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29일 전남 영광에서 이재명 후보가 지지자가 건넨 꽃다발을 받아 들어 올리고 있다. ⓒ연합뉴스

“호남은 민주당의 죽비고 회초리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민주당) 대선후보가 11월29일 ‘광주 대전환 선대위’ 출범식에서 이렇게 말했다. 사흘 전, 전남 목포를 찾아 지지자들에게 “호남이 없으면 민주당도 없다”라고 말한 이유에 대해 “호남이 민주당의 텃밭이어서가 아니라, 죽비와 같은 호통, 깨우침이 있기 때문이다”라고 강조했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민주당 텃밭’이라 불리던 호남에서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감지된 데 따른 반응이다.

11월25일 전국지표조사(NBS) 대선후보 지지도를 보면 호남의 이재명 후보 지지율은 60%,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 지지율은 10%였다. 여론조사마다 차이는 있지만 호남의 민주당 지지도는 50~60%이고, 국민의힘 지지도는 10% 안팎이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고). 이 후보가 윤 후보를 앞서고 있지만, 호남이 전통적으로 민주당 후보에 대해 전폭 지지를 보내왔던 지역임을 고려하면 민주당 처지에서는 아쉬운 수치다. 이재명 후보 측이 광주·전남 방문 일정을 4박5일(11월25~29일)로 늘리며 민심 잡기에 정성을 들인 이유다.

역대 대선에서는 민주당 계열 정당 후보의 호남 득표율이 대체로 90%를 상회했다. 1997년 15대 대선에서 김대중 새정치국민회의 후보는 광주 97.28%, 전남 94.61%, 전북 92.28%로 몰표를 받았다. 2002년 16대 대선에서도 노무현 새천년민주당 후보는 광주 95.17%, 전남 93.38%, 전북 91.6%로 압도적 지지를 얻었다. 민주당 계열 후보가 호남 득표율 80%를 넘지 못한 경우는 2007년과 2017년 대선 딱 두 번이었다. 17대 대선에서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후보가 광주에서 79.75%, 전남에서 78.65%를 기록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으로 치러진 19대 대선 때는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의 등장으로 호남표가 60대 30으로 갈렸다. 문재인 민주당 후보 득표율은 광주 61.14%, 전남 59.87%. 전북 64.84%였다(문재인 후보는 전국 득표율 41.09%로 당선되었다). 호남이 지역구인 한 민주당 의원은 “지금처럼 국민의당 지지가 미약한 상황에서 대선에서 이기려면 (호남) 지지율이 85~90%까지는 나와줘야 한다”라고 말했다.

광주·전남 지역을 방문한 닷새간 이재명 후보가 ‘5·18민주화운동’과 ‘2030 청년’을 거듭 호명했던 이유다. 11월28일 광주 첫 일정으로 5·18항쟁 당시 시민 구호활동의 거점이었던 양림교회를 찾은 것이 대표적이다. 이 후보는 “이순자씨의 사과는 희생자를 모욕하는 행위였다”라며 국가폭력에 의한 범죄 공소시효 폐지와 역사왜곡 처벌법 제정을 약속했다. 또 “5·18 때문에, 개인 영달을 꿈꾸던 청년에서 공적 의무를 다하는 공적 인물로 다시 태어났다(11월28일 광주 송정시장)”라고 말했다. 윤석열 후보에 대해서는 “전두환을 찬양한 사람”이라 칭하며 “무능·무식·무당의 3무 후보”라고 직격했다.

