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글쓰기를 가르쳐준 선생님은 말했다. 글 쓰는 사람은 자신이 누구의 편에서, 무엇을 드러내야 하는지, 누가 읽으면 좋을지 늘 염두에 두어야 한다고. 이 말은 내게 “글 쓰는 사람에게는 ‘현장’이 있어야 한다”라는 말로 번역되어 들렸다. 현장이 없다면 내가 지금 어디에 서 있는지 제대로 가늠할 수 없음은 물론이려니와 ‘누구’도 ‘무엇’도 발견할 수 없을 테니까. 나는 이 현장을 ‘사회’라고 부른다.

〈밥은 먹고 다니냐는 말〉의 저자인 농촌사회학 연구자 정은정의 글에는 늘 ‘현장’이 있다. ‘김장하는 날’ 태어나 ‘도마도 집’ 딸로 자라 ‘도마도 농사’ 짓는 이들을 관찰하는 연구자가 된 그의 생애가 농촌사회라는 현장과 늘 연결되었듯, 그의 글은 다양한 얼굴과 그 얼굴들이 부대끼며 살아가는 사회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저자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단골 급식 메뉴인 ‘사골곰탕’을 통해 채식 급식 선택제와 같은 제도 문제를 함께 고민하게 되고, 파리의 아침을 여는 제빵사들이 크림 주머니 대신 피켓을 들어야 했던 사정을 조금이라도 헤아리게 된다. 또한 매일 새벽 현관에 도착하는 먹거리들이 누구의 새벽을 빼앗으며 왔는지 상기하지 않을 수 없고, 우리 식탁을 책임지는 ‘외국인 노동자’들의 존재감도 이전과 다르게 인식하게 된다.

어쩌면 이렇게 저자가 드러낸 현장과 그 현장 속 존재들이 무심하게 밥을 먹던 우리 입을 조금 깔깔하게 할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밥상은 복잡한 맥락 속에 존재한다는 걸 알 필요가 있다. 우리가 쉽고 당연하게 누려온 밥상은 밥과 국, 몇 개의 반찬으로만 구성되지 않는다. 무수한 생명의 희생, 누군가의 소중한 일생과 고단한 노동, 불평등한 관습과 제도, 사회변화의 총합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밥상에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과 사회가 연결되어 있다. 어디 밥상뿐일까. 우리가 누리는 모든 것, 어쩔 수 없이 사라져가는 많은 것들이 ‘나’와 무관하지 않음을 기억해야 우리의 밥상이 그리고 사회가 조금이라도 평등하고 정의로울 수 있다.

많은 이야기가 얽혀 있지만 저자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하나로 연결된다. “살아오면서 먹은 음식의 총체”로서 인간 실체를 이해하는 것을 넘어 “식사를 갖추기 어려운 이들이 고립된 식사를 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그 사회의 역량”임을 인식하고 “형편에 따라 너무 차이 나지 않게 그럭저럭 골고루 갖춘 밥상을 함께 받는 세상을 위해, 차갑고 서러운 타인의 밥상을 살펴보기” 위해 “세상의 모든 먹거리는 농촌과 사람이 촘촘히 엮여 있음”을 어렴풋하게나마 감각하는 것. 그 일을 하려고 저자는 누군가를 위해 정성껏 밥상을 차리듯 글을 짓는다.

기자명 오수경 (자유기고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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