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uter파리 루브르 박물관을 찾은 관람객들이 6월3일 마스크를 쓴 채 조각상 옆을 지나고 있다.

한국에선 ‘예술의 나라’로 알려진 프랑스 문화계가 사상 최악의 위기를 맞고 있다. 문화예술 각 분야(음악·출판·미술·영화 등)의 대표를 모은 프랑스 문화인 단체 ‘프랑스 크레아티브’의 연구에 따르면, 2018년 프랑스의 예술문화 부문의 수입은 914억 유로(약 123조원)에 달했다. 그러나 지난 5월17일, 라디오 방송 프랑스퀼튀르의 특집 〈코로나19:문화와 축제의 어두운 미래〉는 현재 국면을 ‘프랑스 문화계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 맞는 위기’라고 진단했다. 방송에서 프랑스 음악저작권협회(SACEM) 장노엘 트롱 대표는 “코로나19로 인한 문화예술계의 손실액이 약 100억 유로(약 13조원)에 달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실제 피해 규모는 훨씬 더 클 것으로 보인다.

프랑스에서 열리는 세계적인 축제가 줄줄이 취소되고 있다. 2월 말 이웃 나라 이탈리아의 코로나19 확진세가 심각해지자 인접 지역인 니스의 카니발 축제가 취소됐다. 3월20일부터 23일까지 예정되어 있던 파리 도서전(살롱 뒤 리브르 파리)도 열리지 못했다. 글로벌 출판계에서 최대 규모의 행사 중 하나다. 지난해 파리 도서전에는 50여 국가의 작가 3000여 명이 참가했다.

올여름 예정되어 있던 대형 예술축제 아비뇽 페스티벌과, 음악축제인 벨포르의 유로케엔, 라로셸의 프랑코폴리 역시 개막 계획을 접어야 했다.

프랑스의 대표 국제영화제인 칸 영화제 역시 코로나19의 여파를 피해갈 수 없었다. 당초 칸 영화제는 5월12일부터 23일까지 열릴 예정이었다. 집회와 이동을 제한하는 정부 지침에도 불구하고 주최 측은 한동안 영화제 취소를 망설였다. 심지어 3월11일 일간지 〈피가로〉 인터뷰에서 피에르 레스퀴르 칸 영화제 조직위원장은 “코로나19가 3월 말에 피크에 이르고, 4월부터는 조금 나아지리라는 긍정적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지난 4월13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대국민 연설을 통해 5월11일까지 이동제한령을 연장하며 7월 중순까지 모든 축제를 금지한다고 발표해버렸다. 이튿날 칸 영화제 집행위원회는 “올해 칸 영화제가 기존 형태로 진행되기는 어려워 보인다”라고 밝혔다. 영화제가 온라인 스트리밍으로 진행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왔다. 티에리 프레모 집행위원장이 4월17일 〈피가로〉와 인터뷰하면서 “어떤 것도 포기하지 않겠다. 영화관 상영을 지지한다”라고 고집을 부렸으나, 결국 영화제를 6월 말로 연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칸 영화제 집행위원회는 일단 초청작만 공개하고 상영은 추후 열릴 다른 영화제와 협업할 계획을 고려하고 있다. 가을에 열리는 베니스 국제영화제, 베를린 국제영화제, 토론토 국제영화제 등이 물망에 오른다. 각 영화제작사가 작품을 투자받는 필름마켓은 6월22일부터 26일까지 온라인으로 열린다.

칸 영화제를 비롯해 위기를 맞은 각국 국제영화제는 5월29일부터 6월7일까지 공동으로 온라인 영화제를 개최하기도 했다. ‘We Are One:A Global Film Festival (우리는 하나:글로벌 영화 축제)’이라는 이 영화제는 유튜브 채널에서 과거 수상작을 무료로 상영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프랑스 내의 대표 문화예술 시설도 휴업을 단행했다. 루브르 박물관의 직원들은 3월1일 노동법상 후퇴권(Droit de retrait)을 들어 ‘생명이나 건강에 심각하고 절박한 위험이 있는 경우’ 일하는 상황에서 물러나 있을 수 있는 권리를 행사했다. 프랑스 정부가 5000명 이상 모이는 집회를 금지한 시점이었다.

