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2일 ‘고발 사주 의혹’이 불거진 뒤 프레임 싸움이 불붙었다. 유력 대선후보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관여 여부가 쟁점으로 떠오르면서다. 윤석열 캠프는 제보자 조성은씨와 박지원 국정원장의 만남을 문제 삼았다. 이른바 ‘제보 사주 의혹’으로 맞불을 놓았다.
프레임 싸움 중에도 검찰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수사가 한창이다. ‘손준성 보냄’ 파일이 증거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최근 검찰은 손준성 보냄 사진 파일(고발장, 페이스북 캡처, 판결문)의 사후 조작 가능성이 없는 것으로 결론지었다.
검찰은 디지털포렌식 결과 조성은씨(당시 미래통합당 선거대책위원회 부위원장)가 지난해 4월3일 오전 10시12분(지○○ 페이스북 캡처 사진), 오후 1시47분(지○○ 판결문 3건), 오후 4시19분(고발장)에 각각 내려받은 파일 생성 기록을 확인했다. 검찰과 공수처는 ‘손준성 보냄’의 손준성과 손준성 검사(당시 대검 수사정보정책관)가 동일 인물임을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과적으로 검찰과 공수처는 4월3일 김웅 의원이 텔레그램으로 전한 ‘손준성 보냄’ 파일을 조성은씨가 받은 것은 ‘팩트’라고 확인한 셈이다.
그렇다면 손준성 당시 수사정보정책관은 왜 하필 4월3일, 그날 벌어진 일까지 담은 자료를 당시 선거운동으로 한창 바쁜 김웅 미래통합당 후보에게 보냈을까? 물론 손준성 검사(현 대구고검 인권보호관)와 김웅 후보 사이에 제3자가 관여했을 수도 있다. 손준성 검사는 “고발장을 작성하지도 사진 파일을 보내지도 않았다”라고 수차 부인했다.
디지털포렌식 결과 확인된 ‘4월3일’과 ‘손준성 보냄’에 주목하면 고발장 작성자를 유추할 수 있다. 단, 전제 조건이 있다. 이제 당신의 기억에서 4월3일 이후 확인된 팩트를 가려내야 한다. 시간을 되돌려 여러분의 기억을 4월3일에 멈춰야 한다. 2020년 4월3일 오후 4시19분까지 당신이나 내가 모르는 정보가 해당 고발장에 담겼다면, 그 작성자는 ‘다른 사람들이 모르는 정보를 알 수 있는 집단이나 인물’일 가능성이 크다.
윤석열-한동훈, 한동훈-권순정-손준성
〈뉴스버스〉가 전문을 공개한 4월3일 고발장에 적시된 ‘범죄사실’은 다음과 같다. ‘가. 공직선거법위반(방송·신문 등 부정이용죄)’, ‘나.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위반(명예훼손)’ 혐의.
두 혐의의 공모 관계를 보면 전체적으로 지○○씨를 중심으로 기술되어 있다. ‘특정 정당의 골수 지지자로서 검찰에 대한 적대감정을 가진 상태에서 검찰을 흠집 내는 기삿거리를 제보하여, 보도되게 하려는 악의적 의도’를 가졌고, ‘심○○ 기자 등은 신뢰성이 떨어진 취재원이라는 사실 및 지○○의 제보 배경에는 황희석·최강욱·유시민 등 여권의 실세들이 제보 행위를 조종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음에도’, ‘지○○의 제보에 대해 정확한 사실 확인도 마치지 아니한 채 보도하기로 하였다’는 게 골자이다. 그래서 고발장과 함께 전달된 페이스북 캡처도 주로 ‘이○○’로 활동하는 지씨의 페이스북 글이고, 판결문 3건도 지○○씨가 사기, 횡령 등 혐의로 이전에 선고받은 판결문이다.
〈뉴스버스〉가 고발 사주 의혹을 보도하자, 민주당은 ‘검찰의 총선 개입’이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당시 수사정보정책관(손준성)이라는 자리와 4월3일이라는 날짜를 염두에 두면, 총선보다 더 방점을 찍을 수 있는 지점이 보인다.
