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2월26일 대구 중구 동성로의 한 상점에 임시휴업 안내문이 붙었다.

자영업자가 코로나19를 이유로 임대료를 깎아달라고 할 수 있을까? 정답은 ‘그렇다’이다. 지난 9월29일부터 시행된 개정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에 따르면, 감염병 등으로 경제 사정이 바뀌어 기존 임대료가 적절하지 않게 된 경우 임차인은 임대료 감액을 청구할 수 있다. 원래 법에도 경제 사정이 바뀌면 임대인이 임대료를 올려달라거나 임차인이 임대료를 내려달라고 청구할 수 있었는데(‘차임증감청구권’), 여기에 감염병이라는 사유를 추가한 것이다.

차임증감청구권은 일본의 법률에서 따온 제도다. 그런데 일본과 달리 한국에서는 이 제도가 거의 활용되지 않는다. 일본에서 임대차 분쟁은 대체로 법원이 재량으로 결정해 처리한다. 한국은 소송까지 가야 하는데, 여기엔 시간과 비용이 든다. 임차인으로서는 임대인과 관계가 나빠지는 것을 꺼린다. 법원이 임차인의 감액 청구를 인정한 사례도 거의 없다. 소송 전에 ‘상가건물임대차 분쟁조정위원회’에 조정을 신청할 수도 있지만, 지방노동위원회 같은 다른 기구와 달리 분쟁조정위원회는 한쪽이 거절하면 절차가 진행되지 않는다.

개정 상가법으로 그나마 숨통이 트인 것은 임대료 연체다. 이전에는 임대료를 3개월 밀리면 임대차계약을 해지당하거나 갱신을 거부당할 수 있었는데, 법이 시행된 9월29일부터 6개월 동안 밀린 임대료에 한해서는 계약해지나 갱신 거부 사유에 해당되지 않도록 했다. 코로나19 이후 상당수 국가에서 특정 기간 임대료 연체를 이유로 강제퇴거를 하지 못하도록 했는데, 한국도 간접적으로 이런 조치를 도입했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이미 국내에 코로나19가 유행한 지 7개월이 지난 뒤에야 이뤄진 일이다. 김남주 법무법인 도담 대표변호사는 “한국은 입법이 늦은 편이다. 영업을 제대로 할 수 없던 기간에 대한 임대료 조정이 미흡하고, 차임증감청구권의 실효성을 어떻게 확보해갈지도 과제다. 외국은 상가뿐 아니라 주택 세입자 보호에도 적극적이라는 점 역시 참고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코로나19 유행 양상이나 봉쇄의 정도는 다르지만, 세계 각국의 대응은 참고할 만하다. 미국은 지난 3월 ‘코로나바이러스 지원, 구제 및 경제적 보장법(Coronavirus Aid, Relief, and Economic Security Act· CARES 법)’을 제정해 약 4개월 동안 주택과 상가에서 임대료 연체를 이유로 강제퇴거 절차를 개시할 수 없게 했다. 7월에 만료된 강제퇴거 유예 조치는 올해 말까지로 연장되었다. 세입자들이 거리로 쫓겨나 임시 거처 등 밀집된 곳에서 지내게 되면 코로나19가 더 확산될 수 있다는 미국 질병관리본부의 권고에 따른 것이다.

영국은 지난 3월 ‘2020년 코로나바이러스 법(Coronavirus Act 2020)’을 제정해, 주택과 상가에서 임차인이 임대료를 밀렸을 때 임대인이 계약종료를 미리 통보해야 하는 기간을 2주~2개월에서 3개월로 연장했다(최근 다시 6개월로 연장했다). 그뿐 아니라 명도소송(possession proceedings) 절차를 지난 3월27일부터 9월20일까지 아예 중지시켰다. 소송 당사자가 사망하는 등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면 소송이 중단되지 않는 한국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이번에 통과된 한국의 상가법 개정안에는 (기존 임대차계약이 해지되어 진행되는) 명도소송 중지나 직접적인 강제퇴거 유예 조치는 들어가 있지 않다. 지난 11월3일에는 서울 을지로의 40년 된 노포 ‘을지OB베어’를 철거하려는 강제집행이 시도되었다.

독일 의회도 지난 3월 ‘민사, 파산 및 형사소송법상 코로나19 감염병의 영향 완화를 위한 법률’을 통과시켰다. 이에 따라 독일 주택과 상가의 임대인은 임차인이 4월1일부터 6월30일까지 코로나19로 인해 임대료를 체납한 경우엔 임대차계약을 해지할 수 없다. 임대인은 최장 2년까지 임대료 미납을 받아들여야 한다. 다만 2022년 6월30일까지 임차인이 임대료를 내지 못하면 계약 해지권이 부활한다. 이 정책에 따라 독일 아디다스가 임대료를 내지 않기로 결정했다가 ‘대기업이 정부 지원책에 편승한다’는 거센 비난을 받고 사과하는 일도 있었다.

