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영 그림

지난해 초 〈잘해봐야 시체가 되겠지만〉(반비, 2020)이라는 책을 신간 소개란에서 보았으나, ‘흐음’ 하고 말았다. 그해가 저물 무렵 같은 저자의 〈좋은 시체가 되고 싶어〉(반비, 2020)가 나왔을 때도 그랬다. 그런데 올해 초 〈고양이로부터 내 시체를 지키는 방법〉(사계절, 2021)을 보고 나서 뒤늦게 호기심과 함께 찬탄하는 마음이 솟았다. ‘한 우물을 깊이 파네!’ 케이틀린 도티의 책을 먼저 읽은 미국의 독자들은 한입으로 ‘재미있고, 경이롭다’고 말하고, 번역된 세 권의 책에 추천사를 쓴 국내 셀러브리티들의 반응도 그와 같다.

케이틀린 도티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장례식장을 운영하면서, 자신의 유튜브 채널 ‘장례 지도사에게 물어보세요 (Ask A Mortician)’를 통해 장례와 죽음, 시체에 대한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나누어주고 있다. 도티는 신작 〈고양이로부터 내 시체를 지키는 방법〉에서 초등학생 연령의 아이들로부터 장례와 시체에 대한 수백 가지 질문을 모은 뒤에, 거기서 추려낸 서른네 개 질문에 답하고 있다.

지은이는 ‘내가 죽으면 고양이가 내 눈알을 파먹을까?’를 자신이 대답해야 할 첫 번째 질문으로 선택하고 책 제목으로까지 삼았다. 개나 고양이를 키우는 반려인의 ‘멘탈’을 보호하고자 여기에 지은이의 답변을 다 옮기지는 않겠지만, 집 안의 시신이 훼손되어 있을 때 명민한 법의학자와 수사관은 반려동물의 시신 훼손 여부부터 살핀다고 한다. 그런데 케이틀린은 어떤 동물을 반려동물로 삼고 있을까. 이 글을 마칠 때쯤, 지은이의 반려동물을 소개하려고 한다.

질의응답으로 구성된 책은 차례대로 읽기보다, 목차를 훑으며 평소에 궁금했던 사항부터 찾아 읽게 된다. 내 눈에 뜨인 것은 ‘내가 혼수상태에 빠졌을 뿐인데 실수로 나를 묻는다면 어떻게 될까?’였다. 20세기 이전에는 간혹 이런 일이 있었다. 16세기 영국 브로잉에서 살았던 매슈 월은 관 속에 넣어져 묘지로 운구되던 중에 관을 든 사람 한 명이 젖은 낙엽에 미끄러지는 바람에 살아났다. 관이 땅에 떨어져 부딪치자, 정신이 든 매슈 월이 관 뚜껑을 두드리며 살려달라고 소리쳤던 것이다. 그는 이후로 24년을 더 살았는데, 그 지역에서는 그가 부활한 10월2일을 ‘올드 맨의 날’로 오늘날까지 기념한다.

산 사람도 죽게 하는 사망 검사법

이런 일이 벌어진 까닭은 당시의 사망 검사법이 매우 어수룩했기 때문이다. 발톱 밑 또는 심장이나 위장에 바늘을 찔러 넣기, 발을 칼로 베어내거나 빨갛게 달군 부지깽이로 지지기, 손을 불로 지지거나 손가락을 잘라내기 등이 그 시절의 사망 검사법이었다. 매슈 월은 다행스럽게도 그런 검사를 생략했기 때문에, 오히려 온전히 살아날 수 있었다. 바늘을 심장이나 위에 찔러 넣으면 산 사람도 죽게 되고, 생존 판정을 받더라도 발꿈치나 손가락이 없는 장애인이 된다.

