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아동 성폭력 추방을 위한 시민모임 ‘발자국’ 회원들이 아동 성폭행 추방을 위한 촛불집회를 하고 있다.

일명 ‘n번방 사건’으로 불리는 기사를 읽고 심장이 내려앉았다. 2008~2017년 10년간 형사·공판부 검사로 일하며 접했던 많은 사건들이 불현듯 떠올랐다. 성폭력 사건을 오래 전담했던 만큼, 이 사건에서 내 과오도 있지 않을까 두려웠다. n번방은 갑자기 나타난 게 아니기 때문이다. 나와 가까웠던 사람이, 인터넷 카페의 모르는 쪽지가, 랜덤 채팅앱의 채팅들이 모이고 모여 소라넷이 되고, 다크웹 사건을 낳았고, 지금의 n번방이 탄생했다.

검사로 일하던 시절의 일이다. 그는 나를 만나자마자 울음을 터뜨렸다. ‘○○대학 ○○학번 ○○○’라는 제목의, 얼굴이 나오지 않는 여성 나체 동영상 파일이 모 사이트에 게시되었다고 신고한 피해자였다. 3년 전쯤 남자친구와 동영상을 찍었는데 그 동영상 같다고 했다. 피해자는 그 파일 때문에 학교도 휴학했다며 계속 울었다. 피해자가 지목한 남자친구를 조사했으나 휴대전화기가 바뀌었고 사용한 아이피는 그 남자친구의 거주지 등과 무관한 지역의 PC방이었다. 수사는 벽에 막혔는데 방법을 찾지 못했다. 피의자는 심지어 동영상 속 여성과 남성이 피해자와 자신이 아니라고 했다. 피해자도 동영상 속 여성이 자기인지 아닌지 불명확하다고 했다. 파일명이 자기 인적사항인데, 동영상 속 여성이 진짜 자신인지 아닌지가 중요하냐고 물었다. 결국 ‘혐의 없음’ 처분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짓’을 할 만한 사람은 따로 없다. 내 앞에 앉은 피의자 ㄱ은 말간 얼굴, 반듯하게 생긴 청년이었다. 그가 저지른 사건 내용은 끔찍했다. 그는 가출한 중학생이 잘 곳을 구하는 인터넷 카페 게시글을 보고 쪽지를 보냈다. 경찰이라고 거짓말하여 피해자의 사진 및 인적 정보를 얻었다. 그는 인적 정보를 확인하겠다며 피해자를 만났고, 피해자를 일주일 넘게 감금하고 성범죄를 반복적으로 저질렀다. 사진을 찍고 그 사진으로 도망칠 수 없도록 협박했다. 피의자는 좋은 가정환경에서 태어나 유명 대학을 졸업하고 행정고시를 준비하고 있었다. 피의자의 가족들은 그가 그런 짓을 했을 리가 없다며 얼마나 성실하고 착한 사람인지 계속해서 탄원했다. 그런 범죄를 저지를 사람은 따로 정해져 있지 않다고 말하고 싶었다.

ⓒ연합뉴스2016년 4월7일 서울지방경찰청 사이버안전과 최재호 경감이 국내 최대 음란 포털사이트인 ‘소라넷’의 해외 서버 폐쇄 과정을 브리핑하고 있다.

현재의 법과 시스템을 고쳐야 하는 이유

피의자 ㄴ은 랜덤 채팅앱을 이용했다. 중학생 청소년을 유인하여 성매수를 하고, 피해자가 두 번째 만남을 거절하자 동영상을 촬영했다며 협박했다. 수사 과정에서 그의 자동차 트렁크에서 휴대전화 4대를 압수했다. 휴대전화에서 수많은 성관계 동영상이 나왔다. 그는 자동차 곳곳에 휴대전화기를 숨기는 방식으로 피해 여성들의 영상을 몰래 촬영한 사실이 확인되었다. 피해 여성 몇몇의 인적사항을 확인해 연락을 취했다. 동영상이 퍼질까 봐, 가해자가 보복할까 봐, 미성년자들은 부모가 알까 봐 두렵다고 했다. 어떤 피해자는 가해자 처벌보다 동영상만이라도 먼저 삭제할 수 없느냐고 물었다. 전화기 너머 목소리가 떨렸다. 인터넷이 제일 무섭다고 했다.

