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 Photo11월14일 미국 워싱턴 D.C. 백악관 인근에서 트럼프 지지 시위대가 대규모 집회를 벌이고 있다.

미국 대통령 선거는 끝났지만 정치적 불확실성은 끝나지 않았다. 자신이 패배한 거의 모든 주에서 부정선거가 일어났다고 주장한다. 지난여름 미국의 비영리 정책연구소인 브루킹스는 “선거일? 다시 생각해라. 아마도 ‘선거월’이 될 것이다”라는 포스팅을 올렸다. 반갑지 않은 제목이지만 실제로 그렇게 되고 있다. ‘정치 팬데믹’이라고 이름 붙이면 성급한 걸까?

미국은 대통령 당선자가 누구냐에 따라 평화, 경제, 외교, 문화, 환경 등 거의 모든 영역이 달라진다. 그리고 정치적 불확실성은 거대한 사회적 비용을 수반한다. 극단의 정치적 양극화(polarization)는 정치적 불확실성의 원인이자 결과일 터이다. 최근의 한 연구에 따르면, 미국 민주당과 공화당은 심지어 ‘확실한 것’에 대해서도 동의하지 않는다. 극렬 지지자들은 서로 상대 후보를 지지하는 이유를 도저히 이해하지 못한다. 노골적으로 자신을 지지하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로 미국을 두 동강낸 트럼프 대통령이 7000만 표 이상을 얻었다는 것은 의미하는 바가 크다. 이런 지독한 정치적 양극화는 도대체 어디서 오는 걸까.

공화당파가 될지 민주당파가 될지 알 수 없는 동일한 사람들의 그룹이 있다고 하자. 이들은 처음에 트럼프의 치적과 과오를 지적하는 수많은 정보들 중 일부를 습득한다. 이 정보들은 사람들이 트럼프에 대해 갖게 되는 어떤 ‘최초의 믿음’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트럼프의 인기가 높은 시기에 정보를 접한 사람들은 그에 대해 좋은 인상을 갖게 될 가능성이 크다. 반대의 경우라면 트럼프를 싫어하는 방향으로 초기의 믿음이 만들어질 수 있다. 다시 말하자면 ‘최초 믿음’의 형성은 그저 우연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최초의 믿음이 생긴 이후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믿음에 부합하는 증거에만 귀를 기울인다. 잘 알려진 ‘확증 편향(confirmation effect)’이다. 트럼프가 미국을 위대하게 만든다고 생각하는 집단과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집단 각자의 믿음을 공고하게 만드는 정보들이 쌓여간다.

공화당파나 민주당파로서 갖는 확신이 더 깊어짐에 따라 정보 선택 편향 또한 심해진다. 정보를 습득하는 것이 공짜가 아니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이를테면 트럼프가 나쁘다고 믿는 사람들은 굳이 비싼 정보를 돈 주고 사서 트럼프가 왜 나쁜지 공부하려 들지 않는다. 페이스북이나 블로그에서는 비용이 거의 들지 않는, 그러나 부정확할 가능성이 높은 정보를 손쉽게 접할 수 있다. 그중에서 자신의 믿음에 부합하는 정보들만 취사선택하는 쪽이 더 편리하다. 자신의 믿음과 반대되는 정보를 받아들이는 데는 자신의 믿음을 강화하는 정보를 받아들이는 것보다 훨씬 더 큰 비용이 든다는 이야기다. 이를 ‘자기만족 편향(complacency effect)’이라 부른다.

만약 트럼프가 나쁜지 그렇지 않은지 확인하는 것이 아주 비싸고 복잡하고 어려운 일일 경우에는 확신 편향과 자기만족 편향이 더욱 강력하게 작동할 것이다. 이게 심해지면 아예 새로운 정보에 귀를 막는 ‘셧다운’ 현상이 일어난다. 자신을 둘러싼 정보가 새로운 정보의 접근을 막는 ‘에코체임버(echo chamber)’ 효과다. 그냥 ‘나 믿는 대로 살 테니 건들지 말라’는 것이다. 이렇게 처음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었던 사람들마저 양극으로 치닫게 된다. 사실 이 모델은 정치적 양극화뿐 아니라 여러 다른 영역에도 적용할 수 있다. 이를테면 처음에 정의감에 불탔을 검사들이 정치검사가 되어가는 과정도 이 모델로 어렵지 않게 설명할 수 있다.

