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inhua9월22일 파월 연준 의장이 하원에서 연설하고 있다. 8월27일 그는 잭슨홀 심포지엄에서 2% 상회 인플레이션을 용인하고 고용 부족분에 집중하겠다고 선언했다.

아파트값이 아무리 비싸도 내일 더 오를 것이라고 생각하면 ‘영혼까지 끌어서라도’ 돈을 모아 아파트를 사려 할 것이다. 그러나 아파트값이 이미 천정부지라서 가까운 미래에 가격이 떨어질 것으로 본다면, 누구도 해당 시점에서 아파트를 매입하려 들지 않을 터이다. 사람들은 ‘내일 물건값이 오를 것’이라 생각하면 오늘 시점에선 저축보다는 소비를 하게 된다. 가격이 오르기 전에 물건을 사두는 것이 낫기 때문이다. 반대로 ‘내일 물건값이 떨어질 것’으로 기대하면 오늘은 저축을 할 것이다.

우리는 흔히 저축은 좋은 것이고 높은 물가는 나쁜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실은 정반대일 수 있다. 나의 소비는 누군가에게 소득이 된다. 내가 소비하지 않으면 그들의 소득이 줄어든다는 뜻이다. 소득이 줄면 소비를 줄여야 한다. 내가 소비를 줄이면 다른 누군가의 소득도 감소한다. 저축은 개인에게 ‘부를 축적하는 수단’일 수 있으나 모든 사람이 저축만 하다간 경제 전반은 망할 수밖에 없다는, 존 메이너드 케인스의 유명한 ‘저축의 역설(paradox of thrift)’이다.

소비(consumption)는 경제를 지탱하는 힘이다. 소비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들은 많다.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사람들이 내일의 물가를 어떻게 예상하느냐(이를 ‘기대인플레이션’이라고 한다)이다. 경제주체들이 내일 물가가 올라갈 것이라고 생각할 때 소비가 일어난다는 이야기다.

미국 미시간 대학의 소비자심리지수(consumer sentiment index)에 따르면, 미국인의 소비심리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줄곧 바닥 수준에 머물고 있다. 최근에는 코로나19로 직격탄을 맞아 소비심리가 더 얼어붙었다. 미국뿐 아니라 세계적인 추세다. 아무리 돈을 풀어도 소비가 살아나지 않는다. 풀린 돈은 자산시장으로 흘러 들어가 금융상품의 가격을 천정부지로 올려놓았을 뿐이다. ‘지금 불황 맞나?’라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나오기도 한다.

그런데 불황이 맞긴 맞나 보다. 지난달 말, 미국 캔자스시티 잭슨홀에서 열린 경제정책 심포지엄에서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연준, 미국 중앙은행) 의장이 ‘너무 낮게 형성된 기대인플레이션’을 높이겠다는 취지로 ‘수정된 인플레이션 목표제’를 들고나온 것을 보면 말이다. 이에 따르면 앞으로 상당 기간 미국의 이자율은 낮은 수준에서 유지될 것이다(지금부터 차근차근 하나씩 짚어보자).

2011년 어느 날 베트남 하노이의 유명 은행 지점에 들렀다. 입구에 ‘1년 이자율 20%’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이게 가능한 이자율인가? 당시 듣도 보도 못한 높은 이자율에 잠시 베트남은 별천지인가 싶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당시 베트남의 인플레이션이 19% 정도였다. 헛웃음이 나왔다. 뭐야, ‘겨우 1% 먹는 것’이었어?

이 1%라는 숫자는 어떻게 나온 걸까? 명목이자율(은행에서 흔히 보는 보통의 이자율, 앞으로 그냥 이자율이라 부른다)인 20%에서 인플레이션 19%를 뺀 것이다. 이때 1%는 ‘돈의 구매력 변화’다. 1년 동안 돈을 빌려주면 원금의 20%를 더 받을 수 있지만(돈의 값), 물건값도 19% 올라버렸으니 돈의 구매력은 1% 상승한 데 불과한 것이다. 이를 실질이자율이라고 한다. 내가 ‘정해진 금액으로 살 수 있는 햄버거 개수(구매력)’가 지금보다 미래에 얼마나 변화하는지를 나타내는 값이라고 할 수 있다. 구매력, 돈의 값, 물건값 사이의 관계는 다음의 피셔방정식, 또는 피셔효과로 요약된다.

