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 재미없다. 저자인 커트 캠벨이 얼마나 훌륭한 외교관인지는 모르지만, 읽는 사람을 홀리는 작가가 아니라는 건 확실히 알겠다. 캠벨은 오바마 정부 시절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의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로 일하며 아시아 전역을 누볐다. 그러니 독자는 외교의 막후 현장과, 세계 패권국가 미국 정부의 놀라운 비사를 기대하게 마련이다. 〈피벗〉에는 그런 이야기가 정말이지 하나도 안 나온다. 책은 오로지 21세기 미국 외교에서 아시아로의 ‘피벗(무게중심 옮기기)’이 왜 필요한지를 설명하고 설명하고 또 설명한다. 500쪽짜리 공무원 보고서를 읽는 기분이다.

그런데 신기하다. 이 책, 재미있다. 읽고 나면 우리 시대의 작동 원리가 달리 보인다. 미국과 중국은 정확히 무엇 때문에 으르렁거리는지, 미국은 떠오르는 중국을 어떻게 다루겠다는 속내인지, 틀어막고 봉쇄하겠다는 건지 중국의 세력권을 인정하겠다는 건지…. 우리는 이런 질문에 뿌옇고 어렴풋한 이미지만 갖고 있다. 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해상도가 낮다. 그러니 국제 뉴스를 봐도 무슨 의미인지 감이 안 온다. 〈피벗〉은 우리가 국제 질서를 보는 해상도를 극적으로 끌어올린다. 미국과 중국이 놓는 수의 맥락이 새롭게 보이는데, 외교 비사나 권력의 내부투쟁과는 또 다른 놀라운 재미를 준다. 읽을 때 지루한데 읽고 나면 두근거리는 묘한 책이다.

캠벨은 바이든 정부 들어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인도·태평양 조정관으로 화려하게 돌아왔다. 미국 언론이 ‘아시아 차르’라고 부르는, 아시아정책 총괄역이다. 바이든 정부 미·중 관계와 한반도 정책이 그의 손에서 다듬어질 것이다. 우리의 운명을 우리 손으로 결정하기 위해서라도, 미국의 ‘아시아 차르’가 어떤 구상을 하는지 알아야 한다. 한동안 필독서로 꼽힐 것이다. 번역하기 까다로울 책인데 전문 연구자가 깔끔한 한국어로 옮겼다.

기자명 천관율 기자 다른기사 보기 yul@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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