중세도 아닌 1937년, 그보다 더 극적인 사례가 프랑스에서 있었다. 안젤로 헤이스는 모터사이클을 타다가 사고를 당했는데, 그의 맥박을 짚어본 의사가 맥박이 뛰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 사망선고를 했다. 헤이스는 부모에게 보여줄 기회도 없이 매장되었는데, 사기를 의심한 생명보험사가 사망 여부를 조사하기 위해 이틀 뒤에 그의 무덤을 팠다. 시신을 살펴보던 검시관들은 아직 몸이 따뜻한 그를 발견하고 놀랐다. 깊은 혼수상태에 빠졌던 헤이스는 호흡 속도가 느렸던 덕분에 산소가 희박한 상태에서도 살아남았던 것이다. 무덤에서 나온 그는 자신의 경험에 착안해서 무선송신기와 화장실을 갖춘 ‘안전 관’을 발명했다. 서른네 개의 질문 가운데 어디에 꽂히느냐에 따라, 죽음에 대한 당신의 강박이 드러날 것이다(어린아이들의 궁금증을 모은 질문이라서, 당신의 강박을 끌어낼 질문이 없을 수도 있다).

하와이에서 태어나고 자란 케이틀린 도티는 1993년, 초등학교 3학년 때 아버지와 함께 백화점에 갔다가 우연히 자기보다 어린 여자아이가 2층에서 반질반질한 바닥으로 떨어져 죽는 것을 목격했다. 집에 돌아온 날 저녁, 도티는 담요를 몇 겹이나 뒤집어쓰고 아침이 될 때까지 소파 한구석에 오도카니 앉아 있었다. 죽음이 자신을 볼 수 없다면 데려갈 수도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때부터 여덟 살 먹은 소녀는 우주에서 균형을 유지하고 죽음을 피하기 위한 자신만의 까다로운 규칙을 무수히 만들어냈다. 개밥을 주기 전에 집 주위를 세 바퀴 돌기, 항상 살아 있는 풀이 아닌 낙엽을 밟고 걷기, 문이 잘 잠겼는지 다섯 번 확인하기, 침대에 누울 때는 항상 그 앞에서 풀쩍 뛰어 올라가기, 쇼핑몰을 지날 때는 혹시나 어린아이들이 발코니 너머로 굴러 떨어지는 일이 없게 조용히 걷기…. 이런 상태가 되었는데도 도티는 신경증 환자나 정신장애인이 되지 않았고, 종교에 귀의하지도 않았다. 그녀는 무신론자다.

고등학교 때 병원으로 자원봉사를 나갔을 때, 도티는 병원 책임자를 졸라서 입원실에서 죽은 환자를 영안실로 운반하는 일을 맡았다. 이후 시카고 대학에서 중세사를 전공하며 4년 동안 죽음에 관한 학술논문만 독파했으나 만족하지 못하고, 스물세 살 때 화장터에 취직했다(출근 첫날, 유족들이 보러 올 시체에 면도를 했다). 그리고 몇 년 후, 장의사를 개업했다.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로 가야 하는 것처럼(쉽지 않다), 두려움과 대면하기 위해 그녀는 죽음의 한복판으로 들어갔다. 지은이가 비단뱀을 반려동물로 키우는 것도 아마 같은 이유에서일 것이다. 무시무시하고 섬뜩한 것을 정면으로 직시하기!

도티는 〈잘해봐야 시체가 되겠지만〉에서 자신이 여덟 살 때 겪었던 불안 강박은 문명화가 아니었다면 애초에 생겨날 이유가 없었던 것이라고 주장한다. 아동을 성인으로부터 분리하고 죽음을 의학화하면서부터, 아이들은 죽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기회를 박탈당했다. 미국 개척시대에는 영아가 죽는 일이 허다했고, 그럴 때마다 아이들의 관은 아이들이 운반하는 경우가 보통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이들에게 시체를 보여주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시한부 환자와의 접촉마저 차단한다(안 그러는 부모는 ‘아동학대’로 의심받을 수 있다). 지은이는 아이들을 과잉보호하는 문명화에 항변하면서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에서 가장 놀라운 것은 “여덟 살짜리 아이가 죽음을 목격했다는 점이 아니라, 아이가 여덟 해를 꼬박 살고서야 비로소 죽음을 목격했다는 점이다. 100년 전만 해도 죽음을 본 적이 없는 아이란 찾아보기 어려웠다”라고 말한다. 그녀의 신간이 초등학생을 독자로 삼은 이유가 여기 있다. 

기자명 장정일 (소설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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