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시사IN〉과 가까운 서울 지하철 충정로역에 작은 실내농장이 생겼다. 이름이 ‘메트로팜’이다. 작은 공간(5평) 안에서 이자트릭스 같은 엽채류 채소를 수경재배한다. 식물의 광합성(빛이 무기물을 유기물로 합성해서 양분을 만드는 과정)은 LED 조명으로 이루어진다. 쇼윈도 옆에는 채소 샐러드를 구입할 수 있는 자동판매기가 들어섰다.

이 메트로팜에서는 35~40일에 한 번 수확해 채소를 판매한다. 이런 실내농장이 서울 충정로역뿐만 아니라 답십리역, 상도역, 천왕역, 을지로3가역에도 들어섰다. 지난 9월 말, 메트로팜 사업은 2020년도 지방공기업 혁신우수사례 경진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지하철역에 들어선 ‘식물공장’을 보면서 궁금증이 일었다. 어떤 회사가 왜 이 사업을 할까? LED 조명과 양분액만으로 식물이 잘 자랄 수 있을까?

메트로팜은 서울교통공사와 농식품 기업 팜에이트의 합작품이다. 2년 전 서울교통공사가 팜에이트에 제안하면서 지하철 실내농장이 시작되었다. 서울교통공사는 ‘공동화하는 지하공간을 어떻게 활용할까’ 고민스러웠다. 빈 지하공간을 실내농장으로 이용하자는 서울교통공사의 제안은 ‘도시농업의 저변을 넓히고 싶은’ 팜에이트의 바람과 맞아떨어졌다. 비교적 규모가 큰 상도역 메트로팜(100평)에는 재배시설·교육시설·판매시설이 함께 들어섰다. 체험교육을 하고 실내농장에서 키운 채소로 샐러드와 주스를 만들어 판매한다. 강대현 팜에이트 대표는 “홍보 마케팅과 소폭의 영업이익, 두 가지 목표를 다 달성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팜에이트는 평택 본사, 천안 메가마트, 메트로팜을 포함해 1100평 규모의 ‘수직농장’을 운영하는 국내 최대 스마트팜 회사다. 이 회사의 2019년 매출액은 472억원. 올해는 코로나19 영향으로 온라인 판매가 큰 폭으로 늘어서 매출액도 꽤 상승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수직농장이나 스마트팜 같은 용어가 낯설다. 수직으로 여러 재배 단을 쌓아 작물을 키운다고 해서 ‘수직농장’이고, 정보통신기술(ICT)을 농업에 접목해 원격·자동으로 작물과 가축의 생육환경을 유지·관리할 수 있다고 해서 ‘스마트팜’이다. 수직농장은 실내에서 키운다고 하여 ‘인도어(Indoor)팜’이라 부르기도 한다.

ⓒ시사IN 이명익팜에이트의 실내농장에서 인공조명과 수경재배를 통해 샐러드용 채소를 키우고 있다.

■ 애그테크 기업, 팜에이트

경기도 평택시에 있는 팜에이트 수직농장에는 6단, 12단으로 버터헤드레터스, 로메인 같은 엽채류 채소가 자라고 있었다. 과채류도 생산할 수 있지만, 작물의 키가 낮아야 단을 좀 더 많이 쌓을 수 있기 때문에 주로 엽채류를 키운다. 재배실은 1년 내내 22~23℃를 유지한다. 재배실에 들어가려면 오염물질 유입을 방지하기 위해 ‘에어샤워’를 해야 한다. 밖과 차단된 실내에서 재배하기 때문에 병충해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 그래서 농약을 쓰지 않는다. 작물의 생육기간은 품종에 따라 35~40일. 매일 파종과 수확을 반복해 일정량을 생산한다. 하루에 1t 규모다. 한기원 팜에이트 기획팀장은 “기후변화 등의 이유로 특히 혹서기 채소 공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공급의 안정성을 위해 인도어팜 작물의 비중을 점점 늘리는 걸 목표로 삼고 있다”라고 말했다.

