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7월20일 여의도 NH투자증권 앞에서 옵티머스 펀드 피해자들이 사기 판매 규탄 집회를 벌이고 있다.

2020년 3월, 세상은 ‘리스크’로 가득해 보였다. 박유찬씨(가명·64)가 그랬다. 임차인으로부터 받은 전세보증금 10억원을 어떻게 관리해야 할지 난감했다. 코로나19 감염이 급격하게 확산되고 TV 뉴스에는 라임자산운용 관련 소식이 연일 쏟아졌다. 전 세계 금융시장은 급격히 무너졌고 금리는 계속 떨어졌다.

박씨에게는 은퇴자금이나 다름없는 돈이었다. 처음에는 어차피 돌려주어야 하는 돈이니 은행예금에 넣어두자 싶었다. 그런데 어느 날 박씨의 아내에게 NH투자증권 지점 직원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박씨 부부가 NH투자증권 수시 입출금 계좌에 넣어둔 전세보증금을 왜 그냥 가만히 놔두냐며, 안전한 자산에 넣어두는 편이 낫다고 권유했다. 수화기 너머로 ‘옵티머스’라는 말이 흘러나왔다.

담당 직원은 “공공매출채권에 투자하는 상품이기 때문에 안전하다. 은행예금보다 조금 더 수익을 얻을 수 있다”라며 옵티머스자산운용이 만든 사모펀드 상품을 적극 권유했다. 몇 차례 고사했지만 연달아 연락이 왔다. 박씨는 “당시 직원이 직접 미국 국공채만큼이나 안전하다고 강조했다. 기대수익률도 연 2.8% 수준이라 ‘조금 더 불려서 보약이나 한 첩 지어 먹자’는 생각에 6개월만 맡기기로 했다”라고 설명했다. 그렇게 박씨가 받아든 ‘옵티머스 크리에이터 전문투자형사모투자신탁 제42호’ 상품 설명서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 있었다. “포트폴리오의 95% 이상 정부 산하기관 및 공공기관이 발주한 확정매출채권에 투자. 투자위험등급 5등급(낮은 위험).”

공공매출채권이란, 어떤 기업이 공공기관에 상품이나 서비스를 제공하면 일정한 기간 뒤 행사하게 되는 ‘돈을 받을 권리’를 의미한다. 문자 그대로 ‘매출을 한 대가로 얻는 채권(매출채권)’인 셈이다. 돈을 줄 채무자가 공공기관이라면 그 매출채권(공공매출채권)은 더할 나위 없이 안전한 자산으로 평가받을 수 있다.

박씨가 옵티머스 펀드를 두고 고심하던 그때 금융감독원은 옵티머스자산운용의 자금 유출입을 살펴보고 있었다. 지난해 라임자산운용 사태 이후 금감원 차원에서 주요 사모펀드 운용 실태를 살폈고, 이 가운데 ‘이상 징후’를 감지한 10곳을 상세하게 조사하기 시작한 때였다. 옵티머스자산운용도 조사 대상 10곳 중 하나였다. 금감원이 사태의 심각성을 알기 시작한 시점에도 NH투자증권은 옵티머스자산운용이 발행한 펀드를 적극적으로 판매하고 있었던 셈이다. 박씨가 이 모든 게 ‘사기’라는 걸 알아챈 것은 불과 2개월 뒤, 옵티머스 펀드에는 애초부터 공공매출채권 따위가 없었다는 게 세상에 드러나면서다.

46개 펀드에서 총 5151억원 규모의 상품(?)을 판매한 옵티머스자산운용의 실체가 금융당국의 조사와 검찰 수사를 통해 점차 드러나고 있다. 옵티머스가 6개 판매사(증권사)를 통해 판매한 펀드는 실제로는 각종 페이퍼컴퍼니의 사모사채(공개리가 아니라 알음알음으로 판매하는 회사채)를 구입하는 데 쓰였다. 페이퍼컴퍼니로 들어간 돈은 다시 각종 상장·비상장 주식과 부동산 개발, 정체를 알 수 없는 용처로 흩어져나갔다. 피해 계좌는 모두 1166개, 이 가운데 법인을 제외한 개인 피해자 계좌 수는 총 982개에 달한다. 개인 피해자의 피해 총액은 약 2404억원 규모다.

