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이명익

7월10일 정부가 ‘부동산 보완대책’을 발표했다. 핵심은 다주택자에 대한 보유세(재산세·종합부동산세)와 양도소득세 강화 등 세제 개편이었지만, 다주택자의 규제 회피 창구로 활용되었던 등록주택임대사업자(임대 등록) 제도를 3년 만에 폐지하는 결정에도 이목이 집중됐다. 등록주택임대사업자 제도는 2017년 8·2 대책 당시 서민 주거안정을 위해 추진한 현 정부 핵심 정책이었다. 그러나 애초 제도 설계와는 달리 각종 부작용이 나타났고, 오히려 다주택자에게 가하는 각종 세제를 무력화하는 창구로 활용되어 도마 위에 올랐다. 이 정책의 근간을 설계한 김수현 전 청와대 정책실장에 대한 비판도 거세게 일었다.

7·10 대책 발표 이후 등록주택임대사업자 제도는 ‘실패한 정책’ 정도로 일축되고 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3년 동안 정부가 왜 이 제도에 매진해왔고, 왜 이 제도가 실효성을 갖지 못했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등록주택임대사업자 제도의 흥망성쇠를 살펴보면 현 정부 부동산 정책의 기본 방향과 그 변화를 읽어볼 수 있다.

‘집은 사는(매입·Buying) 게 아니라 사는(거주·Living) 것’이라는 구호가 있다. 이 상투적인 표현에는 묘한 역설이 담겨 있다. ‘사지 않은 집에서 사는 것’, 즉 타인이 소유한 집에서 거주하는 임차 생활이다. 그러나 임차는 현실 속에서 두 가지 불안정성을 갖는다.

하나는 거주 자체에 대한 위협이다. 주택임대차보호법에 임차인(세입자) 보호에 관한 내용이 들어 있지만, 현실적으로 임차인이 임대인(집주인)의 요구를 거절하기란 쉽지 않다. 임대료 인상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계약이 끝날 때마다 이사를 다녀야 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거주 기간과 비용 모두 불안정한 탓에 ‘남의 집 살이’는 점점 팍팍해진다.

ⓒ연합뉴스2018년 11월 반부패정책협의회에서 대화를 나누는 김수현 정책실장(오른쪽)과 김현미 장관.

임대사업자 제도, 놓지 못한 이유

다른 하나는 자산의 기회비용에 대한 위협이다. 매매가격 대비 전세금 비율이 높을수록, 집값 상승폭이 클수록 이 기회비용은 증가한다. 은행 대출까지 받아가며 마련한 전세금 수천·수억 원은 집주인에겐 집 소유권을 유지하기 위한 안정적인 자금원이 된다. 자산 가치(집값)가 오르더라도, 그 과실인 가격 상승분은 오롯이 집주인의 몫이다.

결과적으로 지난 3년간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거주 안정성을 확보하려다 자산 불평등을 심화시킨 꼴이 되었다. 등록주택임대사업자 제도는 임차인의 거주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정책이었지만, 오히려 자산 불균형에 일조했기 때문이다.

등록주택임대사업자 제도는 개인인 다주택자를 법적인 사업자로 전환하는 정책이다. 박근혜 정부 당시 기업형 임대사업자를 위해 ‘민간임대주택에 관한 특별법’이 마련되었는데 문재인 정부는 이 제도를 손질해 다주택자를 시스템 안으로 포섭하려 했다. 2017년 8월2일 ‘주택시장 안정화 방안(8·2 대책)’에서 구체화되고, 그해 12월 ‘임대사업자 등록 활성화대책’을 추가로 내놓으며 문재인 정부 초기 부동산 정책의 한 축을 이뤘다. 등록된 임대사업자는 임대료 상승이 제한되고, 장기 임대(최소 4년 또는 최소 8년)를 해야 한다. 다주택자의 ‘단타 매매’를 막고 책임 있는 임대인의 역할을 하도록 유도하겠다는 의도다. ‘다주택을 포기하거나 임대사업을 할 거라면 차라리 시스템 안에서 하라’는 게 당시 정책 당국이 부동산 투기 세력에게 보내는 메시지였다.

그러나 ‘당근’으로 내세운 혜택 때문에 주택 매물이 오히려 줄어드는 문제가 발생했다. 제도 설계 초창기 임대사업자는 취득세, 재산세, 종합부동산세, 양도소득세 등 부동산 관련 세제 전반에서 혜택을 누렸다. 임대소득세, 건강보험료 등에서도 절세 혜택을 볼 수 있었다. 규제 회피 채널로 널리 알려지면서 등록임대사업자는 2020년 1분기까지 51만여 명으로 늘었다. 이들이 가지고 있는 주택 수도 156만여 채에 이르렀다.  