ⓒ시사IN 이명익강대현 팜에이트 대표는 “지속 가능한 농업을 위해 스마트팜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팜에이트의 실내농장을 둘러보면 ‘애그테크(농업agriculture+기술 technology) 기업이라는 용어가 실감난다. 장마가 지든, 가뭄이 들든 계절의 변화와 상관없이 수직농장에서는 정해진 분량을 일정하게 생산할 수 있다. 한 해 소출도 정확히 계산 가능하다.

팜에이트가 설립된 건 2004년. 강대현 팜에이트 대표는 그즈음 금융권에서 일하고 있었다. 그는 우연한 계기로 새싹채소 공장을 방문했다. 파종에서 수확까지 5일이 걸리는 걸 보면서 그는 외부환경의 영향 없이 채소를 공장식으로 재배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았다. 처음에는 새싹채소 유통만 하다가 2005년부터 공장을 지어 재배를 시작했다. 인도어팜에 관심을 두고 연구하다가 2009년에 일본의 스마트팜 회사 미라이와 계약을 체결했다. 미라이 측이 60평짜리 수직농장 시설을 지어주는 조건이었다. 그러나 재배 기술은 팜에이트 스스로 익힐 수밖에 없었다. “품종마다 빛의 세기, 온도, 습도, 물의 산성도, 이산화탄소 농도, 배양액 성분 등이 다르다. 바람의 흐름도 중요하다. 수직농장에서 작물이 자라게 하려면 열 가지 넘는 변수를 조절해주어야 한다. 시설을 짓고 나서 2010년에서 2013년까지 데이터를 쌓으며 재배 노하우를 익혔다. 그러고 나서 2014년에 규모를 270평 정도로 키웠고, 지금은 인도어팜 규모가 1100평가량 된다(강대현 대표).”

노하우가 축적되면서 팜에이트는 스스로 수직농장 시설을 세울 수 있게 되었다. 2년 전부터 플랜티팜이란 법인을 만들어 ‘수직농장 설치·컨설팅 사업’을 하고 있다. 10월에는 컨테이너 안에서 엽채류(상추), 과채류(고추·토마토)를 키울 수 있는 ‘극지형 컨테이너 실내농장’을 남극 세종과학기지로 보냈다. 하루 최대 2㎏ 생산이 가능하다. 일본 수출 계약도 이루어졌다. 또 지자체 관계자, 농민 등이 수직농장을 보기 위해 팜에이트에 견학을 많이 온다. 지금까지 35군데에 스마트팜 시설을 설치·지원했다. 강대현 대표는 “자연환경이 안 좋아지고, 외국인 노동자 없으면 일손도 대안이 없다. 지금 농업이 그렇다. 이 상태에서 농업을 자식 세대에게 물려줄 수 있을까. 지속 가능한 농업이 되기 위해서 스마트팜 등으로 패러다임을 바꾸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 가축 헬스케어, 한국축산데이터

한국축산데이터는 축산농장에 가축 헬스케어 솔루션 ‘팜스플랜’을 제공하는 ‘축산테크’ 기업이다. 팜스플랜을 통해 관리하는 돼지가 30만 마리에 이른다. 경노겸 대표는 “이름만 듣고 ‘축산 관련 데이터를 수집하는 연구소인가’ 묻는 이도 있었다(웃음)”라고 말했다. 축산 데이터를 연구해 사업을 한다는 점에서는 맞다.

한국축산데이터의 고객은 농장주다. 농장 내에 CCTV를 설치하고 이 영상을 실시간으로 분석해 가축의 체중과 이상행동 등을 파악한다. 주기적으로 혈액을 뽑아서 건강검진을 한다.

ⓒ시사IN 조남진경노겸 한국축산데이터 대표는 “가축 헬스케어로 항생제 사용을 줄일 수 있다”라고 말했다.

