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현지 그림

역대급으로 길었던 장마와 국지성 폭우, 태풍은 그저 여름에 한두 차례 강타하는 기후의 변화 정도로 체감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생각해보면 직장 생활에서 생기는 문제, 특히 노동법의 영역에서 ‘천재지변’이 발생하는 상황에 대한 규정이 존재하는지, 있다고 하더라도 그 규정의 해석 기준이 무엇이며 적용 사례가 있는지 그동안 크게 관심을 갖지 않았다. 노동자가 한평생 한두 번 겪을까 말까 한 일이라고 생각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더는 그렇지 않다.

“갑작스러운 폭우 때문에 교통상황이 좋지 않아서 회사에 늦게 도착했는데 지각인가” “태풍 때문에 수재가 일어나 출근을 하지 못하는데 결근인가” “장마가 길어져서 회사가 휴업하면 휴업수당을 받을 수 있는가” 등등. 현행 노동법에서는 이런 문제를 해결할 만한 규정이 없어 답변하기가 어렵다.

단체협약이나 취업규칙, 근로계약에서 천재지변이 일어나면 유급휴가를 쓸 수 있게 별도로 정해둔 경우가 아니라면, 노동자가 천재지변으로 지각이나 결근을 했더라도 개인적인 이유로 지각이나 결근을 한 것과 동일하게 볼 수 있다. 이러면 임금 삭감을 당하거나 무단결근으로 처리될 수 있다. 노동자에게 연차 유급휴가가 남아 있다면 다행이지만, 그 회사가 5인 미만 사업장이라서 법정 연차휴가조차 없다면 휴가나 휴직제도도 쓸 수 없다.

그런데 사용자에게는 천재지변을 감안해 노동법상 노동자에 대한 의무를 완화하는 규정이 적용된다. 회사가 천재지변으로 정상적 근무가 불가능하다며 휴업을 한다면, 노동자에게 근로기준법상 휴업수당(평균임금의 70%)을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고 고용노동부는 해석한다. 근로기준법에서는 사용자가 천재지변으로 사업을 지속하기 어려워 노동자를 해고할 때, 노동자에게 30일 전 해고예고를 하거나 30일분 이상의 해고예고수당을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고 정하고 있다. 사용자가 노동자에게 한 부당해고나 부당노동행위에 대해 노동위원회가 내린 구제명령을 사용자가 따르지 않을 때는 2000만원 이하의 이행강제금이 부과되는데, 천재지변 기간에는 납부를 유예해준다. 심지어 임금을 체불한 사용자가 노동자에게 미지급한 임금에 부과하는 지연이자도 천재지변 기간에는 중지해준다.

‘권고문’ 넘어선 ‘고용보험 제도’ 필요하다

천재지변 기간에 고용노동부 장관이 ‘노동자들이 연차휴가를 쓸 수 있도록 조치해달라’고 각 사업장에 요청하는 경우는 있어왔다. 그러나 노동법에 천재지변을 당한 사용자의 의무를 완화하는 규정은 있어도 노동자를 보호하는 규정은 없다. 이런 상황에서 고용노동부가 아무 강제력 없는 ‘권고문’을 내리는 것만으로는 천재지변으로 노동자가 겪는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 천재지변이 잦은 일본은 지진·태풍 등 심각한 재해로 휴업이 이뤄지면 피해 지역 노동자를 ‘실업자’로 간주해 실업급여를 지급하는 특례가 있다고 한다. 오스트레일리아의 경우 자연재해로 노동자 본인이나 노동자의 가족을 돌봐야 할 사정이 생기면 간호 및 특별휴가를 사용할 수 있고, 나아가 지역사회의 응급상황이나 자연재해에 대처하는 활동에 노동자가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경우 ‘지역 활동 휴가’를 사용할 수도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국가공무원 복무규정 제19조에서 공무원이 천재지변, 교통 차단 또는 그 밖의 사유로 출근이 불가능할 때 행정기관의 장이 공가를 승인하도록 정하고 있다. 공무원이 아닌 노동자도 감염병이나 기후위기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도록 질병휴가나 재해휴가 등 휴가를 사용 가능하게 정할 필요가 있다. 천재지변 때문에 발생하는 휴업 기간에 노동자가 생계를 이어갈 수 있도록 고용보험 제도가 설계되기를 바란다.

기자명 김민아 (노무사)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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