이상한 거래에 의문을 제기할 의무

검찰이 지난 6월부터 관계자를 구속하고 수사를 벌이고 있지만 피해자와 금융소비자들의 의문은 쉽사리 해소되지 않고 있다. 수사 상황에 대한 뉴스가 나오고 있지만 대부분 페이퍼컴퍼니로 흘러간 돈의 향방에 집중되었기 때문이다. 평범한 금융소비자들은 오히려 어떻게 이런 사기극이 가능했는지에 의문을 제기한다. 본질적으로 금융시스템을 믿을 수 있겠느냐는 신뢰의 문제로 이어진다.

이 같은 사기극이 터질 수 있었던 제도와 환경적 요인은 무엇일까. 우선 사모펀드 운용체계에 허점이 존재했다. 펀드는 불특정 다수에게 판매하는 공모펀드와 소규모 참여자로 구성되는 사모펀드로 나뉜다. 사모펀드는 크게 경영참여형 사모펀드(PEF)와 전문투자형 사모펀드(헤지펀드)로 분류된다. 옵티머스는 전문투자형 사모펀드 회사다. 흔히 전문투자형 사모펀드는 소규모 투자자들로부터 많은 돈을 모아(49계좌 이하) 그 돈을 밑천으로 다시 자금을 빌린(레버리지 등을 일으킨) 다음 투자하는 방법으로 큰 수익률을 추구한다. 하지만 옵티머스는 애초에 큰 수익을 내는 펀드가 아니라고 자사를 홍보해왔으며 단기간 현금 예치가 필요했던 ‘큰손’들을 주된 판매 대상으로 삼았다. 옵티머스 사태가 충격적인 점은 펀드를 운용하다가 손해를 보는 바람에 투자 대상을 바꾼 게 아니라 애초부터 사기를 목적으로 펀드를 구성했다는 점이다.

설계부터 사기를 치기 위해서는 돈이 오가는 과정에서 각종 허들을 넘어야 한다. 펀드는 크게 네 주체를 통해 판매·운용·관리된다. 돈을 불리는 역할을 맡은 옵티머스가 운용사, 고객들에게 직접 판매하는 증권사가 판매사다. 여기에 더해 돈을 맡는 수탁회사 하나은행과 관련 업무를 대행하는 사무관리회사 예탁결제원이 존재한다. 사기를 설계하고 돈을 빼돌린 것은 옵티머스이지만 나머지 세 주체 역시 상식적으로는 ‘이상한 거래에 의문을 제기할 의무’가 있다.

아래 〈그림〉을 통해 돈이 오가는 과정을 조금 더 상세히 살펴보자. 앞서 설명한 피해자 박씨의 돈 10억원은 NH투자증권 계좌에서 옵티머스가 수탁한 하나은행 계좌로 넘어간다. 옵티머스는 하나은행 금융시스템을 통해 이 돈을 페이퍼컴퍼니에 송금하고, 관련 자료(채권 매입 증빙서류 등)를 사무관리사인 예탁결제원에 보낸다. 그러면 예탁결제원이 관련 사무업무를 처리한 뒤 옵티머스에 알리는 식이다.

문제는 판매사(증권사), 수탁사(하나은행), 사무관리사(예탁결제원) 간에 상호 검증을 할 의무가 없다는 점이다. 공모펀드와의 차이가 여기에 있다. 상호 대조가 어렵다면 각 회사에서 이상한 점이 없는지 확인해보는 게 상식적이다. 직접 돈을 받고 파는 쪽이라면 더욱 그렇다. 피해자들이 가장 원성을 보내는 대상도 판매사다. 특히 NH투자증권이 논란의 가운데에 서 있다. 전체 판매액의 84%가 NH투자증권에 몰려 있어서다. 피해자들이 직접 돈을 넘겨준 쪽도, 금융상품(펀드) 구입을 권유한 쪽도 판매사인 만큼 자연스럽게 책임론이 불거졌다.

