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자료2018년 9월 롯데월드타워에서 바라본 서울 강남의 아파트 단지 모습.

A라는 사람이 전세보증금 3억원을 내고 B 아파트에 살고 있다고 가정해보자. A씨는 현재 은행에서 1억원 전세자금대출을 받은 상황이고, 전세 계약이 만료된 이후 서울에 D 아파트를 매입해서 이사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이 아파트 가격은 4억원. 이곳에는 C라는 세입자가 3억원에 전세를 살고 있다. A씨는 D 아파트의 ‘갭(매매가와 전세가의 차이)’인 1억원을 지불하고 D 아파트를 매입했다. A씨와 C씨 모두 1년 후가 전세 만기라 그때까지 A씨는 현재 거주 중인 B 아파트에 계속 머물 생각이다. 1년 후 C씨에게 돌려줄 D 아파트 전세보증금 3억원은 현재 살고 있는 B 아파트 전세보증금 차액(전세자금대출 상환금 1억원을 제외한 나머지 2억원)과 각종 추가 대출을 동원해 마련하려 한다. 계획대로라면 A씨는 드디어 꿈에 그리던 D 아파트에서 ‘자가 거주’를 할 수 있다. 1년 사이 D 아파트 시세가 조금이라도 오른다면 자산이 늘어나는 효과까지 있을 것이다.

A씨의 이런 계획은 갭투자를 통한 부동산 투기일까? 따져보면 ‘갭투자’는 맞지만 ‘투기’라고 보기는 어려울 듯하다. 갭을 활용한 매매 거래를 했기 때문에 갭투자에는 해당하지만, A씨가 1년 뒤 D 아파트에서 실거주할 계획이라 실수요 성격도 강하다. 이런 계획들이 잠시 동안 혼란에 빠졌다. 6월17일 정부가 ‘주택시장 안정을 위한 관리방안’을 발표한 직후부터다.

‘6·17 대책’으로 불리는 이번 정책은 지난해 ‘12·16 대책’ 이후 반년 만에 등장했다. 핵심은 크게 세 가지다. 투기 수요 유입 차단, 재건축 등 정비사업 규제 정비, 법인을 활용한 투기 규제 확대 등이다. 정책 발표 당시 정부가 가장 중점을 둔 것은 법인 규제였다. 그동안 개인에 비해 상대적으로 규제가 느슨했던 법인의 부동산 매매에 대해 대출 규제를 강화하고 세율을 높이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이날 발표의 다른 측면이 부각되었다. 다양한 투기 수요 억제책 가운데 전세자금대출 규제가 가장 떠들썩하게 주목받았다. 정부는 중저가 아파트(매매가 3억원 초과 9억원 이하)의 투기성 수요 가운데 갭투자가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정부가 말하는 갭투자는 세입자가 전세나 반전세로 거주하고 있는 집을, 보증금을 떠안은 채 구입하는 경우를 통칭한다. 이 기준에 따르면 앞서 사례로 든 A씨 역시 갭투자를 한 것이 맞다.

올해 1월 서울 지역의 갭투자 매매 비율은 전체 매매 건수 가운데 48.4% 수준이었다. 5월에는 52.4%로 증가했다. 이렇게 늘어나는 갭투자가 모두 A씨 같은 실수요 성격이라고 보긴 어렵다. 갭투자가 늘어나는 동시에 전세자금대출도 함께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우리·하나·NH농협)의 전세자금대출 잔액 규모는 올해 5월 기준 90조원을 넘어섰다. 2019년 12월 당시 잔액이 81조원대였던 점을 감안하면 5개월 사이에 10% 이상 급증한 셈이다. 이 때문에 정부는 전세를 계속 살면서 다른 집에 갭투자하는 이른바 ‘투기성 갭투자’가 상당수 존재한다고 판단한다. 그래서 내민 규제책이 전세자금대출 회수다. 전세자금대출을 받고서 투기지역 및 투기과열지구에서 3억원을 초과하는 아파트를 구입할 경우 전세대출을 즉시 회수한다는 내용이다.

불만의 핵심은 ‘레버리지(대출) 공정성’

당장 ‘갭투자를 전부 투기로 몰아붙인다’라는 반응이 뒤따랐다. A씨처럼 ‘내 집 마련’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전세대출이 회수될지 모른다는 ‘공포’가 번졌다. 금융위원회와 국토교통부는 6월22일 추가 보도자료를 발표하며 “본인의 전세대출 만기 시기와 새로 구입한 아파트의 기존 임대차계약 만기일 중 먼저 도래하는 시기까지 전세대출을 이용할 수 있다”라고 추가 해명했지만 그만큼 전세대출 제한 규제에 대한 대중의 혼란은 컸다.

