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월20일 경북 포항시 남구 해병대 교육훈련단에서 입대자들이 행진하고 있다. ⓒ연합뉴스

‘병사 봉급 월 200만원.’ 1월9일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페이스북에 열 글자 공약을 올렸다. 이틀 전 게시한 ‘여성가족부 폐지’에 이은 두 번째 ‘한 줄 공약’이었다. 홍준표 국민의힘 의원이 이튿날인 1월10일 “그 공약은 헛소리”라고,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후보가 “지금 부사관 월급이 200만원이 안 된다”라고 비판하며 정책을 둘러싼 공방이 불거졌다.

병사 급여 인상은 이번 대선에서 주요 후보들이 앞다투어 내세운 공약이다. 각 캠프에 의견을 직접 물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는 병사 월급을 2027년까지 200만원 이상으로, 윤석열 후보는 취임 즉시 최저임금 이상으로 인상하겠다고 약속했다. 심상정 정의당 대선후보는 약 2031년까지 최저임금 수준으로 올리겠다고 공약했다. 안철수 후보는 전역한 장병들에게 사회진출 지원금 1000만원을 지급하겠다고 밝혔다.

병사 급여가 급격히 오르기 시작한 건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이후다. 정부는 2018년 〈국방개혁 2.0〉을 발표해 “병 복무에 대한 합리적 보상”을 약속하고 단계적으로 병사 급여를 인상했다. 지난해 국방부가 발표한 ‘2022~2026 국방 중기계획’에 따르면 올해 병사 월급은 67만6100원(병장 기준)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하던 2017년 당시 월급(21만6000원)에 비해 3배 이상 올랐다. 2026년엔 99만1800원까지 인상된다.

여야 대선후보들은 현재 수준의 급여가 ‘병 복무에 대한 합리적 보상으로 충분하지 않다’고 평가한다. “국가는 그동안 국방의무를 내세울 뿐 장병들을 충분히 존중하지 못했고(이재명)”, 이는 “상식과 공정에 부합하지 않다(윤석열)”. “군 장병의 헌신에 대한 정당한 보상이 필요(심상정)”하고, 이를 통해 “국방의 의무를 다한 청년들이 사회로부터 인정받았다는 자긍심을 높일 수 있다(안철수)”라는 식이다. 각 후보의 공약에는 더는 병사들의 희생과 헌신만으로 지금의 군대를 유지할 수 없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20대 남성들 사이에서는 군복무를 피하려는 정서가 있다. 2019년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설문에 참여한 20대 현역 제대자 1117명 중 80.8%는 ‘군대를 가지 않을 수 있으면 가지 않았을 것’이라고 답했다(〈병역 담론의 전환을 위한 기초연구〉). 현역 복무를 마친 20대 남성들은 군복무로 잃는 것이 많고(66.7%), 시간낭비(59.8%)라고 생각했다. 또한 82%가 군복무 당시 급여가 경제적 보상으로 ‘적절하지 않았다’라고 답했다.

각 후보들은 20대 남성의 군복무를 급여 인상, 사회진출 지원금 등 경제적으로 보상하겠다는 계획이다. 윤석열 후보는 병사 급여를 최저임금 수준으로 보장할 경우 5조1000억원이 더 필요하기에, 세출 구조조정으로 재원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안철수 후보 측은 병사 월급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지적했다. “병사 월급 인상에 비례해 부사관·장교 등의 인건비 인상까지 고려해야 한다.” 이 경우 윤 후보가 추정한 돈보다 훨씬 많은 돈(9조 5000억원 이상)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감군 논의와 병역제도 개편 필요성

병사 급여 문제에는 감군 논의가 자연스레 따라붙는다. 그동안 국군은 낮은 급여로 대규모 병력체계를 유지해왔다. 병사에게 최저임금 수준의 급여를 약속하게 되면 어느 정도 규모로 병력을 징집할지가 중요해진다. 군 당국도 병역제도 개편의 필요성을 인정한다. 2020년 10월 국정감사 당시 모종화 병무청장은 “단기·중기·중장기적 측면에서 병역제도를 전반적으로 검토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저출생으로 인한 인구절벽 때문이다.