이런 농장 유지·관리에 인공지능, 빅데이터, 생명공학 등이 활용된다. 경노겸 대표는 팜스플랜을 통해 관리하는 영상을 보여주었다. CCTV에 실시간으로 돼지의 움직임이 포착된다. 그 움직임으로 이상 유무를 판단한다. 또 각 돼지의 체중도 표시된다. 질병에 걸린 돼지는 죽기까지 2주가량 걸리고, 이상행동 등 전조 증상을 보인다. 그런 돼지를 조기에 발견할 수 있다면 항생제 사용량, 의약품 비용 등을 줄일 수 있다.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해 돼지의 이상행동이 발견되면 바로 농장주에게 ‘알림’이 간다.

이런 축산 기술 덕분에 돼지 면역력이 향상되면서 항생제 사용량이 월평균 4분의 1 수준으로 감소했다. 더불어 생산성과 매출이 올랐다. ‘효과가 있을까’ 반신반의하던 농장주도 팜스플랜을 통해 항생제 사용량·의약품 비용·폐사율 감소를 경험하고서, 다른 농장주를 소개해주었다. 농장주들은 혹시라도 돼지 사육에 문제가 생길까 봐 새로운 기술 도입을 꺼려한다. 보수적인 축산업계에서 효과를 본 양평·여주·장호원 등 여러 농장주의 ‘구전효과’는 컸다. 그렇게 거래처를 하나둘 늘렸다.

경노겸 대표는 원래 축산 쪽과는 거리가 멀었다. 자산운용사에서 일했고, 2015년에 인공지능 기반 마케팅 솔루션을 개발하는 회사를 창업했다. 그 회사에서 일하며 30년 경력의 수의학 전문가와 만났고, 축산과 IT가 결합한 지금 회사를 창업했다. 경 대표는 “낙후된 산업은 있어도 낙후된 비즈니스는 없다”라고 말했다. 그가 보기에 축산업이 그랬다. “국내 양돈시장 규모가 약 7조원이다. 매년 2700만 마리의 돼지가 태어나 1000만 마리가 죽고 나머지 1700만 마리가 일정 기간 사육된 후에 도축된다. 어미 돼지 한 마리당 출하되는(시장에서 판매되는) 연간 돼지 수(MSY)로 따지면 OECD 국가에서 하위권이다. 2017년까지 15년간 거의 변함이 없다. 살려내는 돼지 숫자가 많아지면 한국 축산시장 규모가 더 커질 수 있다(경노겸 대표).”

한국축산데이터의 기술력은 국제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올해 7월, 미국 미네소타주에서 개최한 ‘대미 투자지원 프로그램’의 애그테크 부문에서 2위에 입상했다. 한국 기업으로는 유일하게 수상했다. 1월에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업무보고에서 ‘데이터, 네트워크, 인공지능’의 혁신 사례로 선정돼 문재인 대통령 앞에서 팜스플랜 시연을 하기도 했다. 10월에는 중소벤처기업부와 환경부가 공동 추진하는 그린뉴딜 유망기업에 선정되었다.

한국축산데이터는 돼지 4000마리를 직영으로 키우고 있다. 직접 돼지를 키우면서 축산 데이터를 쌓고 분석 역량을 확대하기 위해서다. 경노겸 대표는 “가축 헬스케어 솔루션이란 걸 사업으로 개념화한 유일한 사례라고 자부한다. 가축 헬스케어를 대중화하면 항생제 사용을 줄여 소비자는 좀 더 안전한 육류를 접하고 환경에도 기여할 수 있다. 생산자들의 수입을 늘리게 하고, 사회에도 이로운 기여를 하는 것. 그게 우리의 목표다”라고 말했다.

엔씽은 ‘CES 2020’에서 최고혁신상을 받았다.

■ 모듈형 스마트팜 스타트업, 엔씽

지난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가전·IT 박람회 ‘CES 2020’에는 글로벌 차원에서 4500여 기업이 참여했다. 최고혁신상(Best of Innovation)을 받은 기업은 모두 31개인데 그중 4곳이 한국 국적이다. 삼성, LG, 두산 그리고 엔씽. 엔씽은 스마트시티 부문에서 최고혁신상을 받았다.

