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누구의 죽음을 더 무겁게 생각할까 하미나 (작가) 20~30대 여성의 우울증을 다루는 르포를 쓰는 중이다. 신경정신과 치료를 받은 적이 있는 내 또래 여성을 만나 질병 서사를 듣고 기록한다. 여자들은 만날 때마다 약속이라도 한 듯 가수 설리와 구하라 이야기를 꺼낸다.“피해자를 지원하면서 제일 괴로울 때가 자살할 때야. 구하라 죽었을 때 아침에 일어나면 두 시간씩 울었어. 머리로는 이게 과하다는 걸 알지만 너무 죄책감이 많이 들었어. 이 사람은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무력한 피해자가 아니라 정말 삶을 개선하려는 의지가 강한 사람이었잖아. 공론화도 자기 힘으로 했고, 정준영 사건의 피 여성이 글을 쓸 때는 이중의 억압이 발생한다 하미나 글쓰기를 하면서 나를 재정립해 나간다. 지금 어디에 서 있느냐에 따라 같은 기억도 다르게 소환된다. 때로는 과거의 나를 배반하기도 하면서, 여러 종류의 자아를 새로 발견하고 실험하듯 글을 쓴다. 내게 글쓰기는 곧 나의 가장 진실한 목소리를 지키는 일이다. 무엇을 이루지 않아도 이미 글을 쓰는 과정 자체가 보상이다. 칭찬받기 위해 쓰지 않는다.그동안 페미니스트의 글쓰기를 생각하며 자주 혼란을 겪었다. 여성의 목소리를 지키는 일이 너무나 어렵다고 느낀다. 자기 자신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이를 글로 옮기는 과정에서 나는 두 가지의 커 내 얼굴이 반짝반짝 빛나던 순간 하미나 (작가) 학창 시절 체육 시간을 가장 싫어했다. 체육 선생은 꼴찌로 들어오는 다섯 명에게 꼭 운동장을 한 바퀴씩 더 돌게 했다. 나는 늘 두 번씩 달리는 아이였다. 그때마다 수치심을 느꼈다. 피구를 할 때면 어서 빨리 ‘아웃’되기를 바랐다. 날아오는 공은 공포 그 자체. 공을 받을 생각은커녕 요리조리 피해 다니다 수비가 되면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성인이 되어서도 남과 같이 하는 운동은 필사적으로 피하곤 했다. 헬스장에 가거나 홈트레이닝을 하고 어두운 밤에 홀로 달렸다. 땀 흘리는 모습을 누군가 보지 않도록, 조용히 혼자서만 못하기 위해서.피 우리가 페미니즘 운동을 하는 이유 하미나 (작가) 글쓰기 합평회 ‘하마글방’을 운영 중이다. 어느 날 친구가 물었다. “사람들은 도대체 왜 글을 써?” 그는 왜 사람들이 돈까지 내가면서 글방 밖에서는 읽힐 일도 거의 없는 글을 쓰느라 애쓰는지 궁금해했다. 질문 뒤에는 이 말이 숨어 있는 것 같았다. ‘돈도 안 되는데? 누가 알아주지도 않는데?’“모든 사람이 꼭 쓸모와 관련된 일을 하는 건 아니야”라고 가볍게 대답했지만, 덕분에 나는 중요한 질문을 스스로 던지게 되었다. 우리는 왜 때로 돈도 명예도 가져다주지 않는 일을 할까. 이를테면 왜 알아주는 사람보다 비난하는 사람이 많을 걸 지구상에 이런 공간이 있었다니 하미나 (작가) 독일 베를린에서 유학 중이던 친구 ‘용’은 내가 도착하기 몇 주 전부터 언제 오냐며 몇 번을 재촉했다. “언니랑 꼭 가고 싶은 데가 있어.” 그가 연거푸 말하던 ‘꼭 가고 싶은 데’는 베를린의 악명 높은 나이트클럽이었다.외투와 휴대전화를 라커룸에 맡기고 들어간 클럽 풍경은 태어나서 처음 보는 종류의 것이었다. ‘인간이 끝내 지구상에 이런 공간을 만들고 말았구나’라는 경이로움을 느꼈다. 이것은 섹스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곳에서는 외모나 나이는 물론 성별 지향과 장애 여부 등등이 인간 사이의 위계를 만들지 않았다.