2000년에 태어난 남성은 약 34만명, 2020년에 태어난 남성은 약 14만명이다. 20년 뒤면 현행 병역법에 따라 징집할 수 있는 남성의 수가 20만명 정도 줄어든다. 적정 병력 규모 조정이 불가피하다. 문재인 정부는 ‘국방개혁 2.0’에서 부대 구조를 개편하고 2020년 12월 기준 55만5000명(징집병 약 30만명)인 군인을 올해 50만명까지 줄이겠다고 밝혔다.

여야 후보 모두 큰 틀에서 징집병 수를 줄이며 모병제로 전환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다만 시기와 방법론에서 차이를 보였다. 이재명 후보는 ‘선택형 모병제’를 실시해 2027년까지 징집병을 15만명으로 줄이겠다고 밝혔다. 대신 모병을 통해 전투부사관(5만명), 군무원(5만명)을 증원한다. 국민개병제를 유지하되 병역 대상자는 ‘징집병’과 ‘전투부사관 모병’ 중 택할 수 있다.

심상정 후보의 ‘한국형 모병제’는 30만 상비군을 기본으로 한다. 2031년까지 징집을 없애고, 전원 모병으로 군을 운영하는 안이다. 장교와 부사관은 현재와 비슷하게 15만명, 병사는 15만명으로 구성한다. 심 후보 측은 “군인을 직업으로 하는 청년은 남성·여성 구분 없이 ‘모병’하는 것이 ‘군복무는 시간 낭비’ 혹은 ‘필요하지만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부담’이 아니라 누구나 원하는 사람에게는 ‘기회’가 될 수 있게 해줄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 선대본부 외교안보정책본부장인 김성한 고려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모병제에 대해 우려를 표한다. “북한의 위협이 상존하는 상황에서 성급한 모병제는 국가안보를 상당한 위험에 빠뜨릴 우려가 있기에 징·모병 혼합제가 현실적이다.” 윤석열 후보는 ‘AI 기반 무인·로봇 전투체계’를 구축하겠다고 공약했다. 현재의 유인 중심 체계에서 2030년 유·무인 복합 전투체계, 2040년 무인·로봇 중심 전투체계로 전환해 병력을 줄이고 국방력은 강화하겠다는 목표다. 이에 맞춰 2030년 40만명, 2040년 30만명으로 감군할 계획이다. 김 교수는 〈시사IN〉과 전화 통화에서 “전체 병력 30만 정도면 모병제를 할 수 있는 여건이 되지만 그때도 너무 빠르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대통령이 국군 통수권자로서 ‘막아야 할’ 죽음도 있다. 군 내 성폭력과 2차 가해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다. 지난해 언론에 알려진 사건만 3건이다. 주요 대선후보들도 모두 한목소리로 분노했다. “군대 내 성폭력은 아군에 의한 아군의 공격(이재명)” “군 성추행 사건의 되풀이는 군 기강의 문제(윤석열)” “‘군 내 폭력의 사슬’을 완전히 끊어내겠다(심상정)” “(공군 이 중사 사건) 2차 가해는 피해자를 향한 사회적 살인 행위(안철수)” 등등.

네 후보 모두 반복되는 군 내 성폭력 해결을 촉구했지만 유일하게 윤석열 후보가 관련한 공약을 발표하지 않았다. 윤석열 후보 측은 “현재까지 관련 공약 발표 계획이 없다”라고 전했다. 이재명 후보는 국방부 내 성폭력 사건 전담조직 설치를 공약했고, 심상정·안철수 후보는 평시 군사법원 폐지를 약속했다. 신설된 군 인권보호관의 독립성을 보장(이재명)하고, 권한을 강화(심상정)하는 등 외부의 감시기능을 강화하겠다는 공약도 나왔다. 지난해 12월28일 국가인권위원회법 개정안이 공포되면서 군 인권보호관 제도가 신설됐다. 국가인권위 위원 중 대통령이 지명한 1명이 군 인권보호관을 맡아 부대 내 조사 등을 담당할 수 있다.

방혜린 군인권센터 활동가는 세 후보(윤석열 제외)의 공약이 ‘2차 가해 처벌 강화(이재명)’, ‘원아웃 제도 도입(심상정·안철수)’ 등 가해자 처벌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짚었다. “피해자를 둘러싸고 어떤 환경이 조성되었는지, 왜 제대로 수사가 안 됐는지에 대해 더 적극적으로 이야기해야 한다. 지금 나온 공약들은 이미 나왔던 요구를 종합하는 정도다.”


 

기자명 이은기 기자 다른기사 보기 yieu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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