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초등학교 1·2학년이 매일 등교하기로 한 뒤 긴급돌봄을 축소하는 학교가 늘었다. 사진은 지난해 11월 서울 한 초등학교의 돌봄교실 풍경.

학교도 코로나 2년 차를 맞았다. 2020년이 ‘ver(버전) 1.0’으로 시행착오를 거듭하는 한 해였다면 2021년은 ‘코로나 속 학교’의 ‘버전 2.0’이 가동되어야 하는 시기인 것이다. 첫 번째 버전에서 나타난 여러 문제를 점검하고 보완·개선하겠다는 청사진이 이번 새 학기를 앞두고 여러 차례 발표되었다. 교육부와 시도 교육청들은 등교를 확대하고 원격수업의 질을 높이며 학습 격차와 돌봄 공백을 채우는 방안들을 잇달아 발표했다.

실제 개학 이후 이런 계획들은 얼마나 잘 시행되고 있을까? 더 이상 ‘처음이라서’라는 변명이 통하지 않는다. 코로나 경력 2년 차 학교는 작년보다 얼마나 진화했을까?

지난해 내내 계속 지적되었던 원격학습 격차 문제는 일단 초등 1·2학년 학생들이 매일 등교하면서 상당 부분 해소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여전히 나머지 학년 학생들은 등교수업과 원격수업을 병행하고 있다. 원격수업 시 발생하는 시스템 오류, 내용 부실, 학습 효율성 저하 같은 문제들이 이번 개학 이후에도 여전히 목격되고 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데 자주 묻히는 문제가 있다. 원격수업을 듣는 학생들의 ‘환경’ 격차다. 현재 표면적으로는 우리나라 모든 초중고 학생들에게 원격학습 입장권이 주어진 상태다. 접속 기기가 없으면 학교에 신청해 지원받을 수 있고, 접속 장소가 없다면 ‘학교 긴급돌봄(원격학습 도움반)’을 이용해도 된다. 하지만 이는 이론적으로만 가능한, 바람직한 일에 불과하다.

경기도 한 지역아동센터에서 아이들을 돌보는 지현승씨(가명)는 “지난해보다 사정이 낫기는 하지만 여전히 1인 1스마트 기기가 충족되지 않아 원격학습 지원에 어려움을 겪는다”라고 말했다. 학교와 교육청에서 기기를 지원해준다고 하지만, 이 지원을 받으려면 학부모가 기한과 절차에 맞춰 신청해야 한다. 그러나 생업이 바쁘거나 다문화가정 등 정보 습득과 이용이 어려운 학부모인 경우에는 아이들에게 필요한 교육 환경에 제대로 신경을 쓰지 못하는 일이 많다. 원칙상 학교 시간표에 맞춰 오전에 원격학습을 마쳐야 하지만, 현실에서는 많은 아이들이 센터에 와서 공용 컴퓨터 이용 순서를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다. 어떤 학생은 오후가 되어야 겨우 학습 기회가 돌아온다.

이런 상황에서 원격수업을 제대로 따라갈 수 없는 아이들이 여전히 많다. 지씨는 “(동영상 강의 플랫폼인) 줌(zoom)에 갔다가 e학습터에 갔다가 파일을 내려받고 사진을 찍어 업로드하는 등 자유자재로 컴퓨터를 다뤄야 하는데, 저학년 초등학생 중에는 아직 한글도 못 뗀 아이들이 적지 않다. 한글이 미숙한 다문화가정의 한 저학년 학생은 학기 초부터 거의 포기하다시피 하더라”라고 말했다.

ⓒ연합뉴스3월2일 대부분의 학교가 비대면 입학식을 연 가운데 신입생 규모가 작은 광주 북구 오치초등학교는 대면으로 입학식을 진행했다.

학원 돌며 시간 때우는 아이들

지역아동센터에서라도 도움을 받을 수 있으면 그나마 다행이다. 교육부는 지난해부터 원격학습 날에도 맞벌이 부모의 출근 등 돌봄이 필요한 경우 언제라도 학교에 나와서 원격학습 지원과 점심 급식을 이용할 수 있는 긴급돌봄 체계를 만들었고 올해도 유지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이 역시 사실상 학교장의 재량에 달려 있다. 초등학교 1·2학년이 매일 등교하니 수요가 많지 않다는 이유로 긴급돌봄을 운영하지 않거나 축소하는 학교들이 늘어나고 있다.

