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택의 ‘고립된 섬’ 쌍용차 사람들
  • 박근영 기자
  • 호수 88
  • 승인 2009.05.19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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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자동차 노동조합은 쌍용차가 평택 경제의 20%를 좌우한다고 추산한다. 그러나 쌍용차 근로자에게 닥친 대량해고 위기에 평택 시민은 무관심하다.
5월13일 아침.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가 오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쌍용자동차 노동조합원 세 명이 새벽 4시에 공장 굴뚝으로 올라갔다는 내용이었다. 멀리서 보나 바로 앞에서 보나 굴뚝은 굴뚝이다. 일자형 사다리가 70m 높이 굴뚝 끝까지 연결돼 있다. 사람이 편하게 오르내릴 수 있도록 만든 구조는 아니다. 세 명이나 올라갔다지만 그 위에 사람이 있는지 육안으로 알아보기조차 어렵다. 현수막 하나 걸려 있지 않다.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 부지부장 김을래씨, 정비지회 부지회장 김봉민씨, 비정규직지회 부지회장 서맹섭씨는 이날 오후 2시 노조 결의대회를 앞두고 긴 사다리를 올랐단다. 준비할 시간도 없었다. 새벽에 오르느라 한 끼분 도시락만 챙겼다. “쌍용자동차 노동자의 절반을 자르겠다는 정리해고 싸움에서 승리하지 못한다면 결단코 굴뚝에서 내려오지 않겠다”라는 말만 남겼다.

ⓒ전문평택 쌍용자동차(위) 근무자 7000여 명 중 2405명이 실직 위기에 놓였다. 누가 실직자가 될지는 아직 모른다.
2405명. 쌍용자동차가 5월8일 경기지방노동청에 제출한 정리해고 계획 신고서에 적힌 인원이다. 전체 직원 7000여 명의 30%가 넘는다. 그러나 해고통지서가 날아드는 6월8일까지 누가 정리해고 대상인지 모른다. 내가 될 수도 있고, 옆사람이 될 수도 있고, 둘 다가 될 수도 있다. 쌍용자동차 노동조합 한상균 위원장은 “우리 모두 같이 사는 것이 아니면 안 된다. 비정규직 한 명도 희생양으로 내놓을 수 없다”라고 말했다. 쌍용차 노조는 정리해고만 아니라면 조업시간 단축이든, 임금 삭감이든 모든 고통을 감수할 수 있다는 방침이다.

쌍용차 대량해고 계획 구체화

5월12일에는 쌍용자동차 정문에 천막 하나가 더 생겼다. ‘가족대책위원회’ 회원들의 농성장이다. 전날 시청 앞 기자회견에서 가족대책위 이정아씨는 “서울에서나 하는 줄 알았던 어색한 데모 구호를 이제 우리가 외치고 있다”라며 눈물을 보였다. 쌍용자동차 정리해고를 막아보자고 근로자 가족이 모였다지만 20~30대 젊은 여성과 미취학 아동뿐이다. 남편이 시설실에서 근무한다는 김정숙씨(35)는 “남편 직장이 불안해서 맞벌이를 하는 집이 대부분이다. 그러다보니 애들이 어려 직장에 다닐 수 없는 사람만 농성에 참여하게 되었다”라고 말했다. 굴뚝에 오른 서맹섭씨의 아내는 같은 시각 패스트푸드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남편 근처에 와보지도 못했다.
 

ⓒ전문수쌍용자동차 노동조합 가족대책위원회 회원이 5월11일 기자회견 중에 눈물을 닦고 있다.
쌍용자동차 근로자가 급여를 제대로 못 받은 지 5개월쯤 됐다. 10년 전 외환 위기 이후 쌍용자동차의 최대 주주가 된 상하이차가 쌍용차의 법정관리를 신청하고 사실상 경영에서 손을 떼면서부터다. 조립라인에서 야간에 일하는 엄 아무개씨(37)는 간간이 낮에 ‘노가다’를 하며 생계를 유지한다. “임신한 아내한테 돈을 벌어오라고 할 수도 없고 아이가 태어나면 당장 분유값부터 걱정이다”라며 건설 현장에 나갈 수밖에 없는 이유를 말했다. 주간조에서 근무하는 김정숙씨 남편은 밤에 대리운전을 한다. 최근에는 밤낮없이 파업투쟁에 전념하느라 그것마저 여의치 않다.

