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9일 한 화물트럭 운전기사가 마지막 남은 요소수를 주입한 뒤 빈 통을 보여주고 있다. ⓒ시사IN 조남진

트럭도, 트럭으로 밥벌이를 하는 사람들도 마냥 서 있었다. 11월6일 오후 3시30분, 서울 양천구 신정동 서부트럭터미널. 평소와 달리 이날 이곳을 오가는 트럭들은 손으로 셀 수 있을 만큼 수가 적었다. 나무 벤치 주위에 화물차 기사 다섯 명이 모여 있었다. “어제도, 오늘도 일을 못 나갔어요. 요소수가 없는데 차를 몰 수가 있어야죠.” 화물차 기사 ㄱ씨가 말했다. 그는 인도와 차도를 구분하는 펜스 대신 곳곳에 놓인 10L짜리 빈 요소수 통을 가리켰다. “원래 저렇게 흔한 건데. 지금 저걸 10만원씩 준다고 해도 없어서 못 사요.”

중장비 차량 기사 정성원씨는 세워놓았던 차에 시동을 걸어 계기판을 보여줬다. 요소수가 정확히 절반 남아 있었다. 정씨 말에 따르면 “근교에 딱 한 번 일 나가면 끝날 양”이다. “이렇게 큰 차는 오도 가도 못하고 퍼지면(멈추면) 레커 부르는 데도 100만원씩 줘야 해요.” 요소수가 떨어지면 차는 시동이 걸리지 않는다. 길에서 차가 멈추면 도리가 없다. 정씨는 연신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렸다. 그는 ‘재고 없음’ ‘품절’ 등의 안내가 뜬 온라인 쇼핑몰 주문 현황을 틈날 때마다 ‘새로 고침’ 했다.

민주노총 건설노조가 11월7~8일 조합원 253명을 대상으로 요소수 관련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10명 중 3명은 현재 요소수가 없어서 차를 멈췄다고 답했다. 지금 남아 있는 요소수로 언제까지 차량을 운행할 수 있겠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은 ‘평균 12일’이었다.

처음 문제가 불거진 때로 돌아가보자. 요소수 문제가 보도되기 시작한 것은 10월 하순이다. 10월27일에 나온 “‘요소수 재고 두 달 뒤엔 바닥’…화물차 멈춰 서면 하루 3천억원 손실”(〈매일경제〉) 기사엔, ‘일주일 전에 동료에게 요소수 품귀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는 말을 듣고 사재기에 나선 물류업자의 사례가 나온다. 즉 10월 중순부터 업계 관계자들은 요소수 시장의 변화된 기류를 감지하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요소 최대 생산국인 중국은 지난 10월11일, 요소 수출 검역 관리방식을 바꾸겠다고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이날 중국 해관총서(관세청)는 요소·칼륨비료·인산비료 등 29종의 비료 품목에 대한 수출검사 의무화 조처를 10월15일부터 단행하겠다고 밝혔다. 이전엔 별도의 검역·검사 없이도 수출이 가능했던 물품들이다. 중국으로부터 요소를 수입하는 국가라면 당연히 눈여겨봤어야 할 발표였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가 11월1일 낸 ‘중국, 비료 및 요소 수출제한 조치 시행’ 보고서는 29개 품목 중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수출액 기준 약 20% 비중을 차지하는 ‘요소’라고 지적한다. 한국은 중국의 요소 수출 대상국 2위 국가다. 올 9월 누계 기준, 중국의 대한국 요소 수출량은 약 56만t이다. 중국 요소 수출 총량의 14%를 차지한다. 국내에 들어오는 요소 중 97.6%가 중국산이다.

11월9일 서울 양천구 서부트럭터미널 인근 주유소에 요소수 품절을 알리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시사IN 조남진

산업용 요소수 전환, 쉽지 않다

한국 정부는 중국의 검역 강화 조처가 국내에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예상을 못했을까? 중국의 사정을 잘 아는 현지 관계자는 “정부가 이런 상황을 모르진 않았을 것이다. 중국에 거주하는 공무원, 공공기관·대기업 관계자가 얼마나 많은데 이런 중국의 주요 흐름이 보고되지 않았겠나?”라고 말했다.

