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면들〉
손석희 지음
창비 펴냄

2013년 9월11일 기자는 손석희 JTBC 사장(보도 부문)과 마주앉았다. 텔레비전 앵커 복귀를 닷새 앞둔 때였다. 〈시사IN〉 창간기념 여론조사 ‘신뢰받는 언론인 1위’ 인터뷰를 했다. 그해 5월 그는 MBC를 떠나 JTBC로 옮겼다. 인터뷰 당시 기자는, 〈중앙일보〉와의 관계, 삼성 문제를 보도할 수 있겠느냐 등을 물었다. 이 질문이 무색하게 손 사장은 앵커 복귀 3주 뒤 ‘2012년 S그룹 노사전략’을 보도했다. 삼성의 노조 무력화 전략이 담긴 문건을 직접 입수해 보도한 것이다.

저널리스트 손석희가 〈풀종다리의 노래〉 이후 28년 만에 쓴 〈장면들〉은 이 보도로 시작한다. 보도 당일 오전에야 ‘최고경영진’에게 알렸다. “내게 보도에 관한 전권을 맡긴 최고경영진의 약속은 그때 처음 시험대에 올랐다는 것이고, 그 약속은 지켜졌다는 것이다.” 어느 임원은 당시 손 사장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홍석현 회장이) 뱉어놓은 말이 있으시니….”

JTBC행부터 세월호 참사, 태블릿 PC 특종, 미투 등 저널리스트 손석희가 목격하고 보도한 격동기가 담겼다. ‘사실·공정·균형·품위’라는 손석희 저널리즘의 원칙은, 스스로 개념화한 ‘어젠다 키핑’으로 빛을 발했다. 전 세계 저널리즘사에 기록될, 521일간 이어진 팽목항·목포항의 세월호 현장 보도는 손석희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장면마다 붙은 짧은 글 ‘사족’은 〈장면들〉의 앵커 브리핑이라 할 만하다. 2016년 10월24일 태블릿 PC를 특종 보도한 장면의 사족은 이랬다. “그날의 엔딩곡은 언더그라운드 가수인 ‘안녕하신가영’의 ‘우울한 날들에 최선을 다해줘’였다. 앞에 말했던 대로 나는 약간 우울했다.” 그가 떠난 뒤 손석희 저널리즘은 JTBC 저널리즘으로 착근하지 못하는 듯 보인다. 기자는 2013년 이런 질문을 했다. ‘손석희 없는 JTBC 뉴스가 지금과 같은 보도 원칙을 유지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마지막 장면의 사족에 담겼다.

기자명 고제규 기자 다른기사 보기 unjus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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