2405개 일자리가 사라지면 단순하게 생각해도 2405개 가정의 수입이 끊어지고 소비가 급감한다. 인구 41만인 도시 평택에서 감당하기 벅찬 일이다. 협력업체 상황까지 감안하면 파급력은 더하다. 그러나 쌍용자동차 사태에 대해 평택 시민은 대체로 시큰둥했다. 평택역 앞에서 20년째 해장국을 판다는 한 상인은 “우리집은 단골 고객이 많아서 경기에 크게 영향을 안 받는다. 주변에서는 어렵다고 하는데 사실 잘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쌍용자동차 노동조합 정책실장 이창근씨는 “2년 전 노조간부 두 명이 비리로 구속되는 일도 있었고, 강성 노조라는 인식도 강해 평택에서 인심을 얻지 못했다”라고 말했다.

ⓒ전문수노조 간부 3명은 이 상황을 막아보자며 굴뚝 고공 농성에 들어갔다.
평택 시내에서는 ‘쌍용자동차를 살리자’는 현수막 하나 찾기도 어려웠다. 평택의 한 시민단체는 쌍용자동차 노동자를 지지하기 위한 행사를 준비했다가 슬그머니 취소했다. 해당 단체 최 아무개 간사는 “경제 불황으로 평택 시민이 다 어려운데 왜 특정 회사 사람들만 살려야 하느냐는 여론이 있었다”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쌍용차 근로자가 평택 경제에서 차지하는 위치도 모호하다. ‘남편이 쌍용차 다니면 중산층’이라는 인식만 있을 뿐 이들의 구매력은 낮게 평가된다. 휴대전화 대리점을 운영하는 김 아무개씨(33)는 “쌍용차 공장 안에 가게가 있고 식당도 있어서 거기에서 소비를 많이 해결한다고 들었다. 요즘은 경기가 안 좋으니까 어디나 어렵다. 쌍용차 때문에 특별히 어려울 것도 없다”라고 말했다.

평택시는 크게 서부(안중), 북부(송탄), 남부(평택) 지역으로 나뉜다. 일반적으로 평택이라 하면 남부 지역 7개 동을 말한다. 쌍용차 공장은 북부와 남부가 맞닿아 있는 지역에 있다. 근로자들은 이곳에서 차로 5분 거리인 세교동에 주로 산다. 이곳은 20평(66㎡)대 아파트가 주를 이룬다. 아파트 옆에 ‘먹자골목’이 있지만 1인분에 1만원을 넘지 않는 소박한 메뉴가 주를 이룬다. ‘노동자의 도시’라 말할 때 떠올리기 쉬운 유흥가의 이미지는 찾기 어렵다.

남편이 쌍용차 다니면 중산층?

평택의 소비 중심지는 평택역 주변 구시가지와 시청 주변 일대 신시가지다. 인구 41만 도시치고는 구시가지의 면적이 매우 넓다. 사람들은 이 일대를 ‘명동거리’라고 부른다. 한 시민단체 활동가는 “이곳에서 오래 장사한 사람들은 상가 건물을 소유한 경우가 많다. 장사보다 건물 월세로 안정된 생활을 이어가는 것에 관심을 둔다”라고 말했다. 이런 보수적 성향 때문에 상인들이 쌍용자동차 문제에 관심이 없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시청 부근 번화가는 역전보다 규모가 작다. 그러나 인테리어에 신경 쓴 상점이 빼곡하고 층마다 프랜차이즈 입시학원이 자리 잡은 고층건물도 있다. 한 입시학원 원장은 “학생이 줄거나 하는 조짐은 없다. 생활이 어려워도 애들 학원은 보낸다. 최근 2~3개월 사이에는 수강료가 미납되는 비율도 많이 줄었다”라고 말했다. 애경백화점이 들어서기 전까지 평택의 유일한 백화점이었던 뉴코아백화점도 이곳에 있다. 근처 공인중개사 사무실에서는 맞은편 한빛아파트를 평택 최고의 부촌이라고 지목했다. 평당 가격은 다른 곳과 비슷하지만 40평(132㎡)대 아파트가 주를 이룬다. 이곳에는 쌍용자동차 근로자가 거의 없다. 대기업 사무직 등 연봉이 높은 일자리에 근무하는 사람 가족이 한빛아파트 입주자의 다수를 이룬다. 평택에는 쌍용자동차 외에도 LG전자 등 151개 기업체가 있다.