최근에 나온 한 논문은 정치적 양극화가 선거 이후 경기 전망을 어둡게 만들 수 있다고 경고한다. 민주·공화 지지자 두 그룹은 자신의 지지 후보가 당선되면 경제가 좋아지겠지만, 상대 후보가 당선되는 경우엔 재앙이 올 것으로 철석같이 믿는다고 한다. 2016년 출간된 경제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누가 대통령이 되었느냐’와 경제는 거의 상관이 없었는데도 말이다. 논문의 핵심 메시지는, 선거 결과가 나온 뒤의 전체적 경제 전망은 다소 비관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선거 이전에는 양쪽 지지자 집단 모두 자신의 후보가 당선될 것을 기대하므로 ‘전체적’으로 일정 수준의 경기 전망이 형성될 것이다. 그 경기 전망의 수준이 선거 이후엔 내려갈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예컨대 민주당 후보가 승리하면 그 지지자들은 ‘앞으로 경제 상황이 개선될 것’이라는 믿음을 그대로 유지한다. 그러나 공화당 지지자들은 이후 경제가 망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전체적’ 또는 ‘평균적’으로 보면 선거 이후의 경기 전망이 그 이전보다 비관적일 수밖에 없다.

이 연구는 여론조사 결과를 이미 확인된 정치적 양극화의 증거로 인용한다. 미국인들을 대상으로 한 광범위한 조사에서, 민주당 지지자 87%가 바이든의 승리를, 공화당 지지자 84%는 트럼프의 승리를 예측했다. 심지어 공화당 지지자의 약 20%와 민주당 지지자의 15%는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의 승률을 100%로 봤다.

유권자들이 선거 결과를 이토록 극단적으로 전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답은 60% 정도로 추정되는 극성 지지자들에게 있다. 이들은 선거에 깊이 몰두한다. 그리고 이들에게는 자신이 선호하는 뉴스 매체가 있다. 폭스뉴스는 트럼프 지지자의 50%, 바이든 지지자의 17%가, CNN은 바이든 지지자의 40%, 트럼프 지지자의 23%가 선호한다. 정치적 양극화가 일어나는 이유 중 하나다.

ⓒEPA9월29일 트럼프 대통령과 바이든 후보가 TV 토론을 벌이고 있다.

양극화는 세금을 물린다

미디어의 편향성은 정치적 양극화를 부추기는 주범으로 오래전부터 지목되어왔다. 학계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미디어가 투표자의 심리에 미치는 영향이 생각보다 지대하며, 정치인이나 미디어 업체의 대주주 또는 경영진이 미디어를 조작할 가능성을 경고해왔다. 한 연구는 폭스뉴스가 케이블 채널에 편입된 도시들을 분석해 2000년 미국 대선에서 공화당이 1996년 대선 때보다 0.4~0.7%포인트 더 득표했다는 것을 실증적으로 보여줬다. 당시 대선이 박빙 승부였다는 것을 감안할 때 결정적인 작용을 할 수 있는 크기다. 더욱이 폭스 채널의 영향력은 보다 광범위해서 어떤 특정 선거의 특정 후보자에게만 미치는 것이 아니었다. 투표자들의 일반적인 정치 성향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이는 인물이 크게 조명받는 대선에 비해 인물이 부각되지 않는 상원의원 선거 결과를 분석하면서 드러났다. 폭스뉴스가 투표율을 늘리고 공화당이 표를 얻는 데 유의미한 기여를 했던 것이다. 공화당원이 아닌 시청자들의 3~8%까지도 공화당에 투표하도록 할 만큼 폭스의 영향력은 막강했다. 이들의 연구는 최근의 다른 연구에서도 재차 확인되었다. 폭스뉴스는 근래 더 우경화되고 그 영향력도 확대되어왔다(시청률 상승). 이는 실질적 효과로 이어졌다. 폭스뉴스를 시청한 사람들이 공화당을 찍는 경향이 더 강해진 것이다.

이번 미국 대선 토론회는 거의 ‘난장판’이었다고 전해진다. 정치적 양극화의 당연한 결과다. 난장판 토론회는 오히려 불확실성을 키운다. 양극화가 심하면 토론회를 통해 다른 이들을 설득하는 일이 효과를 내기 어렵고, 따라서 토론회 자체가 별 영향력이 없다는 분석이 대세다. 대선 광고가 별 효과 없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양극화가 심해지면 이렇게 새로운 정보를 습득하는 길이 막혀버린다.