엔씽은 컨테이너 같은 실내공간에 수직농장을 설치할 수 있는 ‘모듈형 스마트팜’ 스타트업이다. 컨테이너를 수평으로 연결하고 수직으로 쌓아 농장을 유연하게 확장할 수 있다. 엔씽은 실내에 수직농장을 설치하고 재배 노하우 등 솔루션을 제공한다. 그 안에 들어가는 모든 전자기기도 개발했다. CES 2020에서 최고혁신상을 받은 것은 엔씽의 기술력을 입증하는 보증수표가 되었다. 지난 2월에는, 이 회사의 모듈형 스마트팜이 독일 ‘iF 디자인 어워드’에서 건축디자인 부문 본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40피트(약 12m) 높이의 컨테이너를 출입, 재배, 출하 등으로 나누고 연결하면서 재배 환경과 작업자 동선을 해치지 않고 제품 사용성을 극대화한 점이 높이 평가되었다. 지난 9월에는 120억원 규모의 투자를 유치했다(누적 투자금은 180억원).

엔씽은 2014년 설립되었다. 김혜연 대표가 대학 시절 지인과 함께 원격으로 물을 줄 수 있는 스마트 화분을 개발했고, 스타트업 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게 창업으로 이어졌다. 전자공학을 전공한 김 대표는 대학 시절, 비닐하우스 사업을 하는 삼촌을 따라 우즈베키스탄에 간 적이 있다. IT 기술을 접목한 토마토 비닐하우스를 시범 운영하면서 IT와 농업에 대해 고민했고, 이후 ‘농업을 바라보고’ 창업하게 되었다.

ⓒ시사IN 이명익한승수 엔씽 전략총괄이사가 스마트팜에서 키운 상추 앞에서 촬영을 하고 있다.

식물생장 LED 등 수직농장에 필요한 전자기기·소프트웨어를 자체 개발하고 컨테이너형 스마트팜(모듈형 스마트팜) 사업을 이어나갔다. 외국에서 건축학·경영학을 공부한 한승수 전략총괄이사도 2017년 말부터 엔씽에 합류했다.

엔씽은 서울 미아동에 실험재배동을 설치해 어떤 작물을 어느 정도 수확할 수 있는지 재배 데이터를 쌓았다. 2018년부터는 경기도 용인에서 재배동 16동을 설치해 연 30t의 작물을 재배해 서울 시내 레스토랑에 공급했다. 내년 하반기부터는 대형마트 물류센터 앞에 공장을 두고 연간 300t을 생산해 전량 마트를 통해 납품할 계획이다.

2019년부터는 아랍에미리트(UAE)의 아부다비에 진출해 ‘모듈형 스마트팜 솔루션’ 해외 수출을 타진했다. 현지 파트너를 섭외해 사막에서 컨테이너형 스마트팜이 적합한지 테스트했다. 거기에서 재배한 채소를 현지 호텔 레스토랑에 시범 공급했다. 현지 레스토랑 셰프들의 반응이 무척 좋았다고 한다. 한승수 이사는 모듈형 스마트팜의 장점을 이렇게 말했다. “재배에 필요한 물 사용량이 무척 적다. 관행농으로 같은 작물을 키울 때 100이 든다면, 모듈형 스마트팜에서는 재배시설을 청소하는 물까지 포함해 1.6~1.7이면 가능하다. 물이 부족한 나라에서 충분히 사용할 수 있다. 또 화학비료 사용량이 적기 때문에 환경오염 우려도 없다.”

엔씽은 국내에서는 수직농장에서 재배한 작물을 팔고, 해외에는 ‘모듈형 스마트팜 솔루션’을 파는 비즈니스 모델을 갖추었다. 이를 위해 원예학, IT 등을 전공한 젊은 인력이 모여들었다. 한 이사는 “농업이라고 하면 지루하다고 여기는데, 재미있고 미래가 있는 분야다. 젊은 청년이 다양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들어왔으면 좋겠다. 또 모든 국가의 각 도시에 엔씽 농장을 구축해 모든 사람이 깨끗한 작물을 경험하도록 하고 싶다. 용인이든 아부다비든 (우주의) 화성이든 똑같은 환경으로 식물공장을 가동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라고 말했다. 

기자명 차형석 기자 다른기사 보기 ch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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