거대하고 축 처진 두 페미니스트의 방은 몇 평이어야 할까 하미나 (작가) 내가 대학에 들어갈 때 부모는 운동권이 될까 봐 걱정했다. 시위에 나가거나 앞장서 의견을 내 스스로를 위태롭게 만들지 말라고 연거푸 강조했다. 하지 말라고 하니 더 하고 싶었으나 입학 후 살펴본 대학 내 학생운동은 시시할 정도로 크게 줄어든 상태였다. 총학생회장을 뽑는 선거는 투표율 저조로 몇 학기째 무산됐고 후보들은 자신이 비운동권임을 강조했으며 내가 소속했던 자연과학대 학생회는 민감한 정치 사안마다 자신들은 어떤 의견도 갖지 않겠다는 입장을 냈다.대학 생활은 학점 관리와 연애와 독서로 채워졌다. 과거 뜨겁게 민주화운동을 해왔던, ‘잔인한 놀이’를 방관하지 말자 하미나 (작가) 일요일마다 글방을 연다. 글방에는 몇 가지 규칙이 있는데 그중 하나는 사람이 아니라 글을 평가하는 것이다. 글쓴이에 대해 함부로 추측하거나 판단하지 않아야 한다. 그럼에도 글쓴이와 글 자체가 늘 뚜렷하게 구분되지는 않는다. 듣는 사람 처지에서 더욱 그렇다. 좋은 반응이든 나쁜 반응이든 사람들은 자신과 관련한 평가에 예민하기 마련이다. 자기 차례가 되면 누구든 얼굴 근육이 조금씩 부자연스러워진다.좋은 글이 나오면 쉽다. 마음껏 칭찬할 수 있으니까. 이때는 어떻게 하면 정확하게 알아줄지 궁리하며 말을 고른다. 때로는 별로인 글도 나온다 지금 페미니즘은 누구를 향해야 하는가 하미나 (페미당당 활동가) 조국 법무부 장관 이슈로 떠들썩했던 근래 계급 이슈는 다른 많은 사람에게 그랬던 것처럼 나를 자극했다. 우리 부모는 둘 다 초등학교도 제대로 마치지 못했다. 나는 농어촌전형으로 대학 입시를 성공적으로 마쳤으나 대학 시절 내내 너무 외로웠다. 동기 부모 중 대다수는 전문직·관리직이거나 최소한 ‘배운 사람’이었다.대학에 들어와 지식인의 세계에 발을 들이기 전까지 나는 시장 사람들 사이에서 자랐다. 그곳에는 음모와 배신이 넘치고 온갖 인생의 구구절절한 이야기가 많았다. 이토록 거친 공간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아 자리를 지키는 사람의 대부분은 망가진 부모 대체할 새 공동체 찾자 하미나 (페미당당 활동가) 며칠 전 엄마 생신이었다. 각각 흩어져 살던 오빠와 나는 본가로 부모를 뵈러 갔다. 오랜만에 네 식구가 모여 두런두런 얘기하며 고기를 구웠다. 엄마는 고기 한 점 먹기도 전에 말을 꺼냈다. “너희 아빠와 이제 이혼하고 싶어.” 오빠는 반색했다. 자기가 아빠를 닮을까 봐 두렵다며 이혼 과정을 적극 돕겠다고 했다. 나 역시 동조했다. “그래 엄마. 이제 아빠로부터 해방되어보자.” 내 말에 그녀는 단호했다. “해방은 예전부터 스스로 했어. 이제 절차 문제만 남았을 뿐이지.”‘행복한 가정은 다 고만고만하지만 불행한 가족은 다 제각각의 이유 버닝썬 게이트에 비관하지 않는 이유 하미나 (페미당당 활동가) 유럽 여행 중이다. 로마를 시작으로 피렌체, 베네치아, 빈, 프라하…. 도시를 들를 때마다 수많은 미술 작품들을 포식하듯 본다. 황금과 청금석으로 색을 입힌 엄격한 중세 제단화와 고통과 환희로 몸을 뒤트는 르네상스 천장화. 아름다웠다. 또 자주 질투했다. 미(美)의 시작과 표준이 자신의 나라에 있으면 어떤 기분일까.피렌체 시뇨리아 광장에 있던 조각상 ‘사비니 여인들 겁탈(The rape of the Sabine women)’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플랑드르 출신의 조각가 잠볼로냐가 조각했는데, 한 남자가 여자를 공중으로 들어올리고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