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베트 라싸-닝치 구간을 달리고 있는 중국의 푸싱 고속열차. ⓒXinhua

중국 본토와 티베트를 연결하는 칭짱 열차가 막 공사 중이던 2005년. 티베트에서 가장 가까운 역이 있는 도시인 칭하이성 거얼무에 있었다. 당시엔 외국인이 티베트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일종의 여행 허가증을 받아야 했다. 중국 비자 외에 티베트로 가는 비자를 따로 받아야 했던 셈인데, 이게 가격이 비쌌다. 1750위안, 당시 돈으로 21만원이나 했다.

돈도 없었거니와 외국인에게만 징수하는 부당 요금에 굴복해선 안 된다는, 정의감으로 위장한 객기가 가득했던 시절, 결과적으로 나는 불법을 저질렀다. 다짜고짜 티베트행 버스 정류장으로 가서 헤이룽장성에 사는 조선족 김씨의 셋째 아들이라고 우겼다.

내 어설픈 중국어 성조에 대해서는 헤이룽장성에서 거얼무까지 약 3700㎞ 떨어져 있어 그러려니 하길 바랐다. 조선족의 셋째 아들이라고 한 건 당연히 중국인 신분증이 없었기 때문이다. 당시 한족은 한 명, 소수민족은 두 명까지 아이를 가질 수 있다 보니 어쩌다 생긴 한족의 둘째, 소수민족의 셋째는 호적에도 오르지 못한 유령 같은 존재로 남아야 했다. 기사는 한참 내 얼굴을 보더니, 어디선가 중국인 신분증 수십 장을 가져와 그중에서 내 얼굴과 가장 비슷한 얼굴의 신분증 하나를 건넸다. 그렇게 중국인 요금을 내고 티베트로 갔다.

칭짱 열차의 철로가 완공되면 대륙과 티베트 사이의 물류가 획기적으로 좋아진다는 장밋빛 청사진이 가득했다. 티베트에 어떤 정변이 발생할 경우 24시간 안에 10만명가량의 병력이 이동 가능하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부푼 한족의 희망은 한족을 그리 탐탁지 않아 하는 티베트인들에게는 꼭 그만큼의 불안이었다.

버스는 해발 3500~4000m를 넘나드는 고원지대를 달렸다. 중간중간 검문소에 정차했고 공안이 검문을 시작하면 나는 곧장 의도적으로 꿈나라에 빠졌다. 버스를 탄 지 이틀째. 보름달이 훤한 어느 날 창밖으로 한 무리의 늑대 떼를 봤다. 야생 늑대를 본 건 그때가 처음이었는데, 〈시이튼 동물기〉의 늑대왕 로보가 연상될 정도로 그 무리는 웅장하고 아름다웠다. 늑대 떼와 잠시 잠깐 눈이 마주쳤다. 경이로움으로 가슴이 쿵쾅대고 있었지만 늑대 무리는 그런 광경이 익숙한 듯 느긋하고 태연하게 느릿느릿 고개를 오르는 버스를 지켜봤다. 찰나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인상은 강렬했다. 멸종위기종이던 티베트 지역의 야생 늑대가 철도 개통 이후 급감하고 있다는 소식은 그 후 나를 우울하게 했다.

인간은 늘 멸종을 만든다

티베트 또한 그때의 방문 이후로 영원히 멀어졌다. 중국 정부는 티베트 내 독립운동(중국 시각에서는 분리주의 운동)으로 인해 외국인이 티베트를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게 몹시 껄끄러웠는지 얼마 지나지 않아 중국인 가이드를 대동하지 않으면 어디든 갈 수 없도록 만들어버렸다.

2021년 6월 중국의 철도 관련 연구소가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를 거쳐 네팔의 카트만두까지 철도를 놓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발표했다. 그 기사를 보는 순간, 사라져버렸다는 늑대들처럼, 역시 잠시 스치듯 본 것에 불과하지만 에베레스트 주변에 사는 푸른 뿔의 산양과 눈표범의 안위가 떠올랐다. 인간은 늘 멸종을 만든다.

인도의 위성국 네팔에 중국이 철도를 놓는다면 네팔은 급속도로 중국의 원심력 안으로 빨려들 것이다. 인도가 과연 그걸 가만히 보고 있을까. 문득 이런저런 걱정이 물밀듯 밀려들기 시작했다. 나는 어쩌다 이런 여행자가 되어 한시도 마음 편히 지내지 못하는 걸까?

기자명 환타 (여행작가·<환타지 없는 여행> 저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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