퇴거 금지를 넘어 임대료 자체를 감액하도록 지원한 사례도 있다. 캐나다 정부는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는 중소기업을 구제하기 위해 ‘긴급 상업용 임대 지원정책(Canada Emergency Commercial Rent Assistance·CECRA)’을 시행했다. 지난 4월부터 9월까지 임대인들이 소상공인 임차인의 임대료를 최소 75%까지 감면해주면, 정부가 그 임대료의 50%를 지원하고 임차인은 나머지 25%를 내게 하는 프로그램이다(현재는 종료됨).

당사자 주체들이 자율 협약을 맺기도 한다. 독일 전국소매업자협회(HDE)와 그들의 임대인으로 구성된 독일 부동산연맹(ZIA)은 지난 6월 코로나19로 인해 가게가 문을 닫을 수밖에 없는 기간에는 임대료를 50% 깎는 내용의 가이드라인에 합의했다. 반면 한국은 임대인이 잘 조직되어 있지 않고, 임차인 조직은 있긴 하지만 힘이 세지 않다. 한국 정부는 임대인이 자발적으로 임대료를 인하하면 인하액의 50%를 세액공제해주는 등 혜택을 주는 ‘착한 임대인 운동’을 독려하고 있지만 현실에서 효과는 미미하다.

ⓒEPA8월6일 미국 뉴욕 맨해튼에서 ‘임대료를 무효화하라’는 세입자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정부가 나서는 ‘다단계 고통 분담’

임차인 자영업자를 대변하는 조직인 ‘맘편히 장사하고픈 상인모임’의 박지호 사무국장은 “정부와 연계가 있는 공공기관은 몰라도 민간 건물주들은 ‘착한 임대인 운동’에 대해 ‘택도 없는 소리’라는 반응이다. 공시지가가 올라 세금도 올랐다며 임대료를 줄여주지 않는다. 코로나19 국면에도 오히려 임대료를 올리거나 명도소송 등 절차를 진행하는 사례도 비일비재하다”라고 말했다. 그는 ‘고통 분담’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예컨대 임차인의 임대료를 50% 감액해주고, 임대인의 은행 대출이자를 50% 줄여주며, 금융기관의 손해분은 정부가 일정 정도 지원하는 식의 ‘다단계 고통 분담’이 필요하다. 건물주 전화번호조차 몰라서 장문의 이메일을 쓰는 임차인들이 태반이다. 대통령이 임대료 고통 분담을 이야기했고 ‘임대료 멈춤법’도 발의되었는데, 법안 발의만 하고 끝나는 경우도 많다. 여야 할 것 없이 관련 법안을 논의해서 조속히 통과시켜야 한다. 또한 행정조치로 영업을 제한하는 것처럼, 이해관계자 간 고통 분담을 위해 이제는 정부가 나서야 한다.”

코로나19 국면에서 세입자 보호 조치를 시행한 각국에서도 이런 조치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나 특히 소규모 건물주들의 ‘피해’에 대한 논란이 있다. 그러나 공동체의 의사결정은 다양한 방식으로 이뤄질 수 있다. 덴마크 등은 영업이 금지된 매장의 임대료를 직접 지원한다. 미국 CARES 법에는 임대인이 대출금을 제때 갚지 못해도 금융기관으로부터 압류당하지 못하게 ‘임대인’을 보호하는 규정도 있다. 각국의 민간 차원에서 매출과 임대료를 연계하는 방안도 시도되고 있다. ‘No wages no rent(임금 없이 임대료 없다)’ ‘Cancel rent(임대료를 무효화하라)’ ‘Rent strike(임대료 파업)’…. 미국에서 세입자 운동을 벌인 시민들이 내건 문구들이다. 주택 세입자 보호 논의는 시작도 못한 한국에서 자영업자들의 ‘임대료 파업’은 현실화될 수 있을까. 팬데믹이라는 공통의 위험을 어떻게 재분배하는 게 정의로운 일일까. 다시 찾아온 ‘2.5단계 거리두기’가 던지는 질문이다.

참고 자료: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 일부개정법률안 검토보고서(법제사법위원회, 2020), 코로나 대유행과 상가임대차 보호에 관한 미국, 캐나다, 호주 입법례(국회도서관 〈최신외국입법정보〉, 2020).

기자명 전혜원 기자 다른기사 보기 wo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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