ⓒ전문수쌍용자동차 근로자가 많이 거주하는 세교동(위) 일대는 평택의 다른 지역과 달리 한적하다.
쌍용자동차 문제에 시큰둥하기는 지역 정치권도 마찬가지다. 한상균 지부장은 “이 지역 국회의원(민주당 정장선)이 국회 지식경제위원회 위원장이다. 그럼에도 지역에서 벌어지는 대량해고를 당연하게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정장선 의원은 쌍용자동차의 대규모 정리해고 방침에 대해 ‘현재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고통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는 시각이다. 그는 “평택 지역에 확보한 430만 평 산업단지 개발을 차질없이 추진하고 첨단 기업을 유치하는 것, 황해경제자유구역, 고덕국제신도시 등 대규모 개발사업을 추진하는 것도 일자리 창출을 위해 대단히 중요한 사업이기 때문에 적극 추진하도록 지원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이에 노조 측은 “있는 일자리를 없애고 새 고용을 창출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가?”라고 반발한다. 평택시의회 임승근 의원은 노조 측에 “쌍용차가 평택 경제의 고용 부문을 크게 담당하기는 했지만 시민들과 함께하기에는 다소 미흡했다. 회생에 대한 시민의 적극적인 기대만 있는 것은 아니다”라는 견해를 전하기도 했다.

ⓒ전문수쌍용자동차 근로자가 많이 거주하는 세교동(위) 일대는 평택의 다른 지역과 달리 한적하다.
외관만 보면 평택은 발전하고 있다. 얼마 전 새로이 단장한 평택역사에는 AK플라자(애경백화점)가 들어섰다. 고가 명품 화장품 브랜드가 1층에 가득 들어왔고, 푸드코트에 외국계 프랜차이즈 매장이 입점한 고급 백화점이다. 이전까지 평택에 있던 백화점에는 저가 브랜드의 아웃렛 수준 매장이 입점했다. 주변에는 홈플러스와 롯데마트 등 대형마트 개장 공사가 한창이다. 평택시 어디에서나 아파트 공사 현장을 찾을 수 있다.

평택 시민은 조금만 기다리면 평택시가 크게 성장할 것이라고 기대한다. 평택에서 24년째 부동산중개업을 하는 원제홍씨는 “평택에는 개발 호재가 많다. 인구가 크게 늘 것이라 예상해서 아파트가 많이 들어서는 중이다”라고 말했다. 평택항의 규모가 점차 커지고, 미군 부대가 이전하고, 바로 옆에 고덕국제도시가 들어서면 인구가 많이 유입될 것이라는 얘기다. ‘도농복합도시’라 불렸던 평택에는 농지를 공장부지로 팔려는 농민을 쉽게 찾을 수 있다.

금속노조 “쌍용차 대량해고는 시작일 뿐”

쌍용자동차의 대규모 정리해고에 불안감을 느끼는 사람은 오히려 평택 바깥에 있다. 전국금속노조 위원장 정갑득씨는 “쌍용차는 정리해고의 시작일 뿐이다. 위니아만도와 여러 조선업체를 비롯해 전국에 정리해고가 밀물처럼 일어날 것이다”라고 말했다. 쌍용차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전국의 금속사업장마다 쉽게 정리해고를 강행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5월13일 쌍용자동차 노동조합 결의대회에 전국금속노조 조합원 700여 명이 함께한 것도 이와 같은 위기감 때문이다.

70m 굴뚝 끝에 줄을 연결했다. 아래에서 다섯 명이 줄을 당겨 도시락 3인분을 올려보냈다. 뒤늦게 도착한 현수막을 걸기 위해 김봉민 부지회장이 굴뚝 중간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다시 올라갔다. 여전히 육안으로 사람이 보이지 않는 굴뚝에는 ‘정리해고 분쇄’라는 현수막 문구만 휘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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