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신선영4월8일 구로5동 상가일부는 코로나19 여파로문을 닫거나 점심 장사를하지 않았다.

해가 기울자 노란 오후 햇살이 가게 유리문을 타고 넘어왔다. 벽에 걸린 텔레비전에서는 철지난 사극이 흘러나왔다. 배우들의 목소리가 빈 가게의 적막을 덮었다. 정윤철씨(50·가명)는 지난해부터 구로구 구로5동 ‘국제음식문화거리’ 한편에서 횟집을 운영하고 있다. 여느 때라면 봄나들이 인파가 하나둘 이곳 ‘먹자골목’을 찾지만 4월5일부터 나흘간 살펴본 이곳 거리는 한산했다. 밤이 되어도 도로변 주차장에는 빈자리가 넘쳤다. 멍하게 통유리 문을 바라보던 정씨가 낮은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종일 앉아서 가게 입구만 쳐다보고 있으면 사람이 미쳐요. 화가 가슴까지 차올라. 그럴 바에야 장사를 당분간 접는 게 낫다고 생각이 들 때가 있죠. 어차피 문을 열든 닫든 돈 못 버는 건 비슷하거든. 근데 그럼 우리 주방장님은 뭘 먹고 살겠어. 그냥 버티는 거예요.”

국제음식문화거리는 구로5동에서 가장 큰 요식업 상권이다. 서울시 ‘우리 마을 가게 상권분석서비스’를 보면, 이 지역 상권은 서울 전체 평균보다 32%, 구로구 전체 평균보다 59% 더 많은 매출을 올린다(2019년 3월 분기 매출, 공원로6가길 권역 기준). 그런데도 다른 상권에 비해 임차료가 저렴해 음식점이 늘어나는 추세였다. 골목 안쪽 단독주택까지 상가로 개조하는 공사가 한창이었다. 정씨도 지난해 가을 ‘상권 전망이 좋다’는 판단을 하고 개업했다. 억대 권리금을 주고, 인테리어를 뜯어고치는 데에도 적잖은 돈을 들였다. 새 사업에 대한 기대는 몇 달 만에 무너졌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유동인구가 매우 줄었다. 설상가상으로 3월9일, 상가 인근 코리아빌딩 내 콜센터에서 집단감염 사태가 발생했다. 곧바로 손님이 뚝 끊겼다. 홀서빙 하는 직원을 줄였지만 석 달째 적자다. 가게 임차료도 석 달 치가 밀렸다. 그래도 주방장 월급은 줄일 수가 없어 건물주에게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사정 중이다. 인근 가게들은 하나둘 문 닫는 곳이 늘었다.

구로5동은 ‘코로나19 집단감염’의 후폭풍을 가장 아프게 체감하는 지역이다. 3월9일 콜센터 집단감염에 이어 3월27일에는 구로3동 만민중앙교회에서 집단감염이 발생했다. 손님 발길이 또 끊겼다. 정씨는 “작년 연말에 이 동네를 찾은 손님 수를 1000명이라고 치면, 콜센터 집단감염 직후에는 100명 수준으로 급감했다. 그나마 200명 정도로 늘어나는가 싶었지만 뒤이어 만민중앙교회 집단감염이 터지면서 다시 100명 수준이 됐다”라고 말했다.

지역 상인의 체감은 사실일까? 구로5동만 특별히 더 힘든 게 맞을까? 〈시사IN〉은 코로나19 확산 사태 이후 자영업자들이 겪는 경제위기를 좀 더 입체적으로 들여다보기 위해 빅데이터 분석의 힘을 빌렸다. 서울시 빅데이터캠퍼스와 함께 서울시 행정동별 매출액 감소 추이를 지난해 같은 기간과 대비해 분석했다. 분석 대상 기간은 올해 2월10일부터 3월29일까지 7주다. 정씨의 체감은 근거 없는 얘기가 아니었다. 서울시 전체 424개 행정동 가운데 전년 동기 대비 매출액 감소폭이 가장 큰 지역이 바로 구로5동이었다. 44%가 감소했다. 금액으로 따져보면 지난해 601억원에 달했던 전체 매출액은 337억원으로 줄어들었다. 7주 만에 매출 264억원이 증발한 셈이다.

