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신선영서울 신촌역에 게시된 ‘성소수자는 당신의 일상 속에 있습니다’ 광고판이 훼손되었다가 다시 설치되었다.

성별, 장애, 나이, 언어, 출신 국가, 출신 민족, 인종, 국적, 피부색, 출신 지역, 용모 등 신체조건, 혼인 여부, 임신 또는 출산, 가족 및 가구의 형태와 상황, 종교, 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 형의 효력이 실효된 전과, 성적 지향, 성별 정체성, 학력(學歷), 고용 형태, 병력 또는 건강상태, 사회적 신분….

위 목록을 보통 ‘차별금지사유’ 또는 ‘금지되는 차별 사유’라고 부른다. 차별이 될 수 있는 이유나 근거 또는 특성을 말한다. 그러니까 이 목록에 포함된 사유에 따른 차별을 금지하는 법이 바로 차별금지법인 것이다. 차별금지법 제정에 관한 논의도 주로 차별금지사유를 놓고 대립한다. 2007년 법무부가 발의한 차별금지법안에는 성적 지향, 학력, 가족 형태 및 가족 상황, 병력, 출신 국가, 언어, 범죄 및 보호처분의 전력 등의 차별금지사유가 삭제되어서 시민사회의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현재 차별금지법 제정 반대자들이 문제 삼는 것도 성적 지향이나 전과 등의 차별금지사유다. 그런데 정작 차별금지사유가 무엇이고 어떻게 정해져야 하며 어떤 기능을 하는지에 대한 논의는 그동안 거의 없었다.

사람을 분류하는 것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그런데 특정한 집단을 구분하여 다르게 대우하는 것이 문제가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직장이나 학교에서 특정 인종에 속하는 사람에게 불이익을 준다면 누가 봐도 문제다. 동네 식당에서 흑인의 출입을 금지하거나, 특정 지역 출신이라는 이유로 버스 좌석에 앉지 못한다면 어떨까? 누가 봐도 거부감이 들 수밖에 없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이주자라는 이유로,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직장이나 학교에서 불이익을 받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결국 차별금지사유는 구분해서 불이익을 주면 안 되는 사유를 규정해놓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차별금지사유를 근거로 하는 모든 구분과 분리가 금지되는 것은 아니다. 그런 점에서 차별금지사유를 일종의 ‘경고등’이라고 이해하면 좋다. 일하고, 교육하고, 물건을 사고파는 모든 삶의 영역에서 차별금지사유를 이유로 사람을 구분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 이것이 차별금지의 ‘원칙’이다. 무심결에 차별금지사유로 사람을 구분하는 순간 경고등이 울린다. ‘이 사유로 사람을 구분해서 대우해야 할 정당한 이유가 있는지 생각해보라’는 경고다. 예를 들어, 군대나 경찰에서는 오랫동안 남녀를 구분하여 모집해왔다. 언제부턴가 높은 성적을 받고도 여성 정원이 제한되어 있어 불합격한 경우가 속출했고, 성차별이라는 문제 제기가 시작되었다. 차별금지법은 그 분리를 당연한 것으로 보지 말고 정말 불가피한지 그 정당성을 입증하라고 요구한다. 만약 타당한 이유를 찾지 못했다면 그러한 구분은 금지되어야 한다.

2018년 경찰 지망생 A씨는 왼손 네 번째 손가락이 없다는 이유로 경찰 채용시험에 응시하지 못했다. 언뜻 보기에는 경찰관으로서의 업무 수행에 지장이 있는 듯하지만 하나하나 따져볼 필요가 있다. 경찰 측에서는 손가락 등 사지가 완전해야 범인 체포 등 경찰관으로서 직무 수행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네 번째 손가락이 없으면 언제나 파지력과 악력이 약하고, 총기나 장구 사용이 어려워서 경찰 업무 수행이 불가능한가? 그것을 입증할 수 없다면 일단 채용시험에 응시하여 평가받을 기회를 주는 것이 마땅하다. 신체조건을 이유로 무조건 배제하는 것은 차별이라고 할 수 있다.

ⓒ연합뉴스7월22일 국회에서 열린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촉구 비정규 노동자 기자회견에서정의당 장혜영 차별금지법제정추진운동본부 공동본부장이 발언하고 있다.