올해 서울의 한 초등학교 5학년인 김형진(가명) 군은 새 학기를 맞아 학원 두 군데를 더 등록했다. 부모님의 맞벌이로 평일 낮 하루 종일 혼자 집에 있어야 하는데 아직 혼자 지내는 생활이 익숙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해까지는 학교 긴급돌봄을 이용해 돌봄 공백을 채웠지만 올해는 학교가 저학년에게만 긴급돌봄을 제공해주게 되면서 5학년인 김 군에게는 갈 곳이 없어졌다. 올해부터는 등교하지 않는 날엔 혼자 원격수업을 듣고 있다. 점심 식사는 따로 사는 할머니가 간혹 와서 챙겨주거나 아침에 어머니가 준비해놓은 음식을 혼자데워 먹는다. 그다음엔 태권도·피아노·영어 학원으로 가서 나머지 시간을 때운다. 김 군의 어머니는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면서 왜 학원이 필요한지 실감하고 있다. 우리 같은 맞벌이는 요즘 같은 시국에는 돌봄 공백을 학원으로 대체할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김 군의 학교만이 아니다. 〈시사IN〉이 취재한 학부모들에 따르면, 개학이 다가와도 긴급돌봄에 대한 안내나 수요조사가 없어서 학교에 따로 전화해 관련 사항을 물어본 경우가 잦았다. 그러나 학교 측에서는 “고학년인데 혼자 못 있나요?” 혹은 “이제 논의를 시작해보겠다” “올해는 예산이 없어 시행하지 않는다”라고 응답하는 사례가 많았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기존 돌봄교실 운영비를 긴급돌봄(원격학습 도움반) 예산으로 사용할 수 있고 모자랄 때는 추가로 요청하면 지원해줄 예정이다. 다만 학교 여건에 따라 애로 사항들이 있어서 모든 학교에 무조건 다 긴급돌봄을 열라고 강제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라고 말했다.

긴급돌봄 교실을 여는 학교들도 매우 소극적인 태도를 지켰다. 지난해 긴급돌봄을 이용한 학생들에게만 알음알음 신청을 받고 추가 신청이 있을 경우에는 난색을 표시하는 경우가 많았다. “지금 (긴급돌봄 교실에) 학생들이 바글바글한데 그래도 보내시겠어요?” “학교 와서 하면 하울링(줌 접속 시 소리 울림 현상)이 심하고, 마스크를 쓰고 있기도 교사나 학생 피차 불편한데, 웬만하면 집에서 하면 어떨까요?” 담임이나 돌봄 담당자의 이 같은 불편한 기색에 수많은 맞벌이 학부모가 사설 돌봄기관과 학원을 부랴부랴 찾아야 했다.

‘긴급돌봄 봉사자’라는 이름으로 긴급하게 위촉된 시급 1만원 인력이나 사회복무요원 등이 혼자 과학실이나 컴퓨터실에서 수십 명 단위의 긴급돌봄 참여 학생들을 관리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긴급돌봄 교실 컴퓨터가 고장 나거나 인터넷 환경이 불안정해 다수 학생들이 원격수업에 제대로 참여할 수 없는 경우도 많았지만 제대로 된 대처가 이뤄지는 경우는 별로 없었다.

학교가 모든 학습과 돌봄 공백을 채우기는 힘들다. 하지만 적어도 점심 굶는 학생은 없게 하겠다는 게 코로나 2년 차 교육부의 약속이었다. 올해부터 가정에서 원격수업을 듣는 학생이 급식을 희망하면 학교에서 점심을 먹을 수 있는 ‘탄력적 (희망)급식 운영’을 도입한다고 발표했다. 이를 위해 각 학교들에 사전 수요조사와 신청을 받도록 했다. 지난해 초등학생 형제가 보호자 없이 가스 불을 켜다가 크게 화상을 입거나 사망한 인천의 화재 사고 같은 일들이 이런 정책에 영향을 미쳤다.