ⓒAP Photo2012년 1월25일 벤 버냉키 전 연준 의장이 워싱턴의 연준 청사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실질이자율(돈의 구매력)=이자율(돈의 값)-인플레이션(물건값)

통화정책이란 중앙은행이 화폐가치를 조정해 경제 전반에 어떤 영향을 미치려고 하는 정책을 말한다. 우리는 인플레이션이 1% 높아질 가능성에 대비해 이자율을 1% 높이기로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결정했다는 식의 뉴스를 자주 접한다. 이때 이자율을 높이지 않으면 실질이자율은 1%포인트 떨어지게 될 것(-1%)이다. 물가는 오르는데 ‘돈의 값’은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같은 돈으로 살 수 있는 햄버거의 개수(돈의 구매력)’가 줄어든다. 만약 돈의 구매력이 줄어드는 것이 싫다면 이자율을 1% 높여주어야 한다. 이처럼 인플레이션 변화분만큼 이자율을 조정해주는 것은 전통적인 통화정책의 하나다.

그런데 현시점에서 1년 뒤 이자율은 어느 정도 정해져 있지만 물가가 얼마나 오를지(인플레이션)는 알기 어렵다. 사실 몰라도 된다. 오히려 중요한 사실은 우리 각자가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나름대로 ‘물가가 앞으로 얼마나 오르고 내릴지’를 예측한다는 것이다. 이를 ‘기대인플레이션’이라고 부른다. 예를 들어, 이자율이 15%인데 시민들이 앞으로 물가가 10% 오를 것으로 본다고(=기대인플레이션이 10%라고) 치자. 이 경우, 시민들은 실질이자율을 5%(15%-10%)로 예측한다고 표현할 수 있다(기대실질이자율은 5%). 공식으로 나타내면 다음과 같다.

기대실질이자율=이자율-기대인플레이션

통화정책에서는 이런 ‘기대치’가 매우 중요하다. 실제로 통화당국은 기대치를 예측해서 ‘선제적’으로 통화정책을 수행한다.

예컨대 기대인플레이션이 이자율보다 더 높아질 수 있다. 시민들이 이자율보다 인플레이션율이 더 높아질 것으로 내다본다는 것. 실질이자율이 ‘음(陰)의 값’으로 내려갈 것으로 예측한다는 뜻이다(=기대실질이자율이 음수).

기대실질이자율이 음수라면 ‘돈의 구매력’이 앞으로 지금보다 더 떨어지는 셈이다. 지금은 같은 액수의 돈으로 햄버거 10개를 살 수 있는데 앞으로는 8개밖에 못 산다는 것. 그렇다면 돈을 저축하기보다 지금 소비하는 쪽이 나을 것이다. 반대로 기대인플레이션이 이자율보다 낮다면 실질이자율은 양의 값을 갖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 시민들이 돈의 구매력이 지금보다 앞으로 늘어날 것으로 본다는 의미다. 이 경우엔 시민들이 지금 소비하기보다 저축해놓고 나중에 소비하려 한다. 그러나 지금 소비하지 않으면 불황이 발생한다.

통화당국의 입장에서 볼 때 (시민의) 기대인플레이션이 낮아 ‘지금의 소비’가 모자란다면 기대실질이자율을 낮춰야 한다. 그렇게 되면 시민들은 돈의 구매력이 앞으로 떨어질 것으로 예측하면서 ‘지금의 소비’를 늘릴 것이다. 앞의 공식에서 알 수 있듯이 그 방법은 이자율을 낮추는 것이다.

양적완화로도 안 되는 소비 위축

지금 전 세계의 수많은 중앙은행은 ‘기대인플레이션이 너무 낮은 수준에 형성되어 있는 것’으로 보고 우려한다. 아무리 이자율을 낮춰도 소비가 일어나지 않으니 그렇게 볼 수밖에 없다. 더욱이 상당수 국가의 이자율이 이미 0% 수준에 가까워서 이자율을 더 낮추기도 힘들다.

