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는 도쿄 올림픽 개막식을 중계하면서 일부 참가국을 부적절하게 소개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2021년 개최된 ‘2020 도쿄 올림픽’이 한국에서 소비되는 양상을 보며 한국 사회가 얼마나 빨리 바뀌는지를 또 한 번 느낀다. 은메달과 동메달을 딴 선수들이 서러워서 우는 풍경이 더는 자주 보이지 않는다. 태권도 여성 67㎏ 초과급 이다빈 선수가 결승전에서 패배한 후 태권도식으로 공손하게 인사하는 승자에게 엄지를 치켜세우며 축하를 보내는 사진은 하나의 상징이었다. 양궁에서 혼성단체와 남성단체에서 2관왕이 된 김제덕 선수는 우렁찬 기합으로 화제가 됐다. 그간 한국의 압도적인 양궁선수가 오리엔탈리즘과 성별 편견이 혼합된 ‘냉철한 포커페이스 여궁수’ 이미지였던 것과 차이가 크다. 신유빈 선수는 메달권에 오르지 못하고 탈락했지만 함께 경기를 펼친 41세 나이 차이의 중국 출신 룩셈부르크 선수 니샤롄과 함께 주목을 받았다. 예전처럼 성적 지상주의에 함몰되어 있다기보다는, 스포츠 본연의 쾌락과 드라마를 더 즐기는 모습이다.

그 와중에 MBC에서 대형 사고를 쳤다. 도쿄 올림픽 개막식을 중계하면서 참가국들을 부적절하게 소개한 것이다. 우크라이나를 소개할 때 체르노빌 원전 사고 사진을 썼고, 아이티를 소개하면서 반정부 시위 사진을 사용하는 식이었다.

인터넷 밈을 종종 공중파 방송에서 차용하는 경우가 있다. 가끔 선거 개표방송에서 그러곤 한다. 가령 지난 지방선거에서 김문수 서울시장 후보를 소개할 때 김문수 후보가 전화받는 장면을 사용하거나 2016년 총선에서 이인제 후보를 소개할 때 피닉스 CG를 쓴 것이 대표적이다. 두 정치인의 대표적인 이미지를 밈처럼 활용해 웃음을 유발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올림픽 개막식이나 선거 개표방송은 어느 채널에서 보든 똑같은 내용이다. 그러니 차별화된 아이디어로 뭔가 재미있는 연출을 더 추가해야 시청자를 유인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MBC가 악의를 갖고 사고를 쳤다기보다는 그냥 하던 대로 시청률만 생각하다가 재미있는 연출이라 착각하고 벌인 일이 아닐까 싶다.

외신에 보도되는 공영방송 사고

그러나 아무리 유튜브 같은 뉴미디어와 TV 방송의 경계가 흐릿해지고 있는 시대라도 사람들은 공영방송과 유튜브에 요구하는 바가 다르다. 시청률이 중요하더라도 공영방송이 조회수만 노리는 유튜브처럼 굴면 안 된다. 게다가 자국 정치인을 희화화하는 연출과 타국의 불행을 웃음의 소재로 삼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다. 연출에 밈을 활용하더라도 개인 유튜브와 달리 게이트키핑 기능이 있는 공영방송이라면 둘의 차이를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예전 같았으면 공영방송이 이런 사고를 쳐도 비난이 주로 국내에 머물렀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CNN이나 〈가디언〉 같은 외신에 대대적으로 보도된다. 한국의 문화적 영향력이 커진 만큼 이런 잘못을 했을 때 ‘망신’의 규모도 세계적이 되는 것이다. 비난이 거세지자 MBC는 사장까지 나서서 사과를 해야 했다.

이 사건은 한국 사회의 민낯을 드러내는 것이면서도 ‘추월의 시대’의 징표다. 영향력이 커진 만큼 더 이상 세계에 단점을 숨기고 살 수 없기에, 세계 표준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 부분에서 한국 사회 시민들의 적응력이 떨어지지 않기에 나는 희망적으로 본다. 이번 올림픽에서 변화된 모습을 본 것처럼, 우리 사회는 금세 새로운 규준에 적응하게 될 것이다.

기자명 하헌기 (새로운소통연구소 소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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