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A7월6일 스위스 로잔의 한 철도역에서 마스크를 쓴 승객들이 내리고 있다. 스위스는 7월6일부터 대중교통에서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했다.

7월6일부터 스위스 연방정부는 대중교통에서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했다. 기차·트램·버스는 말할 것도 없고 등산로 케이블카와 호수의 유람선 안에서도 12세 이상이면 누구나 마스크를 써야 한다. 착용하지 않은 것이 적발되면 그 자리에서 내려야 하고, 거부할 경우 상황에 따라 차등적으로 벌금이 매겨진다. 의무화 조치 첫날, 나는 트램에 탔다가 흥미로운 경험을 했다. 분명 전날까지도 90% 이상이 마스크를 쓰지 않았는데, 이날은 승객 대부분이 썼다. 극적인 변화였다. 한 역에서 20대로 보이는 백인 남성이 마스크 없이 트램에 오르자 사람들의 눈길이 그에게로 쏠렸다. 내 맞은편에 앉은 마스크 쓴 백인 노인이 그 남성을 향해 힐끗 눈짓을 하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명백한 비난의 뜻이었다. 흥미롭다고 한 건, 비난 대상이 몇 달 사이에 완전히 바뀌었기 때문이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스위스의 공공장소에서 드물게 마스크를 쓰던 이들 중 상당수는 아시아계였다. 이들은 아시아계라는 이유로 한 번, 마스크를 쓰고 있다는 이유로 또 한 번 차별을 받았다. 이곳에서 마스크는 감염 전 예방책이나 타인을 위한 배려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오히려 바이러스 전파의 상징으로 인식됐다. 마스크를 쓰고 기차나 트램에 타면 이목이 집중됐다. 마스크를 쓰지 않은 사람이 마스크를 쓴 사람을 보고 멀찍이 피해서 갔다.

스위스 연방정부의 마스크 의무화 조치는 유럽 국가 중에서도 상당히 늦은 편이다. 오스트리아, 독일, 벨기에, 스페인 등 주변국에선 이미 4월 말에서 5월 초에 마스크 의무 착용이 시작됐다. 지난 3월 이후 한동안 스위스의 인구당 코로나19 감염자 수는 세계 최고 수준이었지만 마스크 착용은 ‘대중교통에서 러시아워에 권고되는 사항’일 뿐이었다. 실제 착용자는 거의 없었다. 그런데도 일일 신규 확진자 수가 점차 줄어들고 사태가 진정되는 듯했다.

상황이 급변한 건 6월21일 스위스에 공식적인 첫 번째 ‘슈퍼 전파자’가 나오고서다. 클럽에 다녀온 29세 남성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고, 그곳에서부터 다시 감염이 확산됐다. 한 자릿수였던 일일 확진자가 순식간에 세 자릿수로 올랐다. 스위스 연방 보건청은 마스크 의무 착용을 뒤늦게 시행했다. 사람들은 기다렸다는 듯 마스크를 쓰기 시작했고, 그동안 마스크를 써왔던 나는 며칠 새 마이너에서 메이저로 편입된 기분이었다.

의문이 남는다. 왜 이곳 사람들은 최악의 상황이던 3월 중순에도 쓰지 않던 마스크를, 객관적으로는 상황이 나아진 지금 착용할까. 감염 위험도보다 정부 조치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 사람들을 ‘순종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왜 기차 안에선 다들 마스크를 쓰면서 똑같이 붐비는 플랫폼이나 마트에선 쓰지 않을까. 왜 일부 사람들은 아직도 적극적으로 ‘마스크 무용론’을 퍼뜨리고 있을까. 언론 보도와 현지인들의 반응을 바탕으로, 그 이유를 다섯 가지 정도로 추려봤다.

1. 마스크 무용론, 이를 부추긴 정부

마스크 의무화 엿새째인 7월11일, 스위스 취리히 시내 벨뷰 거리에서 한 남자가 행인들에게 인쇄물을 나눠주고 있었다. 앞면에 적힌 내용은 이랬다. “마스크 착용은 비합리적인 데다 위험한 일이다. 마스크는 바이러스로부터 우리 몸을 보호해주지 못한다. 오히려 산소 공급이 줄어들고 습기 때문에 박테리아가 증식해 폐에 더 좋지 않다.” 뒷면에는 “현재 스위스에서 코로나 확진자 수가 증가하는 듯 보이는 것은 검사 수가 늘어났기 때문이지 상황이 나빠져서가 아니다”라고 쓰여 있었다.