심지어 기대인플레이션이 ‘음의 값’까지 내려갔다고 보는 중앙은행가들도 있다. 기대인플레이션이 음수라는 것은 시민이 앞으로 물건값의 하락, 즉 디플레이션(deflation)이 올 것으로 예측한다(디플레이션 기대)는 의미다. ‘혁신’으로 생산성이 향상되어 물건값이 떨어지는 것이라면 좋은 일이다. 그러나 지금 상황에서 시민의 ‘디플레이션 기대’는 수요 부족(‘구매 의향이 없다’)으로 인해 발생하는 것이라서 문제다.

더 고약한 문제가 있다. 이런 나쁜 디플레이션이 기대되는 경우 아무리 이자율을 낮춰도 소비를 진작시키는 효과를 내기 힘들다. 그만큼 장기침체로 이어질 가능성이 커진다. 내일 자동차 값이 떨어질 것으로 예측한다면 단지 이자율이 낮다고 은행에서 돈을 빌려 오늘 자동차를 사러 가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내일 사면 더 싸게 살 수 있기도 하지만 누구도 오늘 산 차를 내일 더 싸게 팔기를 원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사람들이 디플레이션을 ‘기대’하면 이자율 조정을 통한 전통적인 통화정책은 제대로 효과를 내기 힘들다.

이자율 조절이 작동하지 않는다면 기대인플레이션으로 눈을 돌려볼 수 있다. 기대인플레이션이 낮거나 심지어 음수라는 건 화폐의 구매력이 커져서 화폐 자체가 더 귀하게 될 것으로 기대한다는 뜻이다. 돈이 귀하니 함부로 쓸 수가 없어서 저축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돈이 그렇게 ‘귀하지 않도록’ 만들면 되지 않나? 예를 들어 주변에 돈이 널려 있다면 돈 가치는 떨어질 것이다. 화폐 자체를 수요-공급 측면에서 생각해보면 된다. 화폐도 공급이 늘면 가치가 떨어진다. 피셔효과를 주창한 경제학자 어빙 피셔에 따르면, 화폐 역시 다른 재화처럼 가치를 갖고 있으며 그 가치는 변동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까? 화폐를 마구 공급하면 된다. ‘양적완화’가 세상에 나온 배경이다. 선진국 중앙은행가들은 그동안 많은 노력을 들여 양적완화를 시행해왔다. 그러나 기대인플레이션을 높이는 데 그다지 성공하지 못한 것으로 평가된다.

양적완화로도 안 된다면 어떻게 해야 기대인플레이션을 높일 수 있을까? 이것이 지난 8월 잭슨홀 심포지엄에서 중요하게 다뤄진 주제였다. 미팅의 결론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인플레이션 목표제(inflation targeting)’가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이 단어의 공식적인 한국어 명칭은 ‘물가안정목표제’다. 그러나 모든 중앙은행의 목표엔 ‘물가안정’이 있다. 따라서 물가안정목표제라는 번역은 잘못된 것이다. 적어도 ‘안정’이라는 말은 빠지는 게 옳다. 이 글에서는 ‘인플레이션 목표제’라고 부르기로 한다).

앞에서 보았듯이 기대인플레이션은 경제주체들의 소비에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문제는 사람들이 저마다 다른 인플레이션 기대치를 갖고 우왕좌왕하다 보면 경제정책이 효과적으로 시행될 여지도 적어지고 사회적 비용도 발생하게 된다는 점이다. 이때 중앙은행에서 내년도 물가를 2% 정도로 유지하도록 노력하겠다고 약속한다면 혼란은 훨씬 줄어들 것이다(내일 집값이 폭등 또는 폭락하지 않을 것을 알고 있는 것과 모르는 것은 천지 차이다). 이처럼 물가수준을 미리 시장에 알려서 혼란을 줄이고 그 수준을 달성, 유지하기 위해 쓰는 통화정책을 인플레이션 목표제라고 부른다. 벤 버냉키 당시 연준 의장이 2012년 1월에 도입했다. 연준은 지난 8월까지도 매년 2%의 인플레이션 달성을 목표로 삼고 있었다. 인플레이션 목표제를 처음으로 시행한 나라는 뉴질랜드다(1990년). 이후 캐나다(1991)와 영국(1992)이 도입했고 1990년대에는 선진국 대부분이, 그리고 2000년대까지는 많은 신흥시장 국가(emerging countries)들이 인플레이션 목표제를 받아들였다.

