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켈 그림

20~30대 여성의 우울증을 다루는 르포를 쓰는 중이다. 신경정신과 치료를 받은 적이 있는 내 또래 여성을 만나 질병 서사를 듣고 기록한다. 여자들은 만날 때마다 약속이라도 한 듯 가수 설리와 구하라 이야기를 꺼낸다.

“피해자를 지원하면서 제일 괴로울 때가 자살할 때야. 구하라 죽었을 때 아침에 일어나면 두 시간씩 울었어. 머리로는 이게 과하다는 걸 알지만 너무 죄책감이 많이 들었어. 이 사람은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무력한 피해자가 아니라 정말 삶을 개선하려는 의지가 강한 사람이었잖아. 공론화도 자기 힘으로 했고, 정준영 사건의 피해자를 도와주려고 기자들에게 연락하기도 했어. 그런 사람이 그렇게 갔다는 게 진짜 미칠 것 같았어. 동료가 되어줬어야 했는데.”

“설리는 제가 모르는 사람한테 DM(메시지)을 보낸 유일한 연예인이었거든요. 인스타그램만 봐도 공감 가는 부분이 많았어요. 내가 나인 걸 보여주려고 하는 게 아니라 내가 나인 건데. 내가 나인 거에도 계속 욕을 먹고 있는데. 욕을 안 먹으려면 안 하면 되지 이게 아니라 그냥 그게 안 되는 건데. 다른 건 다 몰라도 죽기 직전의 감정을 너무 잘 아니까. 그 순간이 되게 공감이 되는 거예요. 진짜 슬프거든요.”

“우리가 설리에게 보여줬던 인정이라는 게 정말 진짜 인정이었나? 그녀에게도 그게 인정으로 받아들여졌을까? 받는 사람이 인정으로 받아들여야지 인정인 거잖아요. 한국 사회가 사회 초년생 특히 20~30대 여성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보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애정 어린 시선으로 보이는 것이 있다면, 보통 성희롱이죠.”

한국은 자살률 OECD 1위 국가다. 2017년 리투아니아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해 잠시 2위로 떨어졌던 것을 제외하면 2003년부터 지금까지 자살률 1위를 유지해왔다. 특히 최근에는 20~30대 여성의 자살 사망률이 급증하고 있다는 보도가 이어졌다(〈한겨레〉 9월22일 ‘지난해 2030 여성 극단적 선택 부쩍 늘어’). 설리와 구하라가 우리 곁을 떠난 지난해 10~12월 이후 크게 늘어난 20~30대 여성의 자살률이 떨어지지 않고 있다.

실제 조사가 정확히 이루어지긴 어렵겠지만 자살률을 비롯해 자살 관련 행동(자살 시도·자살 계획·자살 사고)까지 따지자면 수치는 더 악화할 소지가 다분하다. 여성은 남성보다 자살 성공률이 떨어진다. 덜 치명적인 자살 방법을 택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의 정신질환 실태 역학조사에 따르면, 나이 불문하고 남성이 여성보다 자살률이 높지만 여성은 남성보다 자살을 더 많이 생각하고, 계획하고, 시도한다. 하지만 한국의 자살 예방 정책은 젊은 여성에게 관심을 두지 않는다. 여성은 자꾸만 죽으려 하지만 죽는 데 실패하기 때문에 정책의 대상에서 벗어나는 것일까.

꾸준한 데이터가 존재하는 현실

사실 여성의 자살률과 정신건강에 적신호가 켜졌음을 보여주는 데이터는 오래전부터 꾸준히 있었다. 데이터가 존재해도 보는 사람이 성차별적이라면 해석 역시 성차별적으로 나올 뿐이다.

모든 고통은 개별적이며 또 중요하다. 각자의 이야기도 있을 것이다. 다만 사회는 고통을 선별적으로 인식한다. 설리가 세상을 떠난 지 이제 꼭 1년. 우리는 누구의 죽음을 더 무겁게 생각하는가.

기자명 하미나 (작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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