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21일 밤 9시40분경 북측 등산곶 인근 해역에서 구조를 요청하던 우리 해양수산부 어업지도선 소속 공무원을 북한 해군 단속정이 무참하게 살해했다.

김정은 위원장은 9월25일 ‘불법 침입자’에 대한 과잉대응의 결과로 발생한 우발적 사건이었다며 “문재인 대통령과 남녘 동포들에게 커다란 실망감을 더해준 것에 대해 대단히 미안하게 생각한다”라는 입장을 표명했다. 이례적인 메시지이나 구체적인 행동이 있어야 한다. 먼저 공동 수색을 통해 희생자의 시신과 유품을 수습하여 유족에게 돌려주고, 이를 위해 군사통신선을 복원해 정보교환을 재개해야 한다. 공동 조사, 책임자 색출 및 처벌, 재발 방지는 그다음 단계다.

이번 사건은 한국 사회에도 다양한 파장을 남겼다. 비난은 크게 둘로 나뉜다. 하나는 이른바 ‘잃어버린 6시간’ 혹은 ‘세월호 프레임’이다. 정부가 초동대응에 실패해 국민의 생명을 구하지 못했으며 피해자에게 책임을 전가했다는 것이다. 북측의 사과 통지문 하나로 상황이 종료된 것처럼 행동하고 있다는 비난도 이어진다. 다른 하나는 종전선언에 대한 비판이다. 북측이 우리 국민을 처참하게 사살하고 비핵화의 움직임은 전혀 보이지 않는데도 문재인 대통령은 여전히 종전선언에만 매달려 있다는 것이다.

우선 ‘잃어버린 6시간’이라는 프레임은 사건의 전개 과정을 되짚어보면 사실과 거리가 있다. 관련 보도에 따르면 해수부 공무원이 사라진 시간은 9월20일 새벽 1시부터 4시 사이로 추정된다. 우리 군이 부유물에 의지하고 있는 공무원을 포착한 시간은 9월21일 오후 3시30분 북한 단속정이 부유물을 예인하는 과정부터다. 당시 우리 군 정보채널에 감지된 북한 동향은 구조 예인이었다. 구조 후 귀순 또는 송환 절차를 밟을 것으로 추정했던 이유다. 그러나 6시간이 지난 9시40분께 사살 명령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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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 안보실, 문재인 대통령은 상황을 계속 모니터하고 있었다. 구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등산곶 앞바다는 진도 앞바다가 아닌 북한 해역이다. 우리 군이 군사행동을 한다 해도 10여 분의 짧은 시간에 구조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워 보이고, 이후 군사적 보복 조치를 택했다면 확전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컸다. 안타까운 것은 초동대처에서 발생한 문제점이다. 그러나 이를 두고 세월호 사건과 비교하거나 정부가 국민의 생명을 경시했다고 비난하는 것은 정쟁용 비난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이번 사건을 이유로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포기한다면 직무유기와 다를 바 없다. 오히려 이러한 비극의 재발을 막기 위해서라도 4·27 판문점 선언에서 합의한 사항을 성실히 실천해야 한다. 판문점 선언에서 두 정상은 남북한 간에 긴장을 완화하고 신뢰를 구축하는 동시에 “정전협정 체결 65년이 되는 올해에 종전을 선언하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화하며 항구적이고 공고한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회담 개최를 적극 추진해나가기”로 합의한 바 있다. 9·19 평양 선언에서 남북 군사합의를 체결해 기초를 다졌으므로, 다음 단계는 미제로 남아 있는 종전선언의 이행이다. 그래야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 프로세스를 추동할 수 있다.

종전선언은 되돌릴 수도, 목적지를 바꿀 수도 없다

문재인 대통령은 9월23일 유엔 연설에서 “이제 한반도에서 전쟁은 완전히, 그리고 영구적으로 종식되어야 한다. 그 시작은 평화에 대한 서로의 의지를 확인할 수 있는 한반도 ‘종전선언’이라고 믿는다”라고 밝혔다. 10월8일 뉴욕 코리아소사이어티 연설에서는 “종전선언이야말로 한반도 평화의 시작이며… 어렵게 이룬 진전과 성과를 되돌릴 수는 없으며, 목적지를 바꿀 수도 없다”라고 밝힌 바 있다. 종전선언은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의 입구로 규정되고 있다. 비핵화와 평화 프로세스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면, 종전선언을 비판하는 주장은 설득력을 얻기 어렵다.

비극이 비극으로 끝나는 것은 가슴 아픈 일이다. 북측은 이러한 사건이 재발하지 않도록 합당한 조처를 해야 한다. 원포인트 정상회담으로 소강상태에 빠진 남북관계의 반전 계기를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평양이 귀를 기울여야 한다.

기자명 문정인 (연세대 명예특임교수)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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