장기간 낮은 이자율이 유지될 것

인플레이션 목표제의 장점은 여러 가지다. 우선 인플레이션 목표를 시원하게 밝혀놓으니 불확실성(uncertainty)이 대폭 감소되고 이자율을 내리라는 암묵적인 정치적 압력으로부터도 자유로워 정책 투명성(transparency)을 높일 수 있다. 목표에 따라 ‘선제적’으로 통화정책을 펼쳐 경제 순환주기를 유연하게 가져가는 것도 가능하다. 이를테면 경기가 좋을 때 이자율을 올리면 과열을 미리 막을 수 있다.

또한 인플레이션 목표제는 중앙은행이 앞으로의 정책에 대해 경제주체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안내하는 선제지침(forward guidance)을 통해 더 효과적으로 시행될 수 있다. 경제주체들과 적극적 소통을 통해 시장에 발생할지 모를 어떤 ‘쇼크(surprises)’를 미연에 방지하거나 줄일 수 있다. 연준뿐 아니라 영국·유로존·일본 등의 중앙은행들도 인플레이션 목표제를 적극 활용한다.

대다수 국가에서 중앙은행 통화정책의 주된, 그리고 유일한 목표는 가격안정이다. 인플레이션을 적당한 수준에서 관리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1920년대 후반부터 1930년대까지의 대공황 때 실업문제로 골머리를 썩였던 미국의 경우 고용문제 또한 무시할 수 없었다. 1958년 경제 학술지 〈이코노미카〉에, 경제성장이 인플레이션을 유발하며 인플레이션은 다시 실업률을 줄이게 된다는 실증연구 논문이 실렸다. 이 논문의 핵심 내용을 축약한 것이 바로 필립스 곡선(Phillips curve)이다. ‘인플레이션이 적당히 높은 수준에서 관리된다면 실업률을 줄일 수 있다’는 함의를 가진다. 그러나 필립스 곡선은 1970년대, 높은 인플레이션과 실업률이 동시에 전개되는 사상 초유의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으로 인해 그 영향력을 급속도로 잃게 된다.

스태그플레이션의 경험은 가격안정만을 중앙은행의 ‘유일한 목표’로 설정하면 안 된다는 반성을 일으켰다. 미국 연방의회는 1977년 중앙은행의 정책목표에 한 가지 목표를 추가한다. 바로 고용 또는 실업 문제다. 이후부터 현재까지 연준은 물가안정과 고용 극대화의 두 가지 목표를 갖고 통화정책을 펴게 된다. 문제는 두 가지 목표가 상충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가격안정을 위해 높은 실업률을 감내해야 하는 상황이 심심치 않게 벌어졌다.

지난 8월 말의 잭슨홀 심포지엄에서 파월 의장은 ‘낮은 기대인플레이션’이 큰 문제라고 지적하며 ‘장기(longer-term) 기대인플레이션을 2%에 잘 고착(well-anchored)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무슨 의미일까?

이전까지 연준은 연간 인플레이션 2%를 목표로 삼고 선제 지침을 통해 적극적으로 경제주체들과 소통해왔다. 그러나 기대인플레이션을 높이는 것은 언감생심이었다. 현실에서 낮은 인플레이션이 오래 지속되면 ‘평균’ 인플레이션이 낮아진다. 이 낮은 평균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경제주체들이 미래의 인플레이션까지 낮은 수준으로 ‘기대’하게 된다. 이 기대는 현실에서 ‘실제로’ 낮은 인플레이션으로 나타나며, 이는 다시 평균 인플레이션을 낮추는 등 악순환이 되풀이된다. 이런 사태를 막으려면 이자율을 내려야 하는데, 이미 0%에 가까운 상태다. 다시 말해 이자율을 추가로 낮출 여력이 없다.

