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8일 국회에서 열린 고발 사주 의혹 관련 기자회견에서 질문에 답하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 ⓒ국회사진기자단

‘고발 사주 의혹’ 사건의 실체가 드러나고 있다. 지난 9월2일 〈뉴스버스〉 첫 보도 이후 윤석열 전 검찰총장, 윤석열 캠프, 국민의힘 등은 “정치공작”이라고 주장했다. 고발 사주 의혹 당사자인 김웅 의원은 “공익신고다”라는 당초의 주장을 “기억이 나지 않는다”라고 바꾼 뒤 침묵했다. ‘손준성 보냄’의 당사자로 지목된 손준성 검사(현 대구고등검찰청 인권보호관)는 수차례 “고발장을 작성하거나 고발장 및 첨부자료를 김웅 의원에게 전달한 사실이 결코 없다”라는 입장문을 기자들에게 보냈다. 제보자 조성은씨와 박지원 국가정보원장의 만남(8월11일)이 알려지면서 윤석열 캠프와 국민의힘은 ‘제보 사주’라고 맞불을 놓았다.

‘고발 사주’와 ‘제보 사주’ 프레임 싸움이 팽팽한 가운데 수사가 시작됐다. 〈뉴스버스〉 보도 이후 대검 감찰부,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1부, 공수처 수사3부가 각각 수사에 들어갔다. 수사기관들은 디지털 증거 확보에 나섰다. 제보자 조성은씨가 제출한 휴대전화와 USB가 결정적인 물증이었다. 여기에 최초 전달자가 계속 기록되는 텔레그램의 고유 기능도 사건의 실체에 다가서는 중요한 단서가 됐다. 이런 디지털 증거가 없었다면 고발 사주 의혹은 정치 공방으로 끝날 수도 있었다. 10월7일 현재 고발 사주 의혹은 세 차례 전환점을 지나며 실체가 점점 드러나고 있다.

이 사건의 ‘1차 전환점’은 포렌식 결과가 밖으로 알려진 9월 셋째 주다. 조성은씨가 지난해 4월3일 오전 10시12분(지○○ 페이스북 캡처 사진), 오후 1시47분(지○○ 판결문 3건), 오후 4시19분(고발장)에 각각 내려받은 파일 생성 기록이 확인되었다. 해당 파일이 조작되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김웅 후보가 조성은씨에게 보낸 ‘4월8일 최강욱 고발장’도 역시 조작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 같은 디지털 포렌식의 결과로, “4월3일에 일어난 일이 4월3일 고발장에 들어가 있다. 그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9월8일 윤석열 전 검찰총장)”라는 파일 조작설은 설득력을 잃게 되었다.

조성은씨가 받은 고발장과 첨부자료가 조작되지 않은 게 확인되면서, 고발장 작성과 첨부자료 수집에 관여한 이들로 수사의 초점이 맞춰졌다.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1부는 검사 9명을 투입해 대검 감찰부 감찰 자료 일체를 넘겨받아 수사에 속도를 냈다.

수사정보2담당관 꼭 찍어 압수수색한 이유

지난 9월30일 공공수사1부가 공수처로 사건을 이첩하면서 고발 사주 의혹은 ‘2차 전환점’을 지났다. 공공수사1부는 형사사건 공개심의위원회 공개 의결을 거쳐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1부는 최강욱 의원 등이 고소한 사건에 대하여, 고소장 접수 직후부터 검사 9명 규모의 수사팀을 구성하여 대검 진상조사 관련 자료 일체를 압수수색을 통해 확보하고, 디지털 포렌식, 관련자 소환조사 등 철저하게 수사를 진행하였습니다. 수사한 결과, 현직 검사의 관여 사실과 정황이 확인되어 오늘(9월30일) 공수처에 이첩하였습니다. 그 밖의 피고소인들도 중복 수사 방지 등을 고려하여 함께 이첩하였습니다. 향후 공수처에서 추가로 요청하는 사항에 대하여 검찰은 적극 협조하겠습니다.”

검찰 수사로 적어도 고발 사주 의혹에 현직 검사들이 관여했다는 사실이 확인된 셈이다. 물론 이날도 손준성 검사는 종전 입장 그대로 자신은 관여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하지만 2차 전환점을 지나며 손 검사의 주장 역시 설득력이 떨어지게 되었다.

