)

개혁당에서 열린우리당으로 이어지는 유 전 장관의 ‘창당 역사’가 세 번째 장을 쓰게 될까. 위는 2003년 열린우리당 창당대회 모습.
한나라·비(非)민주당’ 세력을 묶는 전국정당화로 향해 있다. 왼쪽으로는 민주노동당·진보신당, 오른쪽으로는 민주당과 폭넓은 선거연합을 통해 ‘반이명박 전선’을 구축한다는 구상이다.

하지만 예측 불허의 변수가 생겼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다. 서거 정국을 거치면서 ‘신당 구상’에 제동이 걸리자 친노 세력의 진로는 좀 복잡한 경로를 띨 것으로 보인다. 유시민 전 장관에 대해서도 “민주당 복당은 없다고 직접 말한 적은 없다. 상황이 달라졌는데 새롭게 고민하지 않겠느냐”라는 주변의 관측이 늘었다. 노 전 대통령 서거라는 초대형 사건 이후 정국의 흐름을 쉽게 예측할 수 없는 탓이다. 최근 김대중 전 대통령과 친노 사이의 스킨십이 늘어나는 것도 변수다. 지난 6월16일 김 전 대통령은 이해찬·한명숙·문재인·안희정 등 주요 친노 인사들과 정세균 민주당 대표가 모인 자리에서 함께할 것을 종용했다. 김 전 대통령은 “자기를 버리면서 연대해야 한다”라며 사실상 신당 논의를 차단했고, 참석자들은 이에 공감을 표했다는 후문이다.

창당 수준의 리모델링한다면, 글쎄…

이해찬 전 총리의 변화도 감지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전, 민주당 복당은 물론 정치 복귀는 생각지도 않았지만 최근에는 “내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일은 하겠다”라며 의지를 보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측근은 “현재 정국을 자신과 무관하다고 생각지 않는다. 그렇다고 10월 재·보선이나 내년 지방선거에 출마하는 형태는 아니지만 민주개혁 세력이 국민에게 신뢰를 얻는 데 기여하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라고 귀띔했다. 

이 같은 상황 변화로 인해 친노 내부에서는 “민주당을 고쳐 쓰자”라는 얘기가 전혀 엉뚱하지만은 않게 되었다. 열린우리당의 흥망성쇠를 지켜본 이들은 민주당의 대체 정당을 만드는 것이 얼마나 지난한 일인지 잘 안다. 노사모, 시민광장 등 풀뿌리 조직은 그나마 탄탄한 편이지만, 전국 단위 선거를 치르기엔 돈이 없어도 너무 없다. 당장 노 전 대통령의 장례 비용을 걱정하는 게 친노의 현실이다. 야권의 한 참모는 “돼지저금통으로는 구청장 선거밖에 못 치른다”라고 잘라 말했다. 돈도 돈이지만, 자칫 선거연대에 실패하는 날에는 ‘야권 분열’의 책임까지 뒤집어써야 한다. 여러 위험부담을 감수하느니 차라리 서거 정국을 계기로 확 달라진 위상을 이용해 민주당을 바꿔내는 게 낫다는 얘기다. 동시에 “말뿐이지 민주당이 얼마나 달라지겠나”라는 회의론도 여전하다.

유 전 장관은 이 전 총리의 보좌관 출신으로 지금도 이 전 총리를 ‘멘토’로 여긴다. 이 전 총리의 행보가 유 전 장관과 전혀 무관할 수는 없다는 얘기다. 둘 다 지금은 민주당 밖에 있지만 독자 노선을 걸을지, 환골탈태를 전제로 재결합을 선택할지, 현재로서는 모두 열려 있는 카드다.

‘신당 준비 보도 해프닝’을 통해 또 다른 맥락도 읽을 수 있다. 지금 당장은 숨을 죽이고 있지만 ‘서거 정국’이 끝났다는 판단이 서는 대로 친노에 대한 역공이 기다린다는 점이다. 실제로 친노 일각에서는 이번 ‘신당 창당’ 보도를 특정 정치 세력의 ‘악의적인 흘리기’로 보는 목소리도 들린다. 특히 친노가 떠오르자 입지가 좁아진 정동영계에서 언론 플레이를 하는 게 아니냐는 볼멘소리가 흘러나온다. 앞서의 개혁당 출신 전직 의원은 “일부 급진파의 신당 창당 움직임이 마치 유 전 장관의 뜻인 것처럼 과장된 것은 특정 정파의 친노 흠집내기라고 본다”라고 말했다.

기자명 천관율 기자 다른기사 보기 yul@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