임대사업자에 대한 혜택이 지나치게 과도하다는 지적이 나오자 정부도 2018년 9·13 대책부터 관련 혜택을 점차 줄여나갔다. 그러나 임대사업자 관련 정책 수정안이 나올 때마다 투기 세력 역시 다양한 방식으로 규제를 회피했다. 개인보다 법인의 혜택이 많다는 이유로 법인사업자로 등록하거나, 개인이 법인을 여러 개 세워 ‘다주택 쪼개기’를 시도하기도 했다. 7월14일 국회에서 열린 ‘부동산 세제 개편 방향과 과제 토론회’에서 정세은 교수(충남대 경제학과)는 “등록주택임대사업자가 되면 안 그래도 약한 조세 부담을 더욱 줄일 수 있다. 이 제도에 등록해 장기임대(8년)할 경우 오히려 8년 뒤에 미등록(단순 다주택자) 상태보다 훨씬 높은 시세 차익을 얻는다. 결국 투기 수요를 부추긴다”라고 평가했다.

연이은 비판에도 불구하고 등록임대사업자 제도를 끝까지 놓지 못한 배경은 무엇일까? 다주택자를 임대사업자로 등록시켜 시스템 내부로 포섭하고, 민간 임대를 주택시장의 한 축으로 인정하자는 정책 방향은 김수현 전 청와대 정책실장의 오랜 주장이었다. 김수현 전 실장이 민간 임대시장의 등록화(시스템화)를 임차인 주거 안정의 주요 수단으로 상정한 배경은 2011년 그가 펴낸 〈부동산은 끝났다〉와 그가 2008~2013년에 발표한 각종 논문에서 확인해볼 수 있다.

김 전 실장이 그린 밑그림은 이렇다. 한국은 임대주택 의존도가 상대적으로 높은 나라다. 2019년 기준 자가점유율(자가주택에 살고 있는 비율)은 전국 58%, 수도권 50% 수준이다. 자가보유율(자가주택 소유 비율)도 전국 61.2%, 수도권 54.1%다. 비교적 우리보다 경제성장을 먼저 한 미국(64.5%·2014년), 영국(63.5%·2015년), 스웨덴(70.6%·2015년)보다 임대주택 의존도가 크다.

전 국민의 40%가 의존하는 임대주택에서 공공주택이 차지하는 비중은 낮은 수준이다. 2017년 기준, 전체 주택 대비 10년 이상 장기 공공임대주택의 비율은 6.7%에 불과하다. 그렇다고 공공임대주택을 단기간에 늘리는 건 불가능하다. 사람들이 원하는 지역에 대규모로 공급하기에는 땅값도 비싸고 건축비도 만만찮다. 결국 민간임대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면 이들을 시스템에 포섭한 뒤 규제하는 게 가장 현실적이고 빠른 대책이라고 본 것이다.

김 전 실장은 지표로 삼을 만한 국가와 제도로 독일식 모델을 강조한다. 독일은 자가 비율이 51.9%(2015년)에 머물지만 다양한 주택조합 등이 민간 임대시장에 자리 잡았다. 독일식 민간 임대차제도의 핵심은 세입자 보호 장치다. 자동계약갱신제가 적용되고 신규 계약 시에도 인근 주택 임대료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게 한다. 집을 가진 임대인에게도 유지수선비를 지원하고 임대소득을 보전케 하는 등 유인장치를 마련해 정책에 협조하도록 유도했다.

한국에서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내 집 마련’을 꿈으로 여긴다. 한 나라의 주거 문화는 역사적 궤적에 따라 형성된다. ‘내 집 마련’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미덕이었고, 고도성장기에 부동산으로 자산을 늘린 압축된 근대화의 경험 속에서 자가 열망 현상을 무작정 잘못된 욕망이라고 평가절하하긴 어렵다. 역대 정부도 오랜 기간 1가구 1주택을 권장했다.

그러나 자가주택 비중이 너무 큰 것은 거시경제에 ‘리스크(위험)’가 된다. 가계 자산이 부동산에 매몰되고, 과도한 모기지(주택담보대출)로 인해 가계부채 문제가 터질 수 있다. 실제로 김 전 실장이 이 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저술한 시기는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다. 전 세계 부동산 시장은 1990년대 후반부터 급격하게 상승했지만, 결국 무리한 자가 보유로 인한 부실 주택담보대출 채권이 2000년대 후반 전 세계 금융위기를 야기했다.

당장 공공임대를 늘릴 수도 없고, 그렇다고 무리하게 자가 보유를 권하는 것도 위험하다면 민간임대 비중을 당장 줄이는 건 불가능하다. 이 상황에서 경제적 약자인 임차인(세입자)을 보호하는 장치를 마련하는 ‘방법론’으로 등록주택임대사업자 제도가 동원된 셈이다.

