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윤석열 대선후보(왼쪽에서 세 번째)가 11월5일 백범김구기념관에서 열린 전당대회에서 당 지도부 및 경선 후보들과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국회사진기자단

정치를 시작한 지 129일밖에 되지 않은 정치 신인을, 한국에서 가장 역사가 오래된 보수주의 정당이 대통령 선거 후보로 낙점했다. 그것도 이 정당 소속으로 당선된 전직 대통령을 감옥으로 보낸 검사를.

11월5일, 국민의힘 제21대 대통령 선거 후보로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선출됐다. 총 득표율은 47.85%로 2위 홍준표 후보의 득표율(41.50%)과 6.35%포인트 격차를 보였다. 윤석열 후보는 당원으로 이루어진 선거인단 투표에서 크게 앞섰다. 선거인단 총 투표수 36만3569표 중 57.77%인 21만34표가 윤석열 후보를 선택했다. 2위 홍준표 후보는 여론조사에서 득표율 48.2%를 차지하며 윤석열 후보(37.93%)를 앞섰다. 그러나 선거인단 투표에서 벌어진 격차(약 23%포인트)를 만회하지 못했다. 한편 양강 구도에 도전한 유승민·원희룡 후보는 각각 최종 득표율 7.47%, 3.17%를 기록하는 데 그쳤다.

■ 정치 신인은 어떻게 당심을 안았나?

대선주자 윤석열의 탄생에는 국민의힘 전통 지지층의 지원사격이 크게 작용했다. 경선 막바지 윤석열·홍준표 각 캠프의 전략은 명확했다. 국민의힘 내부 조직에서는 윤 후보가, 여론 확장성에선 홍 후보 쪽이 상대적으로 우세할 것이라 판단했다. 특히 국민의힘 현역 의원들이 줄지어 윤 후보 지지를 선언하면서 ‘조직(윤석열) 대 여론(홍준표)’이라는 구도가 굳어졌다.

10월26일 하태경 의원이 윤석열 후보 캠프에 합류하는 모습이 상징적이었다. 국민의힘 대선후보 2차 예비경선에서 탈락한 하 의원은 이준석 당대표와 함께 ‘바른정당계’ 주축으로 꼽히던 인사다. 이채익 의원을 비롯한 현역 의원 7명도 같은 날 윤석열 후보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현역 의원이 두 명(조경태·하영제)뿐이던 홍 후보 캠프와 대조적인 모습을 보였다.

하태경 의원의 합류 시점은, 윤 후보가 ‘전두환 옹호 발언’ ‘개 사과 인스타그램’ 등으로 논란을 겪은 직후였기에 더욱 주목받았다. 후보 본인이 여러 차례 공개 사과를 해야 했던 논란에도 불구하고, 캠프 내부에서는 어느 정도 승기를 잡았다고 판단했다. 10월29일, 윤석열 캠프에서 활동하는 한 전직 의원은 “여론조사를 살펴보면 홍준표 후보가 많아야 10%포인트 정도 앞선다. 이 정도 가지고는 뒤집지 못한다. 각 캠프에 호의적인 당협위원장 숫자에서 차이가 많이 난다”라고 말했다.

지난 6월 당대표 선거의 경험이 이 같은 윤 후보 측 자신감의 배경으로 작동하기도 했다. 당시 이준석 대표는 당원 투표(70% 반영)에서 나경원 전 의원에게 3.52%포인트 차이로 뒤졌다. 그러나 여론조사(30% 반영)에서 과반이 넘는 58.76% 득표율을 기록해 나 전 의원(28.72%)을 크게 앞섰다. 윤 캠프 측 입장에선 홍 후보와의 여론조사 격차가 10%포인트 수준이라면 6월 당대표 선거 같은 ‘뒤집기’는 어렵다고 봤다.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와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오른쪽)이 10월24일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가 주도한 ‘새로운물결’ 창당 발기인 대회에 참석하고 있다.ⓒ국회사진기자단

■ 모로 가도 정권교체만 하면 된다

윤석열 후보를 지지한 21만 당원 표심이 전적으로 조직적인 표 동원에서 비롯되었다고 일축하기도 어렵다. 이번 대선 경선에서 국민의힘 선거인단(당원) 투표율은 63.89%에 육박했다. 홍준표 후보는 11월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조직(후보 캠프)이 감당할 수 있는 투표율은 최고 25%에 불과하다. 자유투표로 투표율 65%만 되면 제가 압승한다”라는 말을 남겼다. 최종 투표율은 홍 후보가 말한 수치에 근접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홍 후보는 ‘다수 당원의 자유로운 의사결정’에서도 윤 후보를 앞서지 못했다.