부모가 모두 출근하고 아이 홀로 집에 남은 원격수업 날 ‘올해도 점심 때마다 배달 앱으로 아이 점심을 주문해줘야 하나’ 고민하던 초4 학부모 양선영씨(가명)는 ‘탄력적 급식’ 사업 소식을 듣고 크게 반겼다. 학교가 집에서 멀지 않고 영양 구성도 배달 음식이나 편의점 음식보다 훨씬 훌륭하니 그 제도를 이용하면 되겠구나 싶어 한시름 놓았다.

ⓒ시사IN 신선영코로나 2년 차, 교육부는 적어도 점심 굶는 학생은 없게 하겠다고 약속했지만 현장의 벽이 높다. 위는 세종시 한 초등학교의 급식 장면.

“눈칫밥 무서워서 학교급식 먹겠나”

그런데 개학 초 학교 e알리미로 날아온 가정통신문 내용과 설문조사 문항을 보고 양씨는 차마 신청 버튼을 누르지 못했다. 가정통신문에는 ‘학교 방역에 위협이 되고 학교 여러 시간표 변경이 불가피해진다’는 요지로 탄력적 학교급식의 단점들이 빨간색 굵은 글씨로 잔뜩 적혀 있었다. 신청·미신청 선택에 앞서 학부모 전체를 대상으로 다음 문항의 찬반 설문을 돌렸다. “탄력적 급식 운영으로 급식 시간의 사회적 거리두기 실천이 불가능해지는 것에 찬성·반대하십니까?”

이에 더해 가정통신문엔 “신청자가 몰릴 경우 저소득-한부모-맞벌이 가정 순으로 선정한다”라는 안내도 붙어 있었다. 양씨는 “그냥 신청하지 말라는 소리 같았다. 웬만하면 오지 말라는데 보내서 눈칫밥을 먹이느니 그냥 배달 음식을 시켜주는 게 나을 것 같아서” ‘탄력적 급식’을 신청하지 않았다.

전교조는 3월4일 성명을 내어 탄력적 학교급식 사업을 탁상공론 정책 중 하나로 지적했다. “취지는 좋지만 학교 현장에서 실행하기엔 어려운” 방법이라며 교육부에 시행 재고를 요구했다. 원격수업 시간표상 이동시간 확보가 힘들고, 등하교 시 안전문제를 담보할 수 없으며, 급식 시간이 길어질 수도 있고, 낙인효과도 우려스럽다는 것이다. 한 지자체 교육청 관계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 정책은 단순히 밥만 먹이는 정책이 아니라고 일선 학교들에 취지를 설명해왔다. 방치되거나 집에 고립된 학생들을 학교에 데리고 나올 수 있는 방안 중 하나라고 설명드렸다. 그러나 기존 방역과 학사 체계를 조정해야 하는 일들이 불가피하다 보니 번거로워하는 학교가 많은 게 사실이다.”

교육부가 올해 내놓은 학습 격차 해소 방안 가운데에는 ‘방과후 프로그램 운영 활성화’도 포함돼 있다. 방과후 프로그램은 학교 정규수업 이후 학교 안에서 이루어지는 수익자 부담 교육활동으로 주로 외부 강사에 의한 특기적성 수업으로 이루어져 있다. 학원보다 훨씬 저렴하고 학교 내 공간이라 안전하며 돌봄도 대체하는 장점 덕에 학생과 학부모의 만족도가 높은 사업이었다. 그러나 지난해 방역 때문에 대다수 학교에서 방과후 프로그램의 개설이 취소됐다. 3월9일 통계청이 발표한 ‘2020년 초중고 사교육비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사교육비 총액은 그 전년(2019년, 10조5000억원)에 비해 11.8% 줄었다. 같은 기간 방과후 프로그램 총액은 (5312억원에서 309억원으로) 94.2%나 축소되었다(〈그림 1〉 참조). 사교육 참여 학생의 1인당 사교육비는 2019년보다 오히려 증가했다(〈그림 2〉 참조). 결론은 이렇다. 코로나19 상황에서도 학교 밖 사교육은 이럭저럭 유지되었다. 그러나 사교육을 일부나마 대체해온 학교 내의 방과후 프로그램은 모두 끊기고 말았다.

