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조남진

접속은 어렵지 않았다. 입장과 동시에 메시지가 쏟아졌다. 나이와 성별만 위장해 밝혔을 뿐이다. 박슬기 작가(31)는 지난해 약 3개월간 ‘15세 소녀’로 살았다. 랜덤 채팅방을 드나들며 10대 성 매수자들의 메시지를 수집했다. ‘오빠가 필요하면 대답해’ ‘술 마셔봤니?’ ‘애기 우리 집으로 올래?’ 따위는 점잖은 편에 속했다. 수집한 텍스트를 모아 시폰 원단에 분홍색 자수로 ‘박제’했다. 너무 노골적인 메시지는 하트(♡)로 대신했다. 작품 제목은 〈러브레터〉. 경제적·정서적으로 취약한 10대의 성을 구매하려는 자들이 말하는 사랑이 무엇인지 폭로하고 싶었다.

분홍색 실로 자수를 놓은 이유도 명확하다. “지난해 대구의 성매매 집결지인 자갈마당이 철거될 때 근처 레지던시에 입주 작가로 머물렀어요. 방 안을 볼 기회가 있었는데 온통 분홍색으로, 키티 용품으로 꾸며져 있더라고요. 나중에 활동가 분들에게 들어보니 그게 여성의 취향이 아니라 남성들이 원하는 이미지라고 하더라고요. 인형 같고, 소녀 같은 그래서 남성에게 복종하는.”

비슷한 시기 또 다른 작업을 시작했다. 여성혐오나 여성 대상 범죄 기사를 매일 검색했다. 적으면 열다섯 개, 많으면 서른 개 정도였다. 헤드라인과 링크를 모아 출력했다. 기사 댓글에서 ‘당신 잘못이 아닙니다’ ‘힘이 되고 싶어요’ 같은 위로와 연대의 목소리를 발견하면 이 역시 따로 수집했다. 현실을 없던 일로 만들 수는 없지만 연대와 위로의 마음을 그 위에 겹칠 수는 있었다. 두 장의 종이를 포개 종이학 2000마리를 접었다. ‘종이학이 소원을 이뤄준다’는 이야기를 믿고 싶었다. 큰 유리 항아리에 담긴 종이학은 설치미술이 됐다. 작품 제목인 〈바람난 사람〉(Hope, I’m Person)은 ‘바람’이라는 단어에 담긴 일탈과, 여성을 사람으로 대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중의적으로 담았다.

“여성이 자기 목소리를 내면 ‘나댄다’고 평가받는 분위기 속에서 저도 성장했어요. 그걸 누군가는 좋게 포장해서 ‘예민하다’고 하기도 했고요. 그런데 어느 날 어떤 분이 그러더라고요. 예민한 게 아니라 예리한 거라고. 그 말이 참 위로가 되었어요.” 박 작가는 최신의 페미니즘 담론을 다양한 매체로 실험하고 있다. 6월30일까지 서울 프로젝트 스페이스 영등포에서 진행된 이번 전시는 박 작가의 두 번째 개인전이다.

기자명 장일호 기자 다른기사 보기 ilhosty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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