차별은 “하찮은 존재로 취급하는 것”

그동안 우리 사회에는 편견이나 단편적인 통계자료를 근거로 특정한 범주의 사람을 배제하는 일이 빈번했다. 하지만 이제 의도적인 차별은 물론이고, 나쁜 의도가 아닌 그저 오랫동안 익숙해져 있던 여러 차별적 관행과도 결별해야 한다. 편의적으로 선택되었던 구분과 분류가 과연 정당한지 재차 삼차 검토하고 그로 인해 자신의 정당한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보호해야 한다. 그런데 차별금지의 이념을 사회에 안착시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경찰 채용 얘기를 좀 더 해보자. 경찰대는 2021년, 순경 공채는 2023년부터 남녀 통합 모집을 시작한다고 한다. 그동안 공고하게 유지되어왔던 남녀 분리 모집이 끝나는 역사적인 순간을 곧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여기까지 오기가 결코 쉽지는 않았다. 2005년 국가인권위원회가 경찰의 성별 분리 모집 폐지를 권고했지만 10년 넘게 수많은 검토와 논의를 해야 했다. 경찰관의 수많은 직무에서 성별 구분이 불가피한지 하나하나 따져봤고, 개인적 차이가 문제일 뿐 성별로 일률적인 구분을 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확인했다. 통합 모집을 할 경우, 그동안 남녀 구분이 명확했던 체력검사 등의 기준을 어떻게 마련할지에 대해서도 신중한 검토가 필요했다. 남녀 분할 모집에 비하면 그 기준을 마련하고 운영하는 것이 훨씬 더 까다롭고 복잡하다. 차별금지법은 그동안 익숙해진 오래된 관행과 결별하기를 요구한다. 낯설지만 우리가 가야 할 평등의 길로 인도하는 것이다. 쉬운 길이어서가 아니라, 어렵지만 반드시 가야 할 길이기 때문이다. 차별금지법 제정으로 새로 발생하는 부담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 사회가 한 걸음 더 나아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부담인 것이다.

그렇다면 차별금지사유는 어떻게 정해지는 걸까? 사실 뚜렷한 기준은 없다. 일단 차별금지사유에는 타고난 것이며 내 몸의 일부인 것이 많다. 인종, 장애, 나이 등이 대표적이다. 많은 나라에서 타고난 요소를 농담의 소재로 삼는 것을 금기하는 문화가 형성되어 있다. 그런데 장애는 선천적인 경우도 있지만 후천적 사고 등에 의해서 갖게 되는 경우도 있다. 사회적 신분은 가문·혈통 등 타고난 신분을 뜻하기도 하지만, 직업이나 지위 등 나중에 자의 또는 타의에 의해 갖게 된 것도 포함한다. 종교는 출생 이후 본인이 자유의지로 선택한 것이다.

여기서 동성애나 트랜스젠더가 선천적이냐 후천적이냐 하는 논쟁이 애초에 번지수를 잘못 짚었다는 것을 잘 알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동성애나 트랜스젠더가 어떤 사람의 정체성을 구성하고 있는지, 자신의 의지에 따라 벗어날 수 있는 정체성인지, 타인이 함부로 그것을 포기하라고 강요할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다. 그 누구도 그 정체성을 포기하고 살아가라고 강요할 수 없다면, 그 정체성을 이유로 사람을 구분하여 부당한 대우를 해서는 안 된다. 요컨대 ‘선천적이냐 후천적이냐’와는 무관하게, 누군가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일부이면서 쉽게 벗어날 수 없으며 누군가에 의해 강요될 수 없는 요소들이 바로 차별금지사유를 구성한다.

〈차별이란 무엇인가〉의 저자 데버라 헬먼 미국 메릴랜드 대학 교수는 차별이란 결국 “타인을 하찮은 존재로 취급하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영어 실력이 부족해서 어느 외국계 회사에 불합격했을 때 유쾌하진 않겠지만 하찮은 대접을 받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하지만 미국에 일하러 간 이주노동자가 영어를 못한다는 이유로 식당에서 불친절한 대접을 받았다면 일종의 굴욕감을 느낀다. 인간으로서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했다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노란 옷을 입었다는 이유로 식당 출입을 금지당했을 때의 느낌은 ‘세상에 별일이 다 있다’ 정도겠지만, 무슬림이 어떤 식당에 내걸린 ‘히잡 출입금지’라는 팻말을 본다면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이 손상된 느낌이 들 수 있다. 차별금지사유로 사람을 구분하는 것의 문제가 바로 여기 있다. 차별의 ‘해악’에 관한 거창한 철학적 논의를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도 차별금지사유로 구분을 당하면 특별히 도덕적으로 나쁘다는 생각이 들고, 인격적인 모멸감을 느끼거나 인간의 존엄성이 손상된 느낌이 든다. 이것이 바로 차별을 금지하는 이유다.