올해(2021년) 들어서는 거리두기 단계와 학교 밀집도 기준이 완화되면서 방과후 프로그램을 개설하는 학교가 지난해보다 많이 늘었다. 하지만 여전히 제한적이다. 개학 전 학부모 설문조사를 통해 개설 여부와 대면·비대면 선호를 조사한 뒤 상당수 학교들이 비대면(줌 쌍방향) 형태로 방과후 프로그램들을 개설했다. 일부 대면으로 프로그램을 연 학교들에는 신청자들이 대거 몰려서 추첨을 통해 수강 학생을 선정해야 했다. 반면 비대면 프로그램들은 신청자 미달로 폐강이 속출했다. 집에 들어가 학생 개인 기기로 접속해 공예·바이올린·축구·로봇코딩 같은 예체능 특기적성 교육을 비대면으로 받아야 하는데, 사실상 옆에 보호자가 붙어 있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구조이기 때문이다.

한 방과후 강사는 2021년 1학기에 초등학교에 바둑 수업을 개설했다. 그런데 신청 학생 12명 가운데 7명이 ‘비대면’이라는 조건을 듣고 수강을 취소했다. 취소 학생 대부분이 저학년이었다. “대면 조건에서 방과후 수강생 대부분이 저학년이었던 것과 비교된다. 수강을 포기하지 않은 유일한 1학년생은 옆에서 케어해줄 수 있는 어머니와 고학년 형제가 있는 경우였다. 이런 조건이 안 되는 저학년생은 방과후 프로그램을 듣고 싶어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것 같다.”

특히 방과후 프로그램은 사교육을 받을 형편이 안 되는 학생들이 이용할 수 있는 얼마 안 되는 교과목 보충, 특기적성 교육의 기회다. 가정의 경제적 수준에 따라 사교육 참여율이 크게 벌어지는 상황에서(〈그림 3〉 참조), 그나마 자유수강권(주어진 금액 범위 내에서 방과후 프로그램을 수강할 수 있는 바우처) 등을 통해 저소득층 가정 학생들의 교육 격차를 조금이나마 줄여나갈 수 있었다. 1인당 연간 60만원 내외로 지원되는 방과후 프로그램 자유수강권 덕분에 2018년 한 해 동안 저소득층 학생 62만6211명이 다양한 교육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서울 몇몇 초등학교에서 교과 수학을 가르쳐온 방과후 강사 안순희씨(가명)는 지난해 방과후 프로그램들이 막히면서 교육 격차가 더 벌어진 사례를 전했다. “엄마랑 둘이 살고 엄마 출근 후 혼자 집에서 원격수업을 들어야 하는 초등학교 4학년생이었다. 상위권은 아니었지만 저학년 때부터 꾸준히 자유수강권으로 내 수업을 열심히 들으면서 교류해온 학생이었는데, 지난해 혼자 원격수업을 듣고 숙제를 하면서 모르는 문제들이 많다며 핸드폰으로 잔뜩 찍어서 묻는 거다. 전화로 풀이 과정과 답을 알려주었지만 잘 전달이 되지 않아 본인도 답답하고 나도 안타까웠다. 방과후 교실이 다시 열리면 만나서 좀 도와줄 수라도 있을 텐데 올해도 그 학교는 방역상 이유로 개설하지 않는다고 하더라. 그저께도 전화로 분수 통분 방법을 알려주다가 막혔는데, 방과후 강사들 생계 문제 때문이 아니라 이런 아이들 교육 기회를 위해서라도 학교들이 유연성을 발휘해줬으면 좋겠다.”

교육부는 올해 방과후 자유수강권 지원을 확대하겠다고 밝혔지만, 비대면으로 열리는 방과후 프로그램들은 안씨가 걱정하는 아이와 같은 학생들에게는 사실상 그림의 떡과 같다. 접속 장소, 도와줄 보호자, 고성능 장비 등 풍부하고 촘촘한 원격학습 환경이 갖춰져야만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비슷한 맥락으로 초등학교 오후 돌봄교실 참여 학생들도 방과후 수업 참여 기회를 박탈당했다. 경기도 한 초등학교 학부모인 임미영씨(가명)는 외부 사교육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에 원어민 영어 강좌가 방과후에 개설된 걸 보고 비대면 프로그램임에도 불구하고 신청할 계획을 세웠다. 그런데 안내문에 조그맣게 주의사항이 적혀 있었다.

“돌봄교실 참가자들은 장소와 장비 제공의 어려움 때문에 방과후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없습니다.”