다만 정부가 초기에 이 문제를 심각하게 보지 않았을 것이라는 짐작은 할 수 있다. 11월10일, 국회 운영위원회에 출석한 유영민 대통령비서실장은 “관련 정보를 더 빨리 의미 있게 받아들여 예측하고 준비했어야 한다는 점은 뼈아프게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중국 측 검역 강화 조처의 여파를 충분히 짐작하지 못했다는 의미다. 정부는 11월2일 처음으로 요소수 수급 대응 상황을 점검하는 관계부처 합동회의를 열었다.

11월8일, 국회를 찾은 싱하이밍 주한 중국 대사는 여당 측에 “한국의 요소수 대란은 중국도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해결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문일현 중국정법대학 교수는 “한국이 외교 채널을 통해 입장을 전하자 중국에서 바로 반응한 것을 보면, 이번 조치가 한국을 겨냥한 의도적 조치는 아닌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11월10일, 중국 측은 현지에 발이 묶여 있던 한국 기업의 예약 요소 물량 1만8000여t(약 3개월 분량)에 대한 수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요소수는 뭘까? 이제껏 대다수 시민들에게 요소수는 이름조차 들어본 적 없는 생소한 제품이었다. 요소수는 한국 내 경유차 가운데 20%의 운행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물질이다. 환경부 자료에 따르면, 올해 9월 기준 한국엔 980만 대 정도의 경유차가 운행되고 있다. 이 중 215만 대는 요소수가 필수적인 ‘SCR(질소산화물 환원촉매장치) 부착 차량’이다.

질소산화물은 산성비나 스모그 같은 환경오염 문제를 야기하는 주요 원인물질로 알려져 있다. SCR은 질소산화물(NOx)에 요소수를 뿌려 그것을 질소와 물로 분해하는 장치다. 오염물질을 질소와 같은 대기 성분으로 바꾼다. 여기에 요소수가 필요하다.

2015년 이후 출시된 경유차들은 요소수를 넣지 않으면 출력이 약해지다가 서서히 시동이 꺼지거나 아예 시동조차 걸리지 않게 설계돼 있다. 2015년은 자동차 배기가스 배출을 줄이기 위해 유럽연합에서 시행하고 있는 ‘유로 6(EURO 6)’가 국내에 도입된 해이다. ‘유로 6’는 유럽연합이 도입한 경유차 배기가스 규제다.

요소수는 요소와 물의 결합물이다. 석탄이나 석유, 천연가스 등으로 제조한 요소에 순도가 높은 증류수를 결합시켜 만든다. ‘순도가 높은’ 증류수라는 점은 매우 중요하다. 현재 정부가 추진하려는, 산업용 요소수를 차량용 요소수로 전환하려는 방침에 전문가들이 의문을 제기하는 이유도 이와 관련이 있다. 산업용 요소수를 차량용 요소수로 바꿀 수 있는가? 이론적으로는 가능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쉽지 않다. 산업용 요소수엔 불순물이 많기 때문이다.

허일정 한국화학연구원 환경자원연구센터장은 “산업용 요소수를 정제해 순수한 요소를 구할 수 있다면 차량용 요소수를 다시 만들 순 있다. 하지만 ‘정제’라는 것은 추가적인 공정이므로 정제공장 같은 별도의 시설을 세워야 한다. 필요한 요소수 양이 수백t인데 작은 실험실에서 이걸 만들 순 없지 않나”라고 말했다. 혼합물인 산업용 요소수를 차량용으로 다시 만들기 위해서는 고도의 정제 기술이 필요할 뿐만 아니라 비용과 시간을 들여 또 다른 기반시설도 마련해야 한다는 뜻이다.