주간 추이를 살펴보면 집단감염의 여파를 더욱 선명하게 확인해볼 수 있다. 〈그림 1〉에서 2월 둘째 주(2월10일~2월16일)부터 7주간 구로5동 소재 사업장의 매출액 추이를 그렸다. ‘31번 확진자’의 등장(2월17일)과 콜센터 집단감염 확인(3월9일)이 끼친 영향을 알아보기 위해서다. 집단감염 이전에도 이곳 경기는 유난히 나쁘기는 했다. 26억원이 감소해서 매출의 32%가 빠졌다. 서울 전체 평균(4%)과는 차이가 컸다. 거기에 대구·경북 지역에서 집단감염이 일어나자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나빠졌다. 정점은 인근 콜센터 집단감염이 발생한 직후다. 3월9~15일 구간 매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무려 51.9%가 줄어든다. ‘매출 반토막’은 상인들의 흔한 과장법으로 통하지만, 구로5동에서는 실제 현실이 그보다도 더 가혹하다. 경험과 직관에 근거한 상인들의 증언을 결코 어림짐작으로 치부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해준다. 고통은 현실이고, 데이터는 그 고통이 다른 지역에 비해 더욱 크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시사IN 김동인·최예린

매출이 줄어든 만큼 유동인구도 매우 감소했다. 〈그림 3〉은 구로5동의 생활인구 데이터(오후 2시 기준)를 전년 동기와 비교한 그래프이다. 생활인구 데이터는 특정 시간, 특정 지역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머물고 있는지를 추계한 자료다. 그림에서 보듯 2월10일 이후 구로5동에 머무는 인구는 점차 줄어드는 추세다. 2019년 데이터와 2020년 데이터는 2월 중순까지 엎치락뒤치락하다가 2월 넷째 주부터 확실한 격차를 보인다. 주중과 주말 모두 전년 동기 대비 생활인구가 줄어들었고, 주말 감소폭은 더더욱 크게 벌어졌다. 자영업자들로서는 달갑지 않은 변화다.

ⓒ시사IN 김동인·최예린

“이놈의 알림문자 미워죽겠어”

자영업자 대부분이 타격을 받았지만 그중에서도 유통과 요식업계의 매출 감소가 눈에 띈다. 〈그림 2〉는 구로5동의 업종별 매출 감소폭을 보여준다. 가장 낙폭이 큰 유통업은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이 58.1% 감소했다. 금액만 따져도 약 152억원이 증발한다. 영세 자영업자들이 많은 요식·유흥 업종은 전년 동기 대비 37%가 감소해 48억원이 증발한다. 특히 민생에 가장 직결되는 분야가 요식·유흥 업종이다. 영세한 점포가 많은 데다 고용 규모도 크기 때문이다. 4월5일부터 나흘간 만난 지역 자영업자들은 입을 모아 집단감염에 따른 ‘낙인효과’로 피해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국제음식문화거리처럼 다른 동네에서 오는 손님이 중요한 상권일수록 체감경기가 나빴다.

ⓒ시사IN 김동인·최예린

구로5동에서 남편과 함께 해물 전문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박금자씨(56)는 매일 아침 눈을 뜰 때마다 질병관리본부 브리핑부터 챙겨 본다. 매일 재료 가격을 확인하듯, 신규 확진자 발생 추이를 살피며 이 상황이 빨리 끝나길 바라고 있다. 20년 가까이 식당을 운영했으니 자영업 경력이 만만찮지만, 박씨 역시 이번 위기는 전혀 처음 경험하는 것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콜센터 집단감염 이후 박씨 가게의 매출은 3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월 매출 3000만원을 넘길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1000만원도 쉽지 않다. 하루 매상을 확인하던 박씨는 “어제 기준으로 점심 네다섯 팀(테이블), 저녁 두 팀이 들렀다. 하루 매출 28만원 정도인데, 이러면 월 매출이 780만원 정도 되는 셈이다”라고 설명했다. 직원 한 명 인건비와 임차료, 재료값을 빼고 나면 박씨 부부 두 사람의 생활비도 건지기 어려운 수준이다.