고발장에도 상세히 나오는 ‘채널A 사건’이다. 2020년 3월31일 MBC 장○○ 기자가 이른바 ‘검언 유착 사건’을 단독 보도했다. MBC는 채널A 이○○ 기자의 육성을 내보냈다. “인터넷 쳐서 나오는 윤석열의 가장 최측근 그 검사장입니다. 윤석열 한 칸 띄고 최측근 이렇게 치면 딱 나오는 그 사람이에요. ○머시기라고 있어요.” 채널A 이 기자는 해당 검사장과 나눈 대화를 녹취해놨다면서 녹취록 일부를 직접 보라고 제보자 A씨에게 권했다. A씨가 바로 지○○씨다. 당시 MBC 보도에선 ‘이철 전 대표 지인 A씨’로 인용되었다. A씨로 보도된 지○○씨는 해당 보도에서 “(녹음 파일을) 한 20초 정도 들었던 거 같은데 그 목소리는 분명히 제가 기억하는 ○○○ 검사장이었어요”라고 말했다.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이 공개한 윤석열 검찰총장 징계결정문 등에 따르면, 이 보도 이후 3월31일 저녁 한동훈 당시 부산고검 차장검사, 권순정 당시 대검 대변인, 손준성 당시 수사정보정책관 등은 단체 대화방에서 53건의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MBC 보도 이후 검찰 입장을 조율해 발표하기 위한 협의일 수 있다. 검찰은 4월1일 “채널A에 확인한 결과 사실과 다르다”라고 기자들에게 입장을 냈다. 한동훈 당시 부산고검 차장검사도 이날 “신라젠 사건 수사를 담당하지 않아 수사 상황도 알지 못하고, 언론에 수사 상황을 전달하거나 질의한 것과 같은 내용의 대화를 나눈 사실이 전혀 없다”라면서 “‘녹취록이 존재할 수가 없으니 보도하기 전에 내 음성이 맞는지 반드시 확인해주기 바란다’는 입장을 MBC에도 사전에 전했다”라고 밝혔다.
그날 이후에도 통화나 메시지가 빈번하게 이어졌다. 4월1일 윤석열 검찰총장과 한동훈 부산고검 차장검사 사이 전화 12회, 한동훈-권순정-손준성 단체 대화방에서 45건의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4월2일에는 윤석열-한동훈 17회 전화 통화, 한동훈-권순정-손준성 단체 대화방에 30건이 오갔다(추미애 전 장관이 9월3일 페이스북에 공개한 내용). 4월2일 법무부는 대검찰청에 공문을 보내 채널A 기자와 검사장 유착 의혹의 진상을 파악하라고 지시했다.
그리고 4월3일 문제의 고발장이 김웅 후보를 통해 조성은 당시 미래통합당 선대위 부위원장에게 전해졌다. 이 고발장은 지○○씨가 뉴스타파 보도에 나온 ‘제보자 X’라고 특정했다. 채널A 사건을 MBC에 제보한 제보자 A가 ‘제보자 X’이며 사기와 횡령 등으로 실형을 산 지○○씨라고 특정된 건 바로 4월3일 당일이다. 4월3일자 〈조선일보〉가 ‘친여 브로커 윤석열 부숴봅시다… 9일 뒤 MBC ‘檢·言 유착’이라고 보도해 신분이 처음 알려졌다(이 기사는 고발장에도 포함되었다). 이 기사는 검찰과 법원을 출입하는 〈조선일보〉 법조기자들이 썼다.
4월3일까지 MBC는 채널A 사건 제보자 신분에 대해서 일절 보도하지 않았다. 채널A도 이철 대표의 측근이라는 지씨가 제보자 X인 줄 몰랐다. 채널A가 자체적으로 꾸려 발표한 〈신라젠 사건 정관계 로비 의혹 취재 과정에 대한 진상조사 보고서(이하 ‘채널A 보고서’)〉에 따르면 ‘2월25일 1차 만남, 3월13일 2차 만남, 3월22일 3차 만남까지 3차례 만났지만 지○○의 이름을 포함한 신원을 확인하지 못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4월3일 조성은씨가 받은 고발장에서 또 하나 눈에 띄는 대목이 있다. ‘지○○은 한동훈 검사장의 음성 녹음을 청취한 사실도 없었다’라는 문장이 두 번이나 나온다. 4월3일까지 거의 모든 언론은 MBC 보도를 인용했다. 지○○씨가 채널A 이○○ 기자와 검사장(한동훈) 사이의 녹취록을 보았고 녹음 파일을 20초 정도 들었다고 증언한 것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였다.