다음 날 오후, 스위스 연방 보건청 디렉터인 파스칼 슈트루플러는 자신의 트위터에 이 인쇄물 사진을 올리며 ‘가짜뉴스’라고 썼다. 정부의 코로나 태스크포스 멤버인 감염병학 교수 마르셀 타너도 “(인쇄물은) 과학적 근거가 없는 잘못된 내용이다. 마스크 착용은 거리두기를 할 수 없는 상황에서 확실히 효과가 있다”라고 말했다.

역설적이게도 이런 비과학적 마스크 무용론을 애초에 확산시킨 건 정부다. 팬데믹 초기만 해도 스위스 정부는 마스크의 실효성에 대해 유보적인 태도였다. ‘의료 현장에서 일하는 게 아니라면 반드시 쓸 필요는 없다’고 했다. ‘코로나바이러스 입자가 마스크를 통과하기 때문에 써봤자 효과가 거의 없다’는 정보도 널리 퍼졌다.

ⓒReuter2월28일 스위스 취리히 시내의 한 약국에 마스크가 품절됐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2. 마스크 품귀

정부발 마스크 무용론의 이면에는 팬데믹 초기에 마스크 공급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는 배경이 깔려 있다. 4월 초까지는 어떤 종류건 마스크를 구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했다. 정부는 마스크 수입을 늘리고 생산 기계까지 들여와 공급을 증가시키고 나서야 ‘러시아워에 쓸 것’을 권고하는 쪽으로 슬그머니 방침을 바꿨다. 그리고 재확산 조짐이 일자 바로 마스크를 의무화했다. 스위스 일간지 〈NZZ〉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정부가 초기에 마스크의 효능을 부인한 것은 공급이 부족해서였다고 많은 사람들이 의심하고 있다. 처음부터 마스크가 모자라니 쓰는 걸 자제해달라고 요구했다면 합리적으로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하지만 일관성 없이 둘러대 불신이 커졌다. 코로나에 맞선 싸움의 핵심은 방역 당국에 대한 신뢰다.”

마스크 가격도 수요와 공급의 변화에 따라 널뛰듯 하다가, 지금은 소매점 기준으로 덴털 마스크 한 장에 1스위스프랑(약 1300원) 정도로 자리 잡았다. 일부 스위스 회사들은 본업 대신 마스크 제조업에 뛰어들기도 했다. 원래 신발 밑창을 주로 판매하던 회사 플라바는 현재 매주 40만 개 이상의 마스크를 생산하고 있다. 방사선 차단용 앞치마를 만들던 회사 란츠 안리커는 빨아 쓸 수 있는 마스크 생산에 나섰다. 프라다나 루이비통 같은 고급 브랜드 제품에 자수 넣는 일을 했던 회사 포스터 로너는 현재 스위스 최대 슈퍼마켓 체인인 미그로에 천 마스크를 공급한다.

3. 마스크 착용 경험의 부재

7월12일 일요일 오후, 스페인 발렌시아에 살고 있는 나의 시어머니 레메(70)는 이웃 할머니 엘리세타(89)와 뒷마당에서 만났다. 둘은 마스크를 한 채로 2m 거리를 두고 앉아 대화를 나눴다. 엘리세타가 말했다. “내 90 평생 마스크를 쓰는 날이 올 줄은 상상도 못했지.” 레메가 맞받아쳤다. “죽기 전에 진귀한 경험도 해보고, 좋지 뭘.”

70세 레메에게나 89세 엘리세타에게나 마스크를 쓰는 건 평생 처음 있는 일이다. 유럽에서 ‘마스크 쓴 일반인’의 기록은 1918년 스페인 독감 때가 마지막이다. 이후 마스크 착용 습관은 사실상 사라졌다. 아시아와 유럽의 가장 큰 차이점이 그것이다. 아시아에선 여러 이유로 마스크 착용이 낯설지 않다. 가장 큰 두 가지 요인은 미세먼지로 인한 대기오염, 그리고 2002년 겨울 발발한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다. 한국에선 미세먼지 차단에 어떤 종류의 마스크가 효과적인지, 어떻게 착용해야 하는지에 대해 많은 정보가 알려져 있다. 홍콩에선 사스 유행 당시 인구 70%가 공공장소에서 마스크를 썼다. 사스는 총감염자 8096명이 발생하고 774명이 사망한 뒤 2003년 7월 종식됐지만, 이후 아시아에선 마스크가 전염병 예방 조치로 확실히 자리를 잡았다.