그렇다고 박씨가 정부의 ‘사회적 거리두기’ 지침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좀 고생해도 더 확대되는 것보다는 낫다”라는 생각이다. 머리로는 지금 상황을 이해하지만, 마음은 자꾸 나쁜 감정이 피어난다. “이놈의 알림문자 미워죽겠어.” 긴급안내문자로 스마트폰 벨이 울릴 때마다 오만 감정이 교차한다.

버티는 데에도 분명 한계는 있다. 바닥을 친 매출이 회복하는 데 얼마나 걸릴지도 장담하기 어렵다. 콜센터 집단감염 이후 언론은 반복적으로 ‘구로 콜센터’를 거론했다. 여기서 발생한 지역 낙인효과가 생각보다 오래 지속되고 있다. 구로역 인근에서 소고기국밥집을 운영하는 김종국씨(56)는 “구로 콜센터라는 말 자체가 일종의 주홍글씨다”라고 말한다. 사람들에게 특정 지역에 대한 불안감을 키우는 바람에 굳이 이 지역에서 모임을 하지 않게 만든다는 얘기다. 구로역 인근도 한때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던 상권이었다. 지난해 인근 백화점이 문을 닫으면서 지금은 평범한 동네 상권 수준으로 인파가 줄어들었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코로나19 사태를 만났다. 김씨는 “코로나19 사태 이전에도 사람들은 구로동에 동포 출신이 많이 산다며 색안경을 끼고 바라봤다. 옆 동네 신도림동에서 집단감염이 발생했다고 구로구 전체가 매도당하는 건 부당하다”라고 말했다.

‘착한 임대업자 운동’은 어려워

김씨 가게 역시 매출이 급감했다. 지난해 월 평균 1500만원 수준을 유지하던 매출액이 700만원 선으로 떨어졌다. 재료원가 250만원, 임차료와 인건비 490만원, 각종 공과금과 운영비 100만원을 제외하면 월 140만~150만원이 적자다. 정부의 자영업자 지원대책도 피부로 와닿지 않았다. 그는 “얼마 전 소상공인진흥원에 자영업자 지원을 신청했다. 하지만 2주가 지나고 나서야 ‘접수 완료됐다. 이제 검토할 것’이라는 답변을 얻었다. 대학생 수강신청처럼 아침에 홈페이지에서 10분 동안 신청을 받더라. 정보 접근성이 떨어지는 나이 많은 사장님들은 그만큼 진입장벽이 높을 수밖에 없다”라며 정부의 지원이 비효율적으로 집행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자영업자의 고통은 가게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도 전가된다. 구로5동에 사는 동포 출신 전미연씨(61·가명)는 지난해 국제음식문화거리에 새로 개업한 한 양꼬치집에서 일했다. 손님과 이웃들은 전씨를 ‘양꼬치집 식당 이모’라고 불렀다. 코로나19 사태가 번지면서 그의 일상이 크게 요동쳤다. 지난 2월, 식당 사장은 “가게 문을 닫을 거니 당분간 나오지 말라”며 전씨를 집으로 돌려보냈다. 언제 문을 다시 열 것인지 장담할 수 없었다. 사장은 가게 문을 닫은 뒤 개인적인 일이 있다며 고향인 중국으로 돌아가버렸다.