요소수가 그렇게 중요한 물질이라면 왜 국내에서는 이제껏 자체 생산을 하지 않은 것일까? 2003년 7월, 흥미로운 보도(2003년 7월5일, MBC 〈뉴스데스크〉 ‘여수산업단지 내 남해화학 요소 공장 통째 인도네시아로 수출’)가 하나 나왔다. 여수산업단지 내 남해화학 요소 공장이 통째로 인도네시아로 수출되었다는 내용이다. 앵커의 첫 문장은 이렇다. “우리나라 한 비료 생산업체가 공장을 통째로 뜯어서 외국에 팔았습니다. 돈도 벌었을 뿐 아니라 공장을 폐기할 때 발생하는 환경 피해도 줄이게 됐습니다.”

공장이 문을 닫게 된 이유는 경제성이었다. 요소비료 주 수출국이던 중국과 동남아 시장이 줄어들고 국내 비료 수요도 한계에 이르러 이미 그 전해부터 가동이 중단됐다는 것이다. 이런 추세가 계속 이어져 국내에서 요소를 생산하는 공장은 하나둘씩 문을 닫았다. 10년 전인 2011년, 롯데정밀화학의 전신인 삼성정밀화학이 적자 끝에 요소 생산을 중단했다. 마지막 요소 공장이었다.

자동차 부품산업은 ‘지역화 사업’

11월9일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요소수 폭등 사태 정부 대책 촉구 기자회견’(민주노총 전국건설노동조합 주최)이 열렸다. 참가자들이 트럭 장난감과 요소수 박스를 걷어차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시사IN 신선영

이번 사태 이후 ‘일본과 달리 한국은 자체적으로 요소를 생산하지 않는다’며 ‘준비 부족’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한국에서 다시 요소를 생산하는 것에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시간과 돈을 들여 요소 생산공장을 새로 짓는다고 해도 결국 중국, 러시아 등 산지 국가들에 비해 가격경쟁력이 뒤처지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해당 기업이 지속적으로 적자를 낼 것이므로 유지되기 어렵다. 이항구 한국자동차연구원 연구위원은 “지금이야 급하니까 그런 주장이 나오지만, 이후에 중국이 수출제한 조치를 풀어주면 그 공장들이 계속 유지될 수 있겠나?”라고 말했다.

이 연구위원은 중국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수입선을 다변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신중히 따져볼 점이 많다고 본다. “글로벌 유통망을 구축한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진 않는다. 수입선을 다변화한다 해도 적시에 공급하는 게 가능한지, 비용이 합리적인지 등을 고려해야 한다.” 실제 이번 사태로 러시아에서 요소를 긴급 수입하는 방안이 검토됐지만 1~2개월의 시차 때문에 당장의 수혈은 불가능했다. “업계에서는 몇 년 전부터 자동차 부품산업을 ‘세계화 사업’이 아니라 ‘지역화 사업’이라고 말하고 있다. 세계무역협정이 아니라 지역무역협정(RTA·인접 국가나 일정한 지역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을 통해 신속한 근거리 공급망을 구축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

요소수 대란의 가장 큰 피해자는 생업 전선에서 뛰는 사람들이다. 덤프트럭 운전자 김정석씨는 지난해 큰마음을 먹고 덤프차 비용 중 1억2000만원을 할부로 계약했다. 매달 내야 하는 할부금이 250만원이다. 김씨는 얼마 전 요소수 세 통을 구했다. 이게 동나면 언제 다시 요소수를 구할 수 있을지 알 수가 없다. 김씨는 누가 가져갈까 봐 요소수 통에 자신의 이름을 적어두었다.

레미콘 운전자 김봉현씨도 사정은 비슷하다. 동료들과 머리를 맞대고 대책을 찾아보고 있지만 “서로 나눠 쓰면서 버틸 때까지 버티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라고 했다. 코로나19 여파로 한참 동안 일감이 줄었다가 최근 다시 일거리가 생기던 차였다. “정부의 환경규제 정책을 지키려고 갖고 있던 차도 폐차하고 비싼 빚을 내서 레미콘 차를 새로 샀다. 한 달에 200만원씩 차량 할부금을 내면서 일하고 있는데 돌아온 것은 요소 대란이다.”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