유럽은 다르다. 마스크는 결핵이나 폐암 같은 병에 걸린 환자가 쓰는 것이라는 인식이 퍼져 있다. 42세의 한 스페인 남성은 “유럽인이 마스크를 예방 목적으로 쓰기까지는 넘어야 할 정신적 장벽(mental barrier)이 존재한다”라고 말했다.

4. 개인들의 눈치 보기

집단적 경험의 부재는 개인의 선택에도 영향을 미친다. 취리히에 사는 34세 스위스 남성 K는 정부의 의무화 조치 전에 사람들이 마스크를 쓰지 않았던 가장 큰 이유가 ‘혼자 튀고 싶지 않아서’일 것이라고 했다. 그는 “팬데믹 초기에 마스크를 쓴 적이 있는데, 길에서 사람들이 나를 계속 쳐다봐 불편했다. 남들을 따라 하긴 쉽지만 혼자 새로운 걸 시작하긴 어렵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41세 스위스 남성 H는 “마스크 착용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유럽 사람도 많겠지만, 실제로 행동으로 옮기고 집단적인 문화가 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생각과 행동의 괴리는 과도기적 현상을 만들어낸다. 독일은 스위스보다 앞서 마스크가 의무화됐지만 실제 쓰는 사람의 비중은 스위스보다 낮은데, 마스크를 쓰는 것이 조롱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6월 말 독일의 한 트램에서 마스크를 쓴 여성에게 다른 승객이 “아픈 거냐, 아니면 늙은 거냐”라고 시비를 걸었다. 이 여성은 〈NZZ〉와의 인터뷰에서 “독일에서 마스크를 쓴다는 건 대놓고 자신이 고위험군에 속하거나 아니면 히스테리컬한 사람이라고 시인하는 꼴이다”라고 말했다.

5. 개인의 자유

마스크를 쓰는 것이 코로나19 전파를 막는 데 도움을 준다는 논문이 여러 나라에서 속속 나오고 있고, 각국 정부와 WHO도 초기의 입장을 바꿔 마스크 착용의 과학적 근거를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마스크를 강제로 착용하게 할 이유는 못 된다는 주장도 여전히 건재하다. 마스크가 개인의 선택이 아닌 의무 사항이 될 경우 정부의 감시 기능이 강화되고 개인정보가 더 쉽게 노출된다는 논리다.

이와 관련해 최근 스위스의 대표적 언론사 두 곳이 상반된 견해를 보여 눈길을 끌었다. 타미디어 그룹은 정부의 마스크 의무화 조치 이전, 사람들이 붐비는 곳에 카메라를 설치하고 인공지능을 이용해 마스크 착용 비율을 조사했다. 베른, 로잔, 취리히 등 대도시의 대중교통에서 마스크를 쓴 사람의 비중이 6%밖에 되지 않았다. 이 그룹의 계열사 일간지인 〈타게스 안차이거〉는 이를 보도하면서 마스크를 쓰지 않은 채 역내를 활보하는 사람들의 얼굴을 흐릿하게 처리해 실었다. 기사는 조사 과정에서 안면 인식 기능이 사용되지 않았고, 원본 데이터는 안전하게 보존된다고 밝혔다.

그런데 또 다른 일간지 〈NZZ〉는 이런 조사를 두고, 윤락이나 도박 등을 단속하는 ‘풍속경찰(Sittenpolizei)’ 같은 행위라며 사설에서 강하게 비판하고 나섰다. “이런 종류의 감시는 중국에서 행해져 많은 비난을 받고 있는 방식이다. (마스크를 쓰지 않는 것을 비난하는) 이런 맥락에서 자신의 모습이 공개적으로 전시되는 것에 동의할 사람은 없다.” 〈NZZ〉는 또 “디지털 기술에 비판 없이 단순하게 빠져들면 문제가 생긴다. 코로나19 이후 데이터 저널리즘의 영역에서 이런 경향이 더욱 가시화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이유가 무엇이 됐든, 유럽에서 마스크가 ‘뉴 노멀’이 되기까지는 시간이 좀 더 걸릴 듯하다.

기자명 취리히·김진경 (자유기고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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