그렇다면 차별금지사유를 얼마나 자세하게 나열하는 것이 좋을까? 현행법을 보면, 한국 헌법에는 성별·종교·사회적 신분 등 3가지, 국가인권위원회법에는 총 19가지의 차별금지사유가 규정되어 있다. 정의당 장혜영 의원이 대표 발의한 차별금지법안에는 23가지, 국가인권위원회의 평등법 예시 법안에는 21가지 사유가 제시되어 있다. 그동안의 사회변화를 반영하여 성별 정체성, 고용 형태, 유전정보, 언어 등이 포함되었기 때문에 사유가 늘어났다. 여기에 경제적 상황, 사회적 지위, 직업, 노조활동, 국적, 문화 등을 더 추가하자는 의견도 있다.

ⓒ연합뉴스재설치 전 훼손된 상태의 광고판. 8월3일 광고판을 훼손한 20대 남성이 검거되었다.

혹자는 한국법이 지나치게 많은 차별금지사유를 제시하고 있다고 말한다. 차별금지의 범위가 지나치게 넓다는 지적이다. 일찌감치 차별금지법을 제정한 국가들은 10개 내외의 차별금지사유만을 둔 경우가 많다. 그렇다고 차별금지법의 포괄 범위가 좁은 것은 결코 아니다. 예컨대 차별금지법상 차별금지사유로 ‘인종(race)’ 하나만 규정되어 있어도 실제로는 출신 국가, 출신 민족, 인종, 피부색, 국적 등에 따른 차별을 금지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성별(sex)’에 따른 차별을 금지하면, 혼인 여부, 임신 또는 출산, 가족 형태 및 가족 상황, 용모 등에 따른 차별도 성차별로 간주될 수 있다. 즉, 규정된 차별금지사유의 종류가 적다고 포괄되는 범위가 좁고, 그 종류가 많다고 그 범위가 넓은 것은 아니다. 대표적인 차별금지사유를 몇 가지만 나열하고 해석에 맡길 것인지, 아니면 한국처럼 구체적으로 차별금지사유를 조목조목 나열할 것인지는 선택의 문제일 뿐이다. 한국처럼 차별금지의 전통이 일천한 나라라면 되도록 자세히 규정하여 무엇이 금지되는 것인지를 분명히 제시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어차피 예시적 나열이며 해석에 맡기는 것도 가능한 선택이지만, 국민에게 정확히 ‘이런 사유로는 사람을 구분하지 마시오’라는 메시지를 던지는 것이야말로 차별금지법의 중요한 교육적 효과다. 2000년 국가인권위원회법을 제정할 때 19가지 차별금지사유를 나열했다. 국민에게 구체적으로 알릴 필요성을 염두에 둔 것일 테다. 지금도 그 문제의식은 타당하다고 생각된다.

세계적으로도 차별금지사유를 자세히 규정하는 추세다. 1966년 당시 사회권 규약에서는 9가지 차별금지사유를 규정했지만, 오늘날에는 변화된 상황을 반영하여 유엔 공식문서(일반 논평)에 의해 8개 사유가 추가되었다. 2000년에 입안된 유럽연합기본권헌장에는 14가지 사유를 규정한다. 최근의 현대 헌법에는 아예 헌법에 차별금지사유를 자세히 나열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2000년대 이후에 헌법을 제정하거나 개정한 국가들은 10개 이상의 차별금지사유를 두는 것이 보통이며, 볼리비아(2009)와 코트디부아르(2016), 에콰도르(2015) 헌법에는 20개 내외의 차별금지사유가 규정되어 있다. 2018년 문재인 대통령이 발의한 헌법개정안에도 7개의 차별금지사유가 규정되어 있다. 차별금지 관련 법률의 기준으로 보면, 유럽 국가들은 대개 20개 내외의 차별금지사유를 두는 것이 일반적이며, 슬로바키아·슬로베니아·세르비아처럼 30개가 넘는 차별금지사유를 두는 경우도 있다. 한국 현행법과 법안의 차별금지사유 숫자가 특별히 더 많아서 문제라는 것은 더 이상 타당한 입론이 아니다.