그러나 판매사로부터 ‘사기 피해액’을 곧바로 돌려받기란 쉽지 않다. 판매사마다 대응도 다르다. 가령 287억원 규모 옵티머스 펀드를 판매한 한국투자증권 같은 경우 피해 원금의 90%를 피해자들에게 선지급하기로 했다. 그러나 가장 많은 피해가 발생한 NH투자증권은 피해 보상 대신 최대 70%까지 긴급 유동성 자금을 우선 지원하겠다고 밝혔을 뿐이다. 한마디로 ‘투자금을 당장 돌려주진 못하니 일단 급한 돈이 필요하면 빌려드리겠다’는 의미다. 이마저 펀드 구매액에 따라 등급이 나뉜다. 박씨처럼 10억원 이상 펀드를 구입한 이들은 40% 수준인 4억원의 ‘대출’만 받을 수 있다.

이에 대해 NH투자증권 측은 “투자자들을 위해 두 달 동안 이사회를 설득해 마련한 유동성 지원안이다. 현재 자산회수 TF팀을 꾸려 피해 최소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한국투자금융지주의 100% 자회사인 한국투자증권과 달리 NH투자증권은 상장회사이기 때문에 이 같은 긴급 대출안을 만드는 데에도 절차상 어려운 점이 있었다는 항변이다.

NH투자증권을 통해 피해를 입은 이들의 피해액은 총 4327억원이다. NH투자증권 한 해 영업이익(2019년 기준 5754억 원)의 75% 수준. 그러나 피해자들은 판매사가 일부라도 보상한 뒤 운용사(옵티머스)에 구상권을 청구하는 것이 상식적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박씨 역시 “안전하다는 권유에 따라 돈을 맡겨 사기를 당했는데 고작 대응책이라는 게 ‘대출’이라는 게 황당하다”라고 말했다.

NH투자증권이 배상을 미루는 데에는 ‘책임 소재’를 다툴 여지가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이라는 시각도 있다. 당장 금감원의 분쟁조정위원회(분조위) 결과를 기다려야 하는데 지금으로서는 올해 안에 분조위에서 결론이 나오기가 쉽지 않다. 여전히 금감원이 옵티머스 펀드에 남아 있는 자산을 실사 중인 데다 잔여 자산을 처분하더라도 펀드 판매액을 100% 회수하기 어려운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수사도 분조위가 미뤄지는 이유로 꼽힌다. 서울중앙지검 경제범죄형사부가 김재현 대표를 비롯해 옵티머스 관계자들을 구속 기소했지만 투자금의 정확한 행방은 여전히 수사 중이다. 운용사에 대한 수사가 끝나기도 전에 금감원이 앞서 판매사에 책임을 묻기는 부담스러울 수 있다.

판매사, 수탁사, 사무관리회사 간 책임 전가 분위기도 감지된다. 수탁사인 하나은행과 사무관리회사인 예탁결제원 역시 옵티머스 펀드 사기가 가능한 환경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책임이 가볍지 않다. 하지만 두 회사는 각각 펀드 운용 과정에서 자신들이 수동적 존재였다는 점을 강조한다.

가령 수탁회사인 하나은행은 돈이 오가는 것을 관리할 뿐 돈의 용처를 따져 묻거나 감시할 의무는 없었다는 입장이다. 2015년 금융위원회가 수탁사의 감시의무 면제 특례조항을 마련하면서 사모펀드에 한해 수탁사(은행)의 책임이 다소 가벼워진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자본시장법상 ‘선량한 관리자의 의무(선관주의)’를 다 하지 못했다는 책임론은 여전히 제기된다. 이상하다는 낌새를 눈치 챘다면 자기 돈만큼이나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원칙이다. 10월13일 윤석헌 금감원장도 정무위 국감에서 “하나은행이 선관주의 의무를 다했다고 보이지 않는다”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시사IN 신선영10월21일 여의도 금융감독원 앞에서 금융정의연대, 참여연대 등 시민 단체가 ‘금융당국의 사모펀드 규제완화 및 감독 부실, 금융사 책임회피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얼마나 회수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