지난 9월28일 공수처 수사3부는 손준성 수사정보정책관실에서 근무한 검사 두 명의 자택과 사무실 등을 압수수색했다. 지난해 4월 당시 손준성 수사정보정책관실 산하 수사정보2담당관으로 근무한 성 아무개 검사와 수사정보정책관실에 파견됐던 임 아무개 검사다.

공수처가 성 검사와 임 검사를 특정해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하고, 이를 법원이 발부한 점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성 검사는 지난해 4월 당시 수사정보2담당관이었다. 손준성 수사정보정책관 직할이다. 공수처는 왜 수사정보2담당관을 꼭 찍어 압수수색한 것일까?

수사정보정책관실의 전신은 범죄정보기획관실, 흔히 ‘범정’으로 불렸다. 범죄정보기획관 아래로 범죄정보1·2담당관으로 나뉘어 평검사 3~4명이 배치되었다. 1담당관과 2담당관실에 각각 배치된 베테랑 수사관 수십 명이 정보를 수집해왔다. 기존 범죄정보1담당관은 각종 범죄 정보를, 2담당관은 정관계나 언론계 등 동향 정보를 파악했다. 말이 동향 정보이지 정치인 등에 대한 사찰 논란이 일기도 했다.

문재인 정부 들어 문무일 검찰총장이 범정을 수사정보정책관실로 개편했다. 수사정보2담당관이 수사 정보를 수집·관리하면, 수사정보1담당관이 이를 검증·평가하도록 한 것이다. 동향 정보 수집 폐해를 막기 위한 개편이었다. 그럼에도 정보 파악이라는 고유 기능은 수사정보2담당관실에 남아 있었다. 이 정보 파악 기능의 책임자가 바로 성 아무개 검사였다. 공수처는 수사정보2담당관 측이 문제의 고발장에 담긴 정보를 수집했다고 의심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해 4월3일 조성은씨에게 전달된 고발장에는 일반인이 알기 어려운 정보가 담겨 있다. 예를 들면 ‘제보자 X’로 알려진 지○○씨에 대한 정보다. 지난해 3월31일 MBC는 ‘채널A 사건’을 보도하며 제보자인 지○○씨를 A라고 불렀다. 이로부터 나흘 뒤인 지난해 4월3일까지 MBC는 채널A 사건 제보자 신원에 대해 일절 보도하지 않았다. 채널A 측도 이철 당시 밸류인베스트코리아 대표의 측근이라고 소개받고 취재한 지씨가 제보자 X인 줄 몰랐다. 채널A가 자체적으로 꾸려 발표한 〈신라젠 사건 정관계 로비 의혹 취재 과정에 대한 진상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2월25일 1차 만남, 3월13일 2차 만남, 3월22일 3차 만남까지 3차례 만났지만 지○○의 이름을 포함한 신원을 확인하지 못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지난해 4월3일 고발장은 지○○씨의 신원을 정확히 특정했다. MBC에 제보한 A가 ‘제보자 X’이며 사기와 횡령 등으로 실형을 산 지○○씨라고 알려진 건 지난해 4월3일 당일이다. 4월3일자 〈조선일보〉가 “친여 브로커 ‘윤석열 부숴봅시다’…9일 뒤 MBC ‘檢·言 유착’ 보도”라는 보도로 지○○씨의 신원을 특정했기 때문이다(이 기사는 고발장에도 포함되었다). 이 기사를 작성한 기자들은 검찰과 법원을 출입하는 〈조선일보〉 법조기자들이었다. 문제의 고발장이 이 〈조선일보〉 보도 당일 작성될 수 있었던 가능성은 두 가지다. 하나는 작성자가 해당 기사를 본 직후 고발장을 썼을 수 있다. 아니면 지○○에 대한 정보를 이미 알고 있었던 검찰이 고발장의 작성자이거나 밖으로 알렸을 경우다.

고발 사주 의혹의 3차 전환점은, 공수처와 검찰이 복원한 통화 내용 일부가 언론을 통해 나온 10월6일이다. 검찰과 공수처 등은 지난해 4월3일 이뤄진 김웅-조성은 통화 녹음 파일을 복원했다.

지난해 4월3일 오전 10시3분, 당시 김웅 미래통합당 후보는 미래통합당 선거대책위원회 부위원장이었던 조성은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시사IN〉 취재를 종합해보면, 첫 번째 통화는 7분58초 동안 이어졌다. 주요 내용은 “우리가 만들어서 고발장을 보내주겠다. 서울남부지검에 접수하라”라는 것이었다.