차별금지사유와 차별금지 영역에 따라 개별적인 차별금지법을 제정하자는 주장도 있다. 차별금지사유가 20개 내외이고 차별금지 영역은 3~4가지인데, 이를 조합하면 100개가 넘는 차별금지법이 제정되어야 한다는 것인가?. 설마 그렇게 많은 차별금지법을 제정하자는 얘기일 리는 없고, 그냥 자신들이 인정하는 사유에 한정된 차별금지법을 제정하자는 주장이라고 생각된다. 사실상 성적 지향이나 성별 정체성이 ‘포함된’ 차별금지법의 제정을 반대하는 것이다.

20여 개 차별금지사유를 단일한 법률에서 다루는 것은 차별의 피해자들을 좀 더 두텁게 보호하기 위함이다. 한 사람의 정체성은 단일하지 않다. 어떤 사람은 여성이자 장애인이고, 난민이자 트랜스젠더이며, 노인이자 비정규직 노동자다. 자신이 실제로 어떤 사유에 의해서 차별받았는지 명확히 입증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여성 장애인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받기도 하고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차별받기도 하지만, 여성이자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차별받는 경우도 있다. 이것을 ‘복합 차별’이라고 하며 장혜영 의원이 대표 발의한 차별금지법안에는 ‘2가지 이상의 성별 등 차별금지사유가 함께 작용하여 발생한 차별행위’를 차별의 범위에 포함시키고 있다. 성차별금지법은 여성을 보호하고, 장애인차별금지법은 장애인을 보호하지만 여성 장애인으로서 차별받은 경우는 사각지대가 될 수 있다. 여성으로서 차별받았다거나 장애인으로서 차별받았다는 사실을 각각 입증하기 어렵지만, 여성 장애인으로서 차별받았음을 입증할 수 있는 경우가 있다. 이러한 다양한 경우의 수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차별금지사유를 ‘포괄적’으로 규정한 단일법을 두고, 차별행위에 대한 조치 역시 단일기구가 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개별적 차별금지법을 제정했던 나라들이 포괄적 차별금지법으로 법을 통합한 이유이기도 하다. 포괄적 차별금지법으로 여러 차별금지사유를 포함하는 큰 우산을 하나 만들고 좀 더 심각하고 중요한 차별에 대해서는 각각의 개별적 차별금지법으로 보완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형태다.

증오범죄는 가중처벌 대상

차별금지사유는 차별의 이유가 되기도 하지만 혐오 표현이나 증오 범죄(hate crime)의 이유가 된다는 점도 기억해두어야 한다. 별다른 이유 없이 타인을 비하하면 그냥 욕설이지만, 성별·장애·종교 등을 이유로 욕을 하면 혐오 표현이 된다. 특별한 이유 없이 기물을 파손하거나 폭행·방화·살인을 하면 재물손괴죄, 폭행죄·방화죄·살인죄지만, 인종이나 성적 지향 등을 이유로 한 기물파손·폭행·방화·살인을 했다면 그것이 바로 증오 범죄다.

증오범죄법이 있는 나라에서는 가중처벌을 한다. 범죄의 동기가 차별금지사유에 해당한다면 그 사유로 차별받는 개인과 집단에게 더 큰 해악을 끼친다고 보기 때문이다. 2016년 3월 서울대에서는 성소수자 학생을 환영한다는 현수막이 찢겼고, 2020년 8월 신촌역에서는 성소수자 차별 반대 광고판이 훼손되었다. 범행 동기가 “성소수자들이 싫어서”였다면 전형적인 증오 범죄다. 차별금지의 원칙은 ‘차별금지사유를 이유로’ 누군가를 욕하지도 말고, 사람을 부당하게 대우하지도 말고, 범죄를 저지르지도 말라는 것이다. 이 중 부당한 대우를 금지하는 차별금지법은 민주주의와 인권을 지향하는 국가들의 기본 법제로 자리 잡혀 있다.

기자명 홍성수 (숙명여자대학교 법학부 교수)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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