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18일 서울시청에서 열린 공시가격 현실화 공동논의를 위한 국민의힘 소속 5개 시·도지사 협의회에 참석한 지자체장들이 손을 맞잡고 있다. ⓒ연합뉴스

야권이 주택 공시가격을 정치의 전면으로 끌어올리고 있다. 4월18일 국민의힘 소속 5개 광역 지방자치단체장(서울·부산·경북·대구·제주)은 올해 주택 공시가격을 지난해 가격으로 동결해달라는 건의문을 발표했다. 공시가격 산정 과정에 대해 감사원이 조사를 하고, 공시가격 산정 권한을 지자체로 이양하라는 요구도 포함되어 있다.

공시가격 산정 주체를 바꾸는 건 입법 사안이다. 그러나 이날 발표는 원내 정당의 정책과제나 개별 의원의 입법안 제출이 아니라 ‘이름값’ 있는 지자체장의 ‘공동 건의문’ 형태였다. 이슈 선점 성격이 짙다. ‘공시가격’이 갖는 파급력이 크기 때문에 정치적 주목도도 높았다.

야권 지자체장이 한목소리를 낼 수 있는 건 주택 공시가격, 특히 아파트 공시가격이 올해 급등해서다. 국토교통부는 3월15일 ‘2021년 공동주택 공시가격’을 발표하며, 전국 아파트 평균 공시가격이 전년 대비 19.08% 올랐다고 발표했다. 상승을 이끈 지역은 세종(70.68%)·경기(23.96%)·대전(20.57%)·서울(19.91%)·부산(19.67%) 등이다. 현재 전국에 지정된 투기과열지구 49곳 가운데 44곳이 이들 지역에 위치해 있다. 아파트 공시가격의 전년 대비 상승률이 두 자릿수 이상을 기록한 것은 2007년(22.7% 상승) 이후 처음이다.

주택 공시가격은 ‘시세 변동’과 ‘현실화 정도’라는 두 변수에 따라 달라진다. 이 중 ‘시세 변동’은 매년 1월1일 시장가격을 기준으로 삼는다. 집값이 1년간 급격히 오르면 그만큼 공시가격도 따라 오른다. 지난해 시세 변동이 컸다는 의미다.

올해는 두 번째 요인인 ‘현실화 정도’ 역시 강화되면서 공시가격 상승에 일조했다. 시세 대비 공시가격의 비율, 즉 ‘현실화율’이 점차 오르고 있어서다. 국토교통부는 올해 아파트 공시가격의 현실화율이 지난해 69%에서 올해는 70.2%로 1.2%포인트 올랐다고 밝혔다.

부동산 공시가격 현실화는 지난해 11월3일 정부가 발표한 장기(5~10년) 계획 중 하나다. 당시 정부는 부동산의 유형·가격대별 현실화율 격차가 발생하기 때문에 이를 최장 10년에 걸쳐 시세의 90% 수준까지 끌어올리겠다고 밝혔다. 올해 겨우 70% 선을 넘었기에 아직 갈 길이 멀지만, 그 비율은 점차 늘어날 전망이다. 대신 정부는 공시가격 6억원 이하 주택을 가진 1주택자는 재산세율을 인하해 다수(지난해 발표 당시 전체 1인 1주택 가구의 94.8%)의 실제 세금 부담을 줄이겠다고 했다. 다주택 보유자, 고가주택 보유자에게 세 부담을 키우는 로드맵이다.

현실화 정책 시행 첫해부터 공시가격 상승폭이 커서 공시가격 상승이 정부 탓이라고 여기는 이들이 있다. 그런데 올해 공시가격 상승 쇼크는 단순히 정부의 ‘로드맵’ 때문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 2020년 1월1일 시가 5억원에 거래되던 집이 있다고 가정하자. 2020년 공시가격은 3억4500만원 수준(시세 대비 69%)이다. 그러나 1년 새 시세가 1억원 올라 2021년 1월1일 기준시가 6억원일 경우, 공시가격은 4억2120만원 수준(시세 대비 70.2%)으로 상승한다. 이때 공시가격은 전년 대비 22% 상승(시세는 20% 상승)한 셈이다. 점차 늘어나는 ‘현실화율’이 전년 대비 상승폭을 시세 상승폭보다 키운 것은 사실이나, 어디까지나 공시가격 상승의 주된 원인은 시장가격 상승에 있다(이 가정은 예시일 뿐이다. 실제 공시가격은 같은 면적이라도 아파트 동·층·창문 방향 등에 따라 차이가 난다).

