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4월21일 서울 용산구에서 열린 성평등 정책 간담회에 참석한 문재인 당시 민주당 대선후보. ⓒ연합뉴스

젠더 갈등은 문재인 대통령 탓일까? 2017년 대선 기간 문재인 후보는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되겠다’고 말했다. 페미니즘에 적대적인 누리꾼들은 이 말을 인용하며, ‘문 대통령이 페미니스트이기에 여성에게만 유리한 정책을 폈고, 그 결과 젊은 남성 지지자들이 이탈했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지난 5년간 불거진 젠더 갈등의 원인을 대통령과 정부·여당의 태도에서 찾는다.

뜯어보면 견고하지 못한 주장이다. ‘페미니스트 선언’의 의미부터 그렇다. 문재인 후보뿐만 아니라 유승민 후보(바른정당) 역시 “상당히 페미니스트”라고 자칭했다. 홍준표 후보(자유한국당)를 제외한 다른 후보들도 여성 국무위원 비율 증가 등 문 후보와 비슷한 공약을 내걸었다. 역대 정부의 행보를 돌이켜보면 특별히 문재인 정부가 여성에게 유리한 정책을 추진했다고 하기에도 군색하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여성발전기본법(현 양성평등기본법)을 추진하고 최초로 여성 장관 3명을 앉혔다. 김대중 정부는 여성부를 신설하고 정부 내 각종 위원회의 여성 참여를 확대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호주제 폐지를 공약으로 내걸었고, 실천했다.

젊은 남성 지지자들이 젠더 갈등 때문에 정부와 여권 지지를 철회했다는 주장은 어떨까. 이는 온라인 커뮤니티의 누리꾼들만 공유하는 생각이 아니다. 2019년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에서 낸 현안 보고서(‘20대 남성 지지율 하락요인 분석 및 대응방안’)에는 20대 남성의 지지율 하락을 이렇게 분석했다. “정부 정책의 여성 편익 우선적 편향성에 대한 불신” “여권 내 일부 정치인의 젠더 편향적 정책 행보”(2019년 2월 정책기획위원회는 ‘해당 문건은 일부 민간위원들이 자유롭게 토론하는 과정에서 나온 발언을 정리한 자료로 정책기획위 공식자료가 아님’이라고 해명했다).

최종숙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선임연구원은 이 논리도 아귀가 맞지 않는다고 본다. 2020년 논문(‘20대 남성 현상’ 다시 보기: 20대와 3040 세대의 이념 성향과 젠더 의식 비교를 중심으로)에 그는 이렇게 적었다. “문재인 정부 국정 지지율 하락이 20대 남성의 젠더 의식 내지 20대 남녀의 젠더 갈등과 큰 관련이 없어 보인다.” 간단한 이유다. 논문 조사에 따르면 20대 남자와 30대 남자는 남녀 성역할과 성차별에 대한 태도가 비슷한데, 유독 20대 지지율만 떨어졌다. 말하자면 “20대 남성이 젠더 문제에서 더 ‘보수적’이기에 ‘진보적’인 문재인 정부 정책에 반발했다”라는 진단은 헐겁다.

젠더 갈등이 온라인에만 존재하는 찻잔 속 태풍은 아니다. 지난 1월21일 한국사회갈등해소센터와 한국리서치가 발표한 2021 한국인의 공공갈등 의식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51.7%가 ‘남성 vs 여성’ 갈등이 ‘심각하다’고 답했다. 2013년 이렇게 응답한 이들은 29%였고,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2017년(40.6%)에 비해서도 11.1%포인트 늘었다. 경영자 vs 노동자, 수도권 vs 지방, 영남 vs 호남 등, 나머지 13개 갈등 가운데 젠더 갈등만큼 심각성 인식이 크게 오른 항목은 없다. 젠더 갈등은 실재할 뿐만 아니라, 빠른 속도로 심각해지고 있는 당면 문제이다.

