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윤무영

콜센터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나’를 주어로 하는 문장을 만들기 어렵다. 회사에서 시키는 대로, 대본에 적힌 대로 언제나 ‘고객의 입장’에서 대화하는 게 익숙하기 때문이다. 고객에게 받은 스트레스를 다른 이에게 털어놓기도 힘들다.

10년 차 콜센터 상담원 ㄱ씨는 그래서 책 〈믿을 수 없게 시끄럽고 참을 수 없게 억지스러운〉(코난북스)을 썼다. 고객이 아닌 ‘나’를 주어로 ‘내가 뭘 생각하고 원하는지’ 글에 담아 알리고 싶었다. 콜센터 상담원을 “친절하고 젊으면서 동시에 누군가의 엄마이거나 딸인 무형의 존재로 상상”하는 사람들에게 콜센터라는 곳의 진짜 모습과 동료 상담원의 마음에 대해서도 전하고 싶었다. 다만 책을 쓰면서도 향후 겪을 인사 처리에 대한 두려움으로 신상을 밝히지 못했다. 고객과의 상담 내용은 편집·각색했다. 책 출간 후 첫 인터뷰에서도 얼굴을 가렸다.

대학 졸업 후 잠시 아르바이트로 생각하고 시작한 일이 지금까지 이어졌다. 유통회사에서 카드회사, 택배회사로 옮겨갔다가 지금은 다시 유통사 콜센터에서 일한다. 콜센터 업무에 남들보다 빠르게 적응했던 ㄱ씨에게도 “온종일 욕을 듣고 사람을 달래는 건 생각보다 체력이 소진되고 마음이 깎여나가는 일”이다. 탈출구가 필요했다. 트위터에 ‘콜센터 상담원’이란 계정을 만들어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어떤 일을 겪었는지 털어놓지 않으면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혼자 욕을 해도 마음이 풀리지 않았다. 누군가는 들을 온라인 공간에 익명으로라도 차분히 말하기 시작하자 숨통이 트였다.

더불어 ㄱ씨를 위로한 건 동료들의 또 다른 이야기였다. ㄱ씨의 트위터 계정으로 동료 상담원들이 고민을 털어놓았다. 콜센터에서 오래 일한 상담원들은 화가 잔뜩 난 고객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앞으로 어떤 통화를 하게 될지 예상하고 대비한다. 그러나 “알고 맞는 매라고 아프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 아픔을 나누고 돌보는 것 자체에서 힘을 얻었다.

ㄱ씨가 콜센터에서 맡은 직책은 현재 ‘관리자’다. 업무 성과를 인정받아 본사에 별도의 직무로 소속되기도 했지만 자의로 다시 콜센터로 돌아왔다. 아직 그가 할 수 있는 일들이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그의 회사 규정 중엔 ‘고객이 욕하면 세 번까지 경고하고 네 번째에 끊기’가 있었다. 김씨는 회사에 여러 차례 규정 변경을 요구했다. 규정은 ‘고객이 욕을 하는 순간 바로 끊기’로 바뀌었다. 이렇게 그는 ‘지금 여기’의 콜센터에서 함께 바꿔나갈 수 있는 것들을 앞으로도 멈추지 않고 시도해볼 요량이라고 말했다.

기자명 이은기 수습기자 다른기사 보기 yieu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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