‘채널A 보고서’에 따르면, MBC 보도 9일 전인 3월22일 저녁 채널A 김○○ 보도본부장은 MBC 취재 정보를 인지했다. 이날 그는 홍○○ 사회부장에게 경위를 파악하라고 말했다. ‘채널A 보고서’에 따르면 김 본부장은 다음 날인 3월23일, 홍 부장에게 MBC 취재 사실을 한동훈 검사장에게 알려주라고 지시했다. 이○○ 기자의 선배인 배○○ 법조팀장은 사회부장에게 ‘녹음 파일이 없다고 하자’고 제안했다. 배 팀장은 3월23일 오전 10시 카카오톡 보이스톡으로 전화해 한동훈 부산고검 차장검사에게 “녹음 파일은 없다”라고 알려줬다고 채널A 진상조사위에 진술했다(채널A 이○○ 기자는 3월31일 밤 11시19분53초에 자신의 삼성 휴대전화기를 초기화했다. 또 4월1일 오전 1시17분13초에 엘지 휴대전화를 초기화했다).
채널A 이○○ 기자의 후배인 백○○ 기자의 휴대전화엔, 2월13일 부산고검에서 이뤄진 이·백 기자와 한동훈 검사장 세 사람의 만남이 녹음 파일로 남아 있었다. 이 녹음 파일의 존재가 알려진 건 검찰 수사가 본격화된 4월17일 이후였다. 언론에 보도된 건 그해 7월이다. 즉, 같은 해 4월3일까지 한동훈 검사장의 목소리가 담긴 녹음 파일의 존재 유무를 알고 있던 이들은 채널A, 제보자 지○○, 진상 파악에 들어간 대검찰청 쪽뿐이었다.
검언 유착과 정언 유착 동시에 수사하라
그렇다면 ‘지○○은 한동훈 검사장의 음성 녹음을 청취한 사실도 없었다’라고 자신 있게 고발장에 쓸 수 있었던 작성자는 채널A, 지○○, 검찰 쪽 가운데 한 곳에서 확인을 했을 가능성이 있다. 지○○씨는 4월3일 〈조선일보〉 보도로 제보자가 자신으로 특정되자 페이스북의 관련 게시물을 삭제했다. ‘채널A 보고서’에 따르면 ‘외부 대응’과 관련해 “4월2일부터 녹음 파일 당사자에 대해 채널A가 공식 입장을 밝힌 것처럼 언론보도가 나왔다. 정○○ 보도국 부본부장(사회부 담당)은 4월8일 오전 대검찰청 대변인에게 전화해 ‘현재 진상조사 중이라 통화 상대방이 특정 검사장인지, 아닌지 밝힐 사항이 아니라’고 전했다”라고 기재되어 있다. 그렇다면 남은 곳은 대검 쪽이다.
이와 관련, 한동훈 검사장은 지난 9월16일 “추미애 전 장관이 법무부 장관 재직 중 공무상 알게 된 비밀인 감찰자료와 통신비밀보호법상 공개가 금지된 통신비밀 등을 불법 누설하고, 제가 고발장 문제에 관여했다는 허위 사실을 유포한 혐의로 공수처에 고소·고발했다”라고 밝혔다.
지난해 4월3일 조성은씨가 받은 고발장 내용대로라면 채널A 사건은 검언 유착이 아니라 ‘정언 유착 사건(실제로 고발장에 이 표현이 들어가 있다)’이 된다. 이 고발장이 대검에 실제로 접수되었다면, 검찰 입장에서 검언 유착 사건은 정언 유착 사건으로 리포맷이 가능했을 수도 있다. 실제로 검언 유착 사건과 정언 유착 사건은 구도가 비슷하다. ‘이○○ 기자-한동훈 검사장(검언 유착)’과 마찬가지로 ‘장○○ 기자-제보자 X인 지○○(정언 유착)’ 공모 혐의에 대한 수사가 이뤄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검언 유착 의혹 당시 채널A 이○○ 기자와 한동훈 검사장 휴대전화에 대한 압수수색이 이뤄졌다. 정언 유착 고발장이 접수되고 실제로 수사가 이뤄졌다면 검찰은 장○○ 기자와 제보자 지○○ 휴대전화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해 강제수사에 나섰을 것이다.