투자회사 뱅가드 그룹의 한 수석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정치적 불확실성은 ‘불확실성에 대해 물리는 세금(uncertainty tax)’을 양산한다. 직접적인 경제 피해를 유발한다는 이야기다. 정치적 양극화는 정치적 불확실성을 증가시키고 이는 다시 경제적 불확실성을 높여 주가에 큰 영향을 미친다. 시카고 대학의 패스터와 베로네시 교수는 정치적 불확실성이 클수록 주가변동성이 증가하며(다시 말해 위험이 커지며), 이렇게 커진 위험으로 인해 주가가 떨어지게 된다는 것을 증명했다.

‘정치적 불확실성과 경제적 불확실성이 어떤 관계를 맺는가’는, 학술 연구에서도 매우 어려운 주제다. 어느 쪽이 원인이고 결과인지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높은 정치적 불확실성으로 인해 경제적 불확실성이 커질 수도 있지만, 반대로 높은 경제적 불확실성 때문에 정치적 불확실성이 증가할 수도 있다. 연구자들은 이 문제를 넘어서기 위해 ‘선거’라는 이벤트를 자주 활용한다. 선거 시기나 결과는 기업(경제 영역의 변수)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또한 선거가 끝나면 정치적 불확실성이 크게 줄어든다. 그러므로 선거 이전(정치적 불확실성이 크다)과 이후(정치적 불확실성이 비교적 작다)를 비교하면, 정치적 불확실성이 줄어들 때 경제적 불확실성이 어떤 영향을 받는지 검증할 수 있다.

미국 대선의 불확실성은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실제로 지난해 나온 한 연구는 미국에 선거가 있는 경우, 전 세계 50개국에서 주가가 떨어지고, 시장변동성이 증가하며, 그 나라의 화폐가치 하락 및 국채 가격 상승 움직임이 나타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같은 현상은 미국 선거 결과가 박빙이라서 불확실성이 높거나 해당 국가의 주식시장에 외국인 투자자가 많이 투자하고 있는 경우 더욱 강하게 나타났다. 주가가 떨어진 이유는, 정치적 불확실성이 투자자들의 위험 회피 성향을 증대시켜 위험한 주식시장을 정리하고 보다 안전한 국채 등으로 투자를 옮기도록 했기 때문이다.

ⓒ중국 지난시 중급인민법원 제공2013년 9월22일 뇌물 수수 등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보시라이 중국 충칭시 당서기. 그의 스캔들은 평화적 권력이양 시기에 정치적 불확실성을 급증시켜 주가 하락을 야기했다.

불확실성으로 인한 경제적 비용

정치적 불확실성은 기업의 투자 결정에도 영향을 미친다. 1980년부터 2005년까지 48개국의 선거를 살펴본 한 연구는 선거가 있는 해에는 다른 해에 비해 투자지출이 4.8%쯤 감소한 사실을 보여준다. 기업들이 선거가 끝나 정치적 불확실성이 없어질 때까지 투자를 보류하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정치적 불확실성이 실물경제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선거가 박빙일 경우와 현직 공무원들이 시장친화적인 경우 투자 감소는 더 심하게 나타났다. 정부의 성격으로 보면 권력이 약하거나 정부지출이 큰 국가 등에서 이 같은 현상이 더 강력하게 나타났다. 모두 불확실성을 키우는 특성이다. 선거 이듬해에는 기업들이 투자를 다시 늘렸다. 그러나 아주 약간 늘리는 것이어서 선거 이전의 투자 감소분을 회복할 정도는 아니었다. 기업들은 선거 전에 투자를 줄여 아낀 현금을 내부에 쌓아놓고 불확실성에 대비하고 있었다. 이 같은 결과는 한국에서도 확인된다. 1987년부터 2012년까지 분석해본 결과 대통령 선거가 있었던 해에 민간소비, 설비투자, 경제성장률 등이 평균적으로 줄었다.