이 악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라도 현재 수사되고 있는 사건은 적용 가능한 모든 법을 적용해서 엄벌해야 한다는 건 우리 모두 공감한다. 그러나 현재 법과 시스템으로는 날로 복잡하고 잔혹해지는 디지털 성범죄에 대응하기 어렵다. 시급히 필요한 입법이나 제도 개선책이 무엇이 있을지 검사와 변호사로 일하면서 수사와 재판 가운데서 느꼈던 몇 가지를 정리해봤다.

경찰과 검찰에 디지털 성폭력 전담 수사팀이 필요하다. 이른바 n번방 사건이 터지면서 경찰에서는 ‘디지털 성범죄 특별수사단’을, 검찰에서는 ‘디지털 성범죄 특별수사 TF’를 만들고, 법무부도 TF를 꾸렸다. 여론이 가라앉고 난 뒤에 이러한 팀들이 계속 존재할 수 있을지 우려스럽다. 나날이 새롭고 복잡하게 발전하는 디지털 성폭력 사건 특성상 외국과의 공조나 여러 정부 부처 간의 협조, 포렌식 등 전문기술이 필요하다. 또 수사에 많은 인력과 시간이 소요되는 점을 고려하면 디지털 성폭력 범죄의 속성을 잘 이해하는 숙련된 수사 인력이 배치된 전담 수사팀이 필요하다. 기존에도 성폭력 전담 수사관 또는 검사 등이 있었으나 수사기관 내 인사이동 같은 이유로 인력이 자주 교체되어왔다. 전문 수사인력의 필요성을 고려할 때 업무 변경을 최소화하면서 전담 수사팀이 지속성을 가지고 수사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연합뉴스지난 3월5일 디지털 성범죄를 막기 위한 ‘성폭력처벌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법률용어도 변경되어야 한다. 아동·청소년에게 협박 등을 통해 신체 부위를 노출하도록 하거나 자신의 신체 부위를 만지게 하는 행위는 아동·청소년에 대한 성폭력 범죄에 해당된다. 아동·청소년으로 하여금 자신의 신체를 촬영하여 보내도록 하는 행위도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아청법)상 음란물 제작·배포죄로 처벌 가능하다. 문제는 아청법이 이를 ‘음란물’로 표현하고 있는 점이다. 이러한 영상을 찍은 아동·청소년들이 진의로 영상 촬영과 배포 등에 동의했다고 보기 어려운 건 상식이다. 절대적으로 보호되어야 하는 아동·청소년이 등장하는 영상을 ‘음란물’로 규정할 경우 이 범죄의 실체가 반영될 수 없다. 음란물이 아닌 ‘성착취’ 영상으로 법률용어를 변경해야 한다.

아청법 제2조 제5호는 아동·청소년 이용 음란물에 대해 ‘아동·청소년 또는 아동·청소년으로 명백하게 인식될 수 있는 사람이나 표현물이 등장하여 제4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행위를 하거나 그 밖의 성적 행위를 하는 내용을 표현하는 것’으로 정의하고 있다. 법원은 행위자가 이용 음란물에 등장하는 인물이 아동·청소년임을 인식할 수 있어야 범죄가 성립한다고 보고 있다. 이 때문에 실제 등장인물이 아동·청소년이라고 할지라도 행위자가 그 사실을 인식할 수 없으면 아청법 위반죄가 되지 않는다. 아청법의 입법 목적이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성적 행위를 한 자를 엄중하게 처벌함으로써 성적 학대나 착취로부터 아동·청소년을 보호하고, 아동·청소년이 건강한 사회 구성원으로 성장하도록 하려는 데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아동·청소년으로 인식되는 표현물 외에 실제 아동·청소년이 나오는 경우까지 포함하도록 법률 변경이 필요하다.