국민의힘의 최대 숙원은 ‘정권교체’다. 당원으로 대표되는 열성 지지층의 인식과 바람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언뜻 정권교체를 위한 최적 전략은 ‘본선 경쟁력이 가장 뛰어난 후보’일 것 같다. 그런데 국민의힘이란 정당 차원의 최적 선택은 윤석열이라는 정치 신인으로 수렴되었다. 인기나 인지도, 확장력이라는 변수보다 중요한 건 ‘제대로 정권을 가져올 것 같은 사람’이라는 확신이다. 당원들이 보기에 문재인 정부와 가장 선명한 대척점을 이루는 인물이 바로 윤석열 후보였던 것이다. 정치적 언어에 미숙하고 여러 구설에 휩싸이더라도 윤석열 후보의 이런 ‘상징성’이 국민의힘 경선 과정에서 무너지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반대로 석패한 홍준표 후보 입장에서는 몇 가지 아쉬운 포인트가 두고두고 회자된다. 당내 지지층 확산을 주춤하게 한 몇 가지 사건이 있다. 9월16일 홍 후보가 내놓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 관련 발언이 대표적이다. 당시 국민의힘 대선후보 경선 첫 토론회에서 홍 후보는 조국 일가의 수사에 대해 “부당하지는 않았지만 과했다. 전 가족을 도륙하는 수사는 없다”라는 말을 남겨 논란이 되었다. 그러나 이 발언은 곧바로 당내 지지층 사이에서 ‘조국수홍(조국 수호와 홍준표라는 단어를 합성)’이라는 비아냥으로 번졌다. 곧바로 홍 후보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국민이 아니라고 하면 제 생각을 바꾸겠다”라며 관련 발언을 철회했다.

복당 직후인 6월30일 풍경도 당내 관계자들 사이에 회자되는 순간이다. 이날 홍 후보는 국민의힘 초선 의원 모임인 ‘명불허전보수다’에 강사로 초빙되었다. 당내 다수인 초선 의원들과 사실상 첫 대면하는 자리였다. 당내 한 관계자는 “강연 초반에는 초선 의원들이 ‘(홍 후보에 대해) 과연 대선후보까지 올라갔던 관록 있는 인물’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그러나 강연 막바지에 다다르면서 의원들이 ‘역시 듣던 대로 거칠다’라는 느낌으로 바꾸더라”고 설명했다.

윤석열 캠프 측 인사는 “막말을 대중에게 질러대는 것과 같이 일하는 사람에게 하는 건 차원이 다르다. 홍준표 후보와 함께 일해본 사람들 중 학을 뗀 경우가 많다”라고 말했다. 홍 후보는 당대표 시절 자신을 경험해본 사람은 물론 새로 대면하는 초선도 포섭하지 못했다. 이런 홍 후보의 취약점이 윤 후보에게 상대적 수혜를 입힌 셈이다.

후보 단일화 변수를 만들어내지 못한 것도 결과론적으로 홍 후보에게 아쉬운 일이 되었다. 최종 득표율 7.47%를 기록한 유승민 후보는 홍 후보와 마찬가지로 선거인단(당원) 득표율(4.27%)보다 여론조사 결과(10.67%)가 높게 나타났다. 홍 후보와 윤석열 후보 간의 득표율 격차를 고려하면, 유승민 후보와의 단일화가 경선 막판의 또 다른 변수로 이어졌을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 역설적인 전략이 필요한 시점

역설적이게도 국민의힘은 경선을 거치며 가장 크게 상처 입은 인물을 최종 대선후보로 선출했다. 윤석열 후보는 경선 과정에서 가장 손해를 많이 본 사람이다. 토론 등 언론 노출 과정에서 ‘왕(王)자 손바닥 표식’ ‘천공 멘토 논란’ ‘당 해체 발언 논란’ ‘전두환 옹호 발언’ ‘개 사과 인스타그램 논란’ 등을 겪으며 중도층 유권자들에게 감점 요인을 얻었다. 중도 확장성에서 홍준표 후보에게 밀린다는 인식도 실제 경선 결과에서 수치화되어 나타났다. 당이 내세운 대선후보에게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이런 확장성을 회복하기 위한 수순이다.