채널A 사건과 관련해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은 법무부로부터 여러 의심을 샀다. 지난해 4월7일 한동수 대검 감찰부장이 이 사건과 관련된 감찰에 나서겠다고 문자로 보고하자, 윤 총장은 반대했다. 4월8일 윤석열 검찰총장은 비감찰부서인 대검 인권부에 진상조사를 지시했다. 이를 두고 한동훈 검사장에 대한 감찰을 막기 위한 꼼수라는 비판이 나왔다. 4월7일 민언련이 서울중앙지검에 채널A 이○○ 기자와 성명불상 검사장(한동훈 검사장)을 고발했다. 4월13일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이 형사1부에 배당해 수사가 시작되었다. 윤석열 검찰총장은 이 수사와 관련해 채널A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이 발부되고 MBC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이 기각되자, 이례적으로 대검 대변인을 통해 중앙지검 수사팀을 비판했다. 윤 총장은 수사팀이 MBC에 불리한 내용을 누락시켜 부실하게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한 것으로 봤다. 4월29일 대검찰청은 “윤 총장이 압수수색 영장 청구서와 집행 상황을 파악한 뒤 중앙지검에 ‘균형 있게 조사할 것을 다시 강조하고 비례 원칙과 형평을 잃었다는 비판을 받지 않도록 유의하라’는 지시를 내렸다”라고 밝혔다. 사실상 검언 유착과 정언 유착 수사를 동시에 진행하라는 메시지였다. 그해 6월에는 윤 총장이 전문 수사 자문단 소집을 결정해 중앙지검 수사팀이 반발하기도 했다.
제보자 지○○씨는 채널A 사건과 관련해 고소·고발을 당했다. 지난해 4월7일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는 자신과 주변 인물이 신라젠에 거액을 투자했다는 MBC 보도와 관련 장○○ 기자와 지○○씨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시민단체 법치주의바로세우기행동연대도 5월4일 지○○씨가 채널A 취재를 방해했다며, 위계에 의한 업무방해죄 혐의 등으로 대검찰청에 고발했다. 이후 검찰발로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 수사팀이 지○○씨의 휴대전화 압수수색을 하지 않았다는 비판적인 기사가 적지 않게 보도되었다.
9월23일 현재 고발 사주 의혹은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1부가 담당하고 있다. 공수처 수사3부도 김웅 의원, 손준성 검사 등 압수수색 과정에서 확보한 압수물 분석을 끝낸 것으로 보인다. 앞서 대검 감찰부는 손 검사의 지난해 4월3일과 4월8일 행적을 추적해 복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업무와 관련해 이프로스 접속 내역, 이프로스 메신저 기록 등을 날짜를 특정해 시간대별로 분석했다. 접속 IP뿐 아니라 로그인 시간과 로그아웃 시간까지 확보해 당일 업무 상황을 복구했다고 전해진다. 동시에 대검찰청 청사 출입 내역도 살펴보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출입 내역은 출입증 카드번호로 시간까지 특정할 수 있다. 이렇게 하면 당일 동선을 어느 정도 확인할 수 있다.
라임펀드 검사 술접대 사건 때도 당사자들은 부인했지만, 당시 수사팀은 이런 디지털 기록을 확보해 검사들의 동선을 복원해 기소하거나 징계를 청구할 수 있었다(라임펀드 검사 술접대 사건으로 징계 청구된 검사 중 한 명이 손준성 수사정보정책관 산하 수사정보담당관실에서 검찰연구관으로 근무했다). 9월23일 현재 공수처 역시 손준성 검사 등 소환조사를 예고하고 있다.
고발 사주 의혹 사건은 대선 후보와 연관성을 떠나 그 자체로 폭발력이 크다. ‘손준성 보냄’ 파일을 누가 작성하고, 누가 정보를 취합하고, 누가 관여했느냐는 프레임과 무관한 ‘팩트’의 문제다. 팩트에 따라 그 파장은 ‘국정원 정치개입 사건(국정원 댓글 사건)’보다 더 클 수도 있다.
채널A 사건과 ‘고발 사주’ 의혹(202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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