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한국 전자상거래 매출 규모는 약 117조원이다. 1년 만에 20% 가까이 늘었다. ⓒ시사IN 이명익

식구가 줄었지만 대문 앞에는 늘 상자가 쌓였다. 권미선씨(가명·60)는 지난해 외동딸의 혼례를 치렀다. 셋이 살던 집은 2인 가구로 바뀌었다. 그런데 수령하는 택배 상자는 딸과 함께 살 때보다 늘었다. 권씨 부부가 지난해부터 모바일 쇼핑을 시작하며 생긴 변화다. 품목도 다양해졌다. 식품류 주문도 주저하지 않게 됐다. 권씨 남편은 ‘새로운 안줏거리’를 주문하는 재미에 빠졌다. 과거에는 부부가 시간을 맞춰 장을 보러 나갔지만 이제는 각자 방에서 쇼핑 앱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늘었다.

팬데믹 일상은 유통업계를 뒤흔들었다. 전자상거래(이커머스·온라인 쇼핑) 이용률이 폭증하면서 업체 간 합종연횡도 발 빠르게 추진되고 있다. 수요층의 변화는 극적이다. 기존 이용객의 이용 빈도도 늘었지만 권씨 부부처럼 전에 없던 새로운 소비층도 등장했다. 3월3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발표한 ‘2020 인터넷 이용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40~60대의 전자상거래 이용률이 큰 폭으로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50대는 2019년 44.1%에 불과했던 이용률이 2020년 60.2%로 증가했다. 가장 구매력이 큰 세대가 본격적으로 온라인에서 지갑을 열기 시작한 셈이다.

2월9일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 전자상거래 전체 매출 규모는 약 117조원에 달한다. 팬데믹 직전인 2019년에 약 98조원 규모였던 점을 감안하면 1년 만에 20% 가까이 급성장한 셈이다. 미래에셋대우가 3월29일 발표한 자료를 보면, 2021년 전체 유통시장에서 전자상거래가 차지하는 비중은 37%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거래 건당 결제액이 큰 자동차 구매를 제외한다면 이 전망치는 41%까지 오른다.

신선도가 중요해 오프라인 유통망에 의존했던 식품류도 온라인 거래가 늘었다. 통계청 ‘온라인 쇼핑 동향’에 따르면 2019년 하반기 8조9270억원이던 식품류 온라인 매출액은 2020년 상반기에 11조7160억원까지 증가했다. 배달음식과 같은 음식서비스 시장도 2019년 7월 6180억원에서 2020년 7월 9440억원으로 50% 넘게 급성장했다(정보통신정책연구원 2020년 10월 발표). 팬데믹은 지난 1년 동안 모든 세대, 모든 업계의 상거래 패턴을 바꾸어놓았다.

소비의 법칙이 바뀌면서 온라인 쇼핑 플랫폼의 덩치 키우기 경쟁도 뒤따르고 있다. 국내 1위 이커머스 업체인 쿠팡은 3월11일 미국 증권거래소(NYSE)에 상장하며 5조원에 달하는 투자금을 마련했다. 상장을 통해 마련한 ‘실탄’은 물류센터를 늘리는 데 활용될 가능성이 크다. 전국에 물류센터를 촘촘하게 마련하고, 한번 쿠팡을 사용한 사람들을 계속 머물게 하는 식이다.

상장신고서에 따르면 쿠팡은 여전히 연 5900억원을 까먹는(2020년 기준) 적자기업이다. 하지만 지난해 연 매출이 2배 가까이 늘었고, 영업손실액도 줄고 있다. 전자상거래 시장 점유율도 2019년 1월 11.7%에서 2020년 1월 16%까지 높이고 있다(미래에셋대우 3월9일 발표 자료).

반면 그동안 오프라인 유통업계를 지배했던 큰손들은 체질 개선에 급히 나서고 있다. 현재 국내에서 쿠팡에 필적하는 이커머스 업체는 네이버 정도다. 시장점유율 18.6%로 쿠팡과 비슷한 수준이다. 다만 네이버의 점유율은 ‘거래액’ 기준이다. 가격 비교를 통해 거래수수료를 수취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점유율이 그대로 매출로 잡히지는 않는다. 자체 쇼핑몰인 ‘스마트 스토어’ 이용객이 늘고 있긴 하지만 배송망은 쿠팡과 비교했을 때 열위에 놓여 있다.

