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20일 미국 뉴욕시에서 백신접종 반대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REUTERS

올여름 코로나19 ‘집단면역’을 거의 달성할 것으로 예상되었던 미국에서도 델타 변이 바이러스가 급증하고 있다. 더욱이 백신접종을 꺼리거나 거부하는 사람이 무려 9100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나 바이든 행정부가 골치를 썩고 있다. 지난 대선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을 지지한 유권자들이 몰려 있는 남동부와 중서부 여러 주에서 백신 거부 경향이 강한 반면, 바이든 현 대통령을 지지한 동부와 서부 대다수 주에선 백신접종률이 높게 나타나는 등 백신을 둘러싼 양극화 현상도 뚜렷하다.

미국 내 코로나19 확진자는 6월 중순까지 하루 평균 1만2000여 명에 그쳤지만 7월20일 현재 3만5000명을 넘어선 상태다. 또 확진자의 83%가 델타 변이에 감염되었다. 확진자는 백신접종률이 낮은 지역을 중심으로 급증하고 있다.

방역 전문가들은 인구의 70~90%가 백신접종을 완료하면 ‘집단면역’이 가능하다고 본다. 지난 5월까지만 해도 바이든 행정부는 이르면 7월 초까지 접종률 70%를 완료해 ‘집단면역’이 가능할 것으로 내다봤다. 바이든 대통령은 독립기념일(7월4일)까지 집단면역을 달성하겠다고 호언장담했다. 하지만 백신접종률이 급감하면서 목표를 이루진 못했다. 5월 중순까지 하루 평균 200만여 건이던 접종 횟수가 꾸준히 줄어들기 시작해 7월 중순엔 하루 55만 건에도 미치지 못한다.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 따르면 7월19일 현재 18세 이상의 성인 중 최소 한 번 이상 백신을 맞은 사람은 1억8360만명으로 전체의 68%에 달한다. 그러나 당초 7월 초를 겨냥한 집단면역 목표가 빗나간 주된 원인은 백신을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사람이 무려 9100만명에 달하기 때문이다. 이들 중 대다수는 백신과 관련해서 ‘완전한 임상 단계를 거치지 않은 긴급한 임시방편용’이므로 ‘위험하다’고 인식한다. 이런 부정적 인식은 지난 대선에서 트럼프를 찍은 친공화당 지역의 주민들에게 널리 퍼져 있다. 조지타운 대학 백신 연구진의 최신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조지아, 텍사스, 미시시피, 루이지애나 등 미국 남동부와 중서부의 친공화당 8개 주에선 백신 완전 접종률이 고작 27.9%였다. 조지타운 의대 교수인 조너선 레이너 박사는 CNN에 “아직 백신을 맞지 않은 집단이 코로나19의 항구적 퇴치에 최대 걸림돌”이라고 따끔하게 지적했다.

정치 영역의 구도인 ‘트럼프 대 반트럼프’가 백신으로까지 확대돼버렸다. 공화당이 의회를 장악한 주에선 바이든 정부의 백신접종 노력에 노골적으로 반기를 들고 있다. 앨라배마, 애리조나, 아칸소, 플로리다, 몬태나, 오클라호마, 테네시, 유타 등의주에선 ‘학생 백신접종 의무화’를 금지하는 조치가 취해졌다. 지난 6월 애리조나 주의회는 올가을 개학을 앞두고 초중고 학교와 대학에서 학생들의 ‘백신접종 및 마스크 착용 의무화’를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테네시주 보건당국은 공화당 의원들의 압력을 받고 모든 10대 어린이들의 백신접종 계획을 취소하기도 했다.

설상가상으로 공화당 극우 인사들과 우파 언론매체가 백신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퍼뜨려 백신접종을 꺼리거나 거부하게 만드는 데 한몫 단단히 하고 있다. 이들은 심지어 정부의 백신접종을 개인자유 침해로 규정하고, 암암리에 백신 거부 운동을 주도한다. 최근 텍사스주 댈러스에서 열린 보수정치행동 연례회의에서 로런 보버트 공화당 하원의원은 “우리는 정부의 어떤 혜택도 원치 않으니 제발 백신을 들고 우리 대문을 두드리지 말라!”라고 목청을 높였다. 접종률이 낮은 지역에 대해 가가호호 방문까지 불사하며 접종을 독려하겠다는 바이든 행정부에 대한 반발이다.

