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본질을 고독이라고 주장하는 부류가 있다. 태어나고 자란 터전을 떠나 극한의 상황으로 자신을 내던지고, 그곳에서 일상에서는 떠올리지 못할 법한 사유를 경험하는 일. 그렇게 떠올린 생각이 다시 자신의 삶에 양분이 되는 과정에 매혹당한 사람들이 여전히 지구 이곳저곳을 떠돌고 있다. 영상이 아직 범접하지 못한 영역이 있다면, 여행기가 아직 지키고 있는 고유한 영역이 있다면 바로 이들이 이야기하는 ‘사유의 순간’이 정답이지 않을까. 고결한 풍광만큼 도시에서는 맞닿지 못하는 생각의 영역을 담고 있는 여행기는 그래서 고귀하고 찬연하다.

프랑스 여행작가 실뱅 테송이 쓴 이 책은 지금 시대의 여행기가 취해야 할 가장 모범적인 접근을 보여준다. 그는 야생동물 사진 작가인 뱅상 뮈니에와 함께 티베트 고원에 살고 있는 눈표범을 관찰하기 위해 중국 창탕고원으로 떠난다. 일정은 고되다. 영하 10℃ 이하의 추위를 견뎌야 하고, 여정 대부분은 끝없는 기다림이다. 사람의 손길이 미처 닿지 못한 자연에서 작가는 생명과 죽음의 섭리를 생각한다. 황무지에서도 생명은 펄떡거리고, 인간을 제외한 대다수 생명은 먹고 먹히며 서로의 세포를 흡수하고 나눈다.

작가는 동료인 뮈니에의 행동과 말에 초점을 맞춘다. 뮈니에는 테송에게 잠복하는 법, 자연을 방해하지 않고 관찰하는 법, 눈표범을 쫓아가는 법을 알려준다. 야생동물의 세계에 관해서 그는 능수능란한 추적자이자 사려 깊은 방문자다. 인간 없이 유지되는 이 고원의 생태계를 방해하진 않을까 우려하는 모습은 이 책의 한 축을 이룬다. 테송의 사유와 뮈니에의 태도. 그렇게 점점 겸허하게 자연을 받아들이던 이들 앞에 신의 은총처럼 포범이 모습을 드러낸다. 긴 기다림 끝에 도달한 표범과의 대면, 끝내 여정은 경탄을 자아내는 환상소설처럼 마무리된다. 그래, 이것이 여행기다. 그래, 이게 여행의 이유다.

기자명 김동인 기자 다른기사 보기 astoria@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