공시가격 상승이 시세 상승 때문에 벌어진 일시적 현상이라면, 어째서 야권 지자체장들은 공시가격을 정치 쟁점화하는 것일까? 심지어 공시가격을 기준으로 걷는 재산세는 지방세의 일종으로 지자체 재정의 핵심 자원이다. 즉 자신들이 사용 가능한 재정적 여력을 줄여가면서까지 ‘공시가격 동결’을 주장하는 셈이다. 공시가격이 갖는 몇 가지 특성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야권과 보수 언론의 ‘사실상 증세’ 프레임

공시가격은 60여 개 조세·준조세·복지행정 시스템의 기반이다. 부동산 보유세인 재산세·종합부동산세 외에도 취득세·양도소득세·상속세·등록면허세 등의 기준이고, 기초연금 대상자 판단 기준과 건강보험료 부과 기준(지역건강보험 가입자)에 영향을 미친다. 한마디로 한국 사회에서 공적 시스템이 한 개인의 자산 수준을 평가해 세금을 부과할 때 가장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항목이 공시가격이다. 공시가격의 급등은 개인들에게 일단 부담스럽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야권과 보수 언론에선 이를 ‘사실상 증세’라는 프레임으로 밀어붙인다.

공시가격은 앞으로 장기 상승할 가능성이 크다. 공시가격 현실화율이 계속 높아진다는 것은 실거래 가격(시세)이 변하지 않아도 공시가격은 조금이나마 오른다는 의미다. 이 장기 상승 추세는 최장 10년에 걸쳐 계속될 예정이다. 공시가격 상승은 고가·저가 주택을 가리지 않고 작동한다. 집을 가진 가구의 비율(자가보유율)은 2014년 58%에서 2019년 61.2%로 계속 상승 중이다. 결국 10가구 중 6가구는 향후 몇 년간 공시가격 상승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 자체로 인구 절반이 넘는 이들의 이슈다.

그러나 공시가격 산정을 지자체가 도맡고, 당장 공시가격을 전년도 가격으로 동결시키자는 야권 지자체장들의 주장은 현실성이 떨어진다. 공시가격 상승 및 현실화는 그 자체로 과열된 주택시장에 냉각 기능을 한다. 부동산 가격이 계속 널뛰는 상황에서 정부가 최소한의 가격안정 수단인 공시가격 현실화를 포기하기는 힘들다. 이런 측면에서 야권 지자체장들이 외치는 ‘공시가격 동결’은 향후 부동산 정책의 로드맵을 포기하라는 말과 같다. 홍남기 국무총리 직무대행 겸 경제부총리도 4월19일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부동산 공시가격을 동결하는 게 능사가 아니다”라며 야권 지자체장의 요구를 일축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파트 공시가격은 개별 야권 지자체장들에겐 너무나 소중한 정치 이슈다. 정부와 각을 세우며 존재감을 드러내기에도 용이하다. 앞으로 장기간에 걸쳐 공시가격이 상승할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 자체가 야권엔 엄청난 매력 포인트로 보일 것이다. 세금 부담이 무거워지는 유권자가 그만큼 늘어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주기적으로 이슈가 반복된다는 특성도 있다. 매년 7월과 9월에 재산세 부과액이 확정된다. 야권과 언론은 연례행사처럼 ‘세금폭탄’이라는 자극적 용어로 공시가격 현실화 정책을 공격할 수 있다. 이 논란은 당장 올 하반기에 재점화될 가능성이 높다.

야권의 요구대로 지자체가 공시가격 산정 권한을 갖게 되면 지역별 불균형이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선출직 지자체장들은 자신의 정치적 인기를 높이기 위해 경쟁적으로 공시가격 인하에 뛰어들 가능성이 있다. 국가경제와 세금제도가 정치인의 노리개가 되는 경로다.

올해는 부동산 보유세(재산세·종합부동산세)를 산정하는 또 다른 기준인 ‘공정시장가액비율’이 지난해 90%에서 올해 95%로 상향될 예정이다. 이 비율이 90%라면, 공시지가가 1억원이라도 그중 9000만원만 세금 계산에 반영된다. 95%라면 9500만원이 세금 계산에 들어간다. 즉 이 비율이 높을수록 세 부담도 커진다. 그러므로 상반기에는 공시가격, 하반기에는 보유세가 정치투쟁의 소재가 되는 패턴은 공정시장가액비율이 100%로 바뀌는 내년 여름까지 반복될 공산이 크다.

이런 가구들은 주로 수도권에 모여 있다. 지난 대선에서 일부 지역을 제외한 수도권 대부분은 민주당의 손을 들어주었다. 그러나 자산에 대한 세금 부담이 커진 이들과 지역이 점점 늘고 있고, 야권은 이 계층과 지역을 노리고 있다. 아직 세 부담이 크지 않지만 “우리도 곧…”이라고 여기는 유권자층도 존재한다.

앞으로 대선까지 전개될 ‘부동산 정치’에서 보수 야권의 중도 공략 대상은 자산가격을 기준으로 한 수도권 중간계층이 될 가능성이 크다.

기자명 김동인 기자 다른기사 보기 astori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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