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13일 수원역 앞에서 열린 ‘경기도420장애인차별철폐공동투쟁단’ 출범대회에 참가한 김희선씨가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 이날 투쟁단은 장애인 탈시설 권리 보장, 중증장애인 맞춤형 공공일자리 200개 보장,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위한 저상버스 도입 전폭 확대 등을 요구했다. ⓒ시사IN 이명익

“아빠가 어느 날 저에게 ‘너 학교 가자’고 했는데 느낌이 이상했어요. 저는 학교에 다닌 적 없이 맨날 집에만 있었어요 그래서 안 가겠다고 했지만 엄마 아빠가 가라고 해서 별수 없이 가게 되었어요. 그리고 그곳은 학교가 아니었어요.”

뇌병변 장애를 가진 김희선씨는 스무 살이 될 때까지 집에만 있었다. 그러다 학교를 가라는 부모의 말에 이끌려 간 곳은 경기도 남양주의 한 장애인 거주 시설이었다. 그에게 그곳은 지옥과 다름없었다. 큰 거실을 칸막이 하나 쳐서 남자 방 하나와 여자 방 하나로 갈랐다. 55명이 지냈다. 한글도 모르는 그에게 성경을 외우게 하고 하루 종일 기도 말고는 아무것도 시키지 않았다. 걷지 못하는 그에게 화장실로 주어진 건 갈색 세숫대야 하나. 실수로 바지에 실례라도 하는 날이면 각목 세례가 이어졌다. 허벅지와 엉덩이처럼 마음에도 피멍이 들었다.

김희선씨가 지옥 같은 시설을 벗어날 수 있었던 건 23년이라는 시간이 지나서였다. 같은 시설에서 살다가 자립한 장애경씨가 시설 밖에 다른 세상이 있다고 가르쳐줬다. 5년을 고민했고, 마흔두 살이 되던 2017년 9월25일 그곳을 나왔다.

그 후로 4년 그의 삶은 많이 바뀌었다. 야학에 다니며 공부를 하고, 권익옹호 활동가로 지내며 얼마 전에는 초등학교 졸업 검정고시도 치렀다. 그리고 올해 3월에는 마침내 3년간의 ‘장애인 자립생활 체험홈’을 끝내며 임대아파트로 거주지를 옮기는 ‘진짜 자립’도 시작했다.

그는 열심히 싸운다. ‘탈시설’ 싸움도 ‘장애인 평생교육권’ 싸움도 ‘장애인 이동권’ 싸움도. 그저 순종하기만 했던 삶이 바꿔준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리고 아직도 시설 생활을 하며 망설이고 있는 사람들에게 자신을 보여주며 하고 싶은 말이 있다. “다 있어. 나와. 내가 살아보니까 더 좋고 자유가 있어. 그러니까 다 나와서 살았으면 좋겠어.”

경기도 김포시에 위치한 자택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김희선씨. ⓒ시사IN 이명익
4월9일 김희선씨(왼쪽)가 경기도 김포장애인야학에서 국어 수업을 받고 있다. ⓒ시사IN 이명익
4월10일 김희선씨가 초등학교 졸업학력 검정고시를 치르기 위해 시험 장소인 서울 대영중학교로 이동하고 있다. ⓒ시사IN 이명익
기자명 이명익 기자 다른기사 보기 sajini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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