국민의힘 홍준표 후보(가운데)가 11월4일 홍대거리에서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시사IN 조남진

홍준표 캠프 측 내부 사정에 밝은 한 인사는 경선 결과를 두고 “당이 어려운 문제를 풀게 되었다”라고 평했다. “본선에서 이기기 위해 오히려 대선후보의 캐릭터를 감춰야 하는 선거”를 치러야 한다는 의미다. 그러기 위해서는 윤석열 후보라는 개인의 매력도로 표를 얻기보다는 ‘정권교체론’을 좀 더 전면에 내세울 수밖에 없다. 이 인사는 “지금부터 윤석열은 이재명을 공격하는 게 아니라 문재인을 공격해야 한다”라는 말로 갈음했다. 이재명 후보와의 일대일 대결에서 비교우위를 얻기보단 ‘문재인 정부 심판론’에 더욱 집중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당장 이재명 후보와의 일대일 토론이 열린다고 가정했을 때, 윤석열 후보가 우위를 차지할 것으로 여기는 이들은 많지 않다. 경선에서 홍준표 후보도 윤 후보에게 “냉정하게 이재명 후보와 토론에 자신 있는가(10월15일 경선 토론)”라고 물었다. 토론이 윤 후보의 약점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날 윤 후보는 “인신공격하지 않고 정책 토론하면 자신 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광역자치단체 행정 경험을 가진 이재명 후보가 정책 토론에서 윤석열 후보에게 밀릴 것으로 보는 사람은 드물다. 국민의힘 처지에서 대선 프레임을 윤 후보에게 유리한 구도로 몰아가려면, 이재명 후보와 정책의 상세한 내용을 두고 다투기보다는, 대중의 정권교체 열망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쪽이 훨씬 합리적인 전략일 수 있다.

중도 확장성을 위한 외부 지원도 시급하다. 윤석열 후보의 당선과 함께 주목받는 또 다른 인물이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다. 통상 대선 경선이 마무리되면 정당의 모든 체계는 후보 중심으로 재편된다. 한 여당 지도부 관계자는 “대선후보가 선출된 이후의 당대표는 후보가 직접 내뱉지 못하는 강경한 발언을 대신 던지는 역할을 한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준석이라는 아이콘은 국민의힘에서 대선후보가 갖지 못하는 청년·중도 확장성을 보완해주는 인물이다. 이 대표가 내년 대선과 함께 열리는 서울 종로구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본격적으로 나서면서 선거의 전면에 등장하는 시나리오가 경선 직후 더욱더 힘을 얻고 있다. 국민의힘 입장에서 ‘경선 내홍 수습’에는 홍준표·이준석으로 대표되는 청년·중도층 표심을 얼마나 윤 후보에게로 이전시키느냐는 문제가 포함되어 있다.

권성동 의원을 비롯해 일부 인사들이 주도하던 캠프 인선도 재편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10월29일 “내년 대선은 이재명과 윤석열의 대결이 될 것”이라며 사실상 윤석열 후보를 측면 지원한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의 등판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김 전 위원장이 빠른 시일 내에 국민의힘 대선 캠프의 전면에 등장해 사실상 캠프 인선을 주도할 것이라는 예상도 당내에 확대되고 있는 상황이다. 앞서 10월27일, 김종인 전 위원장은 윤석열 캠프 합류 시점에 대해 “(최종) 후보가 확정이 되면 후보의 생각도 들어보고, (내가) 가서 협력하는 게 (후보) 본인을 위해서나 나라를 위해 좋은 것이라는 확신이 섰을 때”라고 설명한 바 있다. 이 같은 구상에 따른다면, 우선 윤 후보와 김종인 전 위원장이 대면한 이후 본격적인 캠프 인선이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

물론 캠프 정비와 핵심 인사 인선 이전에 윤 후보에게 남겨진 큰 숙제부터 해결해야 한다. 경선 기간에 미뤄둔 광주 방문과 전두환 관련 발언에 대한 사과다. 윤석열 캠프는 경선에서 최종 후보로 당선된 직후 “11월10일 수요일에 광주를, 11월11일에 김해시 봉하마을을 방문할 예정이다”라고 발표했다. 국민의힘이 향후 ‘후보의 실수를 최소화하는 선거’를 치르기 위해서는, 이미 벌어진 실수부터 제대로 뒷수습하는 게 우선이기 때문이다.

기자명 김동인·이은기 기자 다른기사 보기 astori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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