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 Photo2017년 10월 아프가니스탄 카불에서 보건 요원이 어린이들에게 소아마비 백신을 투여하고 있다.

열두 살 아이가 여름방학을 맞아 캠프에서 수영을 배우는데, 새벽 3시에 “뭘 잘못 먹었나 봐요”라며 토하기 시작한다. 열과 오한으로 누워 있다가 아침엔 기운이 없어 일어나지도, 이를 닦지도 못한다. 하루이틀 사이에 더 악화되어 근육과 관절에 극심한 통증이 발생하고 숨마저 쉬기 어렵다. 병원에 가면 ‘철폐’라고 불리는 통 안에서 도움을 받아 숨을 쉬어야 한다. 아이는 격리되고 감염 위험 때문에 부모에게도 면회가 허락되지 않는다. 그런 병이 우리 동네에 돌기 시작하다가 여기저기서 숱하게 감염자가 발생한다.

작가 필립 로스의 마지막 작품 〈네메시스〉는 미국 뉴저지주 뉴어크에서 발생한 ‘폴리오’ 감염이 기본 배경이다. 1944년 정부의 시책은 다음과 같았다. “최근 폴리오 발병으로 뉴어크 어린이들이 위험에 처한 상황을 고려하여 다음 사항에 각별히 주의를 기울여주시기 바랍니다. 세면장 비품이 충분치 않으면 즉시 주문해주십시오. 세면대, 변기, 바닥, 벽을 매일 살균제로 씻고 모든 것이 흠잡을 데 없이 청결한지 확인하십시오. 화장실 시설은 감독하에 전체를 철저하게 청소해야 합니다.”

시장은 걱정하는 시민들을 찾아가 시가 공공장소 및 사적 장소에서 정기적으로 오물과 흙과 쓰레기를 치우기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노력하고 있다고 밝힌다. 쓰레기통 뚜껑을 단단히 닫아두고, 방충망을 잘 수리해 ‘파리 잡기’ 캠페인에 동참하라고 강조했다. 쓰레기를 실어가는 작업은 이틀에 한 번으로 늘리고, ‘위생 검사관’들은 주택 지구를 돌며 파리채를 무료로 나누어준다. “아무튼 파리를 무자비하게 때려잡으세요. 파리가 얼마나 나쁜 짓을 하는지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신문 1면에는 ‘일일 폴리오 게시판’이 실렸다. 환자 격리 알림판의 내용도 소개한다. “뉴저지주 뉴어크 보건국. 접근금지. 이 집에는 폴리오 환자가 있음. 보건국의 고립 및 격리 규칙이나 규제를 어기는 사람, 또는 허가 없이 이 카드를 제거하거나 훼손하거나 차단하는 사람에게는 50달러 벌금을 부과함.”

시의 위생반이 격리된 집을 순찰한다. 매일 지역 라디오 방송국에서는 주민들에게 시에 발생한 새로운 환자의 수와 위치를 알려준다.

놀이터가 폐쇄되고 아이들이 모이는 곳은 모두 닫는다. 영화관도 열여섯 살 이하는 출입금지, 시내 수영장과 공공 도서관도 문을 닫았다. 감염병 유행이 더욱 심해지면 지역을 통째로 격리한다. 바리케이드를 쳐서 아무도 드나들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버스 기사들과 우편배달부, 트럭 기사들도 격리구역으로 들어가지 않으려 한다.

자신과 다른 이들은 공격의 대상이 되었다. 반유대주의자들은 폴리오가 퍼지는 것이 유대인 때문이라며 그들을 고립시켜야 한다고 외친다. 심지어 폴리오 유행병을 없애는 가장 좋은 방법은 유대인을 모두 그대로 둔 채 그 지역을 태워버리는 것이라는 주장까지 나온다. “이 도시에서 태어났지만 평생 이런 건 겪어본 적이 없어. 모든 곳에서 모든 게 무너지는 것 같아”라는 비탄이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

당시의 사람들은 무엇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을까? 어떤 이들은 ‘아이들이 마시는 우유를 검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폴리오는 더러운 소와 감염된 우유 때문에 생기는 것이니까! 다른 이는 우유병을 제대로 소독하지 않아서 폴리오가 확산된다는 의견. ‘(우유병을) 왜 훈증 소독하지 않는 거지? 왜 살균제를 안 쓰는 거야?’ 거리에 화학약품을 뿌려 폴리오를 제거하자거나 ‘청결이 유일한 치료법’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사실’과 ‘사실이 아닌 것’, ‘과학’과 ‘과학이 아닌 것’이 명확하게 갈리지 않은 시대였다.