n번방 사건에서도 나타나듯 피해 아동·청소년들은 가해자들에게 피해자 스스로 연락을 하거나 영상 등을 보내주었기 때문에 ‘피해자가 잘못했다’라는 말을 반복해서 듣게 된다. 이는 피해자가 자책이나 두려움 때문에 범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큰 이유가 된다. 아청법 제2조와 제13조 제1항은 성매수의 상대방이 된 아동·청소년을 ‘대상 아동·청소년’으로 규정하고, 이러한 ‘대상 아동·청소년’은 같은 법 제40조에 의해 소년법 등의 보호처분을 받도록 되어 있다. 그래서 성착취를 당한 아동·청소년은 자신도 처벌을 받을까 봐 구조를 요청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협박을 당하거나 피해를 반복해서 입게 된다. 아동·청소년의 성을 사는 행위는 아동·청소년 성착취의 한 형태라는 점을 법이 분명히 해야 한다. 피해자들이 성착취로부터 탈출할 수 있도록 성매수 행위의 상대방이 된 아동·청소년들을 보호처분의 대상이 아니라 피해자로 규정하여 보호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해야 한다.

성착취를 위한 유인 행위도 처벌해야

이제 ‘더 큰 범죄’가 발생할 때까지 기다릴 수 없다. 아청법 제13조 제2항은 ‘아동·청소년의 성을 사기 위하여 아동·청소년을 유인하거나 성을 팔도록 권유한 자’를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나 n번방 사건처럼 성착취를 위하여 유인하는 행위는 처벌 규정이 없다.

성착취 영상 등이 일단 제작되면 언제라도 무차별적으로 유통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제작 전 단계에서부터 범죄를 차단해야 한다. 아동·청소년과 채팅 등을 하며 성적인 사진을 보내라고 하거나 사진 등을 매수하는 행위 등, 성착취를 위한 유인 행위 자체도 처벌하는 규정을 만들어 잠재적 성범죄로부터 아동·청소년을 보호하고, 더 큰 범죄로 확대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또한 소지뿐 아니라 파일 재생, 시청이나 관람, 채팅방 공유 행위 등 다양한 행위 유형에 대한 처벌 규정도 필요하다. 아청법에 배포·제공·전시·상영·소지한 자에 대한 처벌 규정은 있지만 다운로드하지 않은 채 채팅방 등에서 배포받거나 시청·관람한 경우까지 규정하고 있지는 않다. 현재 수사 중인 사건들은 소지로 기소할 경우 그 법적 해석을 두고 다툼이 있을 가능성도 있다. 물론 처벌 공백이 생기는 것은 정의에 반하지만 형법의 명확성 원칙을 고려하면 소지의 지나친 확대해석도 바람직하지 않다. 디지털 파일의 다양한 공유, 재생 방법에 대한 처벌 규정을 만들어 발전하는 범죄 방법에 대비해야 한다.

누군가는 n번방 사건을 ‘본능’이라고 옹호하기도 하고 ‘표현의 자유’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 본능과 자유는 타인의 피해와 고통 앞에서 멈추어야 한다. 지금까지 우리 법과 시스템은 n번방과 유사한 범죄에 대해 범죄의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했기에 피해자를 보호하고 재범을 막기에 부족했다.

몇몇 법 조항을 바꾼다고 범죄가 사라지지 않겠지만 입법 미비로 이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이 행위에 책임지지 않게 되면 이 사건보다 더 잔혹하고 교묘한 방법으로 디지털 성범죄가 증가할 것이다. 성착취 영상물 제작·유포·소지자들에 대한 신상 공개·전자장치 부착 등 부가처분 규정 신설, 피해 회복을 위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도입 등 실효성 있는 대책을 마련하려면 앞으로도 갈 길이 멀다. 그러나 불가능하지는 않다. 아동과 청소년들이 행복하고 안전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많은 여성들이 성범죄의 공포로부터 안심할 수 있도록, 이제라도 바꾸면 된다.

기자명 오선희 (법무법인 혜명 대표변호사)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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