광주에서 청년층을 주축으로 한 ‘광주 대전환 선대위’를 가장 먼저 출범한 것도 민심 잡기의 일환으로 보인다. 광주 선대위 공동선대위원장으로 18세 고등학생 남진희씨가 발탁되며 화제를 모았다. 이날 공동선대위원장으로 임명된 10명 중 9명은 2030대 청년층이다. 11월29일에도 조선대학교 대학생들과 만난 자리에서 “같은 국립대라도 서울 대학과 지방 대학에 지원금이 2배 차이인 게 말이 되는 소리냐” “우리는 오늘보다 내일이 낫다고 믿어지는 사회를 살았는데, 지금 청년 세대는 생애주기 중 가장 취약계층이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하면 뺨 맞는다”라고 말했다. 민주당은 2030 과학 인재를 영입하는 등 선대위 쇄신에 속도를 내는 모양새다. 민주당의 한 의원은 “다음 주(12월 두세째 주)쯤 ‘골든크로스’를 기대해볼 수 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재명 후보의 공들이기에도 불구하고 기대만큼 호남 지지율 올리기가 쉽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호남 민심이 과거와는 달라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공진성 조선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시사IN〉과 한 전화통화에서 “호남에서 국민의당 혹은 안철수 지지 현상 이후, 민주당은 호남 유권자 30~40%가 사실상 자신들을 지지하지 않는 경우를 경험했다. 그런 의미에서 호남 유권자가 민주당이 아닌 후보를 찍는 것이 완전히 낯선 현상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윤석열 후보가 검찰총장직을 사퇴하고 정치를 시작했을 시점에 호남 지지율이 급상승했고, 국민의힘 경선 과정에서는 호남에서 홍준표 국민의힘 경선 후보가 2030의 지지를 얻으며 약진하기도 했다. “국민의힘에 대한 지지라기보다는, 과거와 같이 응집력을 가지고 민주당을 지지하는 시대가 지났다고 봐야 한다”라고 공 교수는 말했다. ‘민주당 독점’에 대한 성토, 실리를 중시하는 무당층의 등장 등으로 민주당 지지의 ‘대의명분’이 약해졌다는 분석이다.

‘흔들리는 유권자들’이 생기고 있다

지지자 사이 ‘원팀’도 여전히 과제다. 11월28일 오전 11시께, 광주 송정시장 앞은 이재명 지지자들로 발 디딜 틈 없이 북새통을 이뤘다. 이재명 후보가 도착하자 “이재명 대통령” “이재명은 합니다”라는 연호와 함성이 이어졌다. 그러나 시장 건너편에서는 이낙연 전 대표 지지자들과 대치 국면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 전 대표 지지자들은 이 후보의 ‘형수 욕설’을 언급하며 “쌍욕을 하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는 것이 말이 되느냐” “어차피 광주에서 뽑은 후보도 아니지 않냐”라며 소리를 질렀다. 앞선 PK·충청 지역 순회 현장(일명 매타버스 일정)에서는 보이지 않았던 광경이다. 민주당 경선 후유증으로 갈라진 호남 민심을 잡기 위해 이낙연 전 대표가 전남 영광 일정에 동행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지만, 성사되지 않았다. 전남 영광은 이 전 대표의 고향이다.

11월29일 전남 영광 터미널시장에서 만난 상인들은 ‘개 사과’ 논란을 의미하는 사과 모양 스티커를 마스크에 붙이고 있었다. 이재명 후보를 찍을 거냐는 질문에 “식구가 21명인데 전부 민주당 표”라고 말했다. 식육점을 운영하는 한 상인은 인파를 바라보며 복잡한 속내를 드러냈다. “낫기로는 이낙연이 훨씬 나은데 떨어졌응께. 이왕 뽑힌 거 찍어줘야제.” 시장 방문에 이낙연 전 대표가 동행하지 않은 것에 대한 아쉬움도 있었다. “여기는(영광) 지나가면 다 표인데 왜 안 오냐고.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데 말이여.”

호남을 지역구로 둔 한 민주당 의원은 “호남 대통령을 꿈꿨던 터라 상처가 바로 아물기는 어려울 수 있다”라고 말했다. 후유증을 회복하는 데 시간이 걸려 지지율이 바로 반등하지 않을 수 있다는 얘기다. 또 다른 변수는 투표율이다. 대선후보에게 실망한 유권자들이 투표장에 가지 않는다면 ‘호남 90% 득표율’이라는 목표는 더욱 어려워진다. 공진성 교수는 “과거처럼 선악 구도가 분명하지 않은 상황에서 ‘흔들리는 유권자들’이 생기고 있다”라고 말했다. “호남의 60~70%는 여전히 민주당을 지지하지만 20~30%는 민주화운동에 대한 부채의식도 없고, 촛불을 들었던 사람도 아니다. ‘전두환 옹호 발언’ 등으로 호남 지지층이 결집할 거라고 민주당이 낙관한다면 오판일 수 있다. 여차하면 국민의힘 쪽으로 돌아설 수도 있다.”

기자명 광주·영광 김영화 기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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