두 달간 전미연씨는 줄곧 집에 머물고 있다. 처음부터 무기력했던 건 아니다. 적극적으로 다른 일을 찾아다녔다. 다른 동네, 다른 식당에도 일자리가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조그맣게 장사를 하던 남편도 일을 나가지 않아 근심이 더 커졌다. 전씨는 “일자리를 잃고 같이 지내는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부부 간에 다툼도 늘었다”라고 말했다. 부부 모두 수입이 끊긴 상황에서 전씨는 긴급생계지원 대책에 대해서도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주민센터를 찾아간다고 우리 같은 사람들한테 뾰족한 수가 있을까요?” 결국 버티기 위해 그가 내놓은 대책은 ‘반찬을 줄이는 것’이었다. 구로5동이라는 작은 상권에서 소비자로 살아가는 전씨 역시 동네에서 쓰는 돈을 줄였다. 지역 상권은 연쇄적으로 피해를 본다.

자영업 위기가 만든 고통의 연쇄고리에는 ‘생계형 건물주’도 엮여 있다. 보통 임대업자는 코로나19 사태가 촉발한 경제위기와 무관해 보이지만, 이들 중에는 가게 한두 곳에서 나오는 임대료로 생계를 유지하는 고령층도 존재한다. 구로5동에서 만난 한 임대업자는 “가게 임대료를 석 달째 못 받고 있다. 사정을 어느 정도 이해하기 때문에 기다리고 있지만, 먼저 임대료를 깎아주겠다고 말하기엔 우리 사정도 빠듯하다”라고 말했다. 상권이 쇠락한 지역일수록 ‘생계형 임대인’은 도처에 놓여 있다. 구로역 인근 한 식당 주인도 “이 지역 상가 임대료는 월 100만원에서 150만원 수준인데, 이 돈으로 노후생활 유지하는 임대인이 많다”라고 말했다. ‘착한 임대업자 운동’ 같은 움직임을 먼저 기대하기 어려웠다.

뾰족한 답을 찾지 못한 자영업자들은 “일단 버티는 것밖에 방법이 없다”라고 입을 모아 말한다. 코로나19 후폭풍으로 자영업자와 서비스업 노동자의 고통이 크지만 아직 ‘장사를 접자’는 단계로 이어지지는 않고 있다. 국제음식문화거리에서 상가 매물을 주로 취급하는 한 공인중개사는 “상인들은 ‘권리금’을 받기 위해서라도 버티는 방법밖에 없다”라고 설명했다. 66㎡ 기준, 이 지역 평균 권리금은 1억5000만원 수준이다. 이미 많은 상인들이 그만한 목돈을 지불하고서 가게를 유지하고 있다. 경기가 안 좋을 때 가게를 내놓으면 권리금을 제대로 받지 못한다. ‘단기 매출 급감’보다 더 큰 손해를 입을 수도 있다. 권리금을 대출로 마련했다면 더더욱 버티는 것 말고 방법이 없다. 한 지역 상인은 “대출받아 세운 가게를 내놓는다고 해서 당장 다른 일자리를 찾을 수 있는 것도 아니지 않나. 결국 신용이 남아 있는 사람들은 대출로 버티는 거고, 이마저도 안 된다면 사채를 건드릴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코로나19로 인한 매출 급감은 지역에 따라 폭이 달랐다. 그렇다면 과연 회복은 평등할 수 있을까. 이것도 낙관하기는 어렵다. 코로나19가 메르스처럼 ‘완전 종식’을 선언할 수 있는 질병이 아니어서다. 구로5동 지역 주민과 자영업자들이 우려하는 것도 결국 장기화다. 사회생활을 재개하는 날이 오더라도 감염 위험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면, 결국 ‘낙인이 남아 있는 지역’은 다른 지역보다 회복이 더딜 가능성이 남는다.

코로나19 사태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우리 사회와 방역 당국은 확진자의 동선을 공격적으로 공개하는 선택을 내렸다. 이것은 방역에서는 제대로 작동했다. 한국이 내놓은 방역전략은 세계의 찬사를 받고 있다. 그 부작용으로 특정 지역에 대한 낙인효과가 발생하면, 동네 전체를 말려 죽이는 의도하지 않은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구로5동 지역경제가 붕괴하는 현장은 새로운 고민거리를 남긴다.

기자명 김동인 기자 다른기사 보기 astori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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