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신선영

한 시대가 바뀔 땐 사회 구성원들 간에 격렬한 충돌이 일어나기 마련입니다. 변혁이란, 특정 집단의 권력과 부(富)를 다른 집단으로 옮기는 일이니까요. 기득권 집단은 자신들을 지킬 힘을 갖고 있습니다. 변혁을 지향하는 저항자들에겐 돈도 권력도 없습니다. 가진 것은 오로지 대중을 운동에 동원·조직할 수 있는 강력한 이데올로기뿐입니다. 운동이 요절하지 않고 일정 단계까지 성숙하려면, 그 이데올로기가 대중으로부터 ‘맹목적 신봉’을 얻어내야 합니다. ‘맹목’은 결코 흐뭇한 용어가 아닙니다. 그러나 역사적 변혁들을 되짚어보면 그 순간순간엔 언제나 맹목적 사람들이 사회를 바꾼 기록을 발견하게 됩니다.

한국의 노동운동이 그랬습니다. 과거의 노동운동가 중 일부는 마르크스레닌주의(ML주의)를 맹목적으로 신봉했습니다. ML주의는 관련 서적 열독만으로 큰 범죄일 정도로 ‘사회적 금기’였지만 그래서 더욱 매력적이었을 겁니다. 자본과 노동의 정체성을 확고한 대립물로 갈라 세우고 그 사이에 ‘화해할 수 없는 적대성’을 가정하는 ML주의는 대(對)자본 투쟁을 이끄는 데 매우 효과적이었습니다. 1980년대 후반의 거국적 파업투쟁은 한국의 ‘중진국 함정’ 극복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노동운동가들은 역설적으로 한국의 자본주의 발전에 큰 공을 세웠습니다. 그러나 당시의 노동운동은 ‘노동자 계급’이라는 정체성에 맹목적으로 집중하다가 많은 것을 잃었습니다. 노동자의 적으로 설정된 자본·국가와 비타협적으로 맞서는 가운데 정작 ‘노동자 계급’ 내부의 다양성과 대립을 간과했습니다. 저는 ML주의가 지금 불안정 노동자들에게 ‘넘사벽’이 되어버린 ‘이중 노동시장 문제’와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노동운동 세력이 한국보다 먼저 자본주의 발전을 겪은 서구 국가 중 일부처럼 ‘노동 대 자본’뿐 아니라 ‘노동 대 노동’의 갈등도 조정하면서 현실적 대안을 만들어갔다면 우리는 지금보다 더 좋은 나라에 살고 있지 않을까요? 노동운동 이외의 다른 운동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번 제715호 커버스토리(당신의 가족은 어떤 모습인가요?)는 ‘사실상 가족이지만 법률상 가족으로 인정받지 못해 소외된 사람들’을 다뤘습니다. 민주공화국으로 개인 간의 평등한 관계가 국가이념인 이 나라에서 왜 남녀 부부 사이의 아이가 남성 쪽의 성을 따르게 되어 있었는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동성애자들이 함께 살고 싶다는데 민주공화국으로부터 법률적 배제를 받는 것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런 문제에 대해 입을 막는 분위기도 혐오스럽습니다. 신선영 사진기자는 당초 소외된 가족들의 ‘가족사진’을 촬영하고 싶어 했습니다. 최근 상황에서 너무도 중요한 이슈인 듯해서 커버스토리로 올렸습니다. 사진 잘 찍는 신 기자가 글까지 잘 쓰니 취재기자 경력만 가진 저로서는 그가 두려울 뿐입니다.

기자명 이종태 편집국장 다른기사 보기 peeke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