투기성 수요를 막기 위해 전세자금대출 규제를 강화한 것은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12·16 대책에서도 9억원 이상 아파트를 구입할 때 전세자금대출을 이용한 경우 대출을 회수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6·17 대책은 그 기준을 3억원 이상 아파트로 넓혔다. 그만큼 갭투자가 광범위하게 퍼졌고, 서민 주거 안정과 연관된 중저가 아파트 가격에 상승 압력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연합뉴스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이 6월21일 부동산 대책, 한국판 뉴딜 등에 대해 브리핑을 하고 있다.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은 6월21일에 열린 취임 1주년 브리핑에서 6·17 대책을 언급하며 “갭투자는 한국 부동산 시장의 특이한 현상이고, 시장 안정을 위협하는 요소가 된다”라며 추후에도 갭투자를 계속 주시하겠다는 뜻을 보였다.

투기성 갭투자 규제에 대해 여전히, “내 집 마련을 어렵게 한다”라는 반응이 뒤따른다. ‘전세대출도 결국 개인이 동원할 수 있는 대출의 일종인데 너무 심하게 규제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러나 전세대출은 주택담보대출과 성격이 조금 다르다. 주택담보대출을 받으려면 ‘집의 소유권’ 같은 확실한 담보물을 은행에 담보로 제공할 수 있다. 그러나 전세대출에서는 ‘집주인에게 건넨 전세금을 확실히 돌려받을 수 있다’는 내용의 보증서(주택금융공사 같은 국책 보증기관이 발급)가 담보다. 그만큼 ‘정책’금융적 성격이 강한 대출이다. 이런 전세자금대출이 간접적으로 주택 구입에 활용되는 것은 본래 목적에서 벗어난다는 게 규제 당국의 시각이다.

추가 해명 자료까지 발표했지만, 전세자금대출 규제에 대한 반발 심리는 쉽사리 가라앉지 않고 있다. 기존 자산 가격이 상승할수록 후발 주자는 기회를 놓쳤다는 심리가 점점 강해지기 때문이다. 이는 일종의 ‘레버리지(대출)에 대한 공정성’을 요구하는 목소리로 표출된다.

순자산 1억원으로 주식시장에서 1억원 수익을 내기 위해서는 자산 가격이 100% 올라야 한다. 신용거래를 동원할 수도 있지만 위험도가 매우 크다. 그러나 부동산은 (대출을 통해) 1억원으로 3억원짜리 집을 산 뒤, 자산 가격이 33%만 상승해도 순자산이 1억원 증가하는 효과를 얻는다. 상대적으로 안전하게 주택담보대출 같은 레버리지를 동원할 수 있다.

문재인 정부의 투기 수요 억제책 대부분은 이 같은 레버리지 효과를 줄이는 방식으로 펼쳐졌다. 대출 규제가 반복될수록 ‘먼저 레버리지를 확보할수록 이익을 본다’는 관점이 고착화되기 시작했다. 이 와중에 서울을 비롯한 인기 지역 아파트 가격은 크게 올랐다.

내 집 마련이 시급한 후발 주자일수록 ‘앞서 집을 산 사람은 레버리지를 동원해 싸게 집을 샀지만, 나는 레버리지도 막히고 집값도 비싸졌다’는 박탈감이 더해진다. 이번 6·17 대책 역시 정책 시행일 이전까지 전세자금대출을 동원한 사람들에게는 규제가 소급 적용되지 않는다. 매수 대기자들이 느끼기에는 우회로가 점점 막히고 있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소득 격차보다 자산 격차가 더 커지는 상황이 이 같은 자산 증식에 대한 조급증을 키우고 있다. 통계청이 지난해 12월 발표한 ‘2019년 가계금융복지 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체 순자산의 43.3%를 상위 10% 가구가 차지한다. 2018년 통계에 비해 1%포인트가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하위 20% 가구의 순자산은 2018년에 비해 3.1%포인트 감소한 것으로 집계됐다.

부동산으로 대표되는 자산 차이가 계급 격차의 핵심이 되었고, 대중들도 자산 격차에 민감해하며 끊임없이 ‘사다리’를 찾고 있는 상황이다. 2017년 비트코인 열풍, 2019년 서울 아파트 부동산 열풍, 올해 3월 이후 개인의 주식 매수세가 급증한 이른바 ‘동학개미운동’도 비슷한 맥락이다. 경제적 불평등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갭투자와 같은 ‘우회로’에 대한 갈망과 불만은 이어질 공산이 크다.

기자명 김동인 기자 다른기사 보기 astori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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