팬데믹 이후 온라인 쇼핑이 늘면서 배송량도 많아졌다. 아래는 1월28일 서울 시내 한 택배 물류센터의 풍경. ⓒ연합뉴스

콘텐츠가 먼저, 쇼핑은 나중

네이버는 부족한 배송망을 보완하기 위해 기존 유통업체와 연합하는 방식을 택했다. 네이버는 지난해 10월 CJ와 6000억원 규모 상호 지분투자를 단행했다. 뒤이어 올해 3월16일에는 신세계그룹과도 지분 교환을 성사시켰다. 전체 2500억원 규모다. 신세계는 그동안 이마트와 자체 물류센터를 중심으로 전자상거래 시장에 대응해왔다. 오프라인 지점망은 탄탄하지만, 물류를 고도화하는 데에는 데이터를 바탕으로 한 기술력이 필요하다. 서로의 약점을 보완하려는 협력이다. 쿠팡이 점유율을 끌어올린 것도 결국 ‘배송의 힘’이 컸다. 쿠팡처럼 ‘배송 최적화 시스템을 구축하는 일’을 ‘풀필먼트(Fullfillment)’라고 부르는데, 네이버 역시 협력사와 배송체계를 재편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업체 간 인수·합병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업계 재편의 정점은 ‘이베이코리아’ 인수전이 될 것으로 보인다. 지마켓과 옥션 등을 운영하는 이베이코리아를 이베이 본사 측이 매각하기로 결정하면서 5조원에 달하는 인수 경쟁이 펼쳐지고 있다. 현재 롯데쇼핑, 이마트, SK텔레콤과 경영 참여형 사모펀드(PEF) 운용사인 MBK파트너스가 실사 참여 자격을 얻은 상태다. 지마켓·옥션은 1세대 오픈마켓(판매자와 구매자를 중개하고 수수료를 얻는 방식)으로 배송을 책임지는 형태는 아니다. 하지만 롯데나 신세계처럼 빠르게 온라인 경쟁력을 갖춰야 하는 기존 유통 대기업 입장에서는 매력적인 매물일 수 있다. 더욱이 3월23일 롯데쇼핑이 온라인 중고 거래 플랫폼인 ‘중고나라’ 지분 일부를 인수하면서 전자상거래 업계의 인수·합병이 더 광범위해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게임의 룰’이 바뀌는 지각변동도 일어난다. 40대 이상에겐 쿠팡이나 네이버, 11번가 같은 종합 온라인 쇼핑몰이 인기 있지만 모바일 환경에 친숙한 10~20대 사이에서는 종합몰에 대한 선호가 다르게 나타난다. 쇼핑의 문법이 달라지고 있다. 앱·소매시장 분석업체인 ‘와이즈앱/와이즈리테일’이 지난해 12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10대가 가장 많이 사용하는 쇼핑 앱은 쿠팡·에이블리·무신사·스타일쉐어·지그재그 순이었다. 20대에서도 쿠팡·지그재그·무신사·에이블리·아이디어스 순으로 전문·특화 쇼핑몰이 높은 점유율을 차지했다. 11번가·옥션·지마켓·위메프·티몬 등은 30대 이상 이용자들 사이에서 존재감을 보였지만, 온라인 유행을 만들어가는 20대 이하에서는 상대적으로 외면받고 있다.

전자상거래에서 패션의 비중이 크다는 연령대별 특징도 반영되었지만, 이들 세대가 생각하는 ‘온라인 쇼핑몰의 개념’이 다르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셀럽의 스타일을 구경하거나(에이블리), 스타일 카테고리를 참고하고(지그재그), SNS로 활용하며(스타일쉐어), 각종 콘텐츠를 접하는(무신사) ‘경험’에 전자상거래가 녹아들어가는 형태다. 30대들에게 인기 있는 ‘오늘의집’도 인테리어 경험을 나누는 SNS로 자리매김했고 중고 거래 앱인 ‘당근마켓’도 지역에 밀착한 커뮤니티 서비스가 사용자의 시간을 붙잡아두고 있다. 여기서 쇼핑은 최전선에 위치해 있지 않다.

1세대 오픈마켓이 일종의 ‘장터’ 개념이었다면 이제는 사람들이 전자상거래에 경험과 관계를 요구하고 있다. 콘텐츠가 먼저이고 쇼핑은 나중이라는 흐름에 기존 유통 공룡은 어떻게 적응해갈 수 있을까. 최근 각 쇼핑몰이 공들이는 ‘라이브 커머스(온라인 방송을 통해 판매하는 방식)’도 쇼핑의 문법 자체가 달라지는 풍경 중 하나다. 경쟁이 심해지는 상황에서 현재까지 나온 생존 방식은 두 가지다. 쿠팡처럼 물류망에 수천억~수조 원을 투입해 몸집을 키우거나, 쇼핑이라는 틀을 아예 뒤집거나. 선택하기 어려운 딜레마 속에서 기존 거대 유통업체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기자명 김동인 기자 다른기사 보기 astori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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