“필요 없는 약을 강제로 먹이려 한다”

대표적 보수 매체인 폭스뉴스의 진행자들도 노골적으로 백신에 대한 부정적 발언을 쏟아내며 ‘접종하지 말라’고 선동 중이다. 일일 평균 시청자 290만명을 자랑하는 폭스뉴스 최고 시사 프로그램 〈터커 칼슨 투나잇〉의 진행자인 칼슨은 바이든 행정부의 백신접종 독려 방침과 관련해 “국민이 필요로 하지 않거나 먹고 싶지 않은 약을 강제로 먹이려 한다”라고 맹비난했다. 그는 올가을 개학을 앞두고 많은 대학이 학생들의 백신접종 의무화 방침을 밝힌 데 대해 “백신 맞아선 안 된다. 백신이 코로나19 이상으로 위험이 큰데 대학들이 학생들에게 접종을 강요한다”라고 말했다. 또 자신의 이름을 딴 인기 시사 프로그램 〈잉그러햄 앵글〉 진행자인 로라 잉그러햄은 “집집마다 방문해 백신접종을 독려하겠다고? 소름이 쫙 끼친다”라며 비난했다.

일부 보수 언론의 이 같은 행태를 두고 펜실베이니아 대학 언론학과 캐서린 제이미슨 교수는 〈뉴욕타임스〉에 “백신에 대한 주저와 기피를 주창하는 언론에 계속 노출될 경우 ‘백신 안 맞을 거야’라고 생각하는 건 불가피하다”라고 지적했다. 실제 ‘대중종교연구소’의 최근 분석에 따르면 폭스뉴스를 시청하는 사람들 가운데 45%가 백신접종을 주저하거나 아예 맞을 의향이 없다고 대답했다. 극우 매체인 뉴스맥스(Newsmax)와 원아메리카뉴스네트워크(One America News Network) 시청자 가운데서는 무려 68%가 백신접종에 부정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일부 양식 있는 공화당 인사들 사이에서도 델타 변이 바이러스 확산에 따른 코로나19 위험수위가 다시 높아지자 백신접종을 촉구하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이를테면 미치 매코넬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는 7월21일 기자회견을 통해 “모든 사람이 하루속히 백신을 접종하지 않으면 올가을에 지난해 우리가 겪은 고통이 다시 찾아올 수 있다”라고 접종을 촉구했다. 특히 그는 백신접종을 하지 말라는 우익 보수 논객들의 발언을 무시하라고 주문하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폭스뉴스의 아침 프로그램 〈폭스 앤드 프렌즈〉 공동진행자인 스티브 두시가 “백신은 여러분의 생명을 구한다”라며 접종을 촉구한 데 이어 인기 진행자인 숀 해너티도 백신접종을 독려해 같은 방송사의 터커 칼슨, 로라 잉그러햄과 대조를 이룬다.

바이든 행정부의 향후 과제는 델타 변이 바이러스가 더 확산하기 전에 접종을 더욱 확대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백악관 코로나19 대응 조정관을 비롯한 고위 관리들이 최근 수주 동안 학교 당국자들을 만나 학생들의 백신접종을 촉구했고, 기업 관계자들에게도 직원들의 접종을 독려했지만 성과는 미지수다. 코로나19 방역은 기본적으로 주정부 관할이기 때문이다. 연방정부가 백신접종 의무화를 명령할 권한이 없다는 의미다.

일부 공화당 정치인들과 보수 매체들이 백신접종을 비웃고 이에 편승한 숱한 보수 유권자들이 저항하면서 바이든 행정부의 추가 백신접종 노력도 한계에 부딪힌 느낌이다. 한 고위 행정부 관리는 정치 전문 매체 〈폴리티코〉에 “백신을 접종하지 않는 사람을 설득하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다”라고 토로했다. 실제 카이저 가족재단의 최근 분석에 따르면 지난 4월 이후 친바이든 유권자와 친트럼프 유권자 간 백신접종률 차이는 무려 5배에 이른다. 백신접종 문제가 정치화되면서 양 진영 간 일종의 ‘문화전쟁’으로까지 번진 셈이다.

기자명 워싱턴·정재민 편집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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