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A

히말라야 등반 과정에서 셰르파는 필수 인력이다. 하지만 ‘등반가’에 비해 셰르파의 이름은 널리 알려지지 않는다. 셰르파의 기록도 금세 잊히곤 한다. 9월21일 72세로 숨진 앙 리타의 기록은 특별하다. 세계 최고봉인 에베레스트(약 8848m)를 산소통 없이 10차례 등반해 2017년 〈기네스북〉에 올랐다. 이 기록은 아직 깨지지 않았다.

앙 리타는 1948년 에베레스트 근처에 있는 네팔 솔루쿰부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그는 가족이 키우던 야크를 돌보고, 히말라야산맥을 가로지르는 무역 원정의 짐꾼 일을 했다. 셰르파로 첫 성과를 거둔 것은 20세. 세계 6위봉인 초오유(8203m) 등반에 성공했다. 이후 그는 보충 산소통 없이 로체, 마나슬루, 안나푸르나 등 수십 개 산 정상에 수차례씩 올랐다. 8000m대 산에는 18차례 올랐다고 전한다.

한국과도 인연이 있다. 1987년 허영호 대장과 함께 남동릉 루트로 에베레스트에 올랐다. 산소통 없이 12월에 등반한 것은 세계 최초였다. 생전 그는 “산소통 없이 등반하는 게 더 편하다”라고 주장했다. 에베레스트에 산소통을 쓰지 않고 오른 사람은 200명가량 되지만, 10차례 등반 기록을 깬 사람은 없다.

그가 마지막으로 에베레스트에 등반한 것은 1996년 에베레스트 참사 12일 뒤의 일이었다. ‘상업 등반’ 과정에서 관광객과 가이드, 셰르파 등이 숨진 사건이다. 이 일로 친구들을 잃은 앙 리타는 깊은 슬픔에 빠졌고 건강 악화가 겹쳤다. 비렌드라 당시 네팔 국왕이 앙 리타에게 ‘건강을 챙기기 위해 은퇴를 고려하라’는 메시지를 보내자 그는 산악을 중단하기로 했다.

유명 셰르파들은 희소성 때문에 보수를 많이 받지만, 앙 리타의 말년은 풍족하지 못했다. 건강 문제 때문이었다. 1996년 마지막 등반 이후 그는 크고 작은 병에 시달렸고 2012년 아들이 사망한 이후에는 뇌졸중이 찾아왔다. 음주 문제도 있었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그의 지인들은 “앙 리타가 최악의 건강상태에서도 술을 끊지 못했다”라고 말했다. 네팔 등산협회는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던 그를 명예직 의장에 임명하고 급여를 제공했다.

앙 리타는 2017년 카트만두의 병원에서 뇌졸중 치료를 받던 중, 주변 사람들에게 갑자기 기네스 기록을 인증받고 싶다고 말했다. 그와 친한 산악인들은 증거자료를 모아 기네스 세계기록 사무소에 보냈고, 마지막으로 에베레스트에 오른 지 21년 만에 기록 인증서를 받았다. 끝을 예감한 산악인의 뒤늦은 소원이었다.

딸의 집에서 숨을 거둔 앙 리타의 시신은 9월23일 셰르파 전통에 따라 화장됐다. 장례는 불교 전통에 따라 치렀다. 전날 샤르마 올리 네팔 총리는 “앙 리타의 성취는 영원히 기억될 것”이라고 트위터에 썼다. 키가 크고 힘이 셌던 그는 ‘눈표범’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기자명 이상원 기자 다른기사 보기 prodeo@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