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동안의 광복
길윤형 지음, 서해문집 펴냄

“이 책은 우리가 75년 동안 치르고 있는 ‘기나긴 형벌’ 같은 사후 정산이 시작되는 첫 3주에 대한 얘기다.”

책을 쓴 계기가 재미있다. 통일외교 분야 기자인 지은이는 2019년 2월28일 북·미 하노이 ‘노딜’ 회담에 충격을 받았다. 우울을 다스리기 위해 읽은 책이 일본인이 쓴 〈일본의 가장 긴 하루〉. 1945년 8월15일을 다룬 역사 다큐였다.
비타협적 민족주의자 안재홍은 ‘실망에 떨어져 들어가고 있는 민중이 기뻤던 것은 8월16일뿐이었다고 개탄하고 있다’고 했다. 안재홍이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알기 위해 지은이는 국회도서관에서 회고록과 당시 신문을 찾아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8·15부터 조선총독부 청사에 성조기가 게양되는 9월9일까지 26일간의 이야기를 재구성한 책을 써냈다. 그 시기의 구겨짐과 뒤틀림이 한국 현대사의 기원이라고 지은이는 말한다.

 

 

 

 

 

 

좋아서 하는 일에도 돈은 필요합니다
이랑 지음, 창비 펴냄

“유무형의 창작물을 만들고 파는 것이 내 일이라는 사실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

작가는 ‘한 가지만 하라는 말을 많이 듣는 사람’이라고 자기를 소개한다. 가수이고 작가, 영상 감독이며 만화를 그린다. ‘네가 좋아서 하는 일에 왜 자꾸 돈 얘기를 하느냐’는 말을 듣는다. 하고 있고, 앞으로도 할 일은 작가를 먹고살게 하는데, 사람들은 그것을 잘 모른다. 돈이란 뭘까? 예술의 가치란 뭘까? 작가는 보험설계사 자격증을 땄다.
2017년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에서 수상 소감 중에 트로피를 경매에 부쳤다. 시작 가격은 당시 월세 50만원. 트로피를 손에 쥐고 이랑은 말했다. “1월 총수입은 42만원, 2월에는 96만원이더라고요.” 예술가라는 직업과 노동의 대가는 궤를 같이할 수 있을까? 그 답을 찾기 위한 작가의 고군분투가 엿보인다.

 

 

 

 

 

 

스무 해의 폴짝
정은숙 지음, 마음산책 펴냄

“소설 속 인물들이 다들 잘 살아줬으면 좋겠어요.”

출판사 마음산책이 탄생한 지 20년이 지났다. 그동안 420여 종을 냈다. 정은숙 대표는 어떻게 스무 해를 정리하고 앞으로 나아갈지 궁리하다가 문학 저자 스무 명을 인터뷰했다. ‘긴 시간 속에 자리매김하려는 문학의 항구적인 가치를 옹호하고, 빠르게 변하는 세태 속에 몸을 두되 더욱 문학적인 것에 마음을 쏟는 작가, 시인, 평론가’다. 지난해 9월부터 올해 3월까지 신형철·김숨·백수린·손보미·김금희·조경란·하성란·정이현·백선희·김연수 등 작가 스무 명을 만났다. 당대의 작가들을 한 권의 책에서 만나볼 수 있는 행운으로도 읽을 이유가 충분한데, 각각이 털어놓는 ‘문학하는 삶’의 밀도도 높다. 이들의 답변 못지않게 질문 또한 다정하면서 예리하다.

 

 

 

 

 

 

의료윤리
마이클 던·토니 호프 지음, 김준혁 옮김, 교유서가 펴냄

“의료윤리는 우리를 정치의 영역으로 이끌기도 한다.”

코로나19 백신이 개발된다면, 어떤 기준으로 분배하고 누구를 우선적으로 살릴 것인가. 전문 의료인이나 과학자 혼자 판단하기는 어려운 질문이다. 존엄성, 생명, 인권과 관련된 복잡한 의료 이슈를 이해할 때 ‘의료윤리학’이 필요한 이유다. 꼭 코로나19 유행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일상 속에서 의료윤리적 판단이 필요한 상황을 마주한다. 약을 거부하는 치매 환자에게 음식에 약을 숨겨 몰래 먹이는 것은 정당한 행위인가? 59세 불임 여성의 임신을 가능하도록 하는 행위는 비윤리적인가? 의료윤리학 교수인 두 저자는 안락사 논쟁, 유전학과 관련된 비밀유지의무 이슈 등 복잡한 사례를 건드리면서 독자를 ‘정치’의 영역으로 이끈다. 누구나 아파봤고, 아프고 혹은 아플 것이기 때문에 모두가 당사자다.

 

 

 

 

 

 

정념과 이해관계
앨버트 허시먼 지음, 노정태 옮김, 후마니타스 펴냄

“폭력적 정념이 해롭지 않은 이익의 추구로 인해 억눌리는 현상을 주제로 삼는다.”

20세기를 대표하는 경제학자 앨버트 허시먼의 1977년작이다. 허시먼은 몇 가지 공리를 통해 경제 현상을 설명하려 했던 20세기 주류경제학 조류를 뛰어넘어 경제와 사회와 역사를 폭넓게 아우르는 시야를 보여주면서, 만년에는 사회사상가로 대접받은 거장이다.
자본주의 탄생 초기, 광신이나 혐오 등 온갖 정념의 추구가 ‘이익의 추구’라는 하나의 일반원리로 통합되는 현상을 여러 사상가들이 주목했다. 그럼으로써 폭력적인 정념이, 해롭지 않은 이해관계로 대체되며 사회 전체의 폭력성이 줄어든다는 것. 이는 ‘온화한 상업 이론’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허시먼은 정념과 이해관계가 대립항으로 서는 과정을 지성사적으로 추적하여 ‘온화한 상업’이라는 아이디어의 계보를 그려낸다.

 

 

 

 

 

 

바이든과 오바마
스티븐 리빙스턴 지음, 메디치미디어 펴냄

“버락과 조의 우정은 특별했다.”

아프리카계 미국인은 젊고 지적이라 어휘를 정확하게 사용하려 애를 썼지만, 나이 많고 붙임성 좋은 백인은 화법이 대체로 충동적이었다. 2005년 두 사람이 처음 만났다. 버락 오바마가 초선 상원의원일 때였다. 2008년 두 사람은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경쟁자로 만났다. 이후 역사상 가장 가까운 대통령과 부통령이 되었다. 그럼에도 바이든이 대선 출마를 저울질할 때 오바마는 격려조차 하지 않았다. 〈워싱턴포스트〉의 논픽션 도서 편집자로 일한 저자가 두 사람의 이야기를 풀어냈다. 오바마 행정부를 그린 역사서는 아니다. 집권 초기에 초점을 맞춰 두 사람이 서로를 알아가고 차이를 극복해내는 과정을 들여다보았다. 아직 이르지만, 바이든 당선 이후를 조금 예견하게 된다.

기자명 시사IN 편집국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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