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지OB베어’ 2대 사장인 강호신씨(왼쪽)와 최수영씨가 강제집행된 가게 앞에 섰다. ⓒ시사IN 조남진

2대째 가업을 잇고 있는 ‘을지OB베어’의 강호신씨(61)는 이 가게를 지켜야 하는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우리 같은 가게까지 문을 닫으면 대한민국에 버틸 수 있는 가게는 없다고 봐야 합니다.” 을지OB베어는 2015년 서울시가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한 을지로 노가리골목에서 가장 오래된 노포다. 처음으로 노가리를 안주로 올려 ‘노맥(노가리+맥주)’ 문화를 만든 가게다. 2018년엔 주류 점포 최초로 중소벤처기업부의 ‘백년가게’로 선정된 곳이기도 하다. 이곳은 지난 4월21일 새벽 3시20분께 강제집행되었다.

서울 중구 을지로3가에 위치한 을지OB베어는 1980년 12월6일 대한민국 최초의 프랜차이즈 생맥주 가게로 개업했다. 1대 사장 강효근씨(94)는 경양식집을 운영한 경험을 토대로 당시 이름도 낯설었던 ‘생맥주’를 팔기로 결심했다. 매일 새벽 6시30분이면 강효근씨는 지금의 노가리골목 곳곳을 매일 비질했다. 전단도, SNS도 없던 시절. 성실한 모습으로 신뢰를 얻는 것이 동네 장사의 비결이라 믿었다. 가게가 문을 여는 시간은 오전 10시. 당시 을지로3가역은 지하철 기관사들이 근무 교대를 하는 역이었다. 오전에 퇴근하는 기관사들은 집에 들어가기 전 을지OB베어의 100원짜리 노가리와 380원짜리 맥주 한잔을 찾았다.

이곳은 밤 10시면 무조건 문을 닫는 ‘이상한’ 술집이기도 했다. 아버지를 따라 가게 일을 돕던 맏딸 강호신씨는 ‘괴팍한 사장’ 때문에 삐쳐서 귀가하는 손님이 많았다고 회상했다. “단골손님들이 10분만 더 마시고 가겠다고 해도 아버지는 에누리가 없었어요. 맥주 한 잔 더 마실 시간에 과일이나 군고구마를 사가지고 들어가서 가족들 얼굴이라도 보고 자라며 손님들을 쫓아내셨거든요. 끝까지 버티면 ‘개수작 부리지 마라’고 호통을 치기도 하셨고요.” 2013년, 강호신씨와 남편 최수영씨(66)는 정식으로 가게를 물려받았다. 부부는 창업주의 고집을 끝까지 지키기로 했다. 2016년부터는 손님들의 성화에 폐점 시간을 한 시간 연장해 밤 11시에 문을 닫았다. 강효근씨를 설득하는 데만 2년이 걸렸다. 비록 조금 길게 영업한다지만 ‘힙지로(힙+을지로)’의 밤이 막 시작되는 이른 시간인 건 여전했다.

황해도 출신인 창업주 강씨는 동태김치를 해먹던 기억과 황탯국으로 해장을 하는 문화를 떠올려 노가리를 안주로 선보였다. 연탄불에 고소하게 구운 노가리에 직접 개발한 특제 소스를 곁들여 냈다. 소스 레시피는 아직도 강효근씨와 강호신씨, 부녀만 알고 있다. 냉각기를 사용하지 않고 케그(맥주통)를 통째로 냉장숙성하는 것 역시 을지OB베어가 42년간 지켜온 전통이다. 여름에는 2℃, 겨울에는 4℃. 냉각기로는 맛볼 수 없는 을지OB베어만의 부드럽고 서늘한 맥주 맛의 비결이기도 하다. 6평 남짓한 작은 가게엔 공간에 비해 커다란 냉장고가 낮은 진동과 함께 맥주를 느리고 차갑게 식혔다. 강호신씨는 을지OB베어도 그렇게 같은 자리에서 묵묵히 단골들의 퇴근길을 배웅해주는 가게로 남길 바랐다.

4월21일 오전 3시20분, 서울중앙지방법원이 고용한 용역업체 직원 70여 명이 을지OB베어의 닫힌 문을 깨고 들어왔다. 간판과 수십 년간 사용한 식기, 조리도구, 컵과 집기들을 모두 뜯고 들어냈다. 가게를 지키고 있던 강호신씨의 아들 최성혁씨(28)와 연대인 2명은 저항 끝에 도로로 내던져졌다. 새벽에 연락을 받고 최수영 사장이 허겁지겁 가게에 도착했을 땐 현장은 이미 아수라장이었다. 용역업체 직원 가운데 15명 남짓의 잔류조만 남아 있었다.