3월1일 라디오 프랑스앵포에 출연한 루브르 박물관 직원은 “5000명 이상 모이는 집회는 금지됐는데 하루 4만명이 방문하는 루브르는 어떻게 아직 문을 여나?”라고 반문했다. 사흘간 폐쇄됐던 루브르 박물관은 직원들에게 손소독제를 배부하고 전자티켓 발권만 허용하는 등 대책을 제시해 다시 문을 열었으나, 정부 지침에 따라 3월 셋째 주부터 휴관했다. 7월 초 개관을 준비 중이다.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하자 올리비에 베랑 보건장관은 3월8일 1000명 이상 집회를 금지했다. 다음 날부터 필하모니 드 파리, 오페라 코믹 극장, 파리 오페라 극장 등이 공연을 줄줄이 취소했다. 집회금지 조치는 매주 강화되었다. 3월13일에는 100명 이상 모이는 집회가 금지됐다.

예술인 실업급여 내년 8월까지 지급

이런 조치에도 불구하고 소규모 영화관들은 운영을 계속하고 있었다. 300석이 넘는 레브르 극장은 닫았지만 48석, 113석, 116석 등으로 세 상영관을 갖춘 뤼세르네르 극장은 계속 관객을 받는 식이었다. 결국 3월 셋째 주 정부는 “필수 업종을 제외한 상점은 모두 영업을 중단하라”고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3월17일 전국적으로 이동제한령이 실시되자 프랑스 문화계의 위기는 더 심각해졌다. 프랑스에 있는 300여 개 영화관 중 100개 이상이 독립영화관이다. 독립서점은 3000여 개에 달한다. 정부 지원 없이는 자체 재정만으로 폐쇄 조치와 이동제한령을 오래 견디기 어렵다. 3월18일 프랑크 리에스테르 문화장관은 코로나19 위기로 큰 타격을 받은 여러 문화 영역에 긴급지원금 2200만 유로(약 297억원)를 지급하겠다고 발표했다. 음악계에 1000만 유로, 공연계에 500만 유로, 출판계에 500만 유로, 조형예술계에 200만 유로를 지원하겠다는 방침이다. 긴급지원금은 보조금 형태로 각 업계에 지급된다.

수입이 일정하지 않은 예술인들도 대책 마련을 요구했다. 에밀리 들로름 파리음악원장은 AFP 통신 인터뷰에서 “고용주들이 취소된 콘서트와 공연 계약금을 지불하지 않으면 가뜩이나 불안정한 집단이었던 기간제 예술인들은 한층 어려워질 것이다”라고 말했다.

프랑스 기간제 예술인은 연 507시간 이상 일하면 실업수당을 지급받는다. 이 지급 기간을 늘려달라는 청원에 시민 5만여 명이 서명했다. 5월6일 마크롱 대통령은 예술인들과의 화상회의에서 2021년 8월까지 기간제 예술인들에게 실업급여를 지급하겠다고 약속했다. 정부는 영화 제작이 중단된 제작사들에게 보조금을 지급하고, 작가들의 사회보장기금 납부를 4개월 면제해주는 정책도 내놓았다.

5월11일 마크롱 대통령은 이동제한령 해제와 함께 소규모 서점과 박물관의 재개장을 허용했다. 다만 위생 수칙에 따라 모든 방문객의 마스크 착용과 손소독제 사용을 의무화했다. 5월15일 파리 14구의 자코메티 기념관이 박물관 중 처음으로 다시 문을 열었다. 5월28일 에두아르 필리프 총리는 위생 수칙을 지킨다는 조건 아래, 6월22일부터 프랑스 전 지역의 영화관 개관을 허용하겠다고 발표했다.

기자명 파리∙이유경 통신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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