정치적 불확실성과 투자 감소의 관계는 미국의 대선뿐 아니라 주지사 선거 전후를 살펴봐도 나타난다. 미국 주지사 선거 전 투자는 5%가량 감소했다. 특히 정치적 불확실성에 민감한 주식들, 예를 들면 투자를 철회할 때 더 큰 비용을 감수해야 하는 회사들은 15%나 투자를 줄였다. 선거가 박빙인 경우의 투자 감소 폭이 더 컸다. 주지사 선거 이후엔 투자가 얼마나 회복되었을까? 기존 주지사가 재당선되면 선거 이후의 투자가 늘어나면서 선거 이전 투자 감소분을 거의 회복하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새로운 주지사가 당선된 경우에는 선거 이후에도 투자가 회복되지 않았다. 재선한 주지사는 별다른 불확실성을 가져오지 않지만(이미 알고 있는 사람이니까), 새로운 주지사의 경우 불확실성이 증가함에 따른 것이다(저 사람이 과연 잘할 수 있을까?).

투자가 줄어드니 선거가 예정된 해에는 투자 관련 주식이나 채권의 발행이 연기되기 일쑤다. 특히 선거가 있는 해에는 유상증자를 해도 이를 통해 조달된 자금이 바로 투자로 이어지지 않았다. 보통은 투자 개시와 유상증자가 같은 해로 예정된 경우가 많은데도 말이다. 기업들은 또한 선거 연도에 만기(즉, 원리금을 상환해야 하는)인 장기채 발행을 회피하고 있었다. 선거가 끝난 이듬해에는 유상증자가 10% 증가했다.

유상증자뿐 아니라 ‘최초기업공개(IPO)’ 역시 정치적 불확실성의 영향을 받는다. 결론부터 말하면, 주지사 선거가 있는 주에선 선거가 있는 해에 IPO가 줄어든다. 또 IPO를 한 기업이라도 공모가가 더욱 저평가되는 경우가 많았다. 정치적 불확실성에 대한 프리미엄 때문이다. 선거가 예정된 주(state)에 비즈니스가 집중되어 있거나 가치평가를 하기 어려운(hard-to-value) 기업일수록 IPO가 줄고 공모가 저평가도 더 강하게 나타났다.

다른 나라에서도 정치적 불확실성이 주가에 미치는 영향은 크다. 2012년 중국의 보시라이 스캔들은 후진타오에서 시진핑으로의 평화적 권력이양이 달려 있는, 정치적 불확실성을 급증시킨 중요한 사건이었다. 보시라이 스캔들은 주가 하락으로 이어졌다. 특히 정치적으로 민감한 주식들의 주가가 많이 하락했다. 중앙은행의 지급준비율 변동에 크게 영향을 받거나 보시라이와 정치적 연줄을 가진 기업 등이다.

2016년 11월,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을 때 유력 매체들은 온갖 걱정거리들을 쏟아냈다. 학계에서는 미국인들이 더욱 공격적으로 바뀌었다는 논문이 나왔다.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이 예의와 정중함이라는 공동체 규범(community norms)을 파괴한 것이라는 내용이다. 논문은 트럼프 당선 이후 개인들이 더욱더 비협조적으로 되었으며, 공격적인 전략을 쓰는 일이 많아졌고, 따라서 의견 일치에 이르는 경우도 줄었다고 주장한다. 논문에 따르면 이러한 현상은 주로 남성들이 여성들에게 더 공격적으로 변하면서 이루어졌다. 대선과 같은 광범위한 정치적 이벤트는 관대함이나 협력 같은 개인의 행위에 영향을 미친다는 기존 연구와 일치하는 결과다.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선호 여부를 차치하고라도 대통령 선거가 끝났는데 불확실성이 커지는 것은 확실히 예외적 현상으로 보인다. 선거가 양극화를 치유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가장 큰 정치적 불확실성은 현직 미국 대통령으로부터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철학이나 통치 스타일 등을 통칭하는 트럼피즘(Trumpism)의 불씨는 선거가 끝났음에도 꺼지지 않았다. 다행히 아직까지는 많은 국가들에서 주가가 폭락한다거나 변동성이 급등하는 것 같은 현상은 감지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 첫 임기 4년 동안의 학습효과로 그가 어떤 식으로 행동해도 놀라지 않을 만큼 내성이 생긴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정치적 양극화로 인한 정치적 불확실성은 매우 큰 경제적 비용을 수반한다. 요즘은 정말 절반으로 갈라진 나라가 지구상에 너무 많아진 듯하다.

기자명 이관휘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