‘정책’이 아니라 ‘관점’이 문제다

하지만 젠더 갈등으로 꼽히는 사안 가운데 대통령과 정부·여당이 주도한 갈등은 꼽기 어렵다. 논쟁은 대개 일반 시민들 사이에서 벌어졌고, 온라인을 통해 증폭된 다음에야 청와대에 닿았다. 여당 관계자들은 젠더 갈등이 정치권 화두로 떠오르기 시작한 때를 2018년께로 든다. ‘워마드’ 회원이 남성 누드모델을 불법 촬영해 업로드한 사건이 벌어졌다. 경찰이 수사에 들어가자 ‘편파 수사’라고 주장한 이들이 서울 혜화역에서 시위를 벌였다. 이수역 폭행 사건도 같은 해 일이다. 취객 간 몸싸움이 젠더 갈등으로 번졌다. 하지만 갑론을박은 SNS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주로 벌어졌다. ‘미투(me too)’라고 불리는 권력형 성폭력 국면에서조차 정부와 여당은 상황을 적극적으로 주도하지 않았다. 오히려 ‘피해 호소인’ 논란이 벌어졌다.

정부가 먼저 주도할 만한 이슈들도 있었다. 청와대 국민청원으로 점화되는 문제들이다. 젠더가 얽힌 청원은 파급력이 크다. 예컨대 2019년 26만명이 ‘리얼돌 수입과 판매를 금지하라’는 청원에 참여했다. 지난해에는 29만명이 ‘여성도 징병하라’는 청원에 참여했다. 청와대 입장은 수동적이었다. 리얼돌 수입 허용 판결을 두고서는 “대법원 판결을 존중해야 하나, 해당 판결은 소를 제기한 물품만 수입할 수 있다는 요지”라고 했다. 현재까지도 세관은 리얼돌이 수입될 때마다 압류하고, 수입업자는 매번 소를 제기하고 있다. 여성 징병을 두고서는 “국민적 공감대와 사회적 합의 등 충분한 공론화를 거쳐야” 한다는 요지의 원론적 답만 내놓았다.

여성학자 출신 의원인 권인숙 의원(더불어민주당)은 문재인 정부의 특정 ‘정책’ 탓에 젠더 갈등이 불거졌다고 여기지 않는다. 갈등 국면에서 관점을 제시하고 사회 성원들의 동의를 구하지 않은 게 문제라는 것이다. “성소수자 이슈나 무고죄 논란, 여경 문제 등 문제의식이 정말 본격화될 때 지도자가 입장을 밝히고, 논의를 주도적으로 했어야 한다”라고 말했다('젠더 갈등 생겼을 때 정면 돌파 안 했다' 기사 참조).

문재인 대통령은 왜 이 새로운 갈등을 두고 논의를 주도하지 않았을까. 그리 중요치 않은 가벼운 갈등이라고 생각했을 가능성이 있다. 2017년 12만명이 여성징병제를 시행하자는 국민청원에 동의한 뒤, 문재인 대통령은 “재미있는 이슈”라고 웃어넘겼다. 2018년 혜화역 시위를 두고서는 “편파 수사라는 말은 맞지 않다. 남성 가해자의 경우 더 엄벌되는 비율이 높다”라며 ‘사실관계’만 강조했다. 수일 뒤 홍익표 당시 민주당 원내대표는 “(시위에 대한 비판이) 페미니즘에 대한 과도한 공격이나 증오로 이어져선 안 된다”라고 말하는 등 ‘엇박자’가 났다. 2019년 신년사 뒤 기자들과 가진 질의응답에서 대통령은 “20대 남녀 지지율 차이가 크다”라는 한 기자의 말에 이렇게 답했다. “그런 갈등이 있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특별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회가 바뀌는 과정에서 생기는 갈등들이고 난민 문제, 소수자 문제, 늘 갈등들이 있다. (…) 20대 남녀 지지도에 차이가 있다면 우리 사회가 좀 더 희망적인 사회로 가고 있느냐, 희망을 못 주고 있느냐라는 관점의 차이가 있을 수는 있다.” ‘지도자’가 나서지 않아도 자연히 해결되는 문제들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일부 정치인들은 대통령과 정부의 ‘부재’를 기회로 삼았다. 이들은 문재인 정부의 특정 젠더 정책을 두고 세세히 논변을 벌일 필요가 없었다. 젠더 갈등이 ‘특별한 것’이라고만 주장해도 적지 않은 유권자들을 끌어모을 수 있었다. 오늘날 ‘나쁜 정치’라고 비판받는 일련의 법석은 정치가 사라진 곳에서 생겨났다.

기자명 이상원 기자 다른기사 보기 prode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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