그 시절 폴리오로 진단이 되면 바로 감염병동으로 옮겨졌고 면회가 금지되었다. 엄청난 두통, 몸의 기운이 다 빠지는 피로, 심한 구토, 고열, 견딜 수 없는 근육통. 다시 마흔여덟 시간이 지나면 마비가 나타난다. 수 주 뒤엔 김을 쐰 모직 온습포로 마비된 사지를 감싸는 치료를 받게 된다. 호흡기 근육이 영향을 받지 않으면 ‘철폐’ 안으로 들어갈 필요는 없었다. 이후에는 폴리오 재활치료로 유명한 필라델피아의 시스터 케니 인스티튜트로 옮겨져 온습포 치료와 함께 팔다리와 등의 근육을 펴는 고통스러운 치료를 받게 된다.

한국에서도 과거 매년 2000건 이상 발생

〈네메시스〉 속 주인공은 열네 달 동안 케니 인스티튜트에서 재활치료를 받아 점차 오른팔의 기능을 완전히 회복하고 두 다리도 부분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되었지만, 뒤틀린 아래쪽 척추는 몇 년 뒤 수술로 교정해야 했다. 수술에서 회복되는 과정에서 그는 등에 여섯 달 동안 체간 캐스트(척추 손상 등의 교정에 사용되는 장치)를 달아야 했고 밤낮으로 할머니의 보살핌을 받았다.

폴리오는 과거 소아마비라 불린 폴리오바이러스에 의한 감염병이다. 잠복기는 대략 7~10일(최소 3일 최대 35일)이고, 입으로 들어가 장에서 증식하며 신경계를 침범해 마비를 일으킨다. 감염자의 90%는 무증상이거나 알지 못하고 지나간다. 증상이 있는 사람은 발열, 피로, 두통, 구토, 목 뻣뻣함, 사지 통증의 증상을 보이는데 2~10일간 지속되고 대개는 회복한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의 경우엔 마비가 유발되어 영구 장애로 남는다. 마비가 일어난 사람 중에서 5~10%가 호흡마비로 사망하는데 발병 연령은 5세 이하가 많다.

예방접종이 시행되기 이전 선진국에선 폴리오가 주로 청소년에게서 발생했다. 개발도상국에서는 영아에게 많이 감염되었다. 바이러스는 감염자의 대변으로 배출되므로 위생이 좋지 않은 곳에서 빠르게 확산된다. 한국은 1960년대 초까지 폴리오가 매년 2000건 이상 발생했다. 1962년 백신 도입 후 급격히 감소했고 1980년대 초에 5명이 감염된 이후 보고가 없다.

어느 것이 더한 공포일까? 폴리오인가, 2020년의 코로나인가? 급격한 코로나 유행의 마당에서 대조해볼 필요 없는 두 병에 어리석은 질문을 한다. 1944년 그 시기 사람들은,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을 알지 못했다. 폴리오는 사람들이 매년 여름 함께 살아야 하는 심각한 병이었다. 백신은 1955년에 개발되었다. 당시 사람들이 폴리오 역시 박멸 가능한 바이러스 감염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공포를 억누를 수 있었을까? 그렇지는 않았을 듯하다. 그저 고스란히 공포와 상실을 겪으며 세월을 견딜 뿐.

코로나19 시대에도 많은 이들이 새로운 바이러스의 유전자를 규명하고 진단하며, 전파 경로를 확정하고, 치료제를 찾으려 애쓰고 있다. 내가 지금 모르는 것을 알게 될 후세에게 ‘우리가 그런 시대를 힘들었지만 현명하게 관통했다’고, ‘급격한 죽음에 두려워했지만 살아남은 자는 또 자신의 삶을 살아야 했다’고, ‘팬데믹 가운데서도 삶은 이어졌다’고, 이 글로 전한다.

기자명 최영화 (아주대병원 감염내과 교수)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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