녹음 파일에 따르면, 같은 날 오후 4시45분 김웅 후보가 조성은씨에게 두 번째 전화를 걸어 “대검에 접수시켜라. 나는 빼고 가야 한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검찰색을 빼야 한다” “접수되면 (잘 처리해달라고) 얘기해놓겠다”라는 김웅 당시 후보의 발언도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통화 중에 김웅 후보는 채널A 사건을 언급하기도 했다고 한다.

문제의 4월3일 고발장에도 채널A 사건이 여러 차례 언급된다. 전체적으로 고발장은 지○○씨를 중심으로 기술되어 있다. 지씨가 ‘특정 정당의 골수 지지자로서 검찰에 대한 적대 감정을 가진 상태에서 검찰을 흠집 내는 기삿거리를 제보하여, 보도되게 하려는 악의적 의도’를 가졌고, ‘MBC 장○○ 기자 등은 (지씨가) 신뢰성이 떨어진 취재원이라는 사실 및 지○○의 제보 배경에는 최강욱·황희석·유시민 등 여권의 실세들이 제보 행위를 조종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음에도’ ‘지○○의 제보에 대해 정확한 사실 확인도 마치지 아니한 채 보도하기로 하였다’는 것이다. 고발장은 채널A 사건은 ‘검·언 유착’이 아니라 ‘정·언 유착’ 사건이라고 정의했다.

10월6일 고발 사주 의혹을 수사 중인 공수처 수사관들이 정점식 국민의힘 의원실을 압수수색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이 고발장은 검·언 유착 사건을 정·언 유착 사건으로 재구성하려 시도하고 있다. 실제로 검·언 유착 사건과 정·언 유착 사건은 구도가 비슷하다. ‘이○○ 채널A 기자-한동훈 검사장(검·언 유착)’과 마찬가지로 ‘장○○ MBC 기자-제보자 X인 지○○(정·언 유착)’ 공모 혐의에 대한 수사가 이뤄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정·언 유착 고발장이 실제로 접수되어 수사가 이뤄졌다면 검찰은 MBC 장○○ 기자와 제보자 지○○ 휴대전화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해 강제수사에 나섰을 것이다. 그랬다면 ‘채널A 사건’이 아니라 ‘MBC 사건’이 될 수도 있었다.

‘검·언 유착’ 아니라 ‘정·언 유착’ 사건 될 뻔

지난해 3월31일 MBC의 채널A 사건 보도 이후 대검찰청은 분주하게 움직였다.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이 공개한 윤석열 검찰총장 징계결정문 등에 따르면, 이 보도 이후 3월31일 저녁 한동훈 당시 부산고검 차장검사, 권순정 당시 대검 대변인, 손준성 당시 수사정보정책관 등은 단체 대화방에서 53건의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MBC 보도 이후 검찰 입장을 조율해 발표하기 위한 협의일 수 있다. 고발 사주 의혹과 연관해서 보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

공수처는 고발 사주 의혹 수사 주임검사를 여운국 공수처 차장으로 바꾸고 검사들을 추가로 투입하며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수사 속도에 따라 고발 사주 의혹은 새로운 국면을 맞을 수도 있다. 검찰이 지휘계통에 따라 정보를 취합하고 고발장에 담아 전달한 게 확인되면 후폭풍이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10월6일 오전 9시50분, 공수처 수사3부는 ‘최강욱 고발장' 전달에 관여한 정점식 국민의힘 의원실을 압수수색했다. 공수처가 고발 사주 의혹과 관련해 국회의원 의원실을 압수수색한 건 지난 9월13일 김웅 국민의힘 의원실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다. 이날 김기현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압수수색이 이루어지고 있는 정점식 의원실 앞에서 기자들을 향해 “고발 사주라는 사건은 (실체가) 없다. 문제될 것은 전혀 없지만 얼토당토않은 터무니없는 짓을 공수처가 하는 것이기 때문에 어이가 없고 기가 막힌다”라고 비난했다.

하지만 이날 오후 김웅-조성은 통화 내용이 알려지면서 김 원내대표의 주장과 달리 고발 사주라는 사건은 실체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기자명 나경희·고제규 기자 다른기사 보기 did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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