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차 대량해고 계획 구체화
5월12일에는 쌍용자동차 정문에 천막 하나가 더 생겼다. ‘가족대책위원회’ 회원들의 농성장이다. 전날 시청 앞 기자회견에서 가족대책위 이정아씨는 “서울에서나 하는 줄 알았던 어색한 데모 구호를 이제 우리가 외치고 있다”라며 눈물을 보였다. 쌍용자동차 정리해고를 막아보자고 근로자 가족이 모였다지만 20~30대 젊은 여성과 미취학 아동뿐이다. 남편이 시설실에서 근무한다는 김정숙씨(35)는 “남편 직장이 불안해서 맞벌이를 하는 집이 대부분이다. 그러다보니 애들이 어려 직장에 다닐 수 없는 사람만 농성에 참여하게 되었다”라고 말했다. 굴뚝에 오른 서맹섭씨의 아내는 같은 시각 패스트푸드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남편 근처에 와보지도 못했다.
2405개 일자리가 사라지면 단순하게 생각해도 2405개 가정의 수입이 끊어지고 소비가 급감한다. 인구 41만인 도시 평택에서 감당하기 벅찬 일이다. 협력업체 상황까지 감안하면 파급력은 더하다. 그러나 쌍용자동차 사태에 대해 평택 시민은 대체로 시큰둥했다. 평택역 앞에서 20년째 해장국을 판다는 한 상인은 “우리집은 단골 고객이 많아서 경기에 크게 영향을 안 받는다. 주변에서는 어렵다고 하는데 사실 잘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쌍용자동차 노동조합 정책실장 이창근씨는 “2년 전 노조간부 두 명이 비리로 구속되는 일도 있었고, 강성 노조라는 인식도 강해 평택에서 인심을 얻지 못했다”라고 말했다.
쌍용차 근로자가 평택 경제에서 차지하는 위치도 모호하다. ‘남편이 쌍용차 다니면 중산층’이라는 인식만 있을 뿐 이들의 구매력은 낮게 평가된다. 휴대전화 대리점을 운영하는 김 아무개씨(33)는 “쌍용차 공장 안에 가게가 있고 식당도 있어서 거기에서 소비를 많이 해결한다고 들었다. 요즘은 경기가 안 좋으니까 어디나 어렵다. 쌍용차 때문에 특별히 어려울 것도 없다”라고 말했다.
평택시는 크게 서부(안중), 북부(송탄), 남부(평택) 지역으로 나뉜다. 일반적으로 평택이라 하면 남부 지역 7개 동을 말한다. 쌍용차 공장은 북부와 남부가 맞닿아 있는 지역에 있다. 근로자들은 이곳에서 차로 5분 거리인 세교동에 주로 산다. 이곳은 20평(66㎡)대 아파트가 주를 이룬다. 아파트 옆에 ‘먹자골목’이 있지만 1인분에 1만원을 넘지 않는 소박한 메뉴가 주를 이룬다. ‘노동자의 도시’라 말할 때 떠올리기 쉬운 유흥가의 이미지는 찾기 어렵다.
남편이 쌍용차 다니면 중산층?
평택의 소비 중심지는 평택역 주변 구시가지와 시청 주변 일대 신시가지다. 인구 41만 도시치고는 구시가지의 면적이 매우 넓다. 사람들은 이 일대를 ‘명동거리’라고 부른다. 한 시민단체 활동가는 “이곳에서 오래 장사한 사람들은 상가 건물을 소유한 경우가 많다. 장사보다 건물 월세로 안정된 생활을 이어가는 것에 관심을 둔다”라고 말했다. 이런 보수적 성향 때문에 상인들이 쌍용자동차 문제에 관심이 없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시청 부근 번화가는 역전보다 규모가 작다. 그러나 인테리어에 신경 쓴 상점이 빼곡하고 층마다 프랜차이즈 입시학원이 자리 잡은 고층건물도 있다. 한 입시학원 원장은 “학생이 줄거나 하는 조짐은 없다. 생활이 어려워도 애들 학원은 보낸다. 최근 2~3개월 사이에는 수강료가 미납되는 비율도 많이 줄었다”라고 말했다. 애경백화점이 들어서기 전까지 평택의 유일한 백화점이었던 뉴코아백화점도 이곳에 있다. 근처 공인중개사 사무실에서는 맞은편 한빛아파트를 평택 최고의 부촌이라고 지목했다. 평당 가격은 다른 곳과 비슷하지만 40평(132㎡)대 아파트가 주를 이룬다. 이곳에는 쌍용자동차 근로자가 거의 없다. 대기업 사무직 등 연봉이 높은 일자리에 근무하는 사람 가족이 한빛아파트 입주자의 다수를 이룬다. 평택에는 쌍용자동차 외에도 LG전자 등 151개 기업체가 있다.
평택 시민은 조금만 기다리면 평택시가 크게 성장할 것이라고 기대한다. 평택에서 24년째 부동산중개업을 하는 원제홍씨는 “평택에는 개발 호재가 많다. 인구가 크게 늘 것이라 예상해서 아파트가 많이 들어서는 중이다”라고 말했다. 평택항의 규모가 점차 커지고, 미군 부대가 이전하고, 바로 옆에 고덕국제도시가 들어서면 인구가 많이 유입될 것이라는 얘기다. ‘도농복합도시’라 불렸던 평택에는 농지를 공장부지로 팔려는 농민을 쉽게 찾을 수 있다.
금속노조 “쌍용차 대량해고는 시작일 뿐”
쌍용자동차의 대규모 정리해고에 불안감을 느끼는 사람은 오히려 평택 바깥에 있다. 전국금속노조 위원장 정갑득씨는 “쌍용차는 정리해고의 시작일 뿐이다. 위니아만도와 여러 조선업체를 비롯해 전국에 정리해고가 밀물처럼 일어날 것이다”라고 말했다. 쌍용차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전국의 금속사업장마다 쉽게 정리해고를 강행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5월13일 쌍용자동차 노동조합 결의대회에 전국금속노조 조합원 700여 명이 함께한 것도 이와 같은 위기감 때문이다.
70m 굴뚝 끝에 줄을 연결했다. 아래에서 다섯 명이 줄을 당겨 도시락 3인분을 올려보냈다. 뒤늦게 도착한 현수막을 걸기 위해 김봉민 부지회장이 굴뚝 중간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다시 올라갔다. 여전히 육안으로 사람이 보이지 않는 굴뚝에는 ‘정리해고 분쇄’라는 현수막 문구만 휘날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