사무관리회사인 예탁결제원 역시 옵티머스 사기극이 무리 없이 가동되는 조건을 마련했다. 예탁결제원은 이번 사건에서 일종의 하청에 가까운 계산사무 대행업을 수행했을 뿐이라는 입장이다. 사건 발생 초기인 7월8일, 이명호 예탁결제원 사장은 예탁결제원 책임론에 대해 ‘무인 보관함 관리자에게 왜 제대로 감시를 못했느냐는 격’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그러나 지난해 12월 옵티머스가 예탁결제원에 보낸 이메일이 따르면, 옵티머스가 사모사채 계약서를 첨부했지만 예탁결제원이 이를 공공기관 매출채권으로 기입했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지기도 했다. 단순사무 하청에 따라 업무를 수행했다고 말하기에는 ‘의문을 제기하지 않은 책임’이 뒤따른다.

ⓒ연합뉴스옵티머스 펀드에는 애초부터 공공매출채권 따위가 없었다.

피해자들에게 적절한 보상을 해주려면 일단 돈이 회수되는 게 중요하다. 그러나 옵티머스 펀드를 통해 페이퍼컴퍼니로 흩어진 자산은 회수 여부를 장담하기가 어렵다. 앞의 〈그림〉처럼 옵티머스자산운용을 이끈 주요 인물들은 이미 구속된 김재현 대표, 감사를 맡은 윤석호 변호사, 2대 주주인 이동열 이사, 잠적한 정영제 전 옵티머스대체투자 대표 등이다. 이들은 전체 펀드 자금 가운데 5109억원을 씨피엔에스(2052억원), 아트리파라다이스(2031억원), 대부디케이에이엠씨(279억원), 라피크(402억원) 등의 사모사채를 구입하는 방식으로 분할했다. 이 돈은 다시 60여 곳으로 나뉘어 흘러갔다.

재투자하는 회사 역시 옵티머스 이사진의 소유인 경우가 다반사였다. 가령 수많은 2차 투자처 가운데 ‘비자금 저수지’로 지목받고 있는 트러스트올이라는 회사는 옵티머스가 사모사채를 구입한(돈을 보낸) 대부디케이에이엠씨로부터 자금을 받았는데, 대부디케이에이엠씨와 트러스트올 두 곳 모두 등기상 이동열 이사가 대표이사로 등재되어 있다. 김재현 대표 등 일부는 트러스트올을 통해 비자금을 인출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트러스트올 외에도 해덕파워웨이, 화성산업, 셉틸리언 등이 검찰 수사망에 올라 있는 상태다. 돈의 행방이 복잡하게 꼬인 탓에 펀드 피해자들이 펀드 구매액 가운데 얼마나 회수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김재현 일당의 잘잘못이 가려진다고 해서 펀드 판매사와의 책임 공방이 곧바로 끝나는 것도 아니다.

2011년 정부는 ‘한국형 헤지펀드(전문투자형 사모펀드)’ 제도를 도입하며 점차 헤지펀드 규제를 풀어왔다. 특히 2015년에는 헤지펀드를 운용하는 자산운용사 설립 요건을 인가제에서 등록제로 바꾸고 자본금 요건도 기존 60억원에서 20억원으로 낮추며 문턱을 대폭 낮췄다. 개인 투자 최소 금액도 5억원에서 1억원으로 하향 조정했다. 이번 옵티머스 사태에서 개인 피해자가 늘어난 것도 이 때문이다. 당시 금융위의 이 같은 결정 배경에는 ‘모험적인 자본’이 자리를 잡아야 한다는 명분이 놓여 있었다. 그래야 시장 전반에 벤처 투자 등이 활발해진다고 믿었다. 그러나 업계 1위였던 라임자산운용 부실 사태에 이어 옵티머스자산운용의 사기 사건까지 불거지면서, 5년 전 금융위의 ‘장밋빛 전망’은 공염불이 되었다. 피해는 고스란히 수억원을 잃은 개인들에게 전가되고 있다.

기자명 김동인 기자 다른기사 보기 astori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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