‘서울미래유산’ 지정됐지만 사라진 가게들

을지OB베어의 백년가게, 서울미래유산 현판. ⓒ시사IN 조남진

중소벤처기업부의 ‘백년가게’ 인증 현판 위에는 ‘부동산 인도 집행조서’가 붙었다(위 사진). 백년가게라는 글자는 아예 보이지도 않았다. ‘서울미래유산’ 현판 주위엔 ‘본 건물은 (…) 부동산 인도가 완료된 건물이므로 침입 시 형사처벌 대상임을 강력히 경고합니다’라고 적힌 경고문이 사방에 붙어 있었다. ‘백 년 이상 유지되도록 지원하겠다’던 정부기관의 약속도, ‘미래세대에 전할 만한 보물’이라던 서울시의 홍보도 가게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서울미래유산’은 근현대 문화유산 중 미래세대에 전달할 만한 가치가 있는 유무형의 것들을 시가 체계적으로 보존·관리하겠다며 2013년 조례를 통해 도입한 제도다. 서울시 중구에 위치한 영천시장, 명동 화교거리, 청와대와 국회의사당을 비롯해 대중가요 ‘제3한강교’, 만화 〈꺼벙이〉 등 그 종류와 형태도 가지각색인 유산 총 506개가 선정돼 있다.

노포들도 대거 선정되어 있는데 이 중 을지OB베어처럼 사라진 가게는 얼마나 될까? 서울미래유산 업무 담당 공무원에게 폐업 혹은 훼손·멸실된 곳들의 현황을 물었다. 그는 “미래문화유산을 지정한 게 10년가량 되다 보니 시간이 상당히 오래됐다. 그간 사라진 곳들을 따로 정리하고 있지 않다”라고 답했다. 서울시 홍보물로 소개는 하지만, 존재하고 있는지는 확인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됐던 시인 노천명의 가옥(종로구)은 현재 한옥체험 게스트하우스로 바뀌어 있다. 1955년 개업한 ‘서울고무상사’(종로구) 자리엔 대형 프랜차이즈 카페가 들어서 있으며, 1966년 문을 연 동헌필방(종로구) 역시 폐업 후 카페로 변했다. 대형 버스를 개조해 우동·볶음밥 등을 팔던 1970년대 이동식 식당 ‘영동스낵카’(강남구)는 한티역 인근 재개발로 2020년 4월1일 폐업을 했다. 소유주 박윤규씨는 외형 복원작업을 마친 뒤 ‘서울미래유산’인 영동스낵카를 시에 기부하려 했지만 거절당했다. ‘콜럼버스 스낵카’(관악구)는 고철 값 단돈 40만원에 폐차됐다.

건물주와의 갈등으로 강제 철거된 을지OB베어에 대해 서울시 관계자는 “서울미래유산은 문화재처럼 관리하려고 지정하는 게 아니다. 훼손 여부에 개입하는 것은 개인(소유주·건물주)의 재산권을 침해하는 문제다. 사인(私人) 간의 문제에 시가 개입할 순 없다”라는 입장을 내놓았다. 임차료 상승으로 폐업 위기에 놓였던 서대문구 ‘공씨책방’이 서울시에 지원을 요청할 때와 같은 대답이었다.

“그래도 2018년 8월, 백년가게에 선정됐을 때는 기대가 있었어요. 근처의 ‘만선호프’라는 가게가 최초의 노맥집이라는 글이 SNS에 퍼지고 있다고 인근 상인들이 알려줬거든요. 다들 저보다 더 억울해했죠. 저희 입장에선 대응할 수 있는 게 없었어요. 백년가게로 선정되면 오해도 풀 수 있고, 무엇보다 아버지가 이뤄온 역사들을 제대로 인정받을 수 있겠다 싶었어요.”

그해 9월, 건물주가 임대차계약 연장을 거부하며 부동산 명도소송을 제기했다. 가게에서 쫓겨날 상황에 놓인 부부는 ‘백년가게’ 선정이 도움이 되진 않을지 백방으로 방법을 찾았다. 기대는 곧 꺾였다. 아무런 행정적 지원도 받을 수 없었다.