그러나 독일식 모델을 참고한다고 해서, 독일과 유사한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독일이 민간 임대 규제를 이어갈 수 있었던 것은 ‘반드시 집을 사지 않아도 된다’는 나름의 주택 문화가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시민들의 노후 대비도 부동산 자산보다는 연금에 근거하고 있어 자가 소유의 유인동기도 다르다.

독일과 한국은 부동산 세제도 다르다. 주택을 갖고 있을 때 내는 보유세가 만만찮다. 독일 라이프치히시 슈테판 가이스 도시재생국장은 지난해 10월 〈시사IN〉과 만난 자리에서 “독일에서는 소유세(보유세) 기반으로 한 정책 입안이 가능하다. 민간이 보유한 주택 문제를 공공 단위에서 해결할 때 소유세를 감면해주는 형식으로 유도한다”라고 말했다.

정책 아이디어를 제공한 김 전 수석 역시 반드시 등록임대사업자 제도가 만능은 아니라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김 전 수석은 지난해 12월 JTBC와의 인터뷰에서 “시장에 불안 요인이 된다면 등록주택임대사업자 제도를 제한하거나 고칠 수도 있다”라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이 같은 반응도 너무 늦었다고 여기는 이들이 많다.

ⓒ연합뉴스2018년 9월13일 정부가 주택시장 안정화 방안을 발표한 가운데 서울 마포구청에서 임대사업자 등록 신청자들이 기다리고 있다.

돌고 돌아 보유세 카드 꺼내

임대사업자 등록을 통한 임차인 보호 정책은 이번 7·10 대책으로 폐지됐다. 그렇다고 정부가 임차인 보호라는 목표 자체를 폐기한 것은 아니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임대사업자 등록은 임대차 시장 투명성, 임차인들의 주거안정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취지에서 시행됐다. 이번에 임대차 3법이 통과되면 이 같은 당초 취지는 모두 해결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한마디로 등록임대사업자 제도 대신 임대차 3법 개정으로 정공법에 나서겠다는 의미다.

임대차 3법 개정이란 전·월세 신고제, 전·월세 상한제, 계약갱신청구권제 도입을 명문화하는 내용이다. 임대차 기간을 최대 4년까지 보장받고 임대료 증액 상한도 5%로 두는 게 목표다.

임대차 3법 개정안은 ‘집값 잡기’와 별개 사안이지만, 그렇다고 상충하는 관계도 아니다. 등록주택임대사업자 제도가 집값 상승에 영향을 미친 반면, 임대차 3법 개정안은 임대사업자가 아닌 전체 주택 임대차계약에 적용된다는 차이점이 있다. 임차인 보호를 정공법으로 돌파한다면, 이제 남은 것은 자산 격차 해소다. ‘집을 많이 갖고 있는 것만으로도 부담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7·10 대책은 다주택자의 보유세 부담을 크게 늘려 매물 증가를 유도하고 있다.

애초부터 등록주택임대사업자 제도를 도입하는 대신 임대차 3법 개정을 추진하고, 다주택자의 보유세를 늘렸으면 어땠을까? 실제로 2017년 8·2 대책이 나왔을 때에도 보유세 인상론에 대한 목소리가 높았다. 본질적인 대책 대신 곁가지 정책에 집중한다는 지적이었다. 부동산은 구입(취득세), 보유(재산세·종합부동산세), 매각(양도소득세) 과정에서 과세하는데, 다주택자가 ‘어쨌든 수익이 남는다’는 계산을 못하도록 하려면 보유 자체에 부담을 느끼게 해야 했다.

보유세의 핵심은 종합부동산세다. 정부는 줄곧 종부세를 산정하는 기준 중 하나인 ‘공정시장가액 비율’이 해마다 늘고 있었기 때문에 사실상 보유세가 점진적으로 늘어났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다주택자에 대해 ‘보유세 인상책’을 이제야 꺼낸 점은 여당이나 기재부 모두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할 수 있는 걸 왜 이제 하느냐”라는 반론이 나오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총선에서 거대 여당이 만들어지고 나서야, 겨우 보유세 정책을 자신 있게 밀어붙이게 되었다. 문재인 정부는 그동안 등록주택임대사업자 제도라는 샛길을 이용했지만, 결국 목표에 도달하지 못한 채 원점에서 다시 출발하게 되었다. 새로 재편된 정책 패키지가 힘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빠른 국회 입법이 관건이다. 거대 여당이 된 상황에서 현 정부의 남은 임기는 2년이 채 되지 않는다. 이 기간 부동산 문제에 대해 정부·여당이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지 못할 경우 부동산 문제에서는 역대 정권 가운데 최악이었다는 비판을 감수해야 한다.

기자명 김동인 기자 다른기사 보기 astori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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