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근 제공〈오맨〉 데이비드 셀처, 영일문화사, 1976년 초판

책에 사악한 기운이 깃들어 있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있으신지? 유럽의 중세 시대 이야기냐고? 아니다. 오늘날에도 어떤 책은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주인이 그 책의 힘을 누릴 수 있다고 전한다. 이제부터 이야기할 〈오맨〉 번역 초판본에 관한 이야기는 소설이 아니라 진짜다. 평소 심약한 체질인 분은 여기까지만 읽어주시길 당부한다.

봄이었다. R은 우리 책방에 자주 오는 단골인데 직업은 인디 가수와 의상 모델 일을 겸하고 있다. R은 영화로 만들어져 더욱 잘 알려진 공포소설 〈오맨〉을 샀다. 영일문화사에서 1976년에 첫 번역서를 출판한 이 책은 데이비드 셀처의 원작으로, 영화는 우리나라에서도 인기가 좋아 개봉과 거의 같은 시기에 책이 나왔다.

R은 〈오맨〉을 포함해서 책을 몇 권 더 샀는데 결제금액은 총 6만원이 나왔다. 이상한 일은 지금부터다. 며칠 뒤 한 남자 손님이 와서 〈오맨〉 초판본을 찾는 게 아닌가? 몇 년 동안이나 팔리지 않고 먼지만 먹고 있던 책을 며칠 사이 두 사람이 사려고 하다니, 기분이 묘했다. 손님은 자신이 올해 60세가 되어 정년퇴직했기 때문에 소일거리 삼아 책을 찾아다닌다고 했다. 아쉽지만 며칠 전 그 책이 다른 사람에게 팔렸다고 말씀드린 후 따로 연락처를 받아놓았다.

다시 며칠이 지난 후, R에게서 연락이 왔다. 좋은 소식이었다. 한 디자인 의류업체에서 가수 데이비드 보위를 주제 삼아 만든 의상에 모델로 쓰고 싶다는 연락을 받았다는 것이다. 얼마 뒤엔 인터넷 의류업체에서도 연락이 왔고 뒤이어 패션 웹진 화보 촬영도 했다.
좋은 일이 이렇게 갑자기 몰려올 수도 있는 건가?

그러다 문득 〈오맨〉이 떠올라서 오싹한 기분이 들었다. R이 〈오맨〉을 구입한 날 결제한 금액이 6만원이다. 다른 손님이 와서 같은 책을 찾았는데 날수를 세어보니 R이 다녀간 날로부터 6일이 지난 후였다. 섬뜩한 기분이 들어서 손님이 남기고 간 연락처를 다시 확인했다. 등골이 서늘해졌다. 휴대전화 번호에 숫자 6이 세 개 들어 있는 게 아닌가! 6만원어치 책을 구입한 날로부터 6일 뒤에 같은 책을 찾으러 오신 손님은 60세. 그리고 그 손님이 남기고 간 전화번호에 6이 세 개. 바로 〈오맨〉의 주요 모티브인 악마의 숫자 “666”이다!

그렇다면 R에게 최근 좋은 일들이 연거푸 생긴 것도 〈오맨〉에 깃든 악마의 힘에서 비롯된 것 아닐까? 악마와 영혼 거래를 한 파우스트처럼 R에게도 그런 일이 생긴 것일지 모른다.

책이 준 행운은 지금도 계속된다

사건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R은 최근에 TV 광고 오디션을 하나 봤는데 상당한 경쟁률을 뚫고 합격했다. 그 광고는 우주를 배경으로 연출하는데 ‘갤럭시’가 중요한 모티브가 될 것이라고 한다. 이것도 참 우연이라고 하면 우연인데, 얼마 전 연락이 온 데이비드 보위 콘셉트 모델 촬영도 영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에 삽입된 보위의 음악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그때는 전혀 몰랐는데 갤럭시가 또 이렇게 연결이 될 줄이야…!

R에게 이 모든 일이 어떻게 엮이게 되었는지는 여전히 미스터리다. 단지 내가 아는 건 이것 하나다. 어떤 책에는 엄청난 힘이 깃들어 있기에 그것을 가지는 것만으로도 능력을 나눠 받을 수 있다.

※ ‘책 읽는 독앤독’은 ‘독’립언론 〈시사IN〉과 ‘독’립서점이 함께하는 콜라보 프로젝트(book.sisain.co.kr)입니다. 책방과 책, 사람 이야기를 전합니다.

기자명 윤성근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 대표)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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