학교 측은 오후 돌봄교실 아이들에게 따로 방과후 줌 접속을 위한 교실과 장비를 내줄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임씨는 말했다. “정 듣고 싶으면 돌봄교실을 포기하고 아무도 없는 집에 가서 아이 혼자 접속해 들으라는 건데 그럴 수 있는 형편이면 왜 굳이 돌봄을 신청했겠나? 교육 기회를 빼앗는 일종의 차별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학교에 따져봤자 아이만 괜히 불이익을 받으려나 싶어 그냥 포기하고 영어학원이나 알아보고 있다.”

학교는 많은 부분 여전히 버전 1.0이다. ‘방역 때문에’ 쉬는 시간이 여전히 4~5교시 가운데 단 5분이다. 경기도 한 초등학교에서는 학부모 대표가 의견을 수렴해 “쉬는 시간 5분 안에 아이들이 한 명씩 화장실을 이용하려면 너무 빠듯하니 쉬는 시간을 좀 늘려달라”라고 공식 요청했다. 학교 측은 “그냥 수업 시간 도중 가면 된다”라며 거절했다. ‘방역 때문에’ 사물함과 식수대도 사용할 수 없다. 매일 무거운 교과서, 공책, 학습 준비물, 수저통, 개인 물병 따위를 들고 다니는 초등학생 저학년들의 책가방 무게는 종종 자기 몸무게의 3분의 1에 육박한다.

ⓒ연합뉴스지난해 5월, 인근에서 코로나 확진자가 발생해 등교 수업일을 조정했던 서울 한 초등학교의 텅 빈 운동장.

“학부모 설문의 목표는 책임 회피”

여전히 어떤 학교들은 정규수업 시간 외 학교 공간을 사용하는 자기 학교 학생들을 ‘우리 학생’이 아닌 방역을 위협하는 ‘외부인’ 정도로 여긴다. 경기도 한 학교 돌봄교실 관계자는 방과후 돌봄교실 안에 아이들이 바글바글 모여 답답해하기에 운동장을 사용해 체육 활동이라도 할 수 없는지 물어봤다가 불가하다는 답변을 받았다. “방역 수칙 위반이라며, 학생들 때문에 감염이 확산되면 어떡하냐며 안 된다고 하더라.” 한 학생은 정규수업 종료와 방과후 프로그램 시작 시간 사이 ‘뜨는’ 1시간을 학교 어디에서 보내면 될지 학교에 물었다가 “집에 갔다 오든지 아무튼 학교 안에선 머무르지 말라”는 답변을 들었다. 도서관도 운동장도 사용 불가라는 것이다.

물론 모든 학교가 그렇지는 않다. 학생들의 안전과 배움의 권리 중 어느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 고심하며 최선의 길을 찾아나가는 학교도 적지 않다. 학교별로 판단과 결정이 다를 수 있다. 다만 감염병 위험에 관한 비용·편익의 계산을 바탕으로 합리적인 판단이 필요한 코로나 2년 차가 되어서도, 상당수 학교가 ‘안전 만능주의’를 고집하며 버전 2.0으로의 업데이트에 미적대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학교 관점이 아닌 학생, 특히 가장 어려운 환경의 학생 관점에서 바라볼 땐, 학교생활의 많은 부분이 교장의 재량 혹은 ‘설문조사’ 같은 다수결 방식으로 결정된다는 점도 선뜻 납득하기 힘들다. 방과후 강사 안씨는 말했다. “왜 교장선생님 한 사람의 성향과 마인드에 따라 한 학교 학생들의 1년이 좌지우지되어야 하나? 언제까지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그는 비극이 이어져야 하나?”

지역에서 아이들의 돌봄을 도와주는 한 마을공동체 활동가는 ‘다수결’에 이의를 제기했다. “학교가 너무나 정치적이다. 어떻게든 책임을 지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 점에서 학부모 여론을 수렴한다며 뿌리는 설문조사가 가장 나쁘다. ‘이게 학부모 뜻이다’라고 대의를 내세우고 있으나 그 설문조사의 진정한 목표는 책임 회피다.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아이들의 선에 맞추다 보면 다른 아이들도 자동으로 다 책임질 수 있게 되는 구조가 되는데, 다수결로는 그것이 절대 이루어지지 않는다.”

기자명 변진경 기자 다른기사 보기 alm242@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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