이 같은 문제점을 인식한 연준은 경제주체들이 (1년 같은 단기간이 아니라) ‘몇 년’ 등 일정한 기간의 평균적 인플레이션에 기반해서 기대인플레이션을 형성한다고 봤다. 그렇다면 연준이 인플레이션 목표치를 1년(단기) 단위로 설정하고 관련 정책을 추진해온 것엔 문제가 있다. 그래서 수년에 걸쳐(장기) 인플레이션 목표치를 평균적으로 달성하면 되는 기간목표제를 들고나왔다. 이를 평균인플레이션 목표제(Average Inflation Targeting·AIT)라고 부른다. 다시 말해 매년 2%를 달성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향후 몇 년 동안 연간 인플레이션의 평균이 2%면 된다는 것이다. 예컨대 어느 한 해 동안의 인플레이션이 2%를 밑돌았다면 그다음 해에는 2%를 웃도는 물가상승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야 평균이 2%가 될 테니 말이다. 따라서 기대인플레이션 2%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가끔, 특히 인플레이션이 2% 아래였던 연도의 다음 해엔 2% 이상의 인플레이션을 용인할 필요가 있다. 높은 인플레이션을 용인한다는 것은 이자율을 올리지 않겠다는 뜻이다. 파월 의장의 이날 연설을 ‘앞으로 미국에서 장기간 낮은 이자율이 유지될 것’이라고 해석하는 이유다.

주의할 점은 파월 의장이 정작 AIT의 단위 기간을 어느 정도로 할 것인지, 그리고 평균계산에 적용하는 가중치는 어떻게 설정할지 등에 대해선 어떤 언급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다만 어느 특정 공식을 따르지는 않을 것이라고만 간단히 언급했다. AIT를 유연(flexible)하게 적용하겠다는 뜻이다.

ⓒAFP PHOTO5월15일 뉴욕 시민들이 브루클린의 푸드뱅크에서 줄을 서 배식을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높은 인플레이션을 용인하는 것은 연준의 또 다른 목표인 최대고용과 충돌을 일으킬 수 있다. 미국 연준은 과거에 실업률이 낮아지는 경우 경기과열로 인한 인플레이션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이자율을 높여왔다. 이는 실업률과 인플레이션이 역의 관계에 있다는 필립스 곡선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파월 의장은 실업률이 낮아져도 이자율을 올리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전에는, 특히 필립스 곡선의 신봉자들은 당연히 고용수준이 최대목표치(연준의 연방공개시장위원회가 설정)를 넘으면 물가가 득달같이 치솟을 가능성을 우려해 고용을 적정한 수준으로 ‘줄이’려고 노력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그건 필립스 곡선이 들어맞는 세상에서나 가능한 얘기다. 지금은 그런 시기가 아니다.

인플레이션 통제 포기는 아니다

파월은 연설에서 여러 차례에 걸쳐 현 상황이 예전과 다르다고 강조했다. 그는 고용 현황이 너무 좋아서 심지어 최대고용치를 넘긴다 해도 지금 상황에서는 인플레이션이 일어날 가능성이 없다고 본다. 그러므로 현실의 고용량이 최대고용치를 넘긴다 해도 큰 문제가 없다. 다만 고용 현황이 최대고용치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에만 신경을 쓰겠다는 것이다.

ⓒAFP PHOTO뉴욕 증권거래소 앞에서 사람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두려움 없는 소녀상’ 뒷모습이 보인다.

2%를 상회하는 인플레이션을 용인하고 고용 부족분에 집중한다는 파월 의장의 연설은, 연준이 기존 두 가지 목표(물가안정·최대고용) 가운데 물가보다 고용에 방점을 찍었다는 식으로 해석 가능해서 의견이 분분하다. 또 AIT를 유연하게 적용하겠다는 결정은, 유연성을 중시했다기보다는 지역 연준(미국의 경우 주마다 연준이 있다) 의장들 간에 의견 통일이 어려워서 나온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특히 잭슨홀 미팅 이후 지역 연준 의장들의 인터뷰가 구구절절해 오히려 오해를 키우는 면이 없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이들 역시 이번 AIT가 ‘인플레이션 통제를 포기하겠다’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한다.

즉 2% 이상의 인플레이션을 용인하겠다는 연준의 선언을 ‘인플레이션에 대해 관심을 끄겠다’는 것으로 해석하면 곤란하다. 연준의 목표는 기대인플레이션을 2%에서 고착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2012년부터 연준의 한결같은 간절한 소원이 바로 2% 물가다. 이번 잭슨홀 미팅은 그 연장선상에서 볼 수 있다. 다시, 문제는 기대인플레이션이다.

기자명 이관휘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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