부동산 명도소송 1심에서 피고(강효근·강호신)들은 임대계약의 ‘갱신기대권’을 주장했다. 1980년부터 40여 년간 점포를 임차해 영업해왔던 점, 임대차계약 연장에 대해 논의하던 중 공동 건물주 중 한 명이 “이 동네가 폭발하지 않는 이상 나가시라고 말씀 안 드려요”라는 말을 직접 했던 점, 중소벤처기업부로부터 ‘백년가게’로 선정된 점 등에 비추어 임대차계약이 갱신될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이 같은 이유들로 ‘갱신기대권’이 생겼다고 인정하기 어려우며, 원고가 권리남용을 하고 있다고도 볼 수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을지OB베어 측은 1심과 2심에서 패소하고 대법원은 상고를 기각했다. 가게를 비우는 수밖에 없었다. 임차료를 2배 더 내겠다는 요청도, 새로 올 임차인이 내건 조건에 그대로 맞춰주겠다는 부탁도 건물주에게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2020년 11월, 첫 강제집행이 시작된 이후 다섯 번의 강제집행을 막아낸 것은 모두 인근 상인들과 단골들이었다.

언제 강제집행이 이루어질지 모른다는 불안감 속에서도 영업을 이어간 이유는 명확했다. “일단 여기를 지키는 게 최우선이라고 생각하니까 다른 생각은 들지가 않았어요. ‘그냥 다른 골목 가서 장사하면 안 돼?’ 이렇게 묻는 분들도 있는데요. 근데 저희는, 그냥 여기 있어야 됩니다. 처음부터 그 생각 말고 다른 생각은 할 수가 없었어요.” 최수영씨의 말에 강호신씨도 말을 덧붙였다. “문화가 있고 역사가 있는 을지OB베어까지 이렇게 사라지고 나면 앞으로 가게를 얻어 장사하는 사람들은 점점 더 쉽게 쫓겨나게 될 거예요. 대한민국에 버틸 수 있는 가게는 없다고 봐야 합니다.”

올해 1월에는 만선호프 일가가 건물의 지분 62%를 차지하며 새로운 공동 건물주가 됐다. 만선호프는 2014년 노가리골목에 1호점을 낸 후발 주자다. 이듬해인 2015년, 을지OB베어와 같은 건물 1층을 쓰며 40년 넘게 자리를 지키던 가게들이 사라졌고, 그곳을 터서 만선호프 2호점이 들어섰다. 이후 만선호프는 기존 가게들을 빠른 속도로 인수하며 점포를 확장해나갔다. 7년이 지난 지금, 465m의 노가리골목에는 총 10개의 만선호프 지점이 영업을 하고 있다.

1월 이후, 양측은 몇 차례 대화를 시도했다. 만선호프 측은 을지OB베어 공간 일부를 화장실로 만들고자 했고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만선호프 사장 방종식씨는 〈시사IN〉과의 통화에서 “화장실을 만들 테이블 3개 놓을 자리만 내달라고 했지만 을지OB베어 측에서 이를 거부해 대화가 중단됐다”라고 주장했다. 을지OB베어 측은 화장실은 세를 주지 않기 위한 핑계에 불과하며 그것을 빌미로 방씨 측이 대화를 회피했다고 말했다. 그렇게 여섯 번째 야간 강제집행이 진행됐다.

“노가리골목은 우리 모두의 것”

4월25일 을지로 노가리골목 입구에서 ‘을지OB베어를 되찾기 위한 현장문화제’가 열렸다. ⓒ연대시민 박상환 제공

현재 을지OB베어의 문은 굳게 닫혀 있다. 간판이 사라진 자리에 누군가 컬러로 ‘을지OB베어’를 인쇄한 종이 간판을 붙여놓았다. 하지만 강호신씨와 최수영씨는 여전히 노가리골목으로 ‘출근’한다. 매일 밤, 노가리골목 초입은 이제 을지OB베어와의 상생을 요구하는 공연장이자 예배당이 되었다. 야외 테이블에 앉아 맥주와 노가리를 마시던 ‘힙지로’의 손님들은 이곳에 을지OB베어가 있었다는 사실을, 아직 포기하지 않고 싸우고 있다는 사실을 노래로, 기도로, 춤으로 배운다.

강제집행 이후 매일 저녁 을지OB베어를 지키려는 시민들이 다 같이 피켓을 들고 노가리골목 구석구석을 행진한다. 그들이 든 피켓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을지로 노가리골목은 그 누구의 것도 아닌 우리 모두의 것!” 강호신씨는 그 말의 뜻을 이렇게 설명했다. “이 골목은 호프집만의 것이 아니에요. 10개 점포를 가진 한 가게의 것도 아니고요. 각자 욕심내지 않고 자기 것을 지키며 수십 년간 이 골목을 만들어온 모두의 것이에요. 이 골목은 ‘우리 모두의 것’입니다.” 슬픔도, 연민도 들어설 자리가 없었다. 끝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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