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은 기억나지 않지만 오래전 읽었던 야구 관련 책에서 잊히지 않는 대목이 있다. 타자의 자질을 꼽을 때 사람들은 보통 배트 스피드나 파워, 선구안, 빠른 발 등을 떠올린다. 야구에 대한 통찰력이 남달랐던 저자는 의외의 답을 내놓았다. 빠른 속도로 날아오는 공을 피하지 않고 타석에 들어서는 배짱. 공을 치거나 베이스를 훔치는 데 쓰이는 기술은 그다음의 문제라고 했다.
기자 일에도 비슷한 구석이 있다. 다양한 유형의 기자가 있고 제각기 능력을 발휘하는 영역이 다르다. 기사를 유려하게 쓸 수도 있고, 친화력이 남다를 수도 있고, 촉이 좋을 수도 있고, 기획력이 뛰어날 수도 있다. 그러나 아무리 날고 기는 재주가 있더라도 ‘이것’을 해내지 못하면 기자가 될 수 없다. 바로 마감이다. 기자의 기본 자질은 마감의 고통을 견뎌내는 것이다.
마감에는 특별히 고약한 점이 두 가지 정도 있다. 첫 번째, 끝나지 않는다. 이번 주 기사를 마감했다면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그다음 주 마감이다. 두 번째, 블랙홀처럼 일상을 빨아들인다. 마감을 앞두면 마감밖에 모르는 바보가 된다. 아파트 분리수거 날도, 한가득 쌓인 빨래도, 유통기한이 임박한 냉장고 속 리코타 치즈도 잊게 된다.
시시포스의 돌처럼 굴러 떨어지고 또 떨어지는 마감을 피할 길은 없지만 마감이 발휘하는 중력에 대책 없이 빨려 들어가는 일은 이제 그만하고 싶었다. 〈지금은 살림력을 키울 시간입니다〉라는 책을 펼쳐 든 건 그 때문이었다. 마감 중력에 대항하는 살림력을 키우리라.
이 책에 참여한 저자들이라고 부제처럼 ‘나를 정성스럽게 돌보고 대접’하기 위해 뾰족한 수가 있는 건 아니었다. 그래도 저자들은 잠이 오지 않는 밤 두부를 부쳐 속을 달래고, 집에서 기르는 식물에 바람을 쐬어주고, EM(유용 미생물군) 원액을 칙칙 뿌리며 집 청소를 한다. 일상과 생활이란 부단히 노력하고 배워야만 가꿀 수 있는 대상이라는 단순한 진리를 상기하게 된다. 이렇게 조금씩 살림